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홍콩에 ‘집’을 주마!…“고맙지만 참정권도 원해요”

입력 2019.09.2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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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주마! .. 중국의 묘수?

중국 중앙정부와 홍콩 정부가 홍콩 사태 끝낼 묘수로 '주택 공급 확대'를 선택했다. 그리고 구체적 방법론으로 홍콩 부동산 재벌이 개발은 않고, 가지고만 있는 엄청난 땅을 지목했다.

인민일보는 13일 '주택문제 해결, 홍콩 더는 기다릴 수 없다(解决住房问题,香港不能再等了!)', 같은 날 신화사는 '홍콩 사회 갈등은 주거난 해소로 착수(从解决居住难题入手破解香港社会深层次矛盾)' 논평을 게시했다. 인민일보와 신화사 논평은 중국에서 일개 언론매체의 보도로 해석하지 않는다. 인민일보는 중국공산당 기관지, 신화사는 또 유일한 국영 통신사다. 홍콩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처방으로 봐도 무방하다. 중국 정부의 방침이 결정됐다는 거다.

기사를 좀 보자. 신화사는 "홍콩 저소득 주민들은 '비둘기 우리' 같은 집에 산다"면서 "1 제곱미터에 20만 홍콩달러(3,058만 원, 1평 1억 원)가 넘는 집값에 중산층 시민들까지 아우성(13일 보도)"이라고 진단한다. 실제 홍콩의 집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동방의 구슬'이라는 명성과 달리, 빈곤율은 20.1% 특히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빈곤율은 44.4%에 달한다.

인민일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집'은 기본적인 인권이자 존엄"이라면서 "홍콩 주택문제 핵심은 토지에 있다. 토지 공급을 늘리는 것을 늦출 수 없다(13일 보도)"고 지적한다. "그러나 홍콩 정부가 가진 것은 너무 적다"면서 홍콩 재벌이 가진 땅을 지목한다. 인민일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부동산 재벌이 선의를 보일 때가 왔다"면서 "자기만의 계산기를 두드리고, 땅을 사재기하고, 마지막 동전 한 푼까지 벌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엄포를 놓는다.


홍콩재벌 '땅' 기부 .. '빈집 세' '토지 환수'도 추진

'탐욕스럽다'는 힐난에 잔뜩 주눅 든 홍콩 부동산 재벌이 두 손을 들기 시작했다. 홍콩 매체는 26일 홍콩의 4대 부동산 개발회사 중 하나인 뉴월드(新世界) 그룹이 보유 토지의 17.8%에 해당하는 300만 제곱피트(약 84,000평)를 정부와 사회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땅값만 우리 돈 5,200억 원에 달한다.

홍콩 매체 보도를 보면 홍콩 4대 부동산 재벌이 보유한 토지는 1억 제곱피트(약 281만 평)로, 이를 개발하면 공동주택 100만 가구를 공급할 수 있다. 뉴월드 그룹 아드리안 청(鄭志剛) 부회장은 "우리는 홍콩의 주택 문제를 매우 우려하고 있으며, 이번 기부로 홍콩 시민 1만 명의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과연 진심일까?

캐리 람 행정장관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람 장관은 12일 개인 SNS에 '빈집 세 도입' 조례 초안을 관보에 게재한다고 발표했다. 역시 목표는 부동산 재벌이다. 홍콩에는 아파트를 지은 후 집값 상승을 기다리며 분양을 미루고 있는 빈집이 1만여 채에 이른다. 이들 집에 '빈집 세'를 부과하겠다는 거다. 집을 팔든지, 가진 만큼 세금을 내든지 선택하라는 거다.

홍콩 최대 친중파 정당인 민건련(民建联)도 숟가락을 얹는다. 민건련은 "홍콩 정부 소유 토지로는 10년 동안 공급 가능한 공공주택이 최대 24만 8,000가구에 불과하다. 이는 공급 목표 31만 5,000가구와 차이가 크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정부가 민간 토지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한 '토지회수조례'를 적극적으로 집행할 것을 제안한다. 부동산 재벌이 묵혀 놓은 땅을 아예 회수해서 집을 짓자는 거다.

중국 관영매체와 홍콩 정부, 친중파 정당이 한 박자가 돼 움직이는 모양새다. 당연히 중국 중앙정부의 영도? 없이는 불가능하다. 뉴월드와 마찬가지로 소나기는 피하자는 심정으로 조만간 다른 홍콩 재벌들도 항복 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대신 집? .."참정권도 원해요"

이유야 어찌 됐던 위와 같은 일련의 조치들이 집행되면 홍콩 서민들의 주택난이 상당히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더없이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러면 홍콩 시위는 끝나는 걸까? 적어도 중국 정부는 그렇게 보고 있는 거 같다.

그러나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6일 중국은 홍콩 사태의 근본 원인을 주택 문제로 꼽았지만, 홍콩 시민들의 요구는 이 문제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고 진단한다. 주택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소외, 불충분한 의료 서비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교육제도, 본토 인구의 유입, 사라져 버린 사회적 사다리, 위협받는 홍콩의 자유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홍콩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홍콩 사태는 송환법 철회 투쟁에서 직선제 쟁취 투쟁으로 발전했다. 우리의 국회 격인 홍콩 입법회 의원은 모두 70명이다. 이 중 40명이 친중파로 분류된다. 입법회 의원은 직선(40명)과 간선(30명)으로 선출하는데, 홍콩 시민들이 직선으로 다수의 비(非) 친중파 의원을 선출해도 간선으로 뽑히는 직능별 의원이 대부분 친중파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5대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도 1,200명의 선거인단이 간선으로 선출했다.

홍콩 대학생 라첼 라우는 SCMP와의 인터뷰에서 "보편적인 참정권이 없이는 정말 홍콩에 이익이 되는 정책을 펼칠 지도자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높은 부동산 가격 같은 문제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젊은이들의 인식은 이미 '송환법'에서 '직선제'로 넘어가 있는 것이다.


중국은 더 내놓을 게 있을까?

지금은 뜸하지만 한때 홍콩과 마주하고 있는 광둥성 선전에선 중국 무장경찰이 연일 무력시위를 벌였다. 그렇지만 베이징에서 만나는 외교가 인사들은 대체로 "중국이 무력 개입을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럼 중국 정부가 더 내놓을 건 있을까? 이 역시 절대 불가능하다고 예상한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체제이념으로 가진 중국이 공산당 영도를 위협하는 '직선제'를 수용할 리 없다는 거다.

홍콩 정부는 주택 대책으로 민심이 좀 더 가라앉으면 시위대 솎아내기(일반 참여자와 강경파 구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대적인 시위 강경파와 지도부 검거도 예상된다. 2014년 우산 혁명의 마지막도 이와 같았다. 이번 홍콩 시위는 홍콩 현대사에 많은 기록을 남겼다. '사상 최장 시위' '사상 최다 인파'....그리고 홍콩 정부로부터 '송환법 철회'라는 항복도 받아냈다.

홍콩 시민들은 '민주주의'라는 큰 강물에 이미 올라탄 듯하다. 앞을 가로막는 둑이 있으면 시간을 두고 물을 채워, 기필코 그 둑을 넘을 것이다. 넘지 못할 둑은 물길을 다른 길로 틀면 된다. 우리 현대사가 그랬듯 어떨 땐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엄혹한 길이다. 홍콩 시민들이 자신의 지도자를 스스로 뽑는 '직선제'를 쟁취하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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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27 14:07:15
    특파원 리포트
'집'을 주마! .. 중국의 묘수?

중국 중앙정부와 홍콩 정부가 홍콩 사태 끝낼 묘수로 '주택 공급 확대'를 선택했다. 그리고 구체적 방법론으로 홍콩 부동산 재벌이 개발은 않고, 가지고만 있는 엄청난 땅을 지목했다.

인민일보는 13일 '주택문제 해결, 홍콩 더는 기다릴 수 없다(解决住房问题,香港不能再等了!)', 같은 날 신화사는 '홍콩 사회 갈등은 주거난 해소로 착수(从解决居住难题入手破解香港社会深层次矛盾)' 논평을 게시했다. 인민일보와 신화사 논평은 중국에서 일개 언론매체의 보도로 해석하지 않는다. 인민일보는 중국공산당 기관지, 신화사는 또 유일한 국영 통신사다. 홍콩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처방으로 봐도 무방하다. 중국 정부의 방침이 결정됐다는 거다.

기사를 좀 보자. 신화사는 "홍콩 저소득 주민들은 '비둘기 우리' 같은 집에 산다"면서 "1 제곱미터에 20만 홍콩달러(3,058만 원, 1평 1억 원)가 넘는 집값에 중산층 시민들까지 아우성(13일 보도)"이라고 진단한다. 실제 홍콩의 집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동방의 구슬'이라는 명성과 달리, 빈곤율은 20.1% 특히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빈곤율은 44.4%에 달한다.

인민일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집'은 기본적인 인권이자 존엄"이라면서 "홍콩 주택문제 핵심은 토지에 있다. 토지 공급을 늘리는 것을 늦출 수 없다(13일 보도)"고 지적한다. "그러나 홍콩 정부가 가진 것은 너무 적다"면서 홍콩 재벌이 가진 땅을 지목한다. 인민일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부동산 재벌이 선의를 보일 때가 왔다"면서 "자기만의 계산기를 두드리고, 땅을 사재기하고, 마지막 동전 한 푼까지 벌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엄포를 놓는다.


홍콩재벌 '땅' 기부 .. '빈집 세' '토지 환수'도 추진

'탐욕스럽다'는 힐난에 잔뜩 주눅 든 홍콩 부동산 재벌이 두 손을 들기 시작했다. 홍콩 매체는 26일 홍콩의 4대 부동산 개발회사 중 하나인 뉴월드(新世界) 그룹이 보유 토지의 17.8%에 해당하는 300만 제곱피트(약 84,000평)를 정부와 사회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땅값만 우리 돈 5,200억 원에 달한다.

홍콩 매체 보도를 보면 홍콩 4대 부동산 재벌이 보유한 토지는 1억 제곱피트(약 281만 평)로, 이를 개발하면 공동주택 100만 가구를 공급할 수 있다. 뉴월드 그룹 아드리안 청(鄭志剛) 부회장은 "우리는 홍콩의 주택 문제를 매우 우려하고 있으며, 이번 기부로 홍콩 시민 1만 명의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과연 진심일까?

캐리 람 행정장관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람 장관은 12일 개인 SNS에 '빈집 세 도입' 조례 초안을 관보에 게재한다고 발표했다. 역시 목표는 부동산 재벌이다. 홍콩에는 아파트를 지은 후 집값 상승을 기다리며 분양을 미루고 있는 빈집이 1만여 채에 이른다. 이들 집에 '빈집 세'를 부과하겠다는 거다. 집을 팔든지, 가진 만큼 세금을 내든지 선택하라는 거다.

홍콩 최대 친중파 정당인 민건련(民建联)도 숟가락을 얹는다. 민건련은 "홍콩 정부 소유 토지로는 10년 동안 공급 가능한 공공주택이 최대 24만 8,000가구에 불과하다. 이는 공급 목표 31만 5,000가구와 차이가 크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정부가 민간 토지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한 '토지회수조례'를 적극적으로 집행할 것을 제안한다. 부동산 재벌이 묵혀 놓은 땅을 아예 회수해서 집을 짓자는 거다.

중국 관영매체와 홍콩 정부, 친중파 정당이 한 박자가 돼 움직이는 모양새다. 당연히 중국 중앙정부의 영도? 없이는 불가능하다. 뉴월드와 마찬가지로 소나기는 피하자는 심정으로 조만간 다른 홍콩 재벌들도 항복 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대신 집? .."참정권도 원해요"

이유야 어찌 됐던 위와 같은 일련의 조치들이 집행되면 홍콩 서민들의 주택난이 상당히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더없이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러면 홍콩 시위는 끝나는 걸까? 적어도 중국 정부는 그렇게 보고 있는 거 같다.

그러나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6일 중국은 홍콩 사태의 근본 원인을 주택 문제로 꼽았지만, 홍콩 시민들의 요구는 이 문제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고 진단한다. 주택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소외, 불충분한 의료 서비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교육제도, 본토 인구의 유입, 사라져 버린 사회적 사다리, 위협받는 홍콩의 자유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홍콩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홍콩 사태는 송환법 철회 투쟁에서 직선제 쟁취 투쟁으로 발전했다. 우리의 국회 격인 홍콩 입법회 의원은 모두 70명이다. 이 중 40명이 친중파로 분류된다. 입법회 의원은 직선(40명)과 간선(30명)으로 선출하는데, 홍콩 시민들이 직선으로 다수의 비(非) 친중파 의원을 선출해도 간선으로 뽑히는 직능별 의원이 대부분 친중파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5대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도 1,200명의 선거인단이 간선으로 선출했다.

홍콩 대학생 라첼 라우는 SCMP와의 인터뷰에서 "보편적인 참정권이 없이는 정말 홍콩에 이익이 되는 정책을 펼칠 지도자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높은 부동산 가격 같은 문제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젊은이들의 인식은 이미 '송환법'에서 '직선제'로 넘어가 있는 것이다.


중국은 더 내놓을 게 있을까?

지금은 뜸하지만 한때 홍콩과 마주하고 있는 광둥성 선전에선 중국 무장경찰이 연일 무력시위를 벌였다. 그렇지만 베이징에서 만나는 외교가 인사들은 대체로 "중국이 무력 개입을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럼 중국 정부가 더 내놓을 건 있을까? 이 역시 절대 불가능하다고 예상한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체제이념으로 가진 중국이 공산당 영도를 위협하는 '직선제'를 수용할 리 없다는 거다.

홍콩 정부는 주택 대책으로 민심이 좀 더 가라앉으면 시위대 솎아내기(일반 참여자와 강경파 구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대적인 시위 강경파와 지도부 검거도 예상된다. 2014년 우산 혁명의 마지막도 이와 같았다. 이번 홍콩 시위는 홍콩 현대사에 많은 기록을 남겼다. '사상 최장 시위' '사상 최다 인파'....그리고 홍콩 정부로부터 '송환법 철회'라는 항복도 받아냈다.

홍콩 시민들은 '민주주의'라는 큰 강물에 이미 올라탄 듯하다. 앞을 가로막는 둑이 있으면 시간을 두고 물을 채워, 기필코 그 둑을 넘을 것이다. 넘지 못할 둑은 물길을 다른 길로 틀면 된다. 우리 현대사가 그랬듯 어떨 땐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엄혹한 길이다. 홍콩 시민들이 자신의 지도자를 스스로 뽑는 '직선제'를 쟁취하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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