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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군대 간 이야기③
입력 2019.09.14 (08:00) 취재K
트럼프가 군대 간 이야기③
〈역자 주〉
시사기획 창 ‘트럼프의 선택은(6월 11일 방송)’편에 출연해 트럼프의 뉴욕군사학교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동창생 샌디 매킨토시(Sandy McIntosh)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담은 기고문을 KBS에 보내왔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중학생 트럼프가 군대에 간 이야기’입니다. 중년 이상 우리나라 남자들이 군대에서 겪었음직한 군대식 문화를 트럼프는 중고등학생 때 경험한 셈인데, 이 시절의 경험이 오늘날의 트럼프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매킨토시의 판단입니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주요변수인 트럼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번역본을 4회에 걸쳐 싣습니다. 뉴욕에서 시인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매킨토시가 직접 겪고 본 트럼프를 쓴 글이기에 좀 긴 감은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운 1차 정보를 많이 담고 있으며, 소설처럼 잘 읽히는 편입니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인데 이 글은 트럼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전형적인 뉴요커의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7. 이번엔 내 차례

도널드가 말했다. “입학하던 첫해에 말이야, 도비를 이해하게 됐어. 도비가 나한테 말했지, ‘넌 승자가 돼야 해. 승자 아니면 패자거든.’ 너도 도비를 잘 다뤄야 이기는 거야. 난 말이야, 아버지를 다루던 방식으로 도비를 다뤘어. 아버지는 나한테 말했어. ‘넌 킬러고 넌 왕이야.’ 그래서 도비한테도 아버지처럼 했지. 나는 킬러고 왕이야. 도비가 ‘뛰어’하면 도비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빨리 뛰었어. 도비가 ‘타자를 삼진 시켜’라고 하면 모조리 삼진 시켜버렸지. 하급생들 군기를 잡으라고 하면 악 소리 날 정도로 두들겨 팼지. 그랬더니 도비는 나를 승자로 인정해주더군. 날 건드리지 않는 건 물론이고, 항상 나를 신임하고 내가 해달라는 건 다 해주더군.”

도널드는 미식축구나 야구, 볼링 같은 학교 운동부 활동뿐 아니라 겨울방학 때도 모형 만들기 클럽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학년 말에 도널드는 모범 메달을 받았다.

도널드가 도비한테서 해방되자 다음은 내 차례였다.

입학하던 날, 사복을 군복을 갈아입던 무렵이었다. 소위 계급장을 단 선배가 나를 포함해 신입생 열대여섯을 홀랑 벗은 상태로 샤워실로 몰아넣고 나서는 소리쳤다.

“축구부 애들이 도비와 함께 곧 도착할 거다. 이 팀은 5분 내로 샤워를 끝마친다. 실시!”

샤워기 물은 끓는 듯 뜨거웠다. 전등은 샤워실 벽에 커다란 그림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모두들 세면 가방에서 샴푸를 꺼내려고 허둥거렸다. 비누를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허리를 굽혀 떨어진 비누를 주울라치면 뒤에서 욕설과 함께 선배들의 발길질이 날아왔다.

그러고 3분이나 흘렀을까? 샤워실 앞에 있는 선배가 ‘샤워 끝’ 하고 소리쳤다. 축구부가 도착한 것이었다.

황급히 머리에서 샴푸를 씻어내고 있는데 출입문 쪽에 선배들 그림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눈엔 엄청나게 거대한 그림자로 보였다. 곧이어 실물들이 응원 구호를 외치며 나타났다.

이렇게 홀랑 벗은 상태에서 두비아어스 소령과 처음 마주치는 건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약간은 실망스럽기도 했다. 도비는 거대했던 그림자만큼 거대하지도 않았고, 도널드가 경고해줬던 전설적인 악당 같지도 않았다. 실제로 본 도비는 작았다. 중학교 2~3학년쯤 돼 보이는 키에 나무술통처럼 땅땅한 가슴팍. 마치 황소 머리를 한 미노타우르스 같았다. “사나이들이 어떻게 샤워를 해야 되는지 보여주마.” 도비는 이렇게 말하고는 우리들을 밀치며 샤워실로 들어왔다. 축구부 선배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우리들은 서로 밀치며 도비에게 공간을 내주었다. 내 룸메이트가 될 프랭키는 겁을 집어먹었는지 이렇게 중얼거렸다.“소령님이 우리한테 진짜 사나이가 어떤지 보여주시려나 봐.”

도비와 내가 1대1로 대면한 건 막사 검열 때였다. 나는 런 소위라는 선배와 한방을 쓰게 됐다. 우리 방은 3층이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지붕은 도비가 쓰는 사택의 지붕과 맞닿아 있었다. 그 창문 아래 선반에 발효 사과 사이다 한 병을 숨겨놓고 있었다.

도비는 물광을 내놓은 군화와 잔뜩 각을 잡아놓은 침대를 대충 휙 둘러보더니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내 침대 위로 내던졌다. 날아간 동전은 튀어 오르기는커녕, 침대보 속에 푹 파묻혀버렸다.

도비는 침대보를 홱 잡아당겨 벗겨버렸다. 그리고 내 룸메이트에게 다가갔다. “런! 침대가 왜 이렇게 엉망이지? 이 멍청이한테 똑바로 잘 가르쳐!”

“네, 알겠습니다.” 런이 복창했다.

도비는 곧바로 창문으로 걸어가더니 팔을 뻗어 사이다를 집었다.

그러더니 런을 보고 씩 웃었다. “이런 걸 숨겨? 날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잊었나본데, 나도 이 학교 학생이었으니까 이 정도 속임수는 다 알아! 이건 압수다. 그리고 매킨토시, 너도 벌점이다. 오늘의 교훈, 귀신은 속여도 난 못 속인다.”

더럭 겁이 났다. 도널드한테 도비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던 터라, 도비를 화나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도비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몇 마디를 했다.

“던! 들었지?” 도비가 말했다. “네 룸메이트가 알랑방귀를 뀌고 있는데! 제대로 좀 가르쳐 놓는 게 좋을 거야.”

도비한테 아첨 떨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됐으니, 아첨 전술은 접었다. 대신 아버지한테 써먹던 전술을 쓰기로 했다. 도서관이나 학습실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최대한 늘렸다. 초라한 도서관이었지만 거기서 단편소설을 끄적거리기도 했고 나중에는 시도 쓰게 되었다. 입학 첫해에 두바이어스는 나를 타락한 “패배자”라 여겼다. 그런 나를 구원해주려고 그랬는지 도비는 내게 온갖 모욕을 퍼부어 댔다.

본인이 알았는지 모르지만, 두바이어스는 심리적 괴롭힘의 달인이었다. 그의 교육방식 중 하나는 집합장소에 격언 같은 것들을 써 붙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격언들은 서로 반대되곤 했다. 이런 격언이 붙었다. “신께서 우리를 평가하러 오실 때, 경기에서 이겼는지 졌는지가 아니라 경기에 어떤 자세로 임했는지를 평가한다.” 그 옆에 있는 격언은 이랬다. “이기는 게 모든 것(everything)이 아니다. 그것은 유일한 것(the only thing)이다!” 두 가지 슬로건이 상충되는데 뭐가 더 중요한 거냐고 물어봤다. 이런 바보가 있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네가 필요한 거 갖다가 써. 그게 안 먹히면 그 옆에 있는 걸 갖다가 쓰고.” 내 생각엔 요즘 대통령 트럼프가 이런 기술들은 자주 써먹고 있는 것 같다.

도비의 괴롭힘 수단 중 하나는 권투였다.

“매킨토시, 싸움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마,” 두바이어스가 말했다. “싸움을 걸어오면 덤빌 줄도 알아야 되고, 싸움을 걸 줄도 알아야 돼.”

내 생애 최초의 권투경기에 그는 스캇이라는 애를 상대로 붙여주었다. 나보다 나이는 많았는데 키는 나보다 작았다. 나한테 훨씬 유리한 경기 같았다. 그런데 나중에 듣고 보니 스캇은 도비에게 몇 주째 권투 개인지도를 받고 있었다고 했다. 경기 전에 도비가 나에게 경고했다. “유도기술을 쓰면 안 돼, 알았나? 이건 정식 권투경기니까.”

스캇이 파고들며 주먹을 날렸다. 날쌔게 내 몸 여기저기를 흠씬 두들겼다. 마치 벌떼들한테 쏘이는 것 같았다. 이런 조그만 녀석한테 얻어터지고 있다니, 모욕감이 밀려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 녀석 트렁크 뒤를 붙잡고는 내 오른쪽 엉덩이를 그 녀석 복부로 밀어 넣어 엎어치기를 시도했다. 매트 위로 나동그라진 그 녀석은 내게 쌍욕을 퍼부어댔다.

구경하던 아이들은 킬킬거렸다. 어떤 녀석들은 겁을 먹었는지 뒤로 물러섰다. 도비는 격분해 있었다. “유도기술 쓰지 말라고 그랬지? 권투가 뭔지 가르쳐주마.” 도비는 권투 글러브를 끼더니 링으로 올라왔다. 내 얼굴에 펀치 몇 방을 날렸다. 그냥 펀치가 아니었다. 나를 모욕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방 맞고 나자 나는 뒤로 물러섰다.

“그 잘난 유도기술 다시 써 보시지?” 도비가 내 신경을 건드리며 놀려댔다. “덤벼. 어떻게 하는지 구경 좀 해보자. 이 주먹으로 그 엉덩짝을 날려주마.” 맞을 만큼 맞았으므로 나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에게 권투를 지도하는 두바이어스학생들에게 권투를 지도하는 두바이어스

그 뒤로 몇 주 동안 도비는 매일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오늘 오후에 권투연습을 한다. 매일 한다. 네가 다른 녀석을 거꾸러뜨리거나 아니면 네가 다른 녀석한테 거꾸러지거나 할 때까지 계속한다. 방구석에 쳐 박혀 있는 건 금지다.”강당 벽에 써 붙여놓은 격언을 가리키면서 도비가 큰 소리로 읽었다. “게으르고 무능한 자들은 항상 운으로 도피하려 한다.”

“그거 알고 있나?” 그가 조롱하며 말했다. “나를 만난 순간, 네 운은 끝났어.”

몇 주 동안 무지막지한 권투경기를 견뎌내야 했다. 그러고 나니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무덤덤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막사로 걸어가는 길에 도널드를 만났다. 도널드가 잘 지내느냐고 물었다. 두바이어스가 괴롭힌다고 대답했더니 도널드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러니까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다 이거지?”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내가 도비랑 얘기해 볼 게,” 도널드가 말했다.

도널드가 도비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모르지만, 말을 하기는 했는지도 모르지만, 도비는 나를 권투연습에서 해방시켜주었다. 당시 세 가지 일이 있긴 했었다.

첫째, 형편없던 내 라틴어 점수가 올랐다. 내 라틴어 성적은 도비의 잔소리거리 중 하나였는데, 적어도 그 문제는 해결됐다.

둘째, 본의 아니게 나는 남자답다는 인정을 받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취침나팔이 울리고 나서 침대에 누워 몰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직사관이 순찰을 도는 소리였다. 당직사관들은 방마다 문을 열어 학생들이 자는지를 확인했다. 학생들이 장난치러 나갔는지 확인하려고 자고 있는 학생들 손에 일일이 손전등을 비추곤 했다. 당직사관이 우리 방문 앞에 이르자 나는 담배를 침대 밑으로 던져버리고 자는 척했다. 당직사관은 여기저기 손전등을 비춰보더니 다른 방으로 가버렸다. 방문이 닫히고 침대 밑에 담배를 꺼내려다가, 철제 휴지통 테두리에 얼굴이 긁혔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오른쪽 눈 주변이 시퍼런 상처가 보였다.

“이것 봐라!” 아침 식사를 하려고 중대원들이 도열해 있는데 도비가 소리쳤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됐군! 유도나 하던 녀석이 드디어 진짜 싸움을 했나보네!”

셋째, 어느 날 아침 도비가 나를 불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널 장례식장에 데려다줄 사람이 곧 도착할 거다.”

뉴욕군사학교로 복귀했을 때, 나는 한 학년 진급해 있었다. 도비와는 안녕이었다. 모르긴 해도 도널드는 도비랑 내 문제를 상의하긴 했을 것이다. 어찌 됐건 두바이어스 소령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8. 상급학년의 플레이보이들

도널드와 나는 본부 막사에서 함께 살았는데, 해마다 방도 바뀌고 계급도 바뀌었다. 도널드는 고 2때 보급 담당 하사관이 되었다. 그 자리는 다른 학생들을 지휘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자기 방에 총기보관대를 놔두고는 M1 소총을 보관하는 게 임무였다. 훈련이나 행군 때 총기 보관대를 열어서 총을 나눠주고 끝나면 총을 모두 걷어서 잠그는 게 도널드의 일이었다.

도널드는 만날 때마다 나한테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몇 년을 사귀어도 우리가 진짜 친구가 맞는지 화가 날 때가 있었다. 만날 때마다 나는 교직원이나 학생들에 대한 농담을 해주거나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뉴스를 들려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도널드는 살짝 킥킥거리는 것 이상의 반응을 보인 적이 없다. 그의 반응은 언제나 늦었다. 마치 그가 내 의도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억지로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A중대에 있던 한 친구는 도널드가 자기 생각을 숨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DT는 날 신뢰했어,” 최근에 그 친구가 내게 말했다. “사실 신뢰라는 말은 너무 강한 말일지도 몰라. 난 걔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확신이 안 들었거든.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어. 걔는 자기 혼자서만 지냈거든. 좋은 애지만 진짜 친구는 없는 애였어.”

도널드가 나한테 영어 작문을 도와달라고 몇 번 찾아온 적이 있었다. 보통은 완전히 새로 써야 했다. 도널드의 작문은 지금이나 비슷했다. 엉터리 맞춤법, 문법적 오류, 부적절한 표현 등등이 글에 그대로 나타났다. 어떤 때는 문법적으로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건 속임수가 아니야,” 내가 작문숙제를 완전히 새로 써주자, 도널드가 우겨댔다. “내가 널 도와주고 있는 거라고, 네 작문 실력을 향상시켜 주려고 말이야.”

그해 영어 시간에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읽었다. 나는 5막에 나오는 로렌조의 대사를 보다가 놀라운 대목을 발견했다. 그 대목은 어렴풋이 도널드를 떠올리게 했다.

마음속에 음악이 없는 자는
... 반역이나 술수, 약탈에 적합하구나.
그 정신의 움직임은 밤처럼 느리고 굼뜨네,
... 모름지기 그런 자는 믿지 말아야 할지니.

사귈 때 속을 알 수 없는 것만 빼면, 도널드는 꽤 괜찮았다. 특히 운동에 뛰어나서 야구와 농구, 볼링, 미식축구 종목에서 학교 대표에 이름을 올렸다. 야구팀은 주장을 맡기도 했다. 졸업앨범엔 타석에 선 도널드가 나온다. 그 밑에 이런 자막이 붙어있다. “안타입니다.” 두바이어스의 지도를 받아 그는 만능 스포츠맨이 되었다.

‘트럼프, 쳤습니다. 안타입니다.’ 졸업앨범에 실려 있는 트럼프의 타격장면.‘트럼프, 쳤습니다. 안타입니다.’ 졸업앨범에 실려 있는 트럼프의 타격장면.

내 경우엔 야구나 미식축구, 테니스 실력이 그저 그랬다. 나는 군대에서 하는 활동들이 싫었다. 거의 유일하게 좋았던 건 부하사관(a junior staff sergeant)로 승진했을 때였다. 그 자리는 할 일도 별로 없었거니와 독방을 쓸 수 있어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시나 소설을 쓰기에 그만이었다. 두바이어스의 무관심 속에 나는 꿈에도 그리던 투명인간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뉴욕군사학교는 남학교였다. 여학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방문하는 여자 친구들은 교내에서 엄격한 규율을 따라야 했다.

학생생활규정의 F조 조항은 이랬다.

애정행각
여자와 손을 잡을 경우 벌점 2점
여자와 팔짱 끼고 걸어갈 경우 벌점 2점
공개된 장소에서 여자와의 행동이 지탄을 받게 된 경우 벌점 8점

이를 위반한 학생은 완전군장으로 교실 건물 주위를 몇 시간씩 돌아야 했다. 벌점 1점당 한 시간이었다.

진짜 여자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플레이보이 잡지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뉴욕군사학교는 미술 책에 나오는 유명한 누드화조차 포르노로 규정하고 있었기에 꽁꽁 숨겨놓아야 했다. 누드 사진 수준을 뛰어넘는 내공을 쌓은 학생들은 이른바 ‘플레이보이 철학’에서 위안을 얻었다. 플레이보이 발행인 휴 헤프너는 매달 글을 써서 그 잡지의 존재 이유를 입증하려고 했다. 나중에 일급 광고주들과 작가들이 플레이보이에 참여하게 되고 어느 정도 사회적 용인을 받게 되자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어떤 부류의 남자들이 플레이보이를 읽는가?” 헤프너의 광고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들도 그것이 몹시 알고 싶었다.

캘리포니아 산타 바버라의 유니태리언 교회의 목사인 존 A. 크레인이 설교시간에서 했다는 말은 우리에게(어쩌면 헤프너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플레이보이는 이상적인 남자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냈을 뿐 아니라 그럴듯한 소우주를 창출해냈습니다.... 그 우주는 좀 더 우아하고 수준 높은 소비자들을 위한 우주입니다. 여성은 모든 상품들 중에도 제일 대단한 상품입니다. 마치 멋진 스포츠카나 스카치위스키나 아이비리그 대학의 정장처럼 남자들이 즐기고 소비하는 상품이죠.”

정말로 플레이보이가 필요했으므로, 우리는 플레이보이가 포르노가 아니라는 헤프너의 주장으로 무장했다. 헤프너는 플레이보이가 포르노였다면 그런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거라고, “진짜 노골적인 하드코어는 도박이나 마약과는 달리 전국에 혹은 지역에 조직적으로 유통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이윤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 무렵, 첫 제임스 본드 영화가 개봉되었다. 그 영화의 광고는 플레이보이 지망생들에겐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이었다. 우리 모두 그걸 보러 갔는데, 어떤 녀석들은 극장에서 보려고 단체로 뉴욕 시내로 원정을 가기도 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성적인 경험을 자랑처럼 떠벌이고 다녔다. 그 자랑질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의 이론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 중 두 명은 밤에 학교를 빠져나와(탈영이다), 가까운 뉴벅까지 택시를 잡아타고는 기사에게 어디 가면 성매매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택시기사가 그 녀석들을 그곳에 내려주었다. 남미계 젊은 여자가 그 녀석들을 한 명씩 상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러고 나서 몰래 학교로 돌아왔는데, 죄책감에 시달려 고백을 하려고 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교목에게 고백을 하면 부모님들께 일러바칠까 봐, 비밀을 지켜준다는 가톨릭 신부를 찾아갔다. 신부는 녀석들을 호되게 나무랐지만, 앞으로는 꼭 순결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받아주었다.

나는 얌전한 편이었지만 진짜 여자에 대한 욕망은 있었다.

학교 바깥으로 피아노 교습 선생님 집에 차를 마시러 갔는데, 대학에서 음악을 배우고 있다는 조카를 만나게 됐다. 그녀가 나를 음악실로 부르더니 두 명이 쳐야 하는 모차르트의 무슨 듀엣을 연주하자고 했다. 처음엔 순진하게 시작했다. 그런데 나란히 앉아 18세기 사교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다 보니 묘하게도 서로 손이 부딪치고, 팔이 닿고, 다리가 서로 포개지고, 때론 끌어안는 자세가 되기도 했다. 피아노 연주가 계속되면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결론부로 치닫고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피아노 옆에 깔려있던 카펫 위였다.

도널드도 플레이보이를 탐독했었다. 때로는 자신의 성적인 경험을 슬쩍 내비치기도 했지만 도널드가 졸업할 때까지 내가 직접 본 것은 없다.

Sandy McIntosh(작가)/(번역: 박성래 기자)
  • 트럼프가 군대 간 이야기③
    • 입력 2019.09.14 (08:00)
    취재K
트럼프가 군대 간 이야기③
〈역자 주〉
시사기획 창 ‘트럼프의 선택은(6월 11일 방송)’편에 출연해 트럼프의 뉴욕군사학교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동창생 샌디 매킨토시(Sandy McIntosh)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담은 기고문을 KBS에 보내왔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중학생 트럼프가 군대에 간 이야기’입니다. 중년 이상 우리나라 남자들이 군대에서 겪었음직한 군대식 문화를 트럼프는 중고등학생 때 경험한 셈인데, 이 시절의 경험이 오늘날의 트럼프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매킨토시의 판단입니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주요변수인 트럼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번역본을 4회에 걸쳐 싣습니다. 뉴욕에서 시인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매킨토시가 직접 겪고 본 트럼프를 쓴 글이기에 좀 긴 감은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운 1차 정보를 많이 담고 있으며, 소설처럼 잘 읽히는 편입니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인데 이 글은 트럼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전형적인 뉴요커의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7. 이번엔 내 차례

도널드가 말했다. “입학하던 첫해에 말이야, 도비를 이해하게 됐어. 도비가 나한테 말했지, ‘넌 승자가 돼야 해. 승자 아니면 패자거든.’ 너도 도비를 잘 다뤄야 이기는 거야. 난 말이야, 아버지를 다루던 방식으로 도비를 다뤘어. 아버지는 나한테 말했어. ‘넌 킬러고 넌 왕이야.’ 그래서 도비한테도 아버지처럼 했지. 나는 킬러고 왕이야. 도비가 ‘뛰어’하면 도비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빨리 뛰었어. 도비가 ‘타자를 삼진 시켜’라고 하면 모조리 삼진 시켜버렸지. 하급생들 군기를 잡으라고 하면 악 소리 날 정도로 두들겨 팼지. 그랬더니 도비는 나를 승자로 인정해주더군. 날 건드리지 않는 건 물론이고, 항상 나를 신임하고 내가 해달라는 건 다 해주더군.”

도널드는 미식축구나 야구, 볼링 같은 학교 운동부 활동뿐 아니라 겨울방학 때도 모형 만들기 클럽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학년 말에 도널드는 모범 메달을 받았다.

도널드가 도비한테서 해방되자 다음은 내 차례였다.

입학하던 날, 사복을 군복을 갈아입던 무렵이었다. 소위 계급장을 단 선배가 나를 포함해 신입생 열대여섯을 홀랑 벗은 상태로 샤워실로 몰아넣고 나서는 소리쳤다.

“축구부 애들이 도비와 함께 곧 도착할 거다. 이 팀은 5분 내로 샤워를 끝마친다. 실시!”

샤워기 물은 끓는 듯 뜨거웠다. 전등은 샤워실 벽에 커다란 그림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모두들 세면 가방에서 샴푸를 꺼내려고 허둥거렸다. 비누를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허리를 굽혀 떨어진 비누를 주울라치면 뒤에서 욕설과 함께 선배들의 발길질이 날아왔다.

그러고 3분이나 흘렀을까? 샤워실 앞에 있는 선배가 ‘샤워 끝’ 하고 소리쳤다. 축구부가 도착한 것이었다.

황급히 머리에서 샴푸를 씻어내고 있는데 출입문 쪽에 선배들 그림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눈엔 엄청나게 거대한 그림자로 보였다. 곧이어 실물들이 응원 구호를 외치며 나타났다.

이렇게 홀랑 벗은 상태에서 두비아어스 소령과 처음 마주치는 건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약간은 실망스럽기도 했다. 도비는 거대했던 그림자만큼 거대하지도 않았고, 도널드가 경고해줬던 전설적인 악당 같지도 않았다. 실제로 본 도비는 작았다. 중학교 2~3학년쯤 돼 보이는 키에 나무술통처럼 땅땅한 가슴팍. 마치 황소 머리를 한 미노타우르스 같았다. “사나이들이 어떻게 샤워를 해야 되는지 보여주마.” 도비는 이렇게 말하고는 우리들을 밀치며 샤워실로 들어왔다. 축구부 선배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우리들은 서로 밀치며 도비에게 공간을 내주었다. 내 룸메이트가 될 프랭키는 겁을 집어먹었는지 이렇게 중얼거렸다.“소령님이 우리한테 진짜 사나이가 어떤지 보여주시려나 봐.”

도비와 내가 1대1로 대면한 건 막사 검열 때였다. 나는 런 소위라는 선배와 한방을 쓰게 됐다. 우리 방은 3층이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지붕은 도비가 쓰는 사택의 지붕과 맞닿아 있었다. 그 창문 아래 선반에 발효 사과 사이다 한 병을 숨겨놓고 있었다.

도비는 물광을 내놓은 군화와 잔뜩 각을 잡아놓은 침대를 대충 휙 둘러보더니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내 침대 위로 내던졌다. 날아간 동전은 튀어 오르기는커녕, 침대보 속에 푹 파묻혀버렸다.

도비는 침대보를 홱 잡아당겨 벗겨버렸다. 그리고 내 룸메이트에게 다가갔다. “런! 침대가 왜 이렇게 엉망이지? 이 멍청이한테 똑바로 잘 가르쳐!”

“네, 알겠습니다.” 런이 복창했다.

도비는 곧바로 창문으로 걸어가더니 팔을 뻗어 사이다를 집었다.

그러더니 런을 보고 씩 웃었다. “이런 걸 숨겨? 날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잊었나본데, 나도 이 학교 학생이었으니까 이 정도 속임수는 다 알아! 이건 압수다. 그리고 매킨토시, 너도 벌점이다. 오늘의 교훈, 귀신은 속여도 난 못 속인다.”

더럭 겁이 났다. 도널드한테 도비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던 터라, 도비를 화나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도비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몇 마디를 했다.

“던! 들었지?” 도비가 말했다. “네 룸메이트가 알랑방귀를 뀌고 있는데! 제대로 좀 가르쳐 놓는 게 좋을 거야.”

도비한테 아첨 떨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됐으니, 아첨 전술은 접었다. 대신 아버지한테 써먹던 전술을 쓰기로 했다. 도서관이나 학습실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최대한 늘렸다. 초라한 도서관이었지만 거기서 단편소설을 끄적거리기도 했고 나중에는 시도 쓰게 되었다. 입학 첫해에 두바이어스는 나를 타락한 “패배자”라 여겼다. 그런 나를 구원해주려고 그랬는지 도비는 내게 온갖 모욕을 퍼부어 댔다.

본인이 알았는지 모르지만, 두바이어스는 심리적 괴롭힘의 달인이었다. 그의 교육방식 중 하나는 집합장소에 격언 같은 것들을 써 붙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격언들은 서로 반대되곤 했다. 이런 격언이 붙었다. “신께서 우리를 평가하러 오실 때, 경기에서 이겼는지 졌는지가 아니라 경기에 어떤 자세로 임했는지를 평가한다.” 그 옆에 있는 격언은 이랬다. “이기는 게 모든 것(everything)이 아니다. 그것은 유일한 것(the only thing)이다!” 두 가지 슬로건이 상충되는데 뭐가 더 중요한 거냐고 물어봤다. 이런 바보가 있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네가 필요한 거 갖다가 써. 그게 안 먹히면 그 옆에 있는 걸 갖다가 쓰고.” 내 생각엔 요즘 대통령 트럼프가 이런 기술들은 자주 써먹고 있는 것 같다.

도비의 괴롭힘 수단 중 하나는 권투였다.

“매킨토시, 싸움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마,” 두바이어스가 말했다. “싸움을 걸어오면 덤빌 줄도 알아야 되고, 싸움을 걸 줄도 알아야 돼.”

내 생애 최초의 권투경기에 그는 스캇이라는 애를 상대로 붙여주었다. 나보다 나이는 많았는데 키는 나보다 작았다. 나한테 훨씬 유리한 경기 같았다. 그런데 나중에 듣고 보니 스캇은 도비에게 몇 주째 권투 개인지도를 받고 있었다고 했다. 경기 전에 도비가 나에게 경고했다. “유도기술을 쓰면 안 돼, 알았나? 이건 정식 권투경기니까.”

스캇이 파고들며 주먹을 날렸다. 날쌔게 내 몸 여기저기를 흠씬 두들겼다. 마치 벌떼들한테 쏘이는 것 같았다. 이런 조그만 녀석한테 얻어터지고 있다니, 모욕감이 밀려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 녀석 트렁크 뒤를 붙잡고는 내 오른쪽 엉덩이를 그 녀석 복부로 밀어 넣어 엎어치기를 시도했다. 매트 위로 나동그라진 그 녀석은 내게 쌍욕을 퍼부어댔다.

구경하던 아이들은 킬킬거렸다. 어떤 녀석들은 겁을 먹었는지 뒤로 물러섰다. 도비는 격분해 있었다. “유도기술 쓰지 말라고 그랬지? 권투가 뭔지 가르쳐주마.” 도비는 권투 글러브를 끼더니 링으로 올라왔다. 내 얼굴에 펀치 몇 방을 날렸다. 그냥 펀치가 아니었다. 나를 모욕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방 맞고 나자 나는 뒤로 물러섰다.

“그 잘난 유도기술 다시 써 보시지?” 도비가 내 신경을 건드리며 놀려댔다. “덤벼. 어떻게 하는지 구경 좀 해보자. 이 주먹으로 그 엉덩짝을 날려주마.” 맞을 만큼 맞았으므로 나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에게 권투를 지도하는 두바이어스학생들에게 권투를 지도하는 두바이어스

그 뒤로 몇 주 동안 도비는 매일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오늘 오후에 권투연습을 한다. 매일 한다. 네가 다른 녀석을 거꾸러뜨리거나 아니면 네가 다른 녀석한테 거꾸러지거나 할 때까지 계속한다. 방구석에 쳐 박혀 있는 건 금지다.”강당 벽에 써 붙여놓은 격언을 가리키면서 도비가 큰 소리로 읽었다. “게으르고 무능한 자들은 항상 운으로 도피하려 한다.”

“그거 알고 있나?” 그가 조롱하며 말했다. “나를 만난 순간, 네 운은 끝났어.”

몇 주 동안 무지막지한 권투경기를 견뎌내야 했다. 그러고 나니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무덤덤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막사로 걸어가는 길에 도널드를 만났다. 도널드가 잘 지내느냐고 물었다. 두바이어스가 괴롭힌다고 대답했더니 도널드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러니까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다 이거지?”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내가 도비랑 얘기해 볼 게,” 도널드가 말했다.

도널드가 도비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모르지만, 말을 하기는 했는지도 모르지만, 도비는 나를 권투연습에서 해방시켜주었다. 당시 세 가지 일이 있긴 했었다.

첫째, 형편없던 내 라틴어 점수가 올랐다. 내 라틴어 성적은 도비의 잔소리거리 중 하나였는데, 적어도 그 문제는 해결됐다.

둘째, 본의 아니게 나는 남자답다는 인정을 받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취침나팔이 울리고 나서 침대에 누워 몰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직사관이 순찰을 도는 소리였다. 당직사관들은 방마다 문을 열어 학생들이 자는지를 확인했다. 학생들이 장난치러 나갔는지 확인하려고 자고 있는 학생들 손에 일일이 손전등을 비추곤 했다. 당직사관이 우리 방문 앞에 이르자 나는 담배를 침대 밑으로 던져버리고 자는 척했다. 당직사관은 여기저기 손전등을 비춰보더니 다른 방으로 가버렸다. 방문이 닫히고 침대 밑에 담배를 꺼내려다가, 철제 휴지통 테두리에 얼굴이 긁혔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오른쪽 눈 주변이 시퍼런 상처가 보였다.

“이것 봐라!” 아침 식사를 하려고 중대원들이 도열해 있는데 도비가 소리쳤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됐군! 유도나 하던 녀석이 드디어 진짜 싸움을 했나보네!”

셋째, 어느 날 아침 도비가 나를 불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널 장례식장에 데려다줄 사람이 곧 도착할 거다.”

뉴욕군사학교로 복귀했을 때, 나는 한 학년 진급해 있었다. 도비와는 안녕이었다. 모르긴 해도 도널드는 도비랑 내 문제를 상의하긴 했을 것이다. 어찌 됐건 두바이어스 소령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8. 상급학년의 플레이보이들

도널드와 나는 본부 막사에서 함께 살았는데, 해마다 방도 바뀌고 계급도 바뀌었다. 도널드는 고 2때 보급 담당 하사관이 되었다. 그 자리는 다른 학생들을 지휘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자기 방에 총기보관대를 놔두고는 M1 소총을 보관하는 게 임무였다. 훈련이나 행군 때 총기 보관대를 열어서 총을 나눠주고 끝나면 총을 모두 걷어서 잠그는 게 도널드의 일이었다.

도널드는 만날 때마다 나한테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몇 년을 사귀어도 우리가 진짜 친구가 맞는지 화가 날 때가 있었다. 만날 때마다 나는 교직원이나 학생들에 대한 농담을 해주거나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뉴스를 들려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도널드는 살짝 킥킥거리는 것 이상의 반응을 보인 적이 없다. 그의 반응은 언제나 늦었다. 마치 그가 내 의도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억지로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A중대에 있던 한 친구는 도널드가 자기 생각을 숨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DT는 날 신뢰했어,” 최근에 그 친구가 내게 말했다. “사실 신뢰라는 말은 너무 강한 말일지도 몰라. 난 걔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확신이 안 들었거든.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어. 걔는 자기 혼자서만 지냈거든. 좋은 애지만 진짜 친구는 없는 애였어.”

도널드가 나한테 영어 작문을 도와달라고 몇 번 찾아온 적이 있었다. 보통은 완전히 새로 써야 했다. 도널드의 작문은 지금이나 비슷했다. 엉터리 맞춤법, 문법적 오류, 부적절한 표현 등등이 글에 그대로 나타났다. 어떤 때는 문법적으로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건 속임수가 아니야,” 내가 작문숙제를 완전히 새로 써주자, 도널드가 우겨댔다. “내가 널 도와주고 있는 거라고, 네 작문 실력을 향상시켜 주려고 말이야.”

그해 영어 시간에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읽었다. 나는 5막에 나오는 로렌조의 대사를 보다가 놀라운 대목을 발견했다. 그 대목은 어렴풋이 도널드를 떠올리게 했다.

마음속에 음악이 없는 자는
... 반역이나 술수, 약탈에 적합하구나.
그 정신의 움직임은 밤처럼 느리고 굼뜨네,
... 모름지기 그런 자는 믿지 말아야 할지니.

사귈 때 속을 알 수 없는 것만 빼면, 도널드는 꽤 괜찮았다. 특히 운동에 뛰어나서 야구와 농구, 볼링, 미식축구 종목에서 학교 대표에 이름을 올렸다. 야구팀은 주장을 맡기도 했다. 졸업앨범엔 타석에 선 도널드가 나온다. 그 밑에 이런 자막이 붙어있다. “안타입니다.” 두바이어스의 지도를 받아 그는 만능 스포츠맨이 되었다.

‘트럼프, 쳤습니다. 안타입니다.’ 졸업앨범에 실려 있는 트럼프의 타격장면.‘트럼프, 쳤습니다. 안타입니다.’ 졸업앨범에 실려 있는 트럼프의 타격장면.

내 경우엔 야구나 미식축구, 테니스 실력이 그저 그랬다. 나는 군대에서 하는 활동들이 싫었다. 거의 유일하게 좋았던 건 부하사관(a junior staff sergeant)로 승진했을 때였다. 그 자리는 할 일도 별로 없었거니와 독방을 쓸 수 있어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시나 소설을 쓰기에 그만이었다. 두바이어스의 무관심 속에 나는 꿈에도 그리던 투명인간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뉴욕군사학교는 남학교였다. 여학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방문하는 여자 친구들은 교내에서 엄격한 규율을 따라야 했다.

학생생활규정의 F조 조항은 이랬다.

애정행각
여자와 손을 잡을 경우 벌점 2점
여자와 팔짱 끼고 걸어갈 경우 벌점 2점
공개된 장소에서 여자와의 행동이 지탄을 받게 된 경우 벌점 8점

이를 위반한 학생은 완전군장으로 교실 건물 주위를 몇 시간씩 돌아야 했다. 벌점 1점당 한 시간이었다.

진짜 여자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플레이보이 잡지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뉴욕군사학교는 미술 책에 나오는 유명한 누드화조차 포르노로 규정하고 있었기에 꽁꽁 숨겨놓아야 했다. 누드 사진 수준을 뛰어넘는 내공을 쌓은 학생들은 이른바 ‘플레이보이 철학’에서 위안을 얻었다. 플레이보이 발행인 휴 헤프너는 매달 글을 써서 그 잡지의 존재 이유를 입증하려고 했다. 나중에 일급 광고주들과 작가들이 플레이보이에 참여하게 되고 어느 정도 사회적 용인을 받게 되자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어떤 부류의 남자들이 플레이보이를 읽는가?” 헤프너의 광고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들도 그것이 몹시 알고 싶었다.

캘리포니아 산타 바버라의 유니태리언 교회의 목사인 존 A. 크레인이 설교시간에서 했다는 말은 우리에게(어쩌면 헤프너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플레이보이는 이상적인 남자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냈을 뿐 아니라 그럴듯한 소우주를 창출해냈습니다.... 그 우주는 좀 더 우아하고 수준 높은 소비자들을 위한 우주입니다. 여성은 모든 상품들 중에도 제일 대단한 상품입니다. 마치 멋진 스포츠카나 스카치위스키나 아이비리그 대학의 정장처럼 남자들이 즐기고 소비하는 상품이죠.”

정말로 플레이보이가 필요했으므로, 우리는 플레이보이가 포르노가 아니라는 헤프너의 주장으로 무장했다. 헤프너는 플레이보이가 포르노였다면 그런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거라고, “진짜 노골적인 하드코어는 도박이나 마약과는 달리 전국에 혹은 지역에 조직적으로 유통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이윤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 무렵, 첫 제임스 본드 영화가 개봉되었다. 그 영화의 광고는 플레이보이 지망생들에겐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이었다. 우리 모두 그걸 보러 갔는데, 어떤 녀석들은 극장에서 보려고 단체로 뉴욕 시내로 원정을 가기도 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성적인 경험을 자랑처럼 떠벌이고 다녔다. 그 자랑질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의 이론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 중 두 명은 밤에 학교를 빠져나와(탈영이다), 가까운 뉴벅까지 택시를 잡아타고는 기사에게 어디 가면 성매매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택시기사가 그 녀석들을 그곳에 내려주었다. 남미계 젊은 여자가 그 녀석들을 한 명씩 상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러고 나서 몰래 학교로 돌아왔는데, 죄책감에 시달려 고백을 하려고 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교목에게 고백을 하면 부모님들께 일러바칠까 봐, 비밀을 지켜준다는 가톨릭 신부를 찾아갔다. 신부는 녀석들을 호되게 나무랐지만, 앞으로는 꼭 순결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받아주었다.

나는 얌전한 편이었지만 진짜 여자에 대한 욕망은 있었다.

학교 바깥으로 피아노 교습 선생님 집에 차를 마시러 갔는데, 대학에서 음악을 배우고 있다는 조카를 만나게 됐다. 그녀가 나를 음악실로 부르더니 두 명이 쳐야 하는 모차르트의 무슨 듀엣을 연주하자고 했다. 처음엔 순진하게 시작했다. 그런데 나란히 앉아 18세기 사교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다 보니 묘하게도 서로 손이 부딪치고, 팔이 닿고, 다리가 서로 포개지고, 때론 끌어안는 자세가 되기도 했다. 피아노 연주가 계속되면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결론부로 치닫고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피아노 옆에 깔려있던 카펫 위였다.

도널드도 플레이보이를 탐독했었다. 때로는 자신의 성적인 경험을 슬쩍 내비치기도 했지만 도널드가 졸업할 때까지 내가 직접 본 것은 없다.

Sandy McIntosh(작가)/(번역: 박성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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