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두 개의 양심]⑫ ‘보안사항’ 쉬쉬한 강제징용 사건…대법 논의과정 최초 증언

입력 2019.09.23 (07:07) 수정 2019.09.2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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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열두 번째 순서로, 지난 20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현석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증언을 지난번에 이어 계속 살펴봅니다. 주제는 양 전 대법원장의 주요 혐의인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재판 거래' 의혹입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외교부의 협조를 얻어내 '사법부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의 입장을 반영해 강제징용 사건 재상고심을 유독 신중히 검토하면서 선고를 지연시켰다고 의심합니다. 일본 기업들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2년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며 이를 번복하려 했거나, 적어도 번복할 것 같은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사건 처리를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당초 대법원 소부에 배당됐던 강제징용 재상고심 사건을 양 전 대법원장이 '의도적으로'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려 했는지가 검찰로서는 중요한 쟁점이 됩니다.

김현석 변호사는 이 쟁점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증언할 수 있는 중요한 증인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재임 마지막 해인 2017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으로 일하면서, 전원합의체 회의 관련 업무를 직접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 이 쟁점과 직접 관련된 증인이 나온 건 김 변호사가 처음입니다.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논의 과정이 이날 재판에서 '최초 공개'된 이유입니다.

김현석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018년 9월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가며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김현석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018년 9월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가며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0. 준비운동

증인의 증언을 살펴보기 전, 먼저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의 처리에 관해 지금까지 정확히 알려졌던 사실관계를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일본기업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는 2012년 5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사건 파기환송 판결 이후 파기환송심은 이 결론을 그대로 따랐고, 일본기업이 재상고하면서 2013년 8월 이 사건이 다시 대법원에 접수됐습니다. 2013년 12월 이 사건의 심리불속행(대법원이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 기간이 끝납니다. 일본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이듬해 5월 소송 위임장과 함께 상고이유서를 제출하고, 한 달 뒤인 2014년 6월 주심 대법관이 김용덕 대법관으로 지정된 후 법리 검토가 시작됩니다.

대법원 ‘나의 사건검색’에 공개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심리진행 상황 재구성.대법원 ‘나의 사건검색’에 공개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심리진행 상황 재구성.

이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퇴임하고, 사건은 이듬해 7월 공식적으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됩니다. 대법원은 석달 뒤인 2018년 10월 30일 상고를 기각해, 일본 기업의 패소가 확정됩니다.


#1. 징용 사건, '진작' 전합에서 논의

앞서 살펴본 내용에 따르면, 대법원은 2014년 6월부터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검토했지만 2018년 7월 전원합의체 회부 전까지 이 사건을 어떻게 심리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4년이 넘는 공백기가 있는 겁니다. 김현석 전 수석재판연구관 증인신문 과정에서 이 '잃어버린 시간'의 의문을 풀 단서들이 여럿 등장했습니다.

증인이 막 수석재판연구관으로 부임해 일하던 2017년 3월, 증인은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에게 전원합의체 안건 초안을 보고합니다.

-검사: 증인은 2017년 3월 초 양승태 피고인에게 전합 안건 초안을 보고했을 때, 양승태로부터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과 휴일 및 연장근로 중복가산 사건을 전원합의체 회의 안건에 포함시키라는 지시를 받은 적 있습니까?
-증인: 네.

증인은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고 기존 전합 진행 안건 문건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강제징용 사건은 이미 2016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세 차례나 전원합의체에서 논의된 적이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검사: 증인은 양승태 지시를 받고 유해용 전임 수석재판연구관이 작성한 전합 안건 문건을 확인해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이 2016년 11월 17일 목요일 전합 회의에서 논의됐던 사실을 확인하였습니까?
-증인: 네.

앞서 살펴봤듯이 강제징용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정식 '회부'된 것은 2018년 7월이었죠. 그런데 대법원은 훨씬 전부터 이미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논의해왔던 겁니다.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대법원 소부가 맡은 사건 중에서도 '전합 보고 안건'으로 정해 전합에서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전원이 함께 논의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강제징용 사건도 여기에 해당됐던 겁니다. 이 과정에는 소부에서 이 사건 주심을 맡았던 김용덕 대법관의 뜻이 일단 반영됐음을 대법원 기록은 보여줍니다. 김 대법관은 2014년 하반기부터 보고연구관에게 2012년 대법 파기환송 판결의 의문점과 문제점을 중심으로 사건을 검토하라고 여러 차례 지시한 걸로 확인됐습니다. 단순히 상고기각을 할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했던 걸로 보입니다. (이 문제는 이 글의 마지막에 좀더 자세히 살피겠습니다.)

증인신문 과정에서 공개된 대법원 전합 안건 문건에 따르면,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은 2016년 11월 17일을 시작으로 12월 22일, 2017년 1월 19일·3월 23일·4월 20일·6월 22일에도 전합에서 논의됐습니다.


#2. '소부 선고' 합의됐지만…

기록을 보면 강제징용 사건은 2017년 4월과 6월 전합에서는 논의됐는데, 5월 전합 안건에선 빠져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전원합의체는 통상 매달 한 번 열립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증인이 작성한 2017년 5월 18일차 전합 안건 문건 말미에서 이런 기록이 발견됩니다.

* 2013다61381 사건 손해배상 사건은 소부 선고 예정
(판결서 초안 회람 후 5월 전합에서 사전검토 예정)

-검사: 증인은 2017년 4월 20일 전합 다음날인 2017년 4월 21일, 양승태로부터 전날 전합 회의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소부에서 선고하기로 잠정적으로 합의가 됐고, 소부에서 판결할 판결문 초안을 가지고 5월 전합 회의에서 논의할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습니까?
-증인: 네. 그렇게 들은 것 같습니다.

김현석 증인신문에서 추가로 확인된 강제징용 사건 심리진행 상황(붉은색 표시).김현석 증인신문에서 추가로 확인된 강제징용 사건 심리진행 상황(붉은색 표시).

강제징용 사건을 소부에서 선고하기로 합의가 됐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임기환 당시 민사총괄재판연구관은 소부에서 선고할 판결문 초안을 2017년 4월 작성했고 대법원장·대법관들이 이를 회람했습니다. 판결문 초안은 '상고기각'안과 '파기환송'안 모두를 검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소부 선고이다보니 상고기각, 즉 2012년 대법 판결을 확정하는 쪽이 유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소부 선고는 무산됩니다. 이유가 뭘까요.

-검사: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은 소부에서 판결하기로 한 합의가 다시 변경돼서 2017년 6월 22일 전합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됐습니까?
-증인: 네.
-검사: 그 이유에 대해 당시 양승태가 어떤 설명을 해주었습니까?
-증인: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검사: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되는지에 관해 일부 대법관님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다음달 전합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하였다고 말씀하셨던 거 같습니다"라고 진술했는데 맞습니까?
-증인: 네. 지금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그런 것 같습니다.

증인은 이런 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고, 간혹 가다 제가 경험한 적 있다" "(이례적인 건) 맞다"라고 증언했습니다.

검찰이 이날 공개한 증거에 따르면, 5월 전합에서 상고기각 판결에 이견을 표한 대법관은 권순일 대법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2017년 6월 전합 회의를 앞두고 작성된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를 보면, 권 대법관은 ▲페리니(Ferrini) 사건과 관련된 ICJ 판결과 한일청구권협정 효력의 관련성 문제 ▲한일위안부합의와 강제징용 사건의 관련성 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2012년 대법원 판단이 과연 옳은지 꼼꼼히 살피려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판결문 초안까지 다 회람한 상황에서, 권 대법관이 왜 굳이 다시 검토를 지시했는지 의아한 대목입니다.

이후 강제징용 사건은 2017년 6월 전합에서 논의됐지만 이때도 대법관들은 합의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이 사건은 1년 2개월 동안 논의되지 않다가, 2018년 7월에 이르러서 정식 전합 안건으로 회부됩니다. 강제징용 사건이 전원합의체에서 논의된다는 사실이 외부에 공개된 건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3. 재판 지연, 양승태가 '주도'했나?

결국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은 '소부 배당→전합 논의→소부 선고 잠정합의 및 무산→전합 회부'라는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선고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검찰은 이런 이례적인 사건 처리 과정에 양 전 대법원장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의심하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증언은 이날 재판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선 이 사건을 2016년 11월 최초로 전합에서 논의하기로 결정했을 당시의 상황이 중요할 텐데, 여기에 양 전 대법원장의 뜻이 얼마나 반영됐는지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증인은 또 "2017년 3월 전합 안건에 강제징용 사건을 포함시키라"는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있었지만, 이미 전합에서 논의됐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지시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증인: 제가 이제 (2017년 2월에) 수석연구관이 되니까 그때 이제 어떻게보면 다시...환기시켜주신 거 아닌가. 비로소 넣으라는 취지보다는, 제가 수석으로서 (이미 논의된) 전합 회의 안건을 (이번에도) 전합 안건으로 진행하라는 그런 취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양승태 피고인 변호인: 결국, 대법원장이 전합의 재판장으로서 당시 속행기일만을 지정했다고 보면 무방하겠습니까?
-증인: 네 그렇죠. 그전에 전합에서 논의가 됐던 사항이었으니까요.


증인은 양 전 대법원장이 2017년 6월 전합 후 "다음달 전합 진행 안건에 강제징용 사건을 포함시키지 말라고 지시했냐"라는 검찰 질문에도 "아마 상황적으로 할 수 없었던 상태였던 것 같다" "9월에 새 대법원장님이 취임하셨기 때문에 아마 7월에 논의해서 선고를 못한 상황이었지 않나"라고만 답변했습니다. '재판 지연'을 의심케하는 명백한 지시는 없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양 전 대법원장이 굳이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이미 강제징용 사건 선고 지연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소부 선고가 5월 전합에서 무산됐고, 7월에는 조재연·박정화 신임 대법관 취임으로 전합 구성이 바뀌면서 이 사건을 논의할 시간이 더 필요해졌기 때문이지요. 양 전 대법원장 역시 이런 일정을 고려해 '재판 지연'을 진작 내다봤을 거라는 게 검찰 시각입니다.


#4. 전합 안건에서도 숨겼다…왜?

미심쩍은 대목은 또 있습니다. 대법원은 2016년 11월 강제징용 사건을 처음 전합 안건에 올릴 때, 이를 외부는 물론 대법원 내부에도 '비밀'로 한 것으로 이날 재판에서 드러났습니다.

2016년 11월 당시 전합 진행 안건 문건을 보면 "회람 안건에서는 보안 관계로 삭제할 예정입니다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해 주심 김용덕 대법관님이 중간보고 형식으로 논의하려고 하십니다"라는 문구가 확인됩니다. '회람 안건에선 보안 관계로 삭제할 예정이다'. 즉 강제징용 사건의 전합 논의 사실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선임·수석재판연구관 등 15명만 공유했고, 다른 대법원 구성원에게는 알리지 않으려 했다는 겁니다.

-검사: 증인은 수석재판연구관으로 약 2년 근무했는데, 수석으로서 전합 관련 업무를 하면서 이처럼 보안을 이유로 실제 전합에서 논의할 예정임에도 전합 진행 안건 문건에는 직접 기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까?
-증인: 제가 (수석)했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거는 내부 문서기 때문에 저기는 다 기재하고, 외부에는 비공개로 진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전합 논의 사실을 외부에 비공개한 경우는 종종 있어도, 대법원 내부 문건에까지 일부러 기재하지 않으며 보안사항으로 취급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는 증언입니다. 대법원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뭘까요?

-검사: 증인은 2016년 11월 17일에 강제징용 사건을 전합 안건 목록에 직접 기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증인: 정확히는 모릅니다.
-검사: 이 문건에는 보안 관계로 삭제할 예정이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이는 강제징용 사건을 전합에서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공개로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까?
-증인: 직접 유해용 수석으로부터 전달받은 것은 아니지만, 저 문건으로 봤을 땐 그런 취지가 담겨 있는 걸로 생각했습니다.


#5. 다시 양승태?

결국 대법원이 왜 강제징용 사건을 전합에서 몰래 논의했는지는 증언을 통해서도 해소되지 못했습니다. 검찰은 이 부분을 양 전 대법원장 혐의에 관한 '큰 그림'과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공범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징용 사건이 전합에서 논의되기 훨씬 전부터 '전합 논의 방침'을 외부에 언급했습니다. 그는 행정처 기조실장이던 2015년 5월, 강제징용 소송에서 일본 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한상호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소부가 아닌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외교부 의견서 제출이 필요하다"라고 귀띔해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 나온 김앤장 한상호 변호사는 이 통화 이후 "임종헌 차장님이 대법원장과 논의는 하지 않았겠나라고 생각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이후 양 전 대법원장과 대법원장 집무실 등에서 단둘이 만나 얘기를 나눌 때도, '외교부 의견서 제출' 계획에 대해 대법원장이 알고 있는 눈치였고 "공감을 표시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임 전 차장은 한편 2016년 9월 29일 조태열 당시 외교부 2차관을 만나 "외교부 의견서 제출을 계기로 강제징용 사건의 전합 회부를 추진하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검찰은 전합 재판장인 양 전 대법원장의 승인이 있었기 때문에, 임 전 차장이 외부에 "전합 회부 추진"을 언급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진작에 청와대와 외교부의 입장을 수용해, 강제징용 사건을 전합에서 논의하려 계획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강제징용 사건이 드디어 전합에 간 것은 2016년 11월 17일. 그런데 시기가 조금 미묘합니다. 일본 기업 측 대리인인 김앤장이 대법원에 외교부 의견서 제출 촉구서를 접수한 지 1달 보름 뒤, 그리고 외교부가 실제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기 12일 전입니다. '외교부 의견서 제출을 계기로 징용 사건을 전합에 회부한다'는 시나리오가 비로소 본격화하자, 양 전 대법원장이 전합 논의를 '보안'으로 취급하려 했다는 게 검찰이 그리는 그림입니다.

실제 강제징용 사건이 전합 진행 안건 문건에 처음 '기재'된 건, 증인이 증언했듯이 2017년 3월입니다. 2016년 11월, 12월, 2017년 1월 전합에서 이 사건이 이미 세 차례 비밀리에 논의된 이후로, 2017년 3월에 비로소 '보안' 해제를 지시한 건 양 전 대법원장이었습니다.

이런 검찰의 큰 그림을 재판부도 수용할까요? 양 전 대법원장은 정말 강제징용 판결을 지연시키려 한 걸까요? 재판을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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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와 두 개의 양심]⑫ ‘보안사항’ 쉬쉬한 강제징용 사건…대법 논의과정 최초 증언
    • 입력 2019-09-23 07:07:35
    • 수정2019-09-23 08:43:19
    취재K
●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열두 번째 순서로, 지난 20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현석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증언을 지난번에 이어 계속 살펴봅니다. 주제는 양 전 대법원장의 주요 혐의인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재판 거래' 의혹입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외교부의 협조를 얻어내 '사법부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의 입장을 반영해 강제징용 사건 재상고심을 유독 신중히 검토하면서 선고를 지연시켰다고 의심합니다. 일본 기업들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2년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며 이를 번복하려 했거나, 적어도 번복할 것 같은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사건 처리를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당초 대법원 소부에 배당됐던 강제징용 재상고심 사건을 양 전 대법원장이 '의도적으로'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려 했는지가 검찰로서는 중요한 쟁점이 됩니다.

김현석 변호사는 이 쟁점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증언할 수 있는 중요한 증인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재임 마지막 해인 2017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으로 일하면서, 전원합의체 회의 관련 업무를 직접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 이 쟁점과 직접 관련된 증인이 나온 건 김 변호사가 처음입니다.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논의 과정이 이날 재판에서 '최초 공개'된 이유입니다.

김현석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018년 9월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가며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0. 준비운동

증인의 증언을 살펴보기 전, 먼저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의 처리에 관해 지금까지 정확히 알려졌던 사실관계를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일본기업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는 2012년 5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사건 파기환송 판결 이후 파기환송심은 이 결론을 그대로 따랐고, 일본기업이 재상고하면서 2013년 8월 이 사건이 다시 대법원에 접수됐습니다. 2013년 12월 이 사건의 심리불속행(대법원이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 기간이 끝납니다. 일본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이듬해 5월 소송 위임장과 함께 상고이유서를 제출하고, 한 달 뒤인 2014년 6월 주심 대법관이 김용덕 대법관으로 지정된 후 법리 검토가 시작됩니다.

대법원 ‘나의 사건검색’에 공개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심리진행 상황 재구성.
이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퇴임하고, 사건은 이듬해 7월 공식적으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됩니다. 대법원은 석달 뒤인 2018년 10월 30일 상고를 기각해, 일본 기업의 패소가 확정됩니다.


#1. 징용 사건, '진작' 전합에서 논의

앞서 살펴본 내용에 따르면, 대법원은 2014년 6월부터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검토했지만 2018년 7월 전원합의체 회부 전까지 이 사건을 어떻게 심리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4년이 넘는 공백기가 있는 겁니다. 김현석 전 수석재판연구관 증인신문 과정에서 이 '잃어버린 시간'의 의문을 풀 단서들이 여럿 등장했습니다.

증인이 막 수석재판연구관으로 부임해 일하던 2017년 3월, 증인은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에게 전원합의체 안건 초안을 보고합니다.

-검사: 증인은 2017년 3월 초 양승태 피고인에게 전합 안건 초안을 보고했을 때, 양승태로부터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과 휴일 및 연장근로 중복가산 사건을 전원합의체 회의 안건에 포함시키라는 지시를 받은 적 있습니까?
-증인: 네.

증인은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고 기존 전합 진행 안건 문건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강제징용 사건은 이미 2016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세 차례나 전원합의체에서 논의된 적이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검사: 증인은 양승태 지시를 받고 유해용 전임 수석재판연구관이 작성한 전합 안건 문건을 확인해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이 2016년 11월 17일 목요일 전합 회의에서 논의됐던 사실을 확인하였습니까?
-증인: 네.

앞서 살펴봤듯이 강제징용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정식 '회부'된 것은 2018년 7월이었죠. 그런데 대법원은 훨씬 전부터 이미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논의해왔던 겁니다.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대법원 소부가 맡은 사건 중에서도 '전합 보고 안건'으로 정해 전합에서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전원이 함께 논의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강제징용 사건도 여기에 해당됐던 겁니다. 이 과정에는 소부에서 이 사건 주심을 맡았던 김용덕 대법관의 뜻이 일단 반영됐음을 대법원 기록은 보여줍니다. 김 대법관은 2014년 하반기부터 보고연구관에게 2012년 대법 파기환송 판결의 의문점과 문제점을 중심으로 사건을 검토하라고 여러 차례 지시한 걸로 확인됐습니다. 단순히 상고기각을 할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했던 걸로 보입니다. (이 문제는 이 글의 마지막에 좀더 자세히 살피겠습니다.)

증인신문 과정에서 공개된 대법원 전합 안건 문건에 따르면,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은 2016년 11월 17일을 시작으로 12월 22일, 2017년 1월 19일·3월 23일·4월 20일·6월 22일에도 전합에서 논의됐습니다.


#2. '소부 선고' 합의됐지만…

기록을 보면 강제징용 사건은 2017년 4월과 6월 전합에서는 논의됐는데, 5월 전합 안건에선 빠져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전원합의체는 통상 매달 한 번 열립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증인이 작성한 2017년 5월 18일차 전합 안건 문건 말미에서 이런 기록이 발견됩니다.

* 2013다61381 사건 손해배상 사건은 소부 선고 예정
(판결서 초안 회람 후 5월 전합에서 사전검토 예정)

-검사: 증인은 2017년 4월 20일 전합 다음날인 2017년 4월 21일, 양승태로부터 전날 전합 회의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소부에서 선고하기로 잠정적으로 합의가 됐고, 소부에서 판결할 판결문 초안을 가지고 5월 전합 회의에서 논의할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습니까?
-증인: 네. 그렇게 들은 것 같습니다.

김현석 증인신문에서 추가로 확인된 강제징용 사건 심리진행 상황(붉은색 표시).
강제징용 사건을 소부에서 선고하기로 합의가 됐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임기환 당시 민사총괄재판연구관은 소부에서 선고할 판결문 초안을 2017년 4월 작성했고 대법원장·대법관들이 이를 회람했습니다. 판결문 초안은 '상고기각'안과 '파기환송'안 모두를 검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소부 선고이다보니 상고기각, 즉 2012년 대법 판결을 확정하는 쪽이 유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소부 선고는 무산됩니다. 이유가 뭘까요.

-검사: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은 소부에서 판결하기로 한 합의가 다시 변경돼서 2017년 6월 22일 전합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됐습니까?
-증인: 네.
-검사: 그 이유에 대해 당시 양승태가 어떤 설명을 해주었습니까?
-증인: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검사: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되는지에 관해 일부 대법관님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다음달 전합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하였다고 말씀하셨던 거 같습니다"라고 진술했는데 맞습니까?
-증인: 네. 지금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그런 것 같습니다.

증인은 이런 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고, 간혹 가다 제가 경험한 적 있다" "(이례적인 건) 맞다"라고 증언했습니다.

검찰이 이날 공개한 증거에 따르면, 5월 전합에서 상고기각 판결에 이견을 표한 대법관은 권순일 대법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2017년 6월 전합 회의를 앞두고 작성된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를 보면, 권 대법관은 ▲페리니(Ferrini) 사건과 관련된 ICJ 판결과 한일청구권협정 효력의 관련성 문제 ▲한일위안부합의와 강제징용 사건의 관련성 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2012년 대법원 판단이 과연 옳은지 꼼꼼히 살피려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판결문 초안까지 다 회람한 상황에서, 권 대법관이 왜 굳이 다시 검토를 지시했는지 의아한 대목입니다.

이후 강제징용 사건은 2017년 6월 전합에서 논의됐지만 이때도 대법관들은 합의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이 사건은 1년 2개월 동안 논의되지 않다가, 2018년 7월에 이르러서 정식 전합 안건으로 회부됩니다. 강제징용 사건이 전원합의체에서 논의된다는 사실이 외부에 공개된 건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3. 재판 지연, 양승태가 '주도'했나?

결국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은 '소부 배당→전합 논의→소부 선고 잠정합의 및 무산→전합 회부'라는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선고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검찰은 이런 이례적인 사건 처리 과정에 양 전 대법원장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의심하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증언은 이날 재판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선 이 사건을 2016년 11월 최초로 전합에서 논의하기로 결정했을 당시의 상황이 중요할 텐데, 여기에 양 전 대법원장의 뜻이 얼마나 반영됐는지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증인은 또 "2017년 3월 전합 안건에 강제징용 사건을 포함시키라"는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있었지만, 이미 전합에서 논의됐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지시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증인: 제가 이제 (2017년 2월에) 수석연구관이 되니까 그때 이제 어떻게보면 다시...환기시켜주신 거 아닌가. 비로소 넣으라는 취지보다는, 제가 수석으로서 (이미 논의된) 전합 회의 안건을 (이번에도) 전합 안건으로 진행하라는 그런 취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양승태 피고인 변호인: 결국, 대법원장이 전합의 재판장으로서 당시 속행기일만을 지정했다고 보면 무방하겠습니까?
-증인: 네 그렇죠. 그전에 전합에서 논의가 됐던 사항이었으니까요.


증인은 양 전 대법원장이 2017년 6월 전합 후 "다음달 전합 진행 안건에 강제징용 사건을 포함시키지 말라고 지시했냐"라는 검찰 질문에도 "아마 상황적으로 할 수 없었던 상태였던 것 같다" "9월에 새 대법원장님이 취임하셨기 때문에 아마 7월에 논의해서 선고를 못한 상황이었지 않나"라고만 답변했습니다. '재판 지연'을 의심케하는 명백한 지시는 없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양 전 대법원장이 굳이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이미 강제징용 사건 선고 지연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소부 선고가 5월 전합에서 무산됐고, 7월에는 조재연·박정화 신임 대법관 취임으로 전합 구성이 바뀌면서 이 사건을 논의할 시간이 더 필요해졌기 때문이지요. 양 전 대법원장 역시 이런 일정을 고려해 '재판 지연'을 진작 내다봤을 거라는 게 검찰 시각입니다.


#4. 전합 안건에서도 숨겼다…왜?

미심쩍은 대목은 또 있습니다. 대법원은 2016년 11월 강제징용 사건을 처음 전합 안건에 올릴 때, 이를 외부는 물론 대법원 내부에도 '비밀'로 한 것으로 이날 재판에서 드러났습니다.

2016년 11월 당시 전합 진행 안건 문건을 보면 "회람 안건에서는 보안 관계로 삭제할 예정입니다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해 주심 김용덕 대법관님이 중간보고 형식으로 논의하려고 하십니다"라는 문구가 확인됩니다. '회람 안건에선 보안 관계로 삭제할 예정이다'. 즉 강제징용 사건의 전합 논의 사실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선임·수석재판연구관 등 15명만 공유했고, 다른 대법원 구성원에게는 알리지 않으려 했다는 겁니다.

-검사: 증인은 수석재판연구관으로 약 2년 근무했는데, 수석으로서 전합 관련 업무를 하면서 이처럼 보안을 이유로 실제 전합에서 논의할 예정임에도 전합 진행 안건 문건에는 직접 기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까?
-증인: 제가 (수석)했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거는 내부 문서기 때문에 저기는 다 기재하고, 외부에는 비공개로 진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전합 논의 사실을 외부에 비공개한 경우는 종종 있어도, 대법원 내부 문건에까지 일부러 기재하지 않으며 보안사항으로 취급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는 증언입니다. 대법원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뭘까요?

-검사: 증인은 2016년 11월 17일에 강제징용 사건을 전합 안건 목록에 직접 기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증인: 정확히는 모릅니다.
-검사: 이 문건에는 보안 관계로 삭제할 예정이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이는 강제징용 사건을 전합에서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공개로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까?
-증인: 직접 유해용 수석으로부터 전달받은 것은 아니지만, 저 문건으로 봤을 땐 그런 취지가 담겨 있는 걸로 생각했습니다.


#5. 다시 양승태?

결국 대법원이 왜 강제징용 사건을 전합에서 몰래 논의했는지는 증언을 통해서도 해소되지 못했습니다. 검찰은 이 부분을 양 전 대법원장 혐의에 관한 '큰 그림'과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공범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징용 사건이 전합에서 논의되기 훨씬 전부터 '전합 논의 방침'을 외부에 언급했습니다. 그는 행정처 기조실장이던 2015년 5월, 강제징용 소송에서 일본 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한상호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소부가 아닌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외교부 의견서 제출이 필요하다"라고 귀띔해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 나온 김앤장 한상호 변호사는 이 통화 이후 "임종헌 차장님이 대법원장과 논의는 하지 않았겠나라고 생각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이후 양 전 대법원장과 대법원장 집무실 등에서 단둘이 만나 얘기를 나눌 때도, '외교부 의견서 제출' 계획에 대해 대법원장이 알고 있는 눈치였고 "공감을 표시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임 전 차장은 한편 2016년 9월 29일 조태열 당시 외교부 2차관을 만나 "외교부 의견서 제출을 계기로 강제징용 사건의 전합 회부를 추진하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검찰은 전합 재판장인 양 전 대법원장의 승인이 있었기 때문에, 임 전 차장이 외부에 "전합 회부 추진"을 언급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진작에 청와대와 외교부의 입장을 수용해, 강제징용 사건을 전합에서 논의하려 계획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강제징용 사건이 드디어 전합에 간 것은 2016년 11월 17일. 그런데 시기가 조금 미묘합니다. 일본 기업 측 대리인인 김앤장이 대법원에 외교부 의견서 제출 촉구서를 접수한 지 1달 보름 뒤, 그리고 외교부가 실제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기 12일 전입니다. '외교부 의견서 제출을 계기로 징용 사건을 전합에 회부한다'는 시나리오가 비로소 본격화하자, 양 전 대법원장이 전합 논의를 '보안'으로 취급하려 했다는 게 검찰이 그리는 그림입니다.

실제 강제징용 사건이 전합 진행 안건 문건에 처음 '기재'된 건, 증인이 증언했듯이 2017년 3월입니다. 2016년 11월, 12월, 2017년 1월 전합에서 이 사건이 이미 세 차례 비밀리에 논의된 이후로, 2017년 3월에 비로소 '보안' 해제를 지시한 건 양 전 대법원장이었습니다.

이런 검찰의 큰 그림을 재판부도 수용할까요? 양 전 대법원장은 정말 강제징용 판결을 지연시키려 한 걸까요? 재판을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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