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③ “어디로 가야하죠?”…멀고 먼 소재 강국

입력 2019.09.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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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소재 분야는 인내의 산업이다'
'소재 개발과 실용화 사이엔 '죽음의 계곡'이 있다'

KBS 탐사보도부가 지난 한 달간 만난 많은 전문가의 입에서 공통으로 나온 말입니다. 소재 강국으로 가는 길은 그만큼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소재 산업이 걸어온 길과 다른 소재 선진국들이 지금 걷고 있는 길을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이 외쳐온 소재 강국, 그 길로 가기 위한 방향이 모두 여기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규제 완화하면 소재 강국?..."불공정 관행부터 깨야"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에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내놓습니다. 여기에는 화학물질 관리법(화관법), 화학물질 등록·평가법(화평법) 등 화학물질 안전 관련 규제법 등을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또, 시행을 갓 1년 넘긴 주 52시간 근로제도에 예외를 허용해주는 방안도 들어갔습니다. 모두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시급히 해소돼야 할 '기업 애로 사항'으로 지목됐기 때문입니다.

재계는 한발 더 나아가 이런 규제들의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법과 제도들이 일본 수출규제의 유탄을 맞고 '과도한 규제' 취급을 당하기 시작한 겁니다. 마치 이런 규제들 때문에 우리 소재 산업이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규제들이 생기기 전에는 어땠을까요.

취재진은 반도체 대기업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거래했던 중소기업 대표들을 어렵게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정말 '규제' 때문에 낮은 것인지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선 '납품 단가 후려치기', '기술협력 비용 떠넘기기', '말뿐인 공동개발'과 같은 말이 나왔습니다. '대기업 갑질'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행위들이었습니다. 특히, 반도체 장비회사를 운영하다 문을 닫은 한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장비는 일본 회사의 그것과 같은 성능이라 하더라도 늘 30% 정도 가격을 낮췄어야 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장비를 납품하고도 남는 게 없어서 다시 설비 개발에 투자할 돈은 투자를 받아야 했다고도 털어놓았습니다.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가 벌어진 이후 '반도체 산업구조 선진화 연구회'라는 민간단체가 내놓은 보고서도 대기업의 소재, 부품, 장비 국산화 추진 실태를 정리하면서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낮고, 국산화율이 낮은 이유는 대기업 때문이라는 건데,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낮아 사용할 수 없다'던 대기업들의 볼멘소리에 직격탄을 날린 셈입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일본과 거래하는 기업들 5백 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분야로 '규제 혁신(19.4%)'보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협력체계 구축(32%)'을 고른 곳이 더 많았습니다.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구가 아예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를 기회 삼아 숙원 사업을 '해결'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소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탄력적 노동시간의 단위시간을 연장'하고 '화학물질 이력추적관리를 재검토'하자는 주장입니다. 이유는 '산업계에 필요 이상의 부담'이 되고 '절차가 번잡'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꾸준히 이 주장을 해 왔는데, 재계의 규제 완화 요구와 맥이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단체가 어디인가 알아봤더니 다름 아닌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일본 기업인들의 모임인 '서울재팬클럽'입니다. 기업인들의 입장이야 한국과 일본이 크게 다르지야 않겠지만, 이번 사태의 근원을 되돌아보면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세상에 없는 소재...차세대 소재 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과 미국 ,유럽 등 소재 강국들은 이미 차세대 소재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동안 첨단 소재 분야에서는 조금 뒤떨어져 있다고 평가받는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들 국가의 차세대 소재 전쟁은 한마디로 '인내 산업'이라 불리는 소재 개발의 판 자체를 바꾸겠다는 게 핵심입니다.


2014년 발표된 미국의 MGI 전략을 먼저 볼까요.
일명 소재 게놈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인데. 인간 게놈 지도처럼 소재도 데이터베이스화해 첨단 소재의 개발에서 상용화까지 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게 목표입니다. 이미 2011년부터 시작됐습니다.
2001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산업계가 두 배 이상 빠르게 신물질을 발견하고, 발전시키고, 배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소재 지노미네이션(게놈 이니셔티브)을 시작합니다."라는 말로 새로운 소재 전쟁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유럽연합은 앞으로 2년 뒤인 2021년부터 우리 돈으로 121조가 넘는 첨단 소재 개발 프로그램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이 계획은 이미 2014년 시작된 일명 <호라이즌 2020 프로젝트>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호라이즌 2020 프로젝트는 2014년 시작 당시 앞으로 7년간 800억 유로, 우리 돈으로 106조 원을 투입한다는 원대한 계획이었습니다. 유럽연합은 이에 그치지 않고 계승 발전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다시 계획하고 있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에 대응하는 유럽연합의 특징을 한마디로 연합이라는 틀로 설명합니다. 데이터를 같이 모으고 같이 활용하자는 데에 장점이 있다는 겁니다. 오픈 사이언스라는 단어에서 유럽연합의 차세대 소재 개발 전략의 특징이 녹아 있습니다.

■ 일본의 SIP 계획: (Strategic Innovation promotion Program)


첨단 소재 개발 계획을 진두지휘하는 곳 일본 경제산업성을 보겠습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홈페이지를 전문가와 함께 분석해봤습니다. 지난해 발표된 2기 SIP 계획이 눈에 띕니다. 목표는 'AI를 이용한 재료 개발 기술의 혁신, 혁명입니다. 첨단 소재를 개발하고 있는 경험이 있는 장인들, 그리고 AI 연구하는 사람들이 결합한 건데. 특히 하나하나의 과제마다 관련된 정부 부처, 민간 연구자, 대학, 수요기업과 공급기업이 모두 참여하는 촘촘한 계획이 눈에 띕니다. 장웅성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 부단장은 이런 일본의 계획에 대해 "(일본)정부의 산업정책이라는 빅픽쳐에 이게 있는 거예요. 이게 다 되면 항공 산업은 어떻게 되고 자동차 산업은 어떻게 되고 이걸 전제로 해서 소재들이 다 개발된다는 거예요"라며 일본 특유의 일관된 소재 개발 전략의 특징을 설명합니다.

2015년,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중국도 제조 강국으로의 전환, 일명 <중국 제조 2025>을 통해 첨단 소재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앞으로 30년 동안 10년씩 3단계에 걸쳐 첨단 소재 개발 분야에 힘쓰겠다는 건데 그 첫 단추가 바로 <중국제조 2025>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세계 유수의 11대 철강회사로부터 데이터베이스를 받아 전혀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연구팀입니다.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정인호 교수 연구팀입니다. 정인호 교수의 연구팀도 수백, 수천 번의 반복으로 신소재를 만들던 기존 방식을 깨트리는 방식으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특히 2년 전, 예측력이 좋은 모델과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단 한 번의 시도로 정확하게 미래 소재를 만들어냈습니다. 생산량도 50톤으로 당장 상업화가 가능한 정도의 수준입니다. 결국 단순히 많은 정보가 아닌 모여진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미래 소재 전략의 방향입니다.
소재 연구 개발 분야에서는 단순히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하는 게 1세대이고, 이렇게 구축한 데이터베이스 중 전문적인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하는게 2세대입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심지어 중국도 이 부분에서는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수준은? 이라는 질문에 정인호 교수는 1.5세대 정도라고 답합니다. 그러면 3세대 데이터베이스는 무엇일까요? 3세대 데이터베이스는 이 전문적인 2세대 데이터베이스를 물리 화학적으로 함수화시키는 겁니다. 이렇게 돼야 비로소 기간과 비용을 줄여 새로운 소재를 예측해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미 소재 강국인 미국과 일본, 오픈 사이언스를 내세우는 유럽연합에 비해 데이터베이스의 절대량에서는 분명히 차이를 보이지만 이 데이터를 AI든 머신러닝이든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데이터베이스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대한민국이 차세대 소재 전쟁에 나설 수 있는 틈새가 있는 겁니다. 한마디로 양보다 질로 승부를 겨루자는 거지요.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데이터 전문가를 양성하는 게 가장 기본입니다.
취재진이 만났던 전문가들은 인터뷰를 마치고 모두 같은 걱정을 합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불거진 이 뜨거운 분위기가 당장 내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식을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10년 후, 20년 후 대한민국 소재 산업은 2019년 여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부분에 집중해 앞으로의 소재 전쟁을 대비해야 할까요?
일본의 수출규제로 당장 소재 국산화 목소리가 뜨겁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거였어?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당장 여러 소재의 국산화 성공 소식도 들려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미 우리보다 앞선 소재 강국들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단기 대응이 아니라 미래 전략을 고민해야 합니다.

KBS 탐사보도부 박현 기자(why@kbs.co.kr)
최준혁 기자(chun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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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14 09:00:13
    탐사K
'소재 분야는 인내의 산업이다' <br />'소재 개발과 실용화 사이엔 '죽음의 계곡'이 있다'
KBS 탐사보도부가 지난 한 달간 만난 많은 전문가의 입에서 공통으로 나온 말입니다. 소재 강국으로 가는 길은 그만큼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소재 산업이 걸어온 길과 다른 소재 선진국들이 지금 걷고 있는 길을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이 외쳐온 소재 강국, 그 길로 가기 위한 방향이 모두 여기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규제 완화하면 소재 강국?..."불공정 관행부터 깨야"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에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내놓습니다. 여기에는 화학물질 관리법(화관법), 화학물질 등록·평가법(화평법) 등 화학물질 안전 관련 규제법 등을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또, 시행을 갓 1년 넘긴 주 52시간 근로제도에 예외를 허용해주는 방안도 들어갔습니다. 모두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시급히 해소돼야 할 '기업 애로 사항'으로 지목됐기 때문입니다.

재계는 한발 더 나아가 이런 규제들의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법과 제도들이 일본 수출규제의 유탄을 맞고 '과도한 규제' 취급을 당하기 시작한 겁니다. 마치 이런 규제들 때문에 우리 소재 산업이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규제들이 생기기 전에는 어땠을까요.

취재진은 반도체 대기업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거래했던 중소기업 대표들을 어렵게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정말 '규제' 때문에 낮은 것인지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선 '납품 단가 후려치기', '기술협력 비용 떠넘기기', '말뿐인 공동개발'과 같은 말이 나왔습니다. '대기업 갑질'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행위들이었습니다. 특히, 반도체 장비회사를 운영하다 문을 닫은 한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장비는 일본 회사의 그것과 같은 성능이라 하더라도 늘 30% 정도 가격을 낮췄어야 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장비를 납품하고도 남는 게 없어서 다시 설비 개발에 투자할 돈은 투자를 받아야 했다고도 털어놓았습니다.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가 벌어진 이후 '반도체 산업구조 선진화 연구회'라는 민간단체가 내놓은 보고서도 대기업의 소재, 부품, 장비 국산화 추진 실태를 정리하면서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낮고, 국산화율이 낮은 이유는 대기업 때문이라는 건데,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낮아 사용할 수 없다'던 대기업들의 볼멘소리에 직격탄을 날린 셈입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일본과 거래하는 기업들 5백 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분야로 '규제 혁신(19.4%)'보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협력체계 구축(32%)'을 고른 곳이 더 많았습니다.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구가 아예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를 기회 삼아 숙원 사업을 '해결'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소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탄력적 노동시간의 단위시간을 연장'하고 '화학물질 이력추적관리를 재검토'하자는 주장입니다. 이유는 '산업계에 필요 이상의 부담'이 되고 '절차가 번잡'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꾸준히 이 주장을 해 왔는데, 재계의 규제 완화 요구와 맥이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단체가 어디인가 알아봤더니 다름 아닌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일본 기업인들의 모임인 '서울재팬클럽'입니다. 기업인들의 입장이야 한국과 일본이 크게 다르지야 않겠지만, 이번 사태의 근원을 되돌아보면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세상에 없는 소재...차세대 소재 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과 미국 ,유럽 등 소재 강국들은 이미 차세대 소재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동안 첨단 소재 분야에서는 조금 뒤떨어져 있다고 평가받는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들 국가의 차세대 소재 전쟁은 한마디로 '인내 산업'이라 불리는 소재 개발의 판 자체를 바꾸겠다는 게 핵심입니다.


2014년 발표된 미국의 MGI 전략을 먼저 볼까요.
일명 소재 게놈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인데. 인간 게놈 지도처럼 소재도 데이터베이스화해 첨단 소재의 개발에서 상용화까지 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게 목표입니다. 이미 2011년부터 시작됐습니다.
2001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산업계가 두 배 이상 빠르게 신물질을 발견하고, 발전시키고, 배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소재 지노미네이션(게놈 이니셔티브)을 시작합니다."라는 말로 새로운 소재 전쟁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유럽연합은 앞으로 2년 뒤인 2021년부터 우리 돈으로 121조가 넘는 첨단 소재 개발 프로그램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이 계획은 이미 2014년 시작된 일명 <호라이즌 2020 프로젝트>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호라이즌 2020 프로젝트는 2014년 시작 당시 앞으로 7년간 800억 유로, 우리 돈으로 106조 원을 투입한다는 원대한 계획이었습니다. 유럽연합은 이에 그치지 않고 계승 발전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다시 계획하고 있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에 대응하는 유럽연합의 특징을 한마디로 연합이라는 틀로 설명합니다. 데이터를 같이 모으고 같이 활용하자는 데에 장점이 있다는 겁니다. 오픈 사이언스라는 단어에서 유럽연합의 차세대 소재 개발 전략의 특징이 녹아 있습니다.

■ 일본의 SIP 계획: (Strategic Innovation promotion Program)


첨단 소재 개발 계획을 진두지휘하는 곳 일본 경제산업성을 보겠습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홈페이지를 전문가와 함께 분석해봤습니다. 지난해 발표된 2기 SIP 계획이 눈에 띕니다. 목표는 'AI를 이용한 재료 개발 기술의 혁신, 혁명입니다. 첨단 소재를 개발하고 있는 경험이 있는 장인들, 그리고 AI 연구하는 사람들이 결합한 건데. 특히 하나하나의 과제마다 관련된 정부 부처, 민간 연구자, 대학, 수요기업과 공급기업이 모두 참여하는 촘촘한 계획이 눈에 띕니다. 장웅성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 부단장은 이런 일본의 계획에 대해 "(일본)정부의 산업정책이라는 빅픽쳐에 이게 있는 거예요. 이게 다 되면 항공 산업은 어떻게 되고 자동차 산업은 어떻게 되고 이걸 전제로 해서 소재들이 다 개발된다는 거예요"라며 일본 특유의 일관된 소재 개발 전략의 특징을 설명합니다.

2015년,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중국도 제조 강국으로의 전환, 일명 <중국 제조 2025>을 통해 첨단 소재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앞으로 30년 동안 10년씩 3단계에 걸쳐 첨단 소재 개발 분야에 힘쓰겠다는 건데 그 첫 단추가 바로 <중국제조 2025>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세계 유수의 11대 철강회사로부터 데이터베이스를 받아 전혀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연구팀입니다.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정인호 교수 연구팀입니다. 정인호 교수의 연구팀도 수백, 수천 번의 반복으로 신소재를 만들던 기존 방식을 깨트리는 방식으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특히 2년 전, 예측력이 좋은 모델과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단 한 번의 시도로 정확하게 미래 소재를 만들어냈습니다. 생산량도 50톤으로 당장 상업화가 가능한 정도의 수준입니다. 결국 단순히 많은 정보가 아닌 모여진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미래 소재 전략의 방향입니다.
소재 연구 개발 분야에서는 단순히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하는 게 1세대이고, 이렇게 구축한 데이터베이스 중 전문적인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하는게 2세대입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심지어 중국도 이 부분에서는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수준은? 이라는 질문에 정인호 교수는 1.5세대 정도라고 답합니다. 그러면 3세대 데이터베이스는 무엇일까요? 3세대 데이터베이스는 이 전문적인 2세대 데이터베이스를 물리 화학적으로 함수화시키는 겁니다. 이렇게 돼야 비로소 기간과 비용을 줄여 새로운 소재를 예측해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미 소재 강국인 미국과 일본, 오픈 사이언스를 내세우는 유럽연합에 비해 데이터베이스의 절대량에서는 분명히 차이를 보이지만 이 데이터를 AI든 머신러닝이든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데이터베이스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대한민국이 차세대 소재 전쟁에 나설 수 있는 틈새가 있는 겁니다. 한마디로 양보다 질로 승부를 겨루자는 거지요.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데이터 전문가를 양성하는 게 가장 기본입니다.
취재진이 만났던 전문가들은 인터뷰를 마치고 모두 같은 걱정을 합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불거진 이 뜨거운 분위기가 당장 내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식을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10년 후, 20년 후 대한민국 소재 산업은 2019년 여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부분에 집중해 앞으로의 소재 전쟁을 대비해야 할까요?
일본의 수출규제로 당장 소재 국산화 목소리가 뜨겁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거였어?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당장 여러 소재의 국산화 성공 소식도 들려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미 우리보다 앞선 소재 강국들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단기 대응이 아니라 미래 전략을 고민해야 합니다.

KBS 탐사보도부 박현 기자(wh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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