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두 개의 양심]⑪ 법복 벗은 수석재판연구관…“법원행정처 부하” 프레임 저격

입력 2019.09.22 (08:00) 수정 2019.09.2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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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11번째 순서로, 그제(20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대법관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현석 전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사법연수원 20기·現 변호사)의 증언 내용을 살펴봅니다. 김현석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김명수 대법원장 밑에서 일하던 지난 2월, 25년 동안의 법관 생활을 스스로 마무리하고 개인 사무실을 개업해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직 판사 신분이 아닌 거지요. 그동안은 판사 신분인 증인의 증언만 다뤄왔지만, 이번처럼 법관 경력이 20년 이상인 핵심 증인인 경우 그 지위와 증언의 무게를 고려해 증언을 기록해두려 합니다.

김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2015년~2017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밑에서도 선임·수석재판연구관으로 일했기 때문에, 재판 지연·거래 의혹이 일었던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상고심 사건이 대법원에서 어떤 절차로 심리됐는지를 잘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또 대법원의 재판 기밀을 법원행정처에 유출했다는 의혹 등으로 다섯 차례 정도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사법농단' 사태라는 충격적인 경험 이후 법원을 떠났던 증인은 법정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요?

김현선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018년 9월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나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김현선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018년 9월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나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1. '재판연구관 개론'

김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대법원에 근무할 당시, 이규진 대법원 양형실장으로부터 '특정 재판'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법리 검토 의견을 통화나 문건이 첨부된 이메일로 여러 차례 전달받았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의원직을 상실한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행정소송 상고심 사건, 그리고 헌재가 대법원과 같은 시기에 심리하고 있던 매립지 귀속 관련 상고심 사건이 문제가 됐는데요. 두 사건 모두 대법원과 헌재 두 기관의 역할·권한을 둘러싼 대결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매우 민감하게 취급됐습니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헌재를 견제하며 우위에 서려는 목적으로 이 사건들의 상고심 재판에 개입하려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실장이 2016년 6월 8일 김현석 전 수석재판연구관에게 메일로 보내준 ‘재판 개입’ 의혹 문건 일부.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실장이 2016년 6월 8일 김현석 전 수석재판연구관에게 메일로 보내준 ‘재판 개입’ 의혹 문건 일부.

증인은 대법원이 들여다보고 있는 '특정 사건'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특정 방향'으로 법리를 검토한 의견을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에 보내주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고 증언했습니다.

검찰 조사에서는 "특정 사건에 대해 전원합의체 논의를 할지 말지는 엄연히 대법원의 재판 업무인데,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이런저런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여러모로 부적절한 것은 맞습니다"라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정에 선 증인은 다른 부분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이랬습니다.

-검사: 재판의 내용이나 선고 시기 등과 관련 절차 진행 부분, 판결 이유에 기재될 사항 등과 관련된 내용은,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원칙상 재판부에서 전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건 맞습니까?
-증인: 네.
-검사: 이처럼 재판의 내용, 절차 진행과 관련된 직·간접적 언급이나 조언, 암시, 권유 등은 모두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관여하거나 개입한 것으로,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요소들로 볼 수 있습니까?
-증인: 근데 제가 말씀드릴 것은, 재판연구관은 담당 재판부가 아닙니다.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관한 의견을 대법관들에게 '직접' 전달한 게 아니고, 재판연구관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한 데 불과하다는 겁니다.

증인은 그러면서 "재판연구관은 법관으로서 일하는 게 아니다" "재판연구관은 의식을 갖고 개인적 소신을 피력하는 게 아니라, 대법관과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아서 그 취지를 (재판에) 최대한 반영하는 보조적 존재"라고 수차례 주장했습니다. 재판연구관 접촉을 '재판 개입'으로 해석하는 검찰의 주장은 무리라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검사가 법조문까지 인용하며 이 논리를 정면 반박했지만, 증인은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검사: … 법원조직법 20조 2항을 보면 "재판연구관은 대법원장 명을 받아 대법원에서 사건의 심리 및 재판에 관한 조사 연구 업무를 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지요?
-증인: 네네.
-검사: 그니까 연구관이
-증인: [말 끊으며] 대법관과 구별된다는 게, 대법관님은 재판하신다는 거고 저희는 연구 조사하고 그것을 보고하는 역할. 그런 점에 차이가 있다는 거지, 전혀 무관하고 영향력 서로 없다 이런 말씀은..
-검사: [말 끊으며] 그러니까요. 연구관이 작성한 보고서가 대법관들이 심리하고 결론 내고 판결 선고하는 데 직접적 자료가 되는 건 맞죠?
-증인: 네.
-검사: 그러면 연구관이 하는 업무가 대법관들이 하는 재판 자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사건에 관한 심리 및 재판에 관한 조사연구를 할 법률이 규정한 그런 직무와 권한. 이런 게 연구관에게도 있는 거 아닌가요?
-증인: 네, 있습니다. 근데 법관의 업무는 아닙니다.
-검사: 근데 이제 자꾸 법관 업무가 아니라는 거는 사후적으로 판단할 문제인 거 같은데.
-증인: [말 끊으며] 자꾸 재판의 독립을 말씀하시니까.
-검사: [말 끊으며] 그럼 그런 연구관의 업무가 재판과 관련된 직무인 거는 맞지요?
-증인: 관련된 직무는 많은 분들이 하는 거 같습니다. 법원에 계신 모든 분들이.
-검사: 알겠습니다. 이상.

증인은 이에 더해 "재판연구관은 대법관에게 사건 관련 검토 보고를 올릴 때, '외부기관에서 수집한 정보'를 기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사건과 관련된 '정무적' 시각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연구관 업무의 일환"이라고 증언했습니다. 1·2심과 달리 대법원은 법리적 판단 외에 '정책적' 판단을 한다고도 했습니다. 행정처와 같은 외부기관과의 접촉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의 통상적 활동일 뿐, 검찰 시각처럼 법관의 실체적 판단을 '오염'시킬 수 있는수상한 교류가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겁니다.

#2. 선후관계와 인과관계

증인은 "법리 문제에 대해선 법원행정처보다 연구관실이 훨씬 더 잘 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행정처의 의견에 재판연구관실이 영향을 받지도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집 가치가 있는 정보나 동향 정도는 될 수 있을지언정, 애초에 그런 문건들이 대법원 재판의 방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겁니다.

-검사: 이와 같은 행정처 의견이 (재판연구관실에) 전달돼서 재판의 절차 진행에, 행정처 의견이 고려됐던 거는 맞습니까? 물론 결정은 대법관님들이 하시겠지만.
-증인: 저 사건을 검토하게 된 계기가 됐던 것은 맞고, …(중략)… 계기는 마련됐지만, 그 지시를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순 없을 거 같아 보이고. 그런 연락을 받아서 연구관실 내에서 자체 검토해서 보고한 내용으로 알고 있다.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 행정처의 의견 전달로 인해 매립지 사건 검토 보고가 이뤄진 건 아니다?
-증인: 그런 사건이 헌재에도 계류해 있단 사실은 알게 됐으니까 그 단초를, 그 당시에 바로 검토하게 된 단초를 제공한 건 맞고, 그 상태에서 여러 정보를 파악하고 검토해서 연구관실 나름대로 대법관님께 보고했다는 관점에서 보면...(맞을 거 같다).

행정처가 특정 사건 검토의 계기나 단초는 마련해줬지만, 행정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재판연구관실 '자체적으로', '나름대로' 판단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선후관계는 있지만 인과관계는 없다, 재판 개입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증인은 특히 통진당 사건의 경우 대법원 내에서 소부가 아닌 전원합의체 대상 사건으로 분류됐다며, "행정처가 보낸 문건과 정반대로 처리됐다"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규진 실장에게 '통진당 사건 전합 회부에 관한 의견(대외비)'이라는 행정처 문건을 받은 증인이, 행정처 뜻에 협조하겠다는 듯한 답장을 보낸 사실을 문제 삼았습니다.

김현석 발신 이메일. 재판 과정에서 노출된 서증을 기자가 정리해 재구성한 것이다.김현석 발신 이메일. 재판 과정에서 노출된 서증을 기자가 정리해 재구성한 것이다.

-검사: 증인은 이규진에게 이메일을 받은 후, "손수 정책적 검토까지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수석 연구관께 보고 후 그와 같은 취지로 처리하겠다"라는 답장한 사실이 있습니까?
-증인: 네.
-검사: … 이것을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재판 연구관 관련 업무를 도와준 것으로 받아들인 것입니까?
-증인: 도와준다기보다는... 예우를 갖춘다는 차원입니다. 제가 보내는 대부분의 메일에 저런 방식으로 합니다. "평소 존경하는"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멘트들도 제 메일에 보면 대부분 저런 식으로 기재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석연구관께 보고하고 그와 같은 취지로 처리"도 그 내용을 반영하겠다는 취지가, 결과적으로는 반영이 안됐는데요, 저렇게 의견을 주시니까 일응(一應·우리말로 '일단'이라는 뜻) 참고하겠다. 이런 취지로 이해해주시면...
-검사: 검토 한번 해보겠다는 취지로 "그와 같은 취지로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하셨다는 겁니까?
-증인: 네.

검사는 법정 증언이 기존 진술과 배치된다고도 추궁했지만, 먹히지 않았습니다.

-검사: …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 "이 문건(행정처 문건)의 기재가 없었다면 이 쟁점을 인지할 수 없었거나, 반대로 생각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술하셨는데. 맞습니까?
-증인: 그 당시 아마 그런 취지로 진술한 거 같은데, 저런 부분은 오히려 행정처의 판단보다는 연구관실에 연구결과가 더 축적돼 있고 저희가 판단할 사항이라서. '만일 저게(문건이)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적 인과관계를 묻는 부분은, 제가 그 당시에 너무 긴장한 상태에서 진술을 드린 거 같습니다.

#3. "부하 아닌 수석"

검찰은 '재판 개입'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증인이 이규진 실장에게 대법원 내부 정보를 '보고'했다며 "보고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주요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여기에는 "통진당 의원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에 관해 담당연구관에게 전해 들은 사항"이라며, 향후 예상 선고 일정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이 메일을 보내게 된 경위에 대해, 증인은 재판 진행 상황을 궁금해하는 이규진 실장의 요구에 응한 거라고 증언했습니다.

김현석 발신 이메일 재구성.김현석 발신 이메일 재구성.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이 메일에 대해 "부적절한 점을 인정한다"면서 "다만 대법원장님을 보좌하는 양형실장이 업무에 참조한다는데 이를 매몰차게 거절하기 어렵고 여러 운신의 폭이 넓지 않았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곤혹스러운 부탁이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뉘앙스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검사: 증인은 … 법원행정처에서 헌법 관련 업무 담당하는 이규진의 이같은 요구(재판 상황 알려달라는 요구)를 부당한 재판 개입이라 단정하지 못했습니까?
-증인: 네.
-검사: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증인: … 대법원장 참모로서 대외적인 헌재와의 관련 업무를 처리하시기 때문에, 저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이규진 실장님 업무 처리하는데 적절치 않을까하는 제 스스로 판단 때문에 그런 거 같습니다. … 저런 문건을 자주 보내온다면 조금 심적으로 부담 느낄 수는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 당시엔 저 정도는 괜찮다 판단했고

통진당 의원들의 소송에 양승태 대법원장이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상황에서, 사법행정 책임자로서의 대법원장을 보좌하는 이규진 실장도 재판 상황을 "사법행정상 알고 있어야 할 정보라고 생각해서" 알려준 것일 뿐 문제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해명에도 자꾸 검찰과 변호인이 '보고'에 대해 끊임없이 묻자, 증인은 더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증인: 재판장님, 좀 잠깐만... 재판장님, 제가 부연설명 간단하게....
-재판장: 네. 간단하게.
-증인: 양측이 질문하시는 거 보면, 제가 마치 행정처의 부하직원인 양 뭘 문건을 보낼 때마다 했다고 지금 질문하시는데... 명색이 제가 수석재판연구관입니다. 제가 누구한테 지시받거나 이럴 상황이 아닙니다.

수석재판연구관을 두고 마치 법원행정처의 지시를 받아 보고를 올리는 '부하'처럼 보는 프레임이 잘못됐다고 저격한 겁니다. 이어지는 증언.

-증인: 대법원에서 근무 안 해보셔서 모르시겠지만, 수석재판연구관은 연구관실 책임지고 대법관님과 대법원장님께 보고드리는 그런 자리입니다. (행정처에서) 어떤 문건을 보내오면 제가 공손하게 답변하지만 제 책임과 권한 내에서 대개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건이 오면, 저쪽(행정처)에서 '선고 넣어라' 이런 표현이 오더라도, 그런 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 … 용어를 가지고 자꾸 '지시를 했지 않냐' '전달을 했지 않냐'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지금까지는 증인신문 방해받지 않기 위해 있었는데, 그런 표현은 정확한 게 아니라 행정처는 사법행정하기 위해 재판연구관실에 의견 전달하는 거고 재판연구관실은 그거를 가지고 적절한 범위까지 대법관님과 대법원장님을 보좌하는 입장에서 운영해왔다는 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법원행정처로부터 부당한 재판 개입을 당한 것도, 일방적인 지시를 받은 것도 아니라는 증인의 일관된 증언에, 피고인 측은 다소 고무된 분위기였는데요.

그렇다면 양 전 대법원장의 가장 주요한 혐의인 '강제징용 재상고심' 고의 지연 의혹에 대해서, 전원합의체 진행 업무에 관여했던 증인은 어떻게 증언했을까요? 내일(23일) 기사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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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와 두 개의 양심]⑪ 법복 벗은 수석재판연구관…“법원행정처 부하” 프레임 저격
    • 입력 2019-09-22 08:00:13
    • 수정2019-09-23 11:02:16
    취재K
●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11번째 순서로, 그제(20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대법관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현석 전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사법연수원 20기·現 변호사)의 증언 내용을 살펴봅니다. 김현석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김명수 대법원장 밑에서 일하던 지난 2월, 25년 동안의 법관 생활을 스스로 마무리하고 개인 사무실을 개업해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직 판사 신분이 아닌 거지요. 그동안은 판사 신분인 증인의 증언만 다뤄왔지만, 이번처럼 법관 경력이 20년 이상인 핵심 증인인 경우 그 지위와 증언의 무게를 고려해 증언을 기록해두려 합니다.

김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2015년~2017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밑에서도 선임·수석재판연구관으로 일했기 때문에, 재판 지연·거래 의혹이 일었던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상고심 사건이 대법원에서 어떤 절차로 심리됐는지를 잘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또 대법원의 재판 기밀을 법원행정처에 유출했다는 의혹 등으로 다섯 차례 정도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사법농단' 사태라는 충격적인 경험 이후 법원을 떠났던 증인은 법정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요?

김현선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018년 9월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나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1. '재판연구관 개론'

김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대법원에 근무할 당시, 이규진 대법원 양형실장으로부터 '특정 재판'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법리 검토 의견을 통화나 문건이 첨부된 이메일로 여러 차례 전달받았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의원직을 상실한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행정소송 상고심 사건, 그리고 헌재가 대법원과 같은 시기에 심리하고 있던 매립지 귀속 관련 상고심 사건이 문제가 됐는데요. 두 사건 모두 대법원과 헌재 두 기관의 역할·권한을 둘러싼 대결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매우 민감하게 취급됐습니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헌재를 견제하며 우위에 서려는 목적으로 이 사건들의 상고심 재판에 개입하려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실장이 2016년 6월 8일 김현석 전 수석재판연구관에게 메일로 보내준 ‘재판 개입’ 의혹 문건 일부.
증인은 대법원이 들여다보고 있는 '특정 사건'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특정 방향'으로 법리를 검토한 의견을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에 보내주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고 증언했습니다.

검찰 조사에서는 "특정 사건에 대해 전원합의체 논의를 할지 말지는 엄연히 대법원의 재판 업무인데,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이런저런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여러모로 부적절한 것은 맞습니다"라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정에 선 증인은 다른 부분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이랬습니다.

-검사: 재판의 내용이나 선고 시기 등과 관련 절차 진행 부분, 판결 이유에 기재될 사항 등과 관련된 내용은,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원칙상 재판부에서 전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건 맞습니까?
-증인: 네.
-검사: 이처럼 재판의 내용, 절차 진행과 관련된 직·간접적 언급이나 조언, 암시, 권유 등은 모두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관여하거나 개입한 것으로,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요소들로 볼 수 있습니까?
-증인: 근데 제가 말씀드릴 것은, 재판연구관은 담당 재판부가 아닙니다.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관한 의견을 대법관들에게 '직접' 전달한 게 아니고, 재판연구관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한 데 불과하다는 겁니다.

증인은 그러면서 "재판연구관은 법관으로서 일하는 게 아니다" "재판연구관은 의식을 갖고 개인적 소신을 피력하는 게 아니라, 대법관과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아서 그 취지를 (재판에) 최대한 반영하는 보조적 존재"라고 수차례 주장했습니다. 재판연구관 접촉을 '재판 개입'으로 해석하는 검찰의 주장은 무리라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검사가 법조문까지 인용하며 이 논리를 정면 반박했지만, 증인은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검사: … 법원조직법 20조 2항을 보면 "재판연구관은 대법원장 명을 받아 대법원에서 사건의 심리 및 재판에 관한 조사 연구 업무를 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지요?
-증인: 네네.
-검사: 그니까 연구관이
-증인: [말 끊으며] 대법관과 구별된다는 게, 대법관님은 재판하신다는 거고 저희는 연구 조사하고 그것을 보고하는 역할. 그런 점에 차이가 있다는 거지, 전혀 무관하고 영향력 서로 없다 이런 말씀은..
-검사: [말 끊으며] 그러니까요. 연구관이 작성한 보고서가 대법관들이 심리하고 결론 내고 판결 선고하는 데 직접적 자료가 되는 건 맞죠?
-증인: 네.
-검사: 그러면 연구관이 하는 업무가 대법관들이 하는 재판 자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사건에 관한 심리 및 재판에 관한 조사연구를 할 법률이 규정한 그런 직무와 권한. 이런 게 연구관에게도 있는 거 아닌가요?
-증인: 네, 있습니다. 근데 법관의 업무는 아닙니다.
-검사: 근데 이제 자꾸 법관 업무가 아니라는 거는 사후적으로 판단할 문제인 거 같은데.
-증인: [말 끊으며] 자꾸 재판의 독립을 말씀하시니까.
-검사: [말 끊으며] 그럼 그런 연구관의 업무가 재판과 관련된 직무인 거는 맞지요?
-증인: 관련된 직무는 많은 분들이 하는 거 같습니다. 법원에 계신 모든 분들이.
-검사: 알겠습니다. 이상.

증인은 이에 더해 "재판연구관은 대법관에게 사건 관련 검토 보고를 올릴 때, '외부기관에서 수집한 정보'를 기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사건과 관련된 '정무적' 시각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연구관 업무의 일환"이라고 증언했습니다. 1·2심과 달리 대법원은 법리적 판단 외에 '정책적' 판단을 한다고도 했습니다. 행정처와 같은 외부기관과의 접촉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의 통상적 활동일 뿐, 검찰 시각처럼 법관의 실체적 판단을 '오염'시킬 수 있는수상한 교류가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겁니다.

#2. 선후관계와 인과관계

증인은 "법리 문제에 대해선 법원행정처보다 연구관실이 훨씬 더 잘 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행정처의 의견에 재판연구관실이 영향을 받지도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집 가치가 있는 정보나 동향 정도는 될 수 있을지언정, 애초에 그런 문건들이 대법원 재판의 방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겁니다.

-검사: 이와 같은 행정처 의견이 (재판연구관실에) 전달돼서 재판의 절차 진행에, 행정처 의견이 고려됐던 거는 맞습니까? 물론 결정은 대법관님들이 하시겠지만.
-증인: 저 사건을 검토하게 된 계기가 됐던 것은 맞고, …(중략)… 계기는 마련됐지만, 그 지시를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순 없을 거 같아 보이고. 그런 연락을 받아서 연구관실 내에서 자체 검토해서 보고한 내용으로 알고 있다.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 행정처의 의견 전달로 인해 매립지 사건 검토 보고가 이뤄진 건 아니다?
-증인: 그런 사건이 헌재에도 계류해 있단 사실은 알게 됐으니까 그 단초를, 그 당시에 바로 검토하게 된 단초를 제공한 건 맞고, 그 상태에서 여러 정보를 파악하고 검토해서 연구관실 나름대로 대법관님께 보고했다는 관점에서 보면...(맞을 거 같다).

행정처가 특정 사건 검토의 계기나 단초는 마련해줬지만, 행정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재판연구관실 '자체적으로', '나름대로' 판단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선후관계는 있지만 인과관계는 없다, 재판 개입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증인은 특히 통진당 사건의 경우 대법원 내에서 소부가 아닌 전원합의체 대상 사건으로 분류됐다며, "행정처가 보낸 문건과 정반대로 처리됐다"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규진 실장에게 '통진당 사건 전합 회부에 관한 의견(대외비)'이라는 행정처 문건을 받은 증인이, 행정처 뜻에 협조하겠다는 듯한 답장을 보낸 사실을 문제 삼았습니다.

김현석 발신 이메일. 재판 과정에서 노출된 서증을 기자가 정리해 재구성한 것이다.
-검사: 증인은 이규진에게 이메일을 받은 후, "손수 정책적 검토까지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수석 연구관께 보고 후 그와 같은 취지로 처리하겠다"라는 답장한 사실이 있습니까?
-증인: 네.
-검사: … 이것을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재판 연구관 관련 업무를 도와준 것으로 받아들인 것입니까?
-증인: 도와준다기보다는... 예우를 갖춘다는 차원입니다. 제가 보내는 대부분의 메일에 저런 방식으로 합니다. "평소 존경하는"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멘트들도 제 메일에 보면 대부분 저런 식으로 기재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석연구관께 보고하고 그와 같은 취지로 처리"도 그 내용을 반영하겠다는 취지가, 결과적으로는 반영이 안됐는데요, 저렇게 의견을 주시니까 일응(一應·우리말로 '일단'이라는 뜻) 참고하겠다. 이런 취지로 이해해주시면...
-검사: 검토 한번 해보겠다는 취지로 "그와 같은 취지로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하셨다는 겁니까?
-증인: 네.

검사는 법정 증언이 기존 진술과 배치된다고도 추궁했지만, 먹히지 않았습니다.

-검사: …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 "이 문건(행정처 문건)의 기재가 없었다면 이 쟁점을 인지할 수 없었거나, 반대로 생각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술하셨는데. 맞습니까?
-증인: 그 당시 아마 그런 취지로 진술한 거 같은데, 저런 부분은 오히려 행정처의 판단보다는 연구관실에 연구결과가 더 축적돼 있고 저희가 판단할 사항이라서. '만일 저게(문건이)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적 인과관계를 묻는 부분은, 제가 그 당시에 너무 긴장한 상태에서 진술을 드린 거 같습니다.

#3. "부하 아닌 수석"

검찰은 '재판 개입'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증인이 이규진 실장에게 대법원 내부 정보를 '보고'했다며 "보고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주요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여기에는 "통진당 의원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에 관해 담당연구관에게 전해 들은 사항"이라며, 향후 예상 선고 일정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이 메일을 보내게 된 경위에 대해, 증인은 재판 진행 상황을 궁금해하는 이규진 실장의 요구에 응한 거라고 증언했습니다.

김현석 발신 이메일 재구성.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이 메일에 대해 "부적절한 점을 인정한다"면서 "다만 대법원장님을 보좌하는 양형실장이 업무에 참조한다는데 이를 매몰차게 거절하기 어렵고 여러 운신의 폭이 넓지 않았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곤혹스러운 부탁이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뉘앙스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검사: 증인은 … 법원행정처에서 헌법 관련 업무 담당하는 이규진의 이같은 요구(재판 상황 알려달라는 요구)를 부당한 재판 개입이라 단정하지 못했습니까?
-증인: 네.
-검사: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증인: … 대법원장 참모로서 대외적인 헌재와의 관련 업무를 처리하시기 때문에, 저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이규진 실장님 업무 처리하는데 적절치 않을까하는 제 스스로 판단 때문에 그런 거 같습니다. … 저런 문건을 자주 보내온다면 조금 심적으로 부담 느낄 수는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 당시엔 저 정도는 괜찮다 판단했고

통진당 의원들의 소송에 양승태 대법원장이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상황에서, 사법행정 책임자로서의 대법원장을 보좌하는 이규진 실장도 재판 상황을 "사법행정상 알고 있어야 할 정보라고 생각해서" 알려준 것일 뿐 문제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해명에도 자꾸 검찰과 변호인이 '보고'에 대해 끊임없이 묻자, 증인은 더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증인: 재판장님, 좀 잠깐만... 재판장님, 제가 부연설명 간단하게....
-재판장: 네. 간단하게.
-증인: 양측이 질문하시는 거 보면, 제가 마치 행정처의 부하직원인 양 뭘 문건을 보낼 때마다 했다고 지금 질문하시는데... 명색이 제가 수석재판연구관입니다. 제가 누구한테 지시받거나 이럴 상황이 아닙니다.

수석재판연구관을 두고 마치 법원행정처의 지시를 받아 보고를 올리는 '부하'처럼 보는 프레임이 잘못됐다고 저격한 겁니다. 이어지는 증언.

-증인: 대법원에서 근무 안 해보셔서 모르시겠지만, 수석재판연구관은 연구관실 책임지고 대법관님과 대법원장님께 보고드리는 그런 자리입니다. (행정처에서) 어떤 문건을 보내오면 제가 공손하게 답변하지만 제 책임과 권한 내에서 대개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건이 오면, 저쪽(행정처)에서 '선고 넣어라' 이런 표현이 오더라도, 그런 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 … 용어를 가지고 자꾸 '지시를 했지 않냐' '전달을 했지 않냐'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지금까지는 증인신문 방해받지 않기 위해 있었는데, 그런 표현은 정확한 게 아니라 행정처는 사법행정하기 위해 재판연구관실에 의견 전달하는 거고 재판연구관실은 그거를 가지고 적절한 범위까지 대법관님과 대법원장님을 보좌하는 입장에서 운영해왔다는 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법원행정처로부터 부당한 재판 개입을 당한 것도, 일방적인 지시를 받은 것도 아니라는 증인의 일관된 증언에, 피고인 측은 다소 고무된 분위기였는데요.

그렇다면 양 전 대법원장의 가장 주요한 혐의인 '강제징용 재상고심' 고의 지연 의혹에 대해서, 전원합의체 진행 업무에 관여했던 증인은 어떻게 증언했을까요? 내일(23일) 기사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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