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안인득’ 막기 위한 ‘행정입원’…현실은?

입력 2019.09.2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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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5명의 희생자를 낸 경남 진주 방화·살인사건 기억하실 겁니다.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피의자 안인득을 가족들이 강제로 입원시키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죠. 이 사건으로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정부는 지자체장 결정에 따른 '행정입원'을 활성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위험한 환자의 경우, 보호자 책임이 강조되는 '보호입원' 대신 행정입원을 권장해 공적 개입을 강화하기로 한 겁니다.

사건 발생 다섯 달이 지난 현재 달라진 게 있을까? KBS 취재진이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실을 통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서울 25개 자치구의 정신질환자 행정입원 실태 자료를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지난해보다 입원 실패 건수↑10건 중 3건은 '본인·보호자 거부'

행정입원 의뢰 건수는 지난해보다 늘었습니다. 하지만 진행되지 못한 사례가 더 많이 증가했습니다.

행정입원이 의뢰됐지만, 입원으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가 지난해에는 불과 7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올해(1~7월)는 103건에 달했습니다. 특히 진주 안인득 사건이 발생한 4월 이후, 행정입원 의뢰 건수와 함께 행정입원 미진행 건수도 증가했습니다.

올해 행정입원 미진행 103건 가운데 구체적인 사례 확인이 가능한 97건을 분석해봤습니다. 10건 중 3건, 31%(31건)는 본인 또는 보호자의 거부로 입원이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행정입원은 정신건강전문요원 또는 전문의가 자·타해 위험이 있다고 의심되는 정신질환자를 발견해 지자체장에게 진단과 보호를 신청하는 제도입니다. 지자체장은 정신과 전문의에게 진단을 의뢰해 입원이 진행됩니다.

하지만 본인이 진단을 완강히 거부하면 전문요원이나 경찰이 강제할 권한은 없습니다.

서울에 사는 정 모 씨는 2018년 중순부터 올해 5월까지 자택 내에서 욕설하고, 망치로 바닥이나 벽을 두들기는 이상행동을 보였습니다. 또 속옷만 입은 채 주택 공용 계단을 오르는 주민들을 노려보거나, 소음 유발에 항의하는 주민들에게는 폭언과 함께 오물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경찰이 출동했지만, 정 씨가 정신과 상담을 거부하면서 결국 강제 치료는 실패했습니다.

본인의 거부로 행정입원이 안 됐다가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져 결국 강제입원을 한 사례도 있습니다.

올해 7월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고 모 씨는 이웃집 문 앞에 가서 담배를 피우는 등 이웃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행동을 해 행정입원이 의뢰됐지만, 고 씨가 심하게 거부해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열흘 뒤, 고 씨는 부탄가스를 들고 동네를 배회하다가 경찰에 의해 응급입원이 이뤄졌습니다.


보호자, 보복 두려워 입원 망설이기도…

보호자가 행정입원을 거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당사자의 보복이 두려워서였습니다. 실제로 가족들은 환자로부터 협박당하거나, 입원이 이뤄지지 못했을 경우 상황이 더 악화하는 것이 두려워 입원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밖에 당사자 부재 등 대면 불가로 인한 입원 미진행이 8%(8건), 입원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한 경우가 3%(3건) 등이었습니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문제 행동은 있으나 자·타해 위험이 낮아 입원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는 21%(21건), 10%(10건)는 행정입원 대신 다른 강제입원인 보호·응급 입원이 이뤄진 경우였습니다.

인력 부족·강제입원 개입 근거 부족…응급 대응 체계 보완 필요

행정입원 미진행 건수가 많아진 건 안인득 사건 이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행정입원이 많이 진행된 탓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행정입원이 이뤄지기까지 제도적으로 보완할 점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먼저, 행정입원과 같은 강제입원 과정에서 환자가 거부할 경우 이송을 강제할 근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경찰이나 정신건강전문요원이 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난동을 피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지만, 딱히 손을 쓸 수 없습니다.

인력 부족도 심각합니다. 응급상황이 벌어지면 정신건강 전문요원이 경찰과 함께 출동해 정신질환 여부 등을 판단해야 합니다. 서울의 경우, 안인득 사건 이후로 출동 요청이 4배나 늘었습니다. 정부는 인력을 늘리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의뢰 건수도 그만큼 늘어 인력난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은 꾸준히 관리하면 별다른 장애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한 질병입니다. 조기 진단, 조기 치료가 가장 중요한데, 시기를 놓치거나 중간에 치료를 그만두면 질환은 악화합니다. 안인득 사건처럼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중증 정신질환자가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에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신질환자가 필요한 치료를 제때 받을 수 있도록 응급대응 체계를 현실에 맞게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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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의 안인득’ 막기 위한 ‘행정입원’…현실은?
    • 입력 2019-09-23 10:16:36
    취재K
지난 4월, 5명의 희생자를 낸 경남 진주 방화·살인사건 기억하실 겁니다.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피의자 안인득을 가족들이 강제로 입원시키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죠. 이 사건으로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정부는 지자체장 결정에 따른 '행정입원'을 활성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위험한 환자의 경우, 보호자 책임이 강조되는 '보호입원' 대신 행정입원을 권장해 공적 개입을 강화하기로 한 겁니다.

사건 발생 다섯 달이 지난 현재 달라진 게 있을까? KBS 취재진이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실을 통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서울 25개 자치구의 정신질환자 행정입원 실태 자료를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지난해보다 입원 실패 건수↑10건 중 3건은 '본인·보호자 거부'

행정입원 의뢰 건수는 지난해보다 늘었습니다. 하지만 진행되지 못한 사례가 더 많이 증가했습니다.

행정입원이 의뢰됐지만, 입원으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가 지난해에는 불과 7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올해(1~7월)는 103건에 달했습니다. 특히 진주 안인득 사건이 발생한 4월 이후, 행정입원 의뢰 건수와 함께 행정입원 미진행 건수도 증가했습니다.

올해 행정입원 미진행 103건 가운데 구체적인 사례 확인이 가능한 97건을 분석해봤습니다. 10건 중 3건, 31%(31건)는 본인 또는 보호자의 거부로 입원이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행정입원은 정신건강전문요원 또는 전문의가 자·타해 위험이 있다고 의심되는 정신질환자를 발견해 지자체장에게 진단과 보호를 신청하는 제도입니다. 지자체장은 정신과 전문의에게 진단을 의뢰해 입원이 진행됩니다.

하지만 본인이 진단을 완강히 거부하면 전문요원이나 경찰이 강제할 권한은 없습니다.

서울에 사는 정 모 씨는 2018년 중순부터 올해 5월까지 자택 내에서 욕설하고, 망치로 바닥이나 벽을 두들기는 이상행동을 보였습니다. 또 속옷만 입은 채 주택 공용 계단을 오르는 주민들을 노려보거나, 소음 유발에 항의하는 주민들에게는 폭언과 함께 오물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경찰이 출동했지만, 정 씨가 정신과 상담을 거부하면서 결국 강제 치료는 실패했습니다.

본인의 거부로 행정입원이 안 됐다가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져 결국 강제입원을 한 사례도 있습니다.

올해 7월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고 모 씨는 이웃집 문 앞에 가서 담배를 피우는 등 이웃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행동을 해 행정입원이 의뢰됐지만, 고 씨가 심하게 거부해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열흘 뒤, 고 씨는 부탄가스를 들고 동네를 배회하다가 경찰에 의해 응급입원이 이뤄졌습니다.


보호자, 보복 두려워 입원 망설이기도…

보호자가 행정입원을 거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당사자의 보복이 두려워서였습니다. 실제로 가족들은 환자로부터 협박당하거나, 입원이 이뤄지지 못했을 경우 상황이 더 악화하는 것이 두려워 입원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밖에 당사자 부재 등 대면 불가로 인한 입원 미진행이 8%(8건), 입원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한 경우가 3%(3건) 등이었습니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문제 행동은 있으나 자·타해 위험이 낮아 입원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는 21%(21건), 10%(10건)는 행정입원 대신 다른 강제입원인 보호·응급 입원이 이뤄진 경우였습니다.

인력 부족·강제입원 개입 근거 부족…응급 대응 체계 보완 필요

행정입원 미진행 건수가 많아진 건 안인득 사건 이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행정입원이 많이 진행된 탓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행정입원이 이뤄지기까지 제도적으로 보완할 점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먼저, 행정입원과 같은 강제입원 과정에서 환자가 거부할 경우 이송을 강제할 근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경찰이나 정신건강전문요원이 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난동을 피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지만, 딱히 손을 쓸 수 없습니다.

인력 부족도 심각합니다. 응급상황이 벌어지면 정신건강 전문요원이 경찰과 함께 출동해 정신질환 여부 등을 판단해야 합니다. 서울의 경우, 안인득 사건 이후로 출동 요청이 4배나 늘었습니다. 정부는 인력을 늘리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의뢰 건수도 그만큼 늘어 인력난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은 꾸준히 관리하면 별다른 장애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한 질병입니다. 조기 진단, 조기 치료가 가장 중요한데, 시기를 놓치거나 중간에 치료를 그만두면 질환은 악화합니다. 안인득 사건처럼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중증 정신질환자가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에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신질환자가 필요한 치료를 제때 받을 수 있도록 응급대응 체계를 현실에 맞게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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