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 군대 대신 ‘36개월 교도소 근무’

입력 2019.09.19 (19:2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 병역법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습니다. 법 개정시한을 올해 12월 31일까지로 못박았습니다. 내년 1월부터는 대체복무제가 시행돼야 합니다. 그리고 국회는 그 근거가 될 법률을 올해 안에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입법 시한을 석 달 남짓 앞둔 시점까지도, 국회는 법안 심사조차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패스트트랙 사태'와 '조국 정국' 등을 거치며 여야 간 논의가 장시간 얼어붙었기 때문입니다. 국회에는 국방부가 제출한 정부 입법안 등 대체복무제 관련 법안 18건이 계류된 상태입니다.

국회에서는 오늘(19일)에서야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법안 심사 전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어보겠다는 자리입니다.


정부안 '교정시설 36개월 합숙 근무'

먼저 정부의 방안부터 살펴볼까요? 현재 군 복무기간은 점차 단축되고 있습니다. 내년 6월 이후에 입대하는 육군은 18개월을 근무합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대체복무는 육군의 딱 2배인 36개월을 근무하게 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안입니다. 교도소같은 교정시설에서 합숙하며 시설 관리 등 업무를 맡는 겁니다.

오늘 공청회에는 참석한 전문가들은 정부 입법안에 대체로 동의했습니다. 제성호 중앙대학교 법대 교수는 "36개월은 병역 거부자에 대한 징벌적 성격이 있다거나 과도하다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40개월이나 60개월 등으로 기간을 늘리는 건 국제 인권기구의 비판 소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독고순 한국국방연구원 부원장은 교정 시설 복무에 대해 "군 복무환경과 유사하고, 기존 경비교도대의 합숙시설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진석용 대전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제도 도입 시기엔 교정시설로 단일화하되, 차후에 다른 분야로 확대해가는 방안을 연구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쟁점 ① 길까? 짧을까? '36개월'

하지만, 공청회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의 생각은 엇갈렸습니다. 자유한국당 이주영 의원은 "정부 안은 너무 안이하다"라면서 "대체복무를 쉬운 쪽으로, 기간도 짧게 정해 버리면 국가안보태세가 흔들린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의원은 구체적으로 적정 복무 기간을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당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40개월 복무 안(장제원 의원), 60개월 복무 안(김진태 의원)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정부가 마련한 안에 동의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홍영표 의원은 "현역 근무와 비교해서 36개월이라는 복무 기간을 봤을 때, 병역 기피 수단으로 대체복무를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당 도종환 의원은 전문가들에게 복무 기간을 과도하게 설정할 경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어떤 권고 조치들을 취하는 지 집중적으로 물으며, 정부 안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쟁점 ② 어디서 복무? 출퇴근?

대체복무자들의 복무 장소를 어디로 할 것이냐도 쟁점이었습니다. 한국당 이종명 의원은 대체복무자들이 유해 발굴이나 지뢰 제거 같은 비전투분야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의원은 "유해 발굴을 민간에서 진행한 사례도 있기 때문에 대체복무자들을 투입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비전투분야 근무는 인권적으로 저촉되는 부분도 없다" 강조했습니다.

반면, 민주당 민홍철 의원은 정부 안처럼 교정 시설에서 근무하는 형태가 적합하다면서 복무 형태에 유연성을 가질 수는 없는지 물었습니다. 민 의원은 "보충역이나 사회복무요원도 출퇴근을 하면서 복무하는데, 현역과 비교했을 때 굳이 합숙을 고집해야 하는 것은 징벌적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쟁점 ③ '대체복무제' 악용 가능성

공청회에선 새로 도입될 대체복무 제도에 대한 다양한 의견도 나왔습니다. 무소속 서청원 의원은 "스위스 같은 중립 국가도 대체복무제를 시행한 뒤 대체복무자가 10년 만에 20배가 늘어났다"면서 "대체복무제를 악용한 병역 기피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체복무제가 사회지도층 자녀의 병역 비리 수단이 되는 일이 없도록, 관련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국방부에 주문했습니다.

한국당 백승주 의원은 대체복무자를 가려 낼 심사위원회를 따로 신설하도록 한 정부 안을 문제 삼았습니다. "헌재의 결정 내용은 대체 복무자를 위한 역종을 새로 만들라는 것"이라면서 "(심의위 신설은) 정부조직법과 충돌하게 되며, 대체복무자 수백 명을 대상으로 하는 제2, 제3의 병무청을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오늘 나온 의견들을 수렴한 뒤 대체복무 법안의 단일안 마련에 나설 계획입니다. 대체복무제에 관한 활발한 토론이 국회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물론 긍정적이지만, 너무 늦은 시작에 졸속으로 일을 처리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규모는 첫해 500~600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국회가 입법에 속도를 내서 내년 초 '병역 대란'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18개월 군대 대신 ‘36개월 교도소 근무’
    • 입력 2019-09-19 19:22:46
    취재K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 병역법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습니다. 법 개정시한을 올해 12월 31일까지로 못박았습니다. 내년 1월부터는 대체복무제가 시행돼야 합니다. 그리고 국회는 그 근거가 될 법률을 올해 안에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입법 시한을 석 달 남짓 앞둔 시점까지도, 국회는 법안 심사조차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패스트트랙 사태'와 '조국 정국' 등을 거치며 여야 간 논의가 장시간 얼어붙었기 때문입니다. 국회에는 국방부가 제출한 정부 입법안 등 대체복무제 관련 법안 18건이 계류된 상태입니다.

국회에서는 오늘(19일)에서야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법안 심사 전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어보겠다는 자리입니다.


정부안 '교정시설 36개월 합숙 근무'

먼저 정부의 방안부터 살펴볼까요? 현재 군 복무기간은 점차 단축되고 있습니다. 내년 6월 이후에 입대하는 육군은 18개월을 근무합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대체복무는 육군의 딱 2배인 36개월을 근무하게 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안입니다. 교도소같은 교정시설에서 합숙하며 시설 관리 등 업무를 맡는 겁니다.

오늘 공청회에는 참석한 전문가들은 정부 입법안에 대체로 동의했습니다. 제성호 중앙대학교 법대 교수는 "36개월은 병역 거부자에 대한 징벌적 성격이 있다거나 과도하다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40개월이나 60개월 등으로 기간을 늘리는 건 국제 인권기구의 비판 소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독고순 한국국방연구원 부원장은 교정 시설 복무에 대해 "군 복무환경과 유사하고, 기존 경비교도대의 합숙시설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진석용 대전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제도 도입 시기엔 교정시설로 단일화하되, 차후에 다른 분야로 확대해가는 방안을 연구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쟁점 ① 길까? 짧을까? '36개월'

하지만, 공청회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의 생각은 엇갈렸습니다. 자유한국당 이주영 의원은 "정부 안은 너무 안이하다"라면서 "대체복무를 쉬운 쪽으로, 기간도 짧게 정해 버리면 국가안보태세가 흔들린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의원은 구체적으로 적정 복무 기간을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당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40개월 복무 안(장제원 의원), 60개월 복무 안(김진태 의원)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정부가 마련한 안에 동의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홍영표 의원은 "현역 근무와 비교해서 36개월이라는 복무 기간을 봤을 때, 병역 기피 수단으로 대체복무를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당 도종환 의원은 전문가들에게 복무 기간을 과도하게 설정할 경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어떤 권고 조치들을 취하는 지 집중적으로 물으며, 정부 안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쟁점 ② 어디서 복무? 출퇴근?

대체복무자들의 복무 장소를 어디로 할 것이냐도 쟁점이었습니다. 한국당 이종명 의원은 대체복무자들이 유해 발굴이나 지뢰 제거 같은 비전투분야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의원은 "유해 발굴을 민간에서 진행한 사례도 있기 때문에 대체복무자들을 투입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비전투분야 근무는 인권적으로 저촉되는 부분도 없다" 강조했습니다.

반면, 민주당 민홍철 의원은 정부 안처럼 교정 시설에서 근무하는 형태가 적합하다면서 복무 형태에 유연성을 가질 수는 없는지 물었습니다. 민 의원은 "보충역이나 사회복무요원도 출퇴근을 하면서 복무하는데, 현역과 비교했을 때 굳이 합숙을 고집해야 하는 것은 징벌적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쟁점 ③ '대체복무제' 악용 가능성

공청회에선 새로 도입될 대체복무 제도에 대한 다양한 의견도 나왔습니다. 무소속 서청원 의원은 "스위스 같은 중립 국가도 대체복무제를 시행한 뒤 대체복무자가 10년 만에 20배가 늘어났다"면서 "대체복무제를 악용한 병역 기피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체복무제가 사회지도층 자녀의 병역 비리 수단이 되는 일이 없도록, 관련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국방부에 주문했습니다.

한국당 백승주 의원은 대체복무자를 가려 낼 심사위원회를 따로 신설하도록 한 정부 안을 문제 삼았습니다. "헌재의 결정 내용은 대체 복무자를 위한 역종을 새로 만들라는 것"이라면서 "(심의위 신설은) 정부조직법과 충돌하게 되며, 대체복무자 수백 명을 대상으로 하는 제2, 제3의 병무청을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오늘 나온 의견들을 수렴한 뒤 대체복무 법안의 단일안 마련에 나설 계획입니다. 대체복무제에 관한 활발한 토론이 국회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물론 긍정적이지만, 너무 늦은 시작에 졸속으로 일을 처리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규모는 첫해 500~600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국회가 입법에 속도를 내서 내년 초 '병역 대란'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