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중국판 ‘내로남불’ 여자앵커 - 애국주의의 허상(虛像)

입력 2019.09.2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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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사랑하라!" 애국방송 앵커의 자충수

학생들 개학에 맞춰 시작된 CCTV 프로그램 개학제1과(開學第一課)의 사회자 둥칭(董卿)이 14억 중국인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는 사연이 흥미롭다. 둥칭은 올해 47살인 관영 CCTV의 간판 아나운서다. 둥칭은 새로 맡은 프로그램에서 "오늘날 우리는 생명을 사랑하듯 오성홍기를 사랑해야 한다."며 어린 학생들에게 '조국'을 사랑할 것을 힘주어 말했다. 하도 조국을 강조하자 둥아이궈(董愛國), 둥애국이란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 행적이 드러나면서 대중의 찬사는 금세 비난으로 바뀐다.

둥칭이 2014년 해외연수 명분으로 미국에서 원정출산을 한 사실이 논란이 됐다. 둥칭의 아들이 미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고 현재 상하이의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중국인들은 둥칭의 표리부동을 비판하고 나섰다. "반미(反美)는 직업이고 도미(渡美)는 생활이냐?" "미국 출산이 잘못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했으니 욕을 먹어도 싸다." "공자는 논어에서 자기가 싫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둥칭은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기 위해"그랬다며 "애국심과 국적은 충돌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오히려 더 큰 분노를 유발했다. "대머리가 샴푸를 파는 격이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돈에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는 격이다." 중국 시청자들이 우롱당했다는 반응이다. 일부 시사 평론가는 "많은 부유한 가정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출발선에서 이긴다."며 빈부 격차, 교육의 불균형 문제까지 거론하기 시작했다. 기시감이 든다. 이 모든 상황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다.

가족과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중국의 공무원(뤄관)을 풍자하고 있다.가족과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중국의 공무원(뤄관)을 풍자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의 이율배반…애국주의의 허상 드러나

사실 중국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둥칭이 억울해 할 만도 하다. 중국에서는 본인이 공무원이면서 부인과 자식 등 가족들은 모두 해외, 특히 미국에 이민 간 경우를 뤄관(裸官), 즉 벌거벗은 관료라고 부른다. 가족의 일부나 내연녀에 해당하는 얼나이(二奶)와 그 자식을 이민 보낸 경우는 빤뤄관(半裸官)이라고 부르는데, 일각에서는 중국 공무원 전체의 1/6에 해당하는 100만 명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미국 LA의 고가 주택들 상당수를 중국에서 이민 온 공직자 가족들이 현금으로 구매해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시아·아프리카은행이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중국에서 600만 위안(우리 돈으로 10억 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만 5천 명이 이민했다.

2012년에는 중국의 부호이자 베이징 차오양 정치협상위원이던 장란(張蘭)이 중국 국적을 포기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사실 장란 정도는 약과다. 중국 공산당 혁명 1세대의 자녀와 손자 손녀 상당수가 미국 국적이다. 덩샤오핑의 손자부터 시작해 장쩌민 전 주석의 손자 장즈청도 미국 국적이다. 천량위 전 상하이시 서기는 수뢰혐의로 체포될 당시 확인된 외국 국적만 13개였을 정도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공산당 중앙위원 이상, 장관급 이상 관료의 2세와 3세 절대다수가 미국 영주권이나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왜 이토록 외국 국적에 목맬까? 2000년 부패와 매관매직 혐의 등으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받은 후창칭(胡長淸) 장시성 부성장이 아들에게 했다는 얘기다. "언젠가 중국이 잘 안될 때가 올 것인데 국적이 2개라면 살 길이 있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과 중앙 정부가 지금도 건국 70주년을 맞아 56개나 되는 다양한 민족을 '중화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억지로 묶어 넣은 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강요하고 있지만, 허상(虛像)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누군가 애국을 입으로만 떠든다면 그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중국의 허황된 신화를 비판하다 매국노 취급당하는 격투기 선수가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 발전한 종합격투기(MMA, Mixed Martial Arts)를 연마한 쉬샤오둥(徐晓冬)이다. 쉬샤오둥은 중국 전통 무술이 실전에서는 쓸모없는 사기라고 적나라하게 비판해왔다. 이에 반발한 영춘권, 태극권, 쿵후 고수들이 도전했다가 그의 주먹에 하나둘 쓰러져갔지만, 쉬샤오둥은 오히려 중국 정부에 의해 감시당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많은 중국인은 쉬샤오둥이 중국 전통 무술을 웃음거리로 만든다며 불쾌해하고, 매국노라고 비난하지만, 쉬샤오둥은 철학이 있다.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감히 꺼내지 못하는 얘길 하고 싶습니다."

이런 쉬샤오둥이 둥칭 아나운서의 미국 원정 출산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 "애국은 어떤 일도 무슨 주의도 아닙니다.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하는 것이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입으로만 애국을 떠든다면 그를 조심해야 합니다. 사기꾼이거나 탐관오리이거나 나쁜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중국에서 매국노 비난을 받는 쉬샤오둥의 외침이 특파원 가슴에 여운을 남겼다. 이 말을 들으면서 많은 장면, 많은 이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중국의 허울뿐인 애국주의, 지독한 이중성은 중국만의 문제인가? 2019년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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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중국판 ‘내로남불’ 여자앵커 - 애국주의의 허상(虛像)
    • 입력 2019-09-24 14:43:37
    특파원 리포트
"조국을 사랑하라!" 애국방송 앵커의 자충수

학생들 개학에 맞춰 시작된 CCTV 프로그램 개학제1과(開學第一課)의 사회자 둥칭(董卿)이 14억 중국인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는 사연이 흥미롭다. 둥칭은 올해 47살인 관영 CCTV의 간판 아나운서다. 둥칭은 새로 맡은 프로그램에서 "오늘날 우리는 생명을 사랑하듯 오성홍기를 사랑해야 한다."며 어린 학생들에게 '조국'을 사랑할 것을 힘주어 말했다. 하도 조국을 강조하자 둥아이궈(董愛國), 둥애국이란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 행적이 드러나면서 대중의 찬사는 금세 비난으로 바뀐다.

둥칭이 2014년 해외연수 명분으로 미국에서 원정출산을 한 사실이 논란이 됐다. 둥칭의 아들이 미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고 현재 상하이의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중국인들은 둥칭의 표리부동을 비판하고 나섰다. "반미(反美)는 직업이고 도미(渡美)는 생활이냐?" "미국 출산이 잘못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했으니 욕을 먹어도 싸다." "공자는 논어에서 자기가 싫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둥칭은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기 위해"그랬다며 "애국심과 국적은 충돌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오히려 더 큰 분노를 유발했다. "대머리가 샴푸를 파는 격이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돈에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는 격이다." 중국 시청자들이 우롱당했다는 반응이다. 일부 시사 평론가는 "많은 부유한 가정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출발선에서 이긴다."며 빈부 격차, 교육의 불균형 문제까지 거론하기 시작했다. 기시감이 든다. 이 모든 상황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다.

가족과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중국의 공무원(뤄관)을 풍자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의 이율배반…애국주의의 허상 드러나

사실 중국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둥칭이 억울해 할 만도 하다. 중국에서는 본인이 공무원이면서 부인과 자식 등 가족들은 모두 해외, 특히 미국에 이민 간 경우를 뤄관(裸官), 즉 벌거벗은 관료라고 부른다. 가족의 일부나 내연녀에 해당하는 얼나이(二奶)와 그 자식을 이민 보낸 경우는 빤뤄관(半裸官)이라고 부르는데, 일각에서는 중국 공무원 전체의 1/6에 해당하는 100만 명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미국 LA의 고가 주택들 상당수를 중국에서 이민 온 공직자 가족들이 현금으로 구매해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시아·아프리카은행이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중국에서 600만 위안(우리 돈으로 10억 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만 5천 명이 이민했다.

2012년에는 중국의 부호이자 베이징 차오양 정치협상위원이던 장란(張蘭)이 중국 국적을 포기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사실 장란 정도는 약과다. 중국 공산당 혁명 1세대의 자녀와 손자 손녀 상당수가 미국 국적이다. 덩샤오핑의 손자부터 시작해 장쩌민 전 주석의 손자 장즈청도 미국 국적이다. 천량위 전 상하이시 서기는 수뢰혐의로 체포될 당시 확인된 외국 국적만 13개였을 정도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공산당 중앙위원 이상, 장관급 이상 관료의 2세와 3세 절대다수가 미국 영주권이나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왜 이토록 외국 국적에 목맬까? 2000년 부패와 매관매직 혐의 등으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받은 후창칭(胡長淸) 장시성 부성장이 아들에게 했다는 얘기다. "언젠가 중국이 잘 안될 때가 올 것인데 국적이 2개라면 살 길이 있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과 중앙 정부가 지금도 건국 70주년을 맞아 56개나 되는 다양한 민족을 '중화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억지로 묶어 넣은 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강요하고 있지만, 허상(虛像)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누군가 애국을 입으로만 떠든다면 그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중국의 허황된 신화를 비판하다 매국노 취급당하는 격투기 선수가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 발전한 종합격투기(MMA, Mixed Martial Arts)를 연마한 쉬샤오둥(徐晓冬)이다. 쉬샤오둥은 중국 전통 무술이 실전에서는 쓸모없는 사기라고 적나라하게 비판해왔다. 이에 반발한 영춘권, 태극권, 쿵후 고수들이 도전했다가 그의 주먹에 하나둘 쓰러져갔지만, 쉬샤오둥은 오히려 중국 정부에 의해 감시당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많은 중국인은 쉬샤오둥이 중국 전통 무술을 웃음거리로 만든다며 불쾌해하고, 매국노라고 비난하지만, 쉬샤오둥은 철학이 있다.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감히 꺼내지 못하는 얘길 하고 싶습니다."

이런 쉬샤오둥이 둥칭 아나운서의 미국 원정 출산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 "애국은 어떤 일도 무슨 주의도 아닙니다.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하는 것이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입으로만 애국을 떠든다면 그를 조심해야 합니다. 사기꾼이거나 탐관오리이거나 나쁜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중국에서 매국노 비난을 받는 쉬샤오둥의 외침이 특파원 가슴에 여운을 남겼다. 이 말을 들으면서 많은 장면, 많은 이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중국의 허울뿐인 애국주의, 지독한 이중성은 중국만의 문제인가? 2019년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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