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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군대 간 이야기④
입력 2019.09.15 (08:00) 취재K
트럼프가 군대 간 이야기④
〈역자 주〉
시사기획 창 ‘트럼프의 선택은(6월 11일 방송)’편에 출연해 트럼프의 뉴욕군사학교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동창생 샌디 매킨토시(Sandy McIntosh)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담은 기고문을 KBS에 보내왔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중학생 트럼프가 군대에 간 이야기’입니다. 중년 이상 우리나라 남자들이 군대에서 겪었음직한 군대식 문화를 트럼프는 중고등학생 때 경험한 셈인데, 이 시절의 경험이 오늘날의 트럼프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매킨토시의 판단입니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주요변수인 트럼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번역본을 4회에 걸쳐 싣습니다. 뉴욕에서 시인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매킨토시가 직접 겪고 본 트럼프를 쓴 글이기에 좀 긴 감은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운 1차 정보를 많이 담고 있으며, 소설처럼 잘 읽히는 편입니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인데 이 글은 트럼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전형적인 뉴요커의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9. 트럼프 브랜드의 탄생

도널드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건 1964년, 그가 졸업하던 해였다. 야구장 옆을 함께 걸어가고 있었는데, 도널드가 자신이 뛰었던 야구 경기 얘기를 꺼냈다. 나더러 그 경기를 봤으니까 어떻게 기억하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만루 상황이었어,” 나는 기억을 떠올렸다. “석 점 차로 지고 있었어. 네가 친 공이 3루수 키를 살짝 넘어갔어. 그런데 3루수도 좌익수도 다른 야수들도 허둥댔잖아? 그 사이에 네 명이 홈으로 들어왔어. 그래서 우리가 이겼지.”

“아니야,” 도널드가 말했다. “그게 아니라고. 내가 너한테 기억해보라라고 한 건 이거야, 나는 홈런을 날린 거라고! 잘 들어. 내가 공을 쳐서 담장을 넘겨버린 거야!”

담장이라니? 나는 의아했다. 그 야구장은 학교 연습구장이어서 공을 넘겨버릴 담장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 안타는 야수들의 실책이었다.

나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좀 뻥을 친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다. 그게 군사학교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된다면...

졸업반 때 도널드는 보급 하사관에서 A중대 캡틴으로 승진했다. 제일 놀란 건 선임 캡틴이자 학생들 중에 계급이 제일 높았던 대대장 조지 화이트(당시에는 위텍이라 불렸다)였다. 그는 교직원으로부터 미리 장교급 승진 최종 대상자 명단을 들은 상태였는데, 도널드의 이름은 있지도 않았다 했다. 조지는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결론을 내렸다. “트럼프가 보급 하사관에서 A 중대장으로 승진한 건 걔 아버지 입김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는 교직원들과 개인적으로 친한데 트럼프는 어떤 승진대상에도 들어있지 않았어. 트럼프가 승진한 건 놀랄 일이야.”

뉴욕군사학교의 학생 간부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트럼프, 가운데가 학생 대대장이었던 조지 화이트.뉴욕군사학교의 학생 간부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트럼프, 가운데가 학생 대대장이었던 조지 화이트.

프레드 트럼프가 학교에 기부를 많이 한 건 알려진 사실이었는데, 프레드가 아들을 위해 손을 썼다는 게 조지의 결론이었다.

도널드가 중대장을 맡았던 그 해, 첫 달부터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도널드는 훌륭한 지휘관이 갖춰야 할 자질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하급자들과 공감해주고 최소한 적극적으로 돌봐주는 자질 말이다. 트럼프의 지휘 스타일은 거리 두기였다. 중대원들이 허리띠 버클에 광을 내는지, 군화에 물광을 내는지 챙기는 건 고사하고 저녁만 되면 자기 방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이었다. 학생 장교들과 하사관들이 자기들끼리 계급에 따라 질서를 잡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중대 학생 하사관 한 명은 괴롭힘을 즐기는 잔인한 가학증 환자로 유명했다. 어느 날 저녁 도널드가 방에 틀어박혀 있는 사이 이 학생 하사관이 하급생 한 명을 혹독하게 혼냈다. 그 하급생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당시 우리들이 보기엔 그런 웃기는 취미활동은 거의 매를 버는 짓이었다.

그 하급생은 어른들에게 고자질하면 안 된다는 학교의 불문율이 깨고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모는 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도널드는 중대장에서 해임되었다.

그런 문제에 연루된 학생들은 보통 계급이 강등되고 다른 막사로 쫓겨났다. 그러나 도널드는 계급을 그대로 유지한 채 참모 보직으로 전보됐다. (그는 최근엔 그게 승진이었다고 주장한다.) 대대장이었던 조지 화이트는 이렇게 기억한다. “트럼프가 참모 보직으로 전보될 때 말이야, 나보고 그런 결정을 하라고 요청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트럼프 아버지가 그 전부터 줄곧 학교 안에서 영향력을 굳혀온 거지. 트럼프는 걔 아버지 덕에 이미 권력자였던 거야.”

도널드를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해 교감은 화이트와 의논하지 않았다. “프레드한테 잘 보이려고 했던 거야. 프레드는 마술사 같았어. 교장이 그러더군. 프레드야말로 가장 모범적인 학부모라고... 도널드를 강등시키란 압박은 전혀 없었어. 그냥 도널드를 보호하려고 전보시킨 거야.”

A중대장 시절 도널드는 간부들 중에서도 혼자 지내는 편이었다. “내가 걔 방에 들어가면 걔는 마치 침범을 당한 것처럼 행동했어.” 조지가 말했다. 도널드는 간부들 모임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프레드 트럼프의 꼬붕이었던 교무부장이 화이트에게 트럼프의 행방을 일러주곤 했다. “도널드는 자기 아버지가 학교를 좌지우지한다는 걸 알았어. 다들 돈과 지위 그리고 영향력을 놓고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었던 거야.”

화이트는 도널드가 A중대장에서 해임된 게 놀랍지 않다고 했다. “트럼프는 부하 학생들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 항상 자기 생각만 했어. 간부 학부모 모임에서도 걔 아버지 프레드는 도널드 말고는 아무한테도 관심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지. 아무튼 트럼프 부자는 별종들이었어.”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트럼프 부자는 따로 놀았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거나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뭐가 불편한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식사 시간에도 도널드는 간부들 식탁에서 앉았다. 화이트는 말했다. “걔는 아주 조용했어. 대부분 옆자리 애들하고만 얘기했어. ‘참 트럼프스럽다’고 말들이 많았어. 무슨 얘기냐 하면, 지금 눈앞에 있는 문제보다 자기 자신이 더 중요하다는 가짜 현실에 빠져 있었다는 뜻이지. 그게 걔의 특징이었어.”

도널드도 아버지도 참모 보직으로 옮긴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널드를 성공시킬 더 확실한 계획을 추진했다.

도널드는 운동에서는 이미 뭔가를 보여줬지만, 두 사람은 아무도 시비를 못 걸 만큼의 성공을 원했다.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트럼프라는 브랜드를 구축해야 했다.

군사학교에서 나와 함께 한 시간 동안, 도널드는 호리호리한 아이에서 운동 실력이 뛰어난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는 운동복을 입었을 때도 멋졌지만 군복을 입었을 때 훨씬 더 멋졌다.

도널드를 역성들던 교무부장은 여기에 착안해 도널드를 군사학교 최정예 의장대 시범단의 지휘자로 선발했다. 의장대 시범단은 좋은 신체조건과 정교한 기술을 가진 학생들로 구성돼 있었다. 도널드의 임무는 맨 앞에서 차렷 자세로 서 있다가 구령을 내리는 일이었다. 도널드는 의장대 시범단의 얼굴마담으로 제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무부장과 프레드는 도널드한테 정말 큰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뉴욕군사학교는 매년 콜럼버스의 날에 뉴욕시 5번가에서 열리는 가두행진에 의장대 시범단을 내보내곤 했다. 도널드가 지휘자가 되기 전에는 뉴욕군사학교 의장대 시범단이 가두행진의 선두를 장식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교무부장이 도널드를 위해 콜럼버스의 날 가두행진을 기획했다. 화이트의 기억은 이렇다. “9월 초에 이런 지시가 떨어졌어. ‘콜럼버스의 날 가두행진에 트럼프가 지휘하는 36명이 참가한다. 너는 걔네들 훈련에 관여하지 마라. 내가 직접 챙길 거니까.’”

콜럼버스데이 가두행진의 선두에 선 트럼프. 트럼프 아버지의 작품이었다고 동창생들은 말한다.콜럼버스데이 가두행진의 선두에 선 트럼프. 트럼프 아버지의 작품이었다고 동창생들은 말한다.

가두행진이 끝나고 나서 뉴욕군사학교 학생들은 성 패트릭 성당 앞에서 스펠먼 추기경에게 경례를 했다. “트럼프는 자기가 추기경 경례를 멋지게 지휘했었다고 허풍을 떨고 있지. 그게 다 짜고 친 거야. 가두행진 당일에, 시범단에 무슨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갑자기 나를 포함해 학생간부들이 선두에 서기로 돼 있었거든. 그런데 교무부장이 와서 그러는 거야. 트럼프가 선두에 서야 된다고. (트럼프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자랑을 늘어놓았지만) 자랑할 만한 게 없었어. 전부 다 교무부장과 프레드가 미리 꾸며놓은 일들이거든.”

트럼프 브랜드 만들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도널드는 언젠가부터 군복 깃에 학업 우수 금별 배지와 다른 메달을 달고 있었다. 학생들의 성적은 3개월마다 학교 게시판에 나붙었다. 내 성적을 확인하면서 나는 가끔씩 도널드의 성적도 봤는데, 내 기억으로는 학업 우수 금별을 받을 만한 경우는 없었다. 도널드의 졸업앨범 사진을 보면, 학업 우수자나 군사훈련 우수자에게 주는 큰 금메달 두 개를 달고 있는데, 해당 연도의 학교연감을 아무리 뒤져봐도 도널드가 그런 상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도널드가 학교 성적과 기타 기록을 공개하지 않도록 법적 조치를 취해놓았으므로 이렇게 추론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졸업앨범의 트럼프, 오른쪽 깃에 학업 우수자에게 수여되는 금별을 달고 있다. 그러나 동창생 매킨토시는 트럼프가 금별을 받을 만한 성적을 거둔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졸업앨범의 트럼프, 오른쪽 깃에 학업 우수자에게 수여되는 금별을 달고 있다. 그러나 동창생 매킨토시는 트럼프가 금별을 받을 만한 성적을 거둔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프레드 트럼프는 의장대 시범단과 가두행진, 학업 우수 금별 그리고 메달에 만족하지 않았다. 또 다른 트럼프 브랜드 만들기가 필요했다. 도널드는 플레이보이 잡지가 그리는 이상적인 남자의 모습을 연출하곤 했다.

도널드의 부모가 주말에 학교에 올 때면, 예쁜 젊은 아가씨들을 함께 데려오곤 했는데, 매번 여자가 바뀌었다. 이 아가씨들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는데 거의 모델급이었다. 도널드는 다른 학생들이 보란 듯이 이 아가씨들을 데리고 학교를 산책하곤 했다. 여자와 접촉하면 벌점이라는 학교규정 F조는 무시되었다. 이런 쇼 덕분에 도널드는 졸업앨범 사진에 ’숙녀의 남자‘로 선정되었다.

졸업앨범 인기투표에서 ‘숙녀의 남자’로 선정된 트럼프. 졸업앨범 인기투표에서 ‘숙녀의 남자’로 선정된 트럼프.

친구들과 나는 도널드가 사고를 치고도 승승장구한 게 신기했다. 도널드한테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고 물었다. 나중에 화이트에게 들은 것처럼 프레드의 입김이 작용한 걸까? 도널드는 처음에는 부인하더니 곧 퉁명스럽게 말했다. “군사학교 교직원들은 잘릴 수도 있고 안 잘릴 수도 있거든.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야.”

뉴욕군사학교는 고립된 계급사회였다. 졸업 후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전투하듯 사는 방식 대신에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새로 배우느라 힘들었다. 그 학교에서 형성된 남성상과 여성상, 그리고 성공한 남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생각이 허구일 뿐 아니라 파괴적이라는 걸 새로 배워야 했다. 그 학교의 다른 졸업생들처럼 나는 어른이 되었다.

도널드만은 예외인 것 같다. 도널드는 엄청난 부잣집에 태어난 덕에, 처음부터 자신이 곧 법인 것처럼 살았고, 다른 이들이 천신만고 끝에 도달해야 하는 정상의 자리를 처음부터 꿰찼다. 오늘날 트럼프가 약자들을 조롱하고, 특히 고문을 버젓이 옹호하는 걸 지켜보면, 군사학교 시절 겪었던 육체적 정신적 괴롭힘이 떠오른다.

도널드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어느 전기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닐곱 살 때를 돌아보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타고난 기질이란 게 정말로 있나 봐요.”

이런 말을 들으면, 50년 전 뉴욕군사학교 수영장에서 봤던 장면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된다. 도널드는 마치 햇볕을 쬐고 있는 파충류처럼 다이빙 보드에 꼼짝도 않고 서 있다. 그 옆을 지나는 이들에게 물벼락을 날리려고. (끝)

Sandy McIntosh(작가)/(번역: 박성래 기자)
  • 트럼프가 군대 간 이야기④
    • 입력 2019.09.15 (08:00)
    취재K
트럼프가 군대 간 이야기④
〈역자 주〉
시사기획 창 ‘트럼프의 선택은(6월 11일 방송)’편에 출연해 트럼프의 뉴욕군사학교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동창생 샌디 매킨토시(Sandy McIntosh)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담은 기고문을 KBS에 보내왔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중학생 트럼프가 군대에 간 이야기’입니다. 중년 이상 우리나라 남자들이 군대에서 겪었음직한 군대식 문화를 트럼프는 중고등학생 때 경험한 셈인데, 이 시절의 경험이 오늘날의 트럼프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매킨토시의 판단입니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주요변수인 트럼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번역본을 4회에 걸쳐 싣습니다. 뉴욕에서 시인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매킨토시가 직접 겪고 본 트럼프를 쓴 글이기에 좀 긴 감은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운 1차 정보를 많이 담고 있으며, 소설처럼 잘 읽히는 편입니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인데 이 글은 트럼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전형적인 뉴요커의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9. 트럼프 브랜드의 탄생

도널드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건 1964년, 그가 졸업하던 해였다. 야구장 옆을 함께 걸어가고 있었는데, 도널드가 자신이 뛰었던 야구 경기 얘기를 꺼냈다. 나더러 그 경기를 봤으니까 어떻게 기억하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만루 상황이었어,” 나는 기억을 떠올렸다. “석 점 차로 지고 있었어. 네가 친 공이 3루수 키를 살짝 넘어갔어. 그런데 3루수도 좌익수도 다른 야수들도 허둥댔잖아? 그 사이에 네 명이 홈으로 들어왔어. 그래서 우리가 이겼지.”

“아니야,” 도널드가 말했다. “그게 아니라고. 내가 너한테 기억해보라라고 한 건 이거야, 나는 홈런을 날린 거라고! 잘 들어. 내가 공을 쳐서 담장을 넘겨버린 거야!”

담장이라니? 나는 의아했다. 그 야구장은 학교 연습구장이어서 공을 넘겨버릴 담장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 안타는 야수들의 실책이었다.

나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좀 뻥을 친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다. 그게 군사학교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된다면...

졸업반 때 도널드는 보급 하사관에서 A중대 캡틴으로 승진했다. 제일 놀란 건 선임 캡틴이자 학생들 중에 계급이 제일 높았던 대대장 조지 화이트(당시에는 위텍이라 불렸다)였다. 그는 교직원으로부터 미리 장교급 승진 최종 대상자 명단을 들은 상태였는데, 도널드의 이름은 있지도 않았다 했다. 조지는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결론을 내렸다. “트럼프가 보급 하사관에서 A 중대장으로 승진한 건 걔 아버지 입김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는 교직원들과 개인적으로 친한데 트럼프는 어떤 승진대상에도 들어있지 않았어. 트럼프가 승진한 건 놀랄 일이야.”

뉴욕군사학교의 학생 간부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트럼프, 가운데가 학생 대대장이었던 조지 화이트.뉴욕군사학교의 학생 간부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트럼프, 가운데가 학생 대대장이었던 조지 화이트.

프레드 트럼프가 학교에 기부를 많이 한 건 알려진 사실이었는데, 프레드가 아들을 위해 손을 썼다는 게 조지의 결론이었다.

도널드가 중대장을 맡았던 그 해, 첫 달부터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도널드는 훌륭한 지휘관이 갖춰야 할 자질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하급자들과 공감해주고 최소한 적극적으로 돌봐주는 자질 말이다. 트럼프의 지휘 스타일은 거리 두기였다. 중대원들이 허리띠 버클에 광을 내는지, 군화에 물광을 내는지 챙기는 건 고사하고 저녁만 되면 자기 방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이었다. 학생 장교들과 하사관들이 자기들끼리 계급에 따라 질서를 잡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중대 학생 하사관 한 명은 괴롭힘을 즐기는 잔인한 가학증 환자로 유명했다. 어느 날 저녁 도널드가 방에 틀어박혀 있는 사이 이 학생 하사관이 하급생 한 명을 혹독하게 혼냈다. 그 하급생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당시 우리들이 보기엔 그런 웃기는 취미활동은 거의 매를 버는 짓이었다.

그 하급생은 어른들에게 고자질하면 안 된다는 학교의 불문율이 깨고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모는 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도널드는 중대장에서 해임되었다.

그런 문제에 연루된 학생들은 보통 계급이 강등되고 다른 막사로 쫓겨났다. 그러나 도널드는 계급을 그대로 유지한 채 참모 보직으로 전보됐다. (그는 최근엔 그게 승진이었다고 주장한다.) 대대장이었던 조지 화이트는 이렇게 기억한다. “트럼프가 참모 보직으로 전보될 때 말이야, 나보고 그런 결정을 하라고 요청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트럼프 아버지가 그 전부터 줄곧 학교 안에서 영향력을 굳혀온 거지. 트럼프는 걔 아버지 덕에 이미 권력자였던 거야.”

도널드를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해 교감은 화이트와 의논하지 않았다. “프레드한테 잘 보이려고 했던 거야. 프레드는 마술사 같았어. 교장이 그러더군. 프레드야말로 가장 모범적인 학부모라고... 도널드를 강등시키란 압박은 전혀 없었어. 그냥 도널드를 보호하려고 전보시킨 거야.”

A중대장 시절 도널드는 간부들 중에서도 혼자 지내는 편이었다. “내가 걔 방에 들어가면 걔는 마치 침범을 당한 것처럼 행동했어.” 조지가 말했다. 도널드는 간부들 모임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프레드 트럼프의 꼬붕이었던 교무부장이 화이트에게 트럼프의 행방을 일러주곤 했다. “도널드는 자기 아버지가 학교를 좌지우지한다는 걸 알았어. 다들 돈과 지위 그리고 영향력을 놓고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었던 거야.”

화이트는 도널드가 A중대장에서 해임된 게 놀랍지 않다고 했다. “트럼프는 부하 학생들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 항상 자기 생각만 했어. 간부 학부모 모임에서도 걔 아버지 프레드는 도널드 말고는 아무한테도 관심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지. 아무튼 트럼프 부자는 별종들이었어.”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트럼프 부자는 따로 놀았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거나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뭐가 불편한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식사 시간에도 도널드는 간부들 식탁에서 앉았다. 화이트는 말했다. “걔는 아주 조용했어. 대부분 옆자리 애들하고만 얘기했어. ‘참 트럼프스럽다’고 말들이 많았어. 무슨 얘기냐 하면, 지금 눈앞에 있는 문제보다 자기 자신이 더 중요하다는 가짜 현실에 빠져 있었다는 뜻이지. 그게 걔의 특징이었어.”

도널드도 아버지도 참모 보직으로 옮긴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널드를 성공시킬 더 확실한 계획을 추진했다.

도널드는 운동에서는 이미 뭔가를 보여줬지만, 두 사람은 아무도 시비를 못 걸 만큼의 성공을 원했다.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트럼프라는 브랜드를 구축해야 했다.

군사학교에서 나와 함께 한 시간 동안, 도널드는 호리호리한 아이에서 운동 실력이 뛰어난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는 운동복을 입었을 때도 멋졌지만 군복을 입었을 때 훨씬 더 멋졌다.

도널드를 역성들던 교무부장은 여기에 착안해 도널드를 군사학교 최정예 의장대 시범단의 지휘자로 선발했다. 의장대 시범단은 좋은 신체조건과 정교한 기술을 가진 학생들로 구성돼 있었다. 도널드의 임무는 맨 앞에서 차렷 자세로 서 있다가 구령을 내리는 일이었다. 도널드는 의장대 시범단의 얼굴마담으로 제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무부장과 프레드는 도널드한테 정말 큰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뉴욕군사학교는 매년 콜럼버스의 날에 뉴욕시 5번가에서 열리는 가두행진에 의장대 시범단을 내보내곤 했다. 도널드가 지휘자가 되기 전에는 뉴욕군사학교 의장대 시범단이 가두행진의 선두를 장식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교무부장이 도널드를 위해 콜럼버스의 날 가두행진을 기획했다. 화이트의 기억은 이렇다. “9월 초에 이런 지시가 떨어졌어. ‘콜럼버스의 날 가두행진에 트럼프가 지휘하는 36명이 참가한다. 너는 걔네들 훈련에 관여하지 마라. 내가 직접 챙길 거니까.’”

콜럼버스데이 가두행진의 선두에 선 트럼프. 트럼프 아버지의 작품이었다고 동창생들은 말한다.콜럼버스데이 가두행진의 선두에 선 트럼프. 트럼프 아버지의 작품이었다고 동창생들은 말한다.

가두행진이 끝나고 나서 뉴욕군사학교 학생들은 성 패트릭 성당 앞에서 스펠먼 추기경에게 경례를 했다. “트럼프는 자기가 추기경 경례를 멋지게 지휘했었다고 허풍을 떨고 있지. 그게 다 짜고 친 거야. 가두행진 당일에, 시범단에 무슨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갑자기 나를 포함해 학생간부들이 선두에 서기로 돼 있었거든. 그런데 교무부장이 와서 그러는 거야. 트럼프가 선두에 서야 된다고. (트럼프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자랑을 늘어놓았지만) 자랑할 만한 게 없었어. 전부 다 교무부장과 프레드가 미리 꾸며놓은 일들이거든.”

트럼프 브랜드 만들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도널드는 언젠가부터 군복 깃에 학업 우수 금별 배지와 다른 메달을 달고 있었다. 학생들의 성적은 3개월마다 학교 게시판에 나붙었다. 내 성적을 확인하면서 나는 가끔씩 도널드의 성적도 봤는데, 내 기억으로는 학업 우수 금별을 받을 만한 경우는 없었다. 도널드의 졸업앨범 사진을 보면, 학업 우수자나 군사훈련 우수자에게 주는 큰 금메달 두 개를 달고 있는데, 해당 연도의 학교연감을 아무리 뒤져봐도 도널드가 그런 상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도널드가 학교 성적과 기타 기록을 공개하지 않도록 법적 조치를 취해놓았으므로 이렇게 추론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졸업앨범의 트럼프, 오른쪽 깃에 학업 우수자에게 수여되는 금별을 달고 있다. 그러나 동창생 매킨토시는 트럼프가 금별을 받을 만한 성적을 거둔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졸업앨범의 트럼프, 오른쪽 깃에 학업 우수자에게 수여되는 금별을 달고 있다. 그러나 동창생 매킨토시는 트럼프가 금별을 받을 만한 성적을 거둔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프레드 트럼프는 의장대 시범단과 가두행진, 학업 우수 금별 그리고 메달에 만족하지 않았다. 또 다른 트럼프 브랜드 만들기가 필요했다. 도널드는 플레이보이 잡지가 그리는 이상적인 남자의 모습을 연출하곤 했다.

도널드의 부모가 주말에 학교에 올 때면, 예쁜 젊은 아가씨들을 함께 데려오곤 했는데, 매번 여자가 바뀌었다. 이 아가씨들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는데 거의 모델급이었다. 도널드는 다른 학생들이 보란 듯이 이 아가씨들을 데리고 학교를 산책하곤 했다. 여자와 접촉하면 벌점이라는 학교규정 F조는 무시되었다. 이런 쇼 덕분에 도널드는 졸업앨범 사진에 ’숙녀의 남자‘로 선정되었다.

졸업앨범 인기투표에서 ‘숙녀의 남자’로 선정된 트럼프. 졸업앨범 인기투표에서 ‘숙녀의 남자’로 선정된 트럼프.

친구들과 나는 도널드가 사고를 치고도 승승장구한 게 신기했다. 도널드한테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고 물었다. 나중에 화이트에게 들은 것처럼 프레드의 입김이 작용한 걸까? 도널드는 처음에는 부인하더니 곧 퉁명스럽게 말했다. “군사학교 교직원들은 잘릴 수도 있고 안 잘릴 수도 있거든.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야.”

뉴욕군사학교는 고립된 계급사회였다. 졸업 후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전투하듯 사는 방식 대신에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새로 배우느라 힘들었다. 그 학교에서 형성된 남성상과 여성상, 그리고 성공한 남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생각이 허구일 뿐 아니라 파괴적이라는 걸 새로 배워야 했다. 그 학교의 다른 졸업생들처럼 나는 어른이 되었다.

도널드만은 예외인 것 같다. 도널드는 엄청난 부잣집에 태어난 덕에, 처음부터 자신이 곧 법인 것처럼 살았고, 다른 이들이 천신만고 끝에 도달해야 하는 정상의 자리를 처음부터 꿰찼다. 오늘날 트럼프가 약자들을 조롱하고, 특히 고문을 버젓이 옹호하는 걸 지켜보면, 군사학교 시절 겪었던 육체적 정신적 괴롭힘이 떠오른다.

도널드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어느 전기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닐곱 살 때를 돌아보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타고난 기질이란 게 정말로 있나 봐요.”

이런 말을 들으면, 50년 전 뉴욕군사학교 수영장에서 봤던 장면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된다. 도널드는 마치 햇볕을 쬐고 있는 파충류처럼 다이빙 보드에 꼼짝도 않고 서 있다. 그 옆을 지나는 이들에게 물벼락을 날리려고. (끝)

Sandy McIntosh(작가)/(번역: 박성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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