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를 다시 생각하다…오늘부터 카라 ‘동물영화제’

입력 2019.09.27 (11:51) 수정 2019.09.2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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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속의 개는 '들개'일까, 아닐까?

생김새로 보나 품새로 보나 옛날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이른바 '바둑이'일 것 같다. 하지만 이 개는 '들개'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들개는 '주인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개도 주인이 있었을 때는 그저 한 마리의 평범한 '동네 개'였을 것이다.

지난 2013년 공개돼 2회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ANIFFIS) 개막작으로도 선정·상영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히마와리와 나의 7일 ひまわりと子犬の7日間 7 Days of Himawari & Her Puppies>를 보면 노부부가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반려견(히마와리)이 어떻게 한순간에 천덕꾸러기 유기견, 아니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들개'로 전락해버리는지 하는 그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돼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던 존재였지만,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마저 요양원에 입소하게 되면서 '부디 잘 돌봐달라'는 할아버지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반려견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만다. 급기야 집에서 쫓겨나게 된 이후에는 유기견이 되었다가 이내 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다행히 동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지켜주고자 하는 주인공 덕분에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고 새끼들과 함께 새로운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랑받는 삶을 되찾게 되지만, 이러한 해피 엔딩은 현실 속에서는 극히 일어나기 힘들다.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에서는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극도로 예민해지고 사나워진 히마와리가 주인공을 물면서 전환점이 마련되는데 이 또한 매우 극적이다. 계속해서 면밀히 히마와리를 관찰해오던 주인공이 히마와리가 자신을 물었으되 차마 세게는 물지 못하는 걸 보고 '이 개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던 존재, 사람을 물어본 적이 없는 개였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일이 풀려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하루아침에 반려견이 유기견이 되어 버리는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한 달 전쯤 인천에서는 도심에 들개들이 출몰해 주민들이 불안에 휩싸이면서 대대적으로 보도가 된 적이 있었다. 주민들의 원성이 거세지자 당국이 즉시 포획에 나섰지만 '주민 안전'과 '동물 학대 비난'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해하는 형국이었다.

앞서 5월에도 행락지인 인천대공원에서 들개들이 출몰해 시민과 반려견을 공격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지자체가 마리 당 50만 원씩 내걸고 '포획 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마취총이나 포획용 틀에 개들이 다치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든 논란을 최소화하고 싶어 하는 지자체는 포획된 개들을 유기견보호소에 한시바삐 인계하면서 10일 이내에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과연 이 같은 처분 방법이 최선인지에 대한 논의가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인천대공원에서 포착된 들개 무리(사진 제공: 인천시)인천대공원에서 포착된 들개 무리(사진 제공: 인천시)

인천시는 도심에 출몰한 들개 대부분이 재개발·재건축 지역의 주민 또는 공장 등이 이사를 하게 되면서 방치된 유기견인 것으로 보고 있다. 주인으로부터 버려진 반려견이 시간이 지나면서 야생화되었고 사람들의 적대시를 피해 산으로 올라가 '들개'가 되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인천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이같은 '들개' 90여 마리가 포획됐고 인천 지역 동물보호센터에 입소한 유기견 수도 2016년 3,426마리에서 2017년 3,956마리, 2018년 4,547마리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백사마을에서 구조돼 ‘동행 104’라는 동물보호팀의 보호를 받았던 유기견(영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캡처)백사마을에서 구조돼 ‘동행 104’라는 동물보호팀의 보호를 받았던 유기견(영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캡처)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 이름하여 '백사마을'에서 재개발로 버려진 반려동물들을 꾸준히 구조해온 김성호 한국성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들개=위험한 존재'라는 간단한 등식이 성립해버렸지만, 대부분의 떠돌이 동물들은 위험하지 않다. 그나마 위험한 개들도 한순간 급변한 환경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포악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재개발 과정에서 주인들이 떠나면서 두고 간 개나 고양이의 경우 작고 약한 개체들은 죽거나 잡혀 안락사당하고 크고 강한 개체들만 포획되지 않고 살아남아 산으로 간 경우가 많은데 사회가 벼랑 끝으로 몰아 '들개'가 됐지만, 그 개들도 떠나간 주인을 다시 만나면 꼬리 치며 반가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버려졌다는 사실보다 사납고 위험한 존재임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들개'라는 통칭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또 "외국의 경우 야생 동물의 어감이 강한 '들개'라는 명칭보다 '떠돌이개'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공무원과 수의학계, 동물단체와 시민이 다각도로 협조해 사람이 입을 수 있는 피해도 방지하고 생명도 존중받을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도 그런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오늘(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1관에서는 이같은 '동물과 사람의 공존과 공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2회 카라 동물영화제 '살아있는 모든 것, 다 행복하라'가 열린다.

14편의 상영 영화 가운데 특히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A Time for Dogs and Cats(감독:임진평)>는 백사마을 재개발 과정에서 주인을 잃고 떠돌이개나 길고양이 신세로 전락하게 된 생명들이 동물구조활동가들과 지역주민들의 도움으로 다시 누군가의 반려동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이다.


아파트 위주의 도시화가 급속하고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집 지키는 동물'로서의 존재 가치를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동네 동물'들이 '유기동물'로, '들개' 또는 '길고양이'로 전락했다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재사회화를 거쳐 다시 누군가의 '반려동물'로 입양되는 과정을 통해 '도심 속 들개·길고양이 문제'가 과연 동물 자체의 문제인지 아니면 우리 인간의 문제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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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개’를 다시 생각하다…오늘부터 카라 ‘동물영화제’
    • 입력 2019-09-27 11:51:04
    • 수정2019-09-27 13:55:27
    취재K
위 사진 속의 개는 '들개'일까, 아닐까?

생김새로 보나 품새로 보나 옛날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이른바 '바둑이'일 것 같다. 하지만 이 개는 '들개'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들개는 '주인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개도 주인이 있었을 때는 그저 한 마리의 평범한 '동네 개'였을 것이다.

지난 2013년 공개돼 2회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ANIFFIS) 개막작으로도 선정·상영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히마와리와 나의 7일 ひまわりと子犬の7日間 7 Days of Himawari & Her Puppies>를 보면 노부부가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반려견(히마와리)이 어떻게 한순간에 천덕꾸러기 유기견, 아니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들개'로 전락해버리는지 하는 그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돼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던 존재였지만,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마저 요양원에 입소하게 되면서 '부디 잘 돌봐달라'는 할아버지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반려견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만다. 급기야 집에서 쫓겨나게 된 이후에는 유기견이 되었다가 이내 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다행히 동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지켜주고자 하는 주인공 덕분에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고 새끼들과 함께 새로운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랑받는 삶을 되찾게 되지만, 이러한 해피 엔딩은 현실 속에서는 극히 일어나기 힘들다.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에서는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극도로 예민해지고 사나워진 히마와리가 주인공을 물면서 전환점이 마련되는데 이 또한 매우 극적이다. 계속해서 면밀히 히마와리를 관찰해오던 주인공이 히마와리가 자신을 물었으되 차마 세게는 물지 못하는 걸 보고 '이 개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던 존재, 사람을 물어본 적이 없는 개였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일이 풀려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하루아침에 반려견이 유기견이 되어 버리는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한 달 전쯤 인천에서는 도심에 들개들이 출몰해 주민들이 불안에 휩싸이면서 대대적으로 보도가 된 적이 있었다. 주민들의 원성이 거세지자 당국이 즉시 포획에 나섰지만 '주민 안전'과 '동물 학대 비난'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해하는 형국이었다.

앞서 5월에도 행락지인 인천대공원에서 들개들이 출몰해 시민과 반려견을 공격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지자체가 마리 당 50만 원씩 내걸고 '포획 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마취총이나 포획용 틀에 개들이 다치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든 논란을 최소화하고 싶어 하는 지자체는 포획된 개들을 유기견보호소에 한시바삐 인계하면서 10일 이내에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과연 이 같은 처분 방법이 최선인지에 대한 논의가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인천대공원에서 포착된 들개 무리(사진 제공: 인천시)
인천시는 도심에 출몰한 들개 대부분이 재개발·재건축 지역의 주민 또는 공장 등이 이사를 하게 되면서 방치된 유기견인 것으로 보고 있다. 주인으로부터 버려진 반려견이 시간이 지나면서 야생화되었고 사람들의 적대시를 피해 산으로 올라가 '들개'가 되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인천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이같은 '들개' 90여 마리가 포획됐고 인천 지역 동물보호센터에 입소한 유기견 수도 2016년 3,426마리에서 2017년 3,956마리, 2018년 4,547마리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백사마을에서 구조돼 ‘동행 104’라는 동물보호팀의 보호를 받았던 유기견(영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캡처)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 이름하여 '백사마을'에서 재개발로 버려진 반려동물들을 꾸준히 구조해온 김성호 한국성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들개=위험한 존재'라는 간단한 등식이 성립해버렸지만, 대부분의 떠돌이 동물들은 위험하지 않다. 그나마 위험한 개들도 한순간 급변한 환경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포악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재개발 과정에서 주인들이 떠나면서 두고 간 개나 고양이의 경우 작고 약한 개체들은 죽거나 잡혀 안락사당하고 크고 강한 개체들만 포획되지 않고 살아남아 산으로 간 경우가 많은데 사회가 벼랑 끝으로 몰아 '들개'가 됐지만, 그 개들도 떠나간 주인을 다시 만나면 꼬리 치며 반가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버려졌다는 사실보다 사납고 위험한 존재임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들개'라는 통칭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또 "외국의 경우 야생 동물의 어감이 강한 '들개'라는 명칭보다 '떠돌이개'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공무원과 수의학계, 동물단체와 시민이 다각도로 협조해 사람이 입을 수 있는 피해도 방지하고 생명도 존중받을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도 그런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오늘(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1관에서는 이같은 '동물과 사람의 공존과 공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2회 카라 동물영화제 '살아있는 모든 것, 다 행복하라'가 열린다.

14편의 상영 영화 가운데 특히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A Time for Dogs and Cats(감독:임진평)>는 백사마을 재개발 과정에서 주인을 잃고 떠돌이개나 길고양이 신세로 전락하게 된 생명들이 동물구조활동가들과 지역주민들의 도움으로 다시 누군가의 반려동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이다.


아파트 위주의 도시화가 급속하고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집 지키는 동물'로서의 존재 가치를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동네 동물'들이 '유기동물'로, '들개' 또는 '길고양이'로 전락했다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재사회화를 거쳐 다시 누군가의 '반려동물'로 입양되는 과정을 통해 '도심 속 들개·길고양이 문제'가 과연 동물 자체의 문제인지 아니면 우리 인간의 문제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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