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소시지 들고가도 모르는 제주공항”

입력 2019.09.25 (14:19) 수정 2019.09.2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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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제주공항 '엑스레이 검역' 새벽 시간대 안 해…"인력 부족 때문"
전국 공항 아프리카돼지열병 검역 '허술'…체계 개선 시급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데, 중국인들이 버리고 간 가공식품 쓰레기가 종종 보이더라고요.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들이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하는데, 행여라도 돼지가 먹게 되면 위험한 거 아닌가요?"

지난 17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양돈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자 제주에서도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국인 중국과 홍콩, 베트남 등에서 제주로 오는 관광객이 제주 입국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다 보니 방역 망이 뚫릴 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맴돌았습니다.

치사율이 높은 데다 백신이 없다 보니 유입을 막는 게 최선인데, 외국인이나 해외 여행자를 통해 유입되는 육가공품은 제대로 차단되고 있는 걸까? 도민들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유입 통로인 제주국제공항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제주공항 유입되는 육가공품 단속 어떻게?


제주공항 앞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유입 방지를 위해 해외 축산물 반입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려있습니다. 해외 여행객과 외국인들이 해외에서 들여오는 육가공품을 통해서도 감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제주지역본부(이하 검역본부 제주본부)에 따르면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나 햄, 육포 등 외국에서 들여오는 모든 가공식품은 물론이고 육류가 포함된 만두와 샌드위치도 반입 금지 대상입니다. 5㎏ 미만의 멸균된 통조림은 반입 가능하지만, 이마저도 국가별 질병 상황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집니다.

반입 금지를 모르고 비행기에 탑승했더라도 입국하며 자진 신고했을 경우 물품만 압수되지만, 몰래 반입하다 적발되면 500만 원, 2차 적발 시에는 750만 원, 3차 적발 때는 무려 1,000만 원이 부과됩니다.


그렇다면 수화물 속 육가공품을 어떻게 적발하는 걸까요?

검역본부 제주본부는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제주세관이 하는 국제선 수화물 엑스레이(X-ray) 검사에서 농수축산물로 의심되는 물품이 발견됐을 때, 인계받아 검사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8월과 지난 4월 두 차례 중국인이 가져온 소시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됨에 따라 검역 강화 필요성을 느끼고, 지난 5월 전국 최초로 제주공항에 '검역 전용 엑스레이 모니터'를 설치했습니다.

모니터는 여행객들이 휴대 수화물을 가져오는 2층에 1대, 위탁 수화물이 나오는 1층에 4대 등 모두 5대를 설치했는데, 이를 통해 모든 수화물에 대한 전수검사 체계로 전환했습니다. 엑스레이 상에서 육가공품으로 의심되면, 스티커를 붙여 검역 검사대에서 상세 물품을 확인하는데, 이 과정에서 탐지견을 투입해 혹시나 놓치는 물품이 없는지 다시 확인합니다.

압수품들은 내부 냉동고에 쌓아뒀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모두 소각 처리하는데, 검용 전용 엑스레이 모니터가 설치되면서 적발량도 확연히 늘었습니다. 올해 들어 8월까지 돈육가공품 적발 건수는 6,123건으로, 지난 한 해 적발 건수인 5,098건을 벌써 뛰어넘었습니다. 이 가운데 90% 이상이 중국산인데, 나머지는 홍콩과 베트남, 라오스 등입니다.


불법 반입으로 인한 과태료 부과 건수는 9월 18일 기준 129건에 이르는데, 지난 한 해 동안 100건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많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새벽 시간대 '구멍'…"업무 늘었는데 인력은 그대로"

제대로 된 검역 시스템을 갖추면서 육가공품은 완전히 차단된 걸까요?

최근 제주국제공항에서 국제선 항공편을 이용한 제주도민들은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에 홍콩에 갔다 지난 15일 새벽 6시 제주에 입국한 제주도민 A씨는 "(휴대 수화물에 대한) 엑스레이 짐 검사하는 곳에 사람이 없었고 그냥 통과했다"며 "조금 의아했는데 너무 이른 새벽이라 그러려니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마카오에 갔다 지난 14일 새벽 6시 반쯤 입국한 또 다른 제주도민 B씨는 "마카오가 육포가 유명해서 사서 갈까 고민을 하다가 검역도 강화되고 해서 저희는 포기했는데, 공항에 도착해보니 기계가 안 돌아가고 있었다"며 "혹시나 사온 사람들은 그냥 다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새벽 시간대는 검역에 구멍이 뚫렸다는 겁니다.

새벽 시간대 제주에 입국하는 국제선 항공편 한 대당 평균 승객은 150여 명, 이 중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국에서 들어오는 항공편도 있어 이들의 증언이 사실일 경우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KBS 취재진이 사실관계를 묻자, 검역본부 제주본부는 "검역 전용 모니터 설치 이후 인력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새벽에는 검역관들을 엑스레이 판독에 투입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면서 "새벽 입국 편에 대해서는 탐지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업무는 늘었지만 인력 증원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새벽엔 엑스레이 대신 탐지견을 투입해 수화물을 검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탐지견의 경우 키가 큰 성인이 멘 휴대가방은 냄새를 맡을 수 없고, 주말에는 아예 투입되지 않아 한계가 있습니다.

공항에 근무하는 검역본부 제주본부 직원은 모두 8명으로, 검역본부는 애초 전수검사 체계 정착을 위해 전문성 있는 모니터 판독 인력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모니터 설치 이후에도 증원은 없었습니다.

용역업체 직원이 보조업무를 해준다고 하더라도, 전문성과 공정성을 필요로 하는 업무에는 검역관이 직접 투입돼야 해서 검역 때 최소 4명의 검역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매일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국제선 항공기가 들어올 때마다 검역하기에 현 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였습니다.


KBS가 취재에 나서자 검역본부 본원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무시간을 준수하다 보니 업무에 공백이 생긴 것 같다"면서 "검토를 해서 내년도 증원 계획에 포함하든지 아니면, 인력 운용을 다른 방식으로 하든지 제주본부와 논의해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9일 이와 관련한 KBS 보도가 나가자 그 다음 날인 20일 현장 점검에 나선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새벽 시간 인력 보강과 통역 등 협조가 필요한 부분은 가능한 모든 것을 직접 지원하고 함께 대응해나가겠다"며 검역 과정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중국어 통역 인력 2명을 배치해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제주공항에서는 20일부터 검역본부 다른 부서 직원을 지원받아 새벽에도 엑스레이 판독 검역관을 투입해 수화물 검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주 이외 다른 지역 공항에서는 아직도 기존 방식대로 총기나 마약류 등을 단속하는 세관에만 의존하고 있어 철저한 방역 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검역 체계 개선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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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소시지 들고가도 모르는 제주공항”
    • 입력 2019-09-25 14:19:53
    • 수정2019-09-25 14:20:14
    취재후·사건후
제주공항 '엑스레이 검역' 새벽 시간대 안 해…"인력 부족 때문"<br />전국 공항 아프리카돼지열병 검역 '허술'…체계 개선 시급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데, 중국인들이 버리고 간 가공식품 쓰레기가 종종 보이더라고요.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들이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하는데, 행여라도 돼지가 먹게 되면 위험한 거 아닌가요?"

지난 17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양돈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자 제주에서도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국인 중국과 홍콩, 베트남 등에서 제주로 오는 관광객이 제주 입국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다 보니 방역 망이 뚫릴 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맴돌았습니다.

치사율이 높은 데다 백신이 없다 보니 유입을 막는 게 최선인데, 외국인이나 해외 여행자를 통해 유입되는 육가공품은 제대로 차단되고 있는 걸까? 도민들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유입 통로인 제주국제공항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제주공항 유입되는 육가공품 단속 어떻게?


제주공항 앞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유입 방지를 위해 해외 축산물 반입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려있습니다. 해외 여행객과 외국인들이 해외에서 들여오는 육가공품을 통해서도 감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제주지역본부(이하 검역본부 제주본부)에 따르면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나 햄, 육포 등 외국에서 들여오는 모든 가공식품은 물론이고 육류가 포함된 만두와 샌드위치도 반입 금지 대상입니다. 5㎏ 미만의 멸균된 통조림은 반입 가능하지만, 이마저도 국가별 질병 상황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집니다.

반입 금지를 모르고 비행기에 탑승했더라도 입국하며 자진 신고했을 경우 물품만 압수되지만, 몰래 반입하다 적발되면 500만 원, 2차 적발 시에는 750만 원, 3차 적발 때는 무려 1,000만 원이 부과됩니다.


그렇다면 수화물 속 육가공품을 어떻게 적발하는 걸까요?

검역본부 제주본부는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제주세관이 하는 국제선 수화물 엑스레이(X-ray) 검사에서 농수축산물로 의심되는 물품이 발견됐을 때, 인계받아 검사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8월과 지난 4월 두 차례 중국인이 가져온 소시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됨에 따라 검역 강화 필요성을 느끼고, 지난 5월 전국 최초로 제주공항에 '검역 전용 엑스레이 모니터'를 설치했습니다.

모니터는 여행객들이 휴대 수화물을 가져오는 2층에 1대, 위탁 수화물이 나오는 1층에 4대 등 모두 5대를 설치했는데, 이를 통해 모든 수화물에 대한 전수검사 체계로 전환했습니다. 엑스레이 상에서 육가공품으로 의심되면, 스티커를 붙여 검역 검사대에서 상세 물품을 확인하는데, 이 과정에서 탐지견을 투입해 혹시나 놓치는 물품이 없는지 다시 확인합니다.

압수품들은 내부 냉동고에 쌓아뒀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모두 소각 처리하는데, 검용 전용 엑스레이 모니터가 설치되면서 적발량도 확연히 늘었습니다. 올해 들어 8월까지 돈육가공품 적발 건수는 6,123건으로, 지난 한 해 적발 건수인 5,098건을 벌써 뛰어넘었습니다. 이 가운데 90% 이상이 중국산인데, 나머지는 홍콩과 베트남, 라오스 등입니다.


불법 반입으로 인한 과태료 부과 건수는 9월 18일 기준 129건에 이르는데, 지난 한 해 동안 100건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많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새벽 시간대 '구멍'…"업무 늘었는데 인력은 그대로"

제대로 된 검역 시스템을 갖추면서 육가공품은 완전히 차단된 걸까요?

최근 제주국제공항에서 국제선 항공편을 이용한 제주도민들은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에 홍콩에 갔다 지난 15일 새벽 6시 제주에 입국한 제주도민 A씨는 "(휴대 수화물에 대한) 엑스레이 짐 검사하는 곳에 사람이 없었고 그냥 통과했다"며 "조금 의아했는데 너무 이른 새벽이라 그러려니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마카오에 갔다 지난 14일 새벽 6시 반쯤 입국한 또 다른 제주도민 B씨는 "마카오가 육포가 유명해서 사서 갈까 고민을 하다가 검역도 강화되고 해서 저희는 포기했는데, 공항에 도착해보니 기계가 안 돌아가고 있었다"며 "혹시나 사온 사람들은 그냥 다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새벽 시간대는 검역에 구멍이 뚫렸다는 겁니다.

새벽 시간대 제주에 입국하는 국제선 항공편 한 대당 평균 승객은 150여 명, 이 중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국에서 들어오는 항공편도 있어 이들의 증언이 사실일 경우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KBS 취재진이 사실관계를 묻자, 검역본부 제주본부는 "검역 전용 모니터 설치 이후 인력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새벽에는 검역관들을 엑스레이 판독에 투입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면서 "새벽 입국 편에 대해서는 탐지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업무는 늘었지만 인력 증원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새벽엔 엑스레이 대신 탐지견을 투입해 수화물을 검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탐지견의 경우 키가 큰 성인이 멘 휴대가방은 냄새를 맡을 수 없고, 주말에는 아예 투입되지 않아 한계가 있습니다.

공항에 근무하는 검역본부 제주본부 직원은 모두 8명으로, 검역본부는 애초 전수검사 체계 정착을 위해 전문성 있는 모니터 판독 인력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모니터 설치 이후에도 증원은 없었습니다.

용역업체 직원이 보조업무를 해준다고 하더라도, 전문성과 공정성을 필요로 하는 업무에는 검역관이 직접 투입돼야 해서 검역 때 최소 4명의 검역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매일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국제선 항공기가 들어올 때마다 검역하기에 현 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였습니다.


KBS가 취재에 나서자 검역본부 본원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무시간을 준수하다 보니 업무에 공백이 생긴 것 같다"면서 "검토를 해서 내년도 증원 계획에 포함하든지 아니면, 인력 운용을 다른 방식으로 하든지 제주본부와 논의해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9일 이와 관련한 KBS 보도가 나가자 그 다음 날인 20일 현장 점검에 나선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새벽 시간 인력 보강과 통역 등 협조가 필요한 부분은 가능한 모든 것을 직접 지원하고 함께 대응해나가겠다"며 검역 과정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중국어 통역 인력 2명을 배치해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제주공항에서는 20일부터 검역본부 다른 부서 직원을 지원받아 새벽에도 엑스레이 판독 검역관을 투입해 수화물 검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주 이외 다른 지역 공항에서는 아직도 기존 방식대로 총기나 마약류 등을 단속하는 세관에만 의존하고 있어 철저한 방역 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검역 체계 개선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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