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기내 앞 좌석 손님이 의자 넘겨 부서진 노트북, 누구 책임인가요?

입력 2019.09.15 (08:00) 수정 2019.09.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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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항공기 좌석에서 노트북을 쓰는데, 앞좌석 손님이 넘긴 의자에 모니터가 끼여 부서졌습니다. 손님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하고, 항공사는 좌석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부서진 노트북은 누가 책임지나요?

■뒤로 넘겨진 앞좌석 의자에 부서진 노트북

서울에 사는 직장인 41살 유 모 씨는 8월 17일 캐나다 가족 여행을 마치고 대한항공 여객편을 이용해 토론토에서 인천으로 오는 중이었습니다.

유 씨는 좌석 테이블에 노트북 컴퓨터를 놓고 자녀와 함께 동영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상 못 한 순간 앞좌석 승객이 의자를 뒤로 기울였고, 이 과정에서 노트북 모니터가 의자에 눌리면서 액정이 깨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앞좌석 의자에 눌려 파손된 노트북 액정 화면앞좌석 의자에 눌려 파손된 노트북 액정 화면

유 씨는 급히 앞좌석 승객에게 의자를 다시 세워달라고 한 뒤 노트북 액정이 파손된 사실을 알렸고, 곧바로 승무원을 불러 사고 대응 방법이나 피해 보상 방안은 무엇인지 문의했습니다.

내부 논의를 하고 돌아온 승무원은 "별도로 해 드릴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했고, 유 씨는 "그럼 기내에서는 애초에 노트북을 쓰면 안 되는 것이었던 거냐, 이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면, 사전에 주의 고지라도 해야 했던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항공사 "좌석 문제 아니면 승객끼리 합의해야"

그러자 잠시 뒤, 다른 승무원이 와서 사고 경위를 듣고 파손된 노트북과 좌석 등의 사진을 촬영한 뒤, "추후 좌석 설비상의 문제점이 발견되면 회사 차원에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승무원은 앞좌석 승객에게도 같은 내용을 알려준 뒤 이름과 휴대전화, 메일 주소 등을 기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승무원은 "회사 차원의 사고 보상이 안 되면 상호 합의 등의 절차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안내했습니다.

이에 유 씨는 "일반적으로 의자를 뒤로 눕힐 때에도 뒷좌석에 양해를 구하는 건 아니니, 이 건은 항공사 차원의 조치가 이뤄지는 게 맞지, 승객끼리 상호 해결하라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고 했고, 앞좌석 승객 역시 "내 개인정보를 뒷좌석 승객에게 제공하고 싶지는 않다. 항공사가 조치해 주는 게 맞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귀국한 뒤 8월 20일까지 대한항공으로부터는 노트북 파손 사고에 대한 답변은 없었고, 고객만족도 평가 요청 메일만 왔습니다. 유 씨는 해당 메일에 회신하면서 다시 한번 빠른 회신을 요청했습니다.

대한항공 답변 메일대한항공 답변 메일

그러자 대한항공은 "빠른 회신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고, 일주일 뒤 "확인 결과, 해당 항공기 기종은 전 세계 다수 항공사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좌석 구조로 돼 있으며, 노트북 파손 원인을 좌석의 구조적 결함으로 규명하기 어려운 점을 말씀드린다"면서 "당사 항공편을 이용하며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저희로서도 대단히 안타까운 마음이오나 요청하신 보상은 수용하기 어려움을 정중히 말씀드리니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는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피해자 "승객끼리 얼굴 붉히란 말이냐"

노트북 사용이 급해 일단 자비 20여만 원을 들여 수리를 받은 유 씨는 이런 답변을 받고 한숨이 터집니다. "항공사의 책임이 없다면 내가 앞좌석 승객에게 직접 책임을 물으라는 얘기가 되는 건데, 승객끼리 얼굴을 붉히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토로합니다.

대한항공도 고객의 답답함이 이해 안 가는 바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개인소지품을 포함한 휴대수하물의 경우, 운송인 그의 고용인 또는 대리인의 과실에 기인하였을 때에만 책임을 진다'는 <몬트리올 협약 및 상법 항공운송편>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대한항공 측은 "이번 건은 기내 휴대 수하물의 파손이며 당사의 과실이 없어서 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을 뿐 아니라 관련 법령상 앞 승객과의 손해배상 협의를 중재해야 할 의무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좌석 등받이 조정 시 뒷좌석 승객의 휴대 물품이 깨질 수도 있으니 주의해 달라는 방송은 승객 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에티켓에 관한 문제이므로 별도의 안내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 "다만 좌석 등받이 조정 시 휴대전화·보조배터리 등의 압착에 의한 화재 관련 주의 안내 방송은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 "책임 소재는 따져봐야"

그럼, 노트북 파손 책임은 앞좌석 승객이 져야 할까요? 전문가의 의견을 물어봤습니다.

손해배상 등 민사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안준영 변호사(법무법인 우성)는 "앞좌석 승객이 작동 각도 범위에서 의자를 뒤로 젖히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허용되는 권리에 해당한다. 하지만 의자 뒷부분에 바로 뒷좌석 승객이 쓰는 선반이 부착돼 있어서 최소한의 주의 의무가 있다고 본다"면서 "만일 뒷좌석 승객이 미처 대처하지 못할 정도로 앞좌석 승객이 급하게 의자를 젖혀 노트북이 파손되는 결과를 일으켰다면 과실 있는 행위로 볼 여지가 있고, 이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안 변호사는 "다만,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뒷좌석 승객에게도 선반이 앞좌석 승객에 의해 급작스럽게 움직일 수도 있다는 예측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하면, 과실상계에 따라 앞좌석 승객의 손해배상책임은 경감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책임 소재와 비율을 정확히 가리려면 법적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일로 다른 승객에게 소송까지 내야 하는지,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가해진 물리력' 때문에 노트북이 부서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복잡하게 책임을 따져야 하는 상황. 당사자로선 너무 속상하고 억울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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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15 08:00:23
    • 수정2019-09-15 10:30:19
    취재K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항공기 좌석에서 노트북을 쓰는데, 앞좌석 손님이 넘긴 의자에 모니터가 끼여 부서졌습니다. 손님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하고, 항공사는 좌석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부서진 노트북은 누가 책임지나요?

■뒤로 넘겨진 앞좌석 의자에 부서진 노트북

서울에 사는 직장인 41살 유 모 씨는 8월 17일 캐나다 가족 여행을 마치고 대한항공 여객편을 이용해 토론토에서 인천으로 오는 중이었습니다.

유 씨는 좌석 테이블에 노트북 컴퓨터를 놓고 자녀와 함께 동영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상 못 한 순간 앞좌석 승객이 의자를 뒤로 기울였고, 이 과정에서 노트북 모니터가 의자에 눌리면서 액정이 깨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앞좌석 의자에 눌려 파손된 노트북 액정 화면
유 씨는 급히 앞좌석 승객에게 의자를 다시 세워달라고 한 뒤 노트북 액정이 파손된 사실을 알렸고, 곧바로 승무원을 불러 사고 대응 방법이나 피해 보상 방안은 무엇인지 문의했습니다.

내부 논의를 하고 돌아온 승무원은 "별도로 해 드릴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했고, 유 씨는 "그럼 기내에서는 애초에 노트북을 쓰면 안 되는 것이었던 거냐, 이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면, 사전에 주의 고지라도 해야 했던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항공사 "좌석 문제 아니면 승객끼리 합의해야"

그러자 잠시 뒤, 다른 승무원이 와서 사고 경위를 듣고 파손된 노트북과 좌석 등의 사진을 촬영한 뒤, "추후 좌석 설비상의 문제점이 발견되면 회사 차원에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승무원은 앞좌석 승객에게도 같은 내용을 알려준 뒤 이름과 휴대전화, 메일 주소 등을 기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승무원은 "회사 차원의 사고 보상이 안 되면 상호 합의 등의 절차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안내했습니다.

이에 유 씨는 "일반적으로 의자를 뒤로 눕힐 때에도 뒷좌석에 양해를 구하는 건 아니니, 이 건은 항공사 차원의 조치가 이뤄지는 게 맞지, 승객끼리 상호 해결하라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고 했고, 앞좌석 승객 역시 "내 개인정보를 뒷좌석 승객에게 제공하고 싶지는 않다. 항공사가 조치해 주는 게 맞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귀국한 뒤 8월 20일까지 대한항공으로부터는 노트북 파손 사고에 대한 답변은 없었고, 고객만족도 평가 요청 메일만 왔습니다. 유 씨는 해당 메일에 회신하면서 다시 한번 빠른 회신을 요청했습니다.

대한항공 답변 메일
그러자 대한항공은 "빠른 회신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고, 일주일 뒤 "확인 결과, 해당 항공기 기종은 전 세계 다수 항공사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좌석 구조로 돼 있으며, 노트북 파손 원인을 좌석의 구조적 결함으로 규명하기 어려운 점을 말씀드린다"면서 "당사 항공편을 이용하며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저희로서도 대단히 안타까운 마음이오나 요청하신 보상은 수용하기 어려움을 정중히 말씀드리니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는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피해자 "승객끼리 얼굴 붉히란 말이냐"

노트북 사용이 급해 일단 자비 20여만 원을 들여 수리를 받은 유 씨는 이런 답변을 받고 한숨이 터집니다. "항공사의 책임이 없다면 내가 앞좌석 승객에게 직접 책임을 물으라는 얘기가 되는 건데, 승객끼리 얼굴을 붉히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토로합니다.

대한항공도 고객의 답답함이 이해 안 가는 바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개인소지품을 포함한 휴대수하물의 경우, 운송인 그의 고용인 또는 대리인의 과실에 기인하였을 때에만 책임을 진다'는 <몬트리올 협약 및 상법 항공운송편>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대한항공 측은 "이번 건은 기내 휴대 수하물의 파손이며 당사의 과실이 없어서 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을 뿐 아니라 관련 법령상 앞 승객과의 손해배상 협의를 중재해야 할 의무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좌석 등받이 조정 시 뒷좌석 승객의 휴대 물품이 깨질 수도 있으니 주의해 달라는 방송은 승객 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에티켓에 관한 문제이므로 별도의 안내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 "다만 좌석 등받이 조정 시 휴대전화·보조배터리 등의 압착에 의한 화재 관련 주의 안내 방송은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 "책임 소재는 따져봐야"

그럼, 노트북 파손 책임은 앞좌석 승객이 져야 할까요? 전문가의 의견을 물어봤습니다.

손해배상 등 민사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안준영 변호사(법무법인 우성)는 "앞좌석 승객이 작동 각도 범위에서 의자를 뒤로 젖히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허용되는 권리에 해당한다. 하지만 의자 뒷부분에 바로 뒷좌석 승객이 쓰는 선반이 부착돼 있어서 최소한의 주의 의무가 있다고 본다"면서 "만일 뒷좌석 승객이 미처 대처하지 못할 정도로 앞좌석 승객이 급하게 의자를 젖혀 노트북이 파손되는 결과를 일으켰다면 과실 있는 행위로 볼 여지가 있고, 이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안 변호사는 "다만,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뒷좌석 승객에게도 선반이 앞좌석 승객에 의해 급작스럽게 움직일 수도 있다는 예측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하면, 과실상계에 따라 앞좌석 승객의 손해배상책임은 경감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책임 소재와 비율을 정확히 가리려면 법적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일로 다른 승객에게 소송까지 내야 하는지,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가해진 물리력' 때문에 노트북이 부서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복잡하게 책임을 따져야 하는 상황. 당사자로선 너무 속상하고 억울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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