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여권 받으려면 200만 원 내야” 베트남 학생 인권침해 논란

입력 2019.09.27 (14:40) 수정 2019.09.2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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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과 신분증을 받으려면 보증금 200만 원을 줘야 해요."

2019년 현재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제주관광대학교 어학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온 베트남 학생 A 씨는 대학 측에서 신분증을 가져갔다며 취재진에게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지난해 제주관광대에 입교한 베트남 어학연수생은 모두 184명. 연수생 B 씨는 "대학교 베트남 관리자가 강제적으로 학생들의 여권과 신분증을 가져갔다"고 말했습니다.

휴대폰 사용료, 기숙사 관리비 등 한 달에 수 십만 원에 달하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지만, 신분증이 없어 불법으로 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베트남 어학연수생 C 씨는 "학교에 신분증을 달라고 여러 번 얘기해봤지만 소용없었다"며 "200만 원 상당의 보증금이나 (제주에) 친척이 있는 경우에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털어놨습니다.

학교 측은 관련 사실을 모두 인정했습니다. 제주관광대 국제교류센터 측은 공식 인터뷰를 통해 "외국 유학생들이 처음 왔을 때 한국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각종 범죄에 노출돼 있다"며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동의하에 여권 등을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대학 경영, 인증 대학과 맞물린 외국인 학생 인권

하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학교 관계자는 공식 인터뷰 전 취재진에게 무단이탈 방지와 학교 경영을 위해 어쩔수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외국인 유학생 불법체류율이 1% 미만일 경우 정부에서 인증 대학으로 선정돼 비자심사 등에서 우대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는 겁니다. 이 관계자는 "이 비율이 올라가면 비자 제한 대학까지 갈 수 있다"며 국내 학생 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외국인 유학생 유치마저 못하면 경영상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도 토로했습니다.

보증금 200만 원에 대해서는 "부서 입장에서는 이탈률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등록금과 비슷한 정도의 금액을 받고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학교 측은 지난 2017년부터 어학연수생 신분증을 보관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수년 동안 수백 명의 신분증과 여권을 학교가 관리 명목 아래 사실상 압수하고 있던 겁니다.

한용길 제주도외국인근로자상담센터 사무처장은 "2019년 현재 제3차 외국인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학연수로 온 학생들의 신분증, 외국인 등록증 압수는 명백한 인권침해"라며 "기본적으로 갖고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제주에서 외국 학생 교류가 활발한 제주대학교와 제주한라대학교에서는 이와 달리 여권과 신분증을 학생들에게 지급하고 있습니다.

◆ 대학교 신분증 압수는 처벌 불가… 법 사각지대

법무부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해마다 제주 지역 대학을 대상으로 외국인 학생들의 신분증을 압수하지 못하도록 계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법무부 외국인정책과 관계자는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신분증 억류는 처벌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출입국관리법이 취업 계약이나 채무이행을 위해 여권이나 신분증 제공을 강요했을 때에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도 개선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근본적인 대책 필요"

대학 측 관계자는 "여권을 갖고 있어도 무단이탈하는 학생들이 있다"며 "중국의 한 유학원을 통해 베트남 연수생을 받고 있고, 학업을 위한 학생인지 심사 등을 통해 걸러내고 있지만 관리가 힘든 게 현실" 이라고 말했습니다.


한용길 제주도외국인근로자상담센터 사무처장은 "대학이 내국인 학생 수가 줄어들며 경영 어려움이 발생해 어쩔 수 없이 해외에 있는 학생들을 유치할 수밖에 없는 구조상의 문제가 있다"며 "여과 과정 없이 어학연수생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이 때문에 무단이탈이 발생하고 신분증 압수로 이어지고 있다"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강조했습니다.

법무부는 지난 3월 "대학에 유학생 선발 자율권을 최대한 부여했지만, 대학들이 재정, 학업 능력에 대한 자체 검증을 부실하게 해 불법 체류자가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며 올해 3월부터 베트남인 어학연수생에 대해 유학경비 보증 제도를 도입하는 등 비자제도를 강화했습니다.

◆ 신분증 압수는 정당화 될 수 없어…개선 함께 이뤄져야

'무단이탈' 예방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를 명분으로 신분증을 압수하고, 보증금을 걸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어떻게든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다른 국가에서 이 같은 차별을 받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외국인 학생들을 잠재적 관리대상으로 보는 인식 개선과 제도 마련이 함께 이뤄져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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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여권 받으려면 200만 원 내야” 베트남 학생 인권침해 논란
    • 입력 2019-09-27 14:40:19
    • 수정2019-09-27 14:40:24
    취재후·사건후
"여권과 신분증을 받으려면 보증금 200만 원을 줘야 해요."

2019년 현재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제주관광대학교 어학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온 베트남 학생 A 씨는 대학 측에서 신분증을 가져갔다며 취재진에게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지난해 제주관광대에 입교한 베트남 어학연수생은 모두 184명. 연수생 B 씨는 "대학교 베트남 관리자가 강제적으로 학생들의 여권과 신분증을 가져갔다"고 말했습니다.

휴대폰 사용료, 기숙사 관리비 등 한 달에 수 십만 원에 달하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지만, 신분증이 없어 불법으로 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베트남 어학연수생 C 씨는 "학교에 신분증을 달라고 여러 번 얘기해봤지만 소용없었다"며 "200만 원 상당의 보증금이나 (제주에) 친척이 있는 경우에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털어놨습니다.

학교 측은 관련 사실을 모두 인정했습니다. 제주관광대 국제교류센터 측은 공식 인터뷰를 통해 "외국 유학생들이 처음 왔을 때 한국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각종 범죄에 노출돼 있다"며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동의하에 여권 등을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대학 경영, 인증 대학과 맞물린 외국인 학생 인권

하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학교 관계자는 공식 인터뷰 전 취재진에게 무단이탈 방지와 학교 경영을 위해 어쩔수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외국인 유학생 불법체류율이 1% 미만일 경우 정부에서 인증 대학으로 선정돼 비자심사 등에서 우대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는 겁니다. 이 관계자는 "이 비율이 올라가면 비자 제한 대학까지 갈 수 있다"며 국내 학생 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외국인 유학생 유치마저 못하면 경영상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도 토로했습니다.

보증금 200만 원에 대해서는 "부서 입장에서는 이탈률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등록금과 비슷한 정도의 금액을 받고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학교 측은 지난 2017년부터 어학연수생 신분증을 보관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수년 동안 수백 명의 신분증과 여권을 학교가 관리 명목 아래 사실상 압수하고 있던 겁니다.

한용길 제주도외국인근로자상담센터 사무처장은 "2019년 현재 제3차 외국인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학연수로 온 학생들의 신분증, 외국인 등록증 압수는 명백한 인권침해"라며 "기본적으로 갖고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제주에서 외국 학생 교류가 활발한 제주대학교와 제주한라대학교에서는 이와 달리 여권과 신분증을 학생들에게 지급하고 있습니다.

◆ 대학교 신분증 압수는 처벌 불가… 법 사각지대

법무부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해마다 제주 지역 대학을 대상으로 외국인 학생들의 신분증을 압수하지 못하도록 계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법무부 외국인정책과 관계자는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신분증 억류는 처벌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출입국관리법이 취업 계약이나 채무이행을 위해 여권이나 신분증 제공을 강요했을 때에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도 개선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근본적인 대책 필요"

대학 측 관계자는 "여권을 갖고 있어도 무단이탈하는 학생들이 있다"며 "중국의 한 유학원을 통해 베트남 연수생을 받고 있고, 학업을 위한 학생인지 심사 등을 통해 걸러내고 있지만 관리가 힘든 게 현실" 이라고 말했습니다.


한용길 제주도외국인근로자상담센터 사무처장은 "대학이 내국인 학생 수가 줄어들며 경영 어려움이 발생해 어쩔 수 없이 해외에 있는 학생들을 유치할 수밖에 없는 구조상의 문제가 있다"며 "여과 과정 없이 어학연수생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이 때문에 무단이탈이 발생하고 신분증 압수로 이어지고 있다"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강조했습니다.

법무부는 지난 3월 "대학에 유학생 선발 자율권을 최대한 부여했지만, 대학들이 재정, 학업 능력에 대한 자체 검증을 부실하게 해 불법 체류자가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며 올해 3월부터 베트남인 어학연수생에 대해 유학경비 보증 제도를 도입하는 등 비자제도를 강화했습니다.

◆ 신분증 압수는 정당화 될 수 없어…개선 함께 이뤄져야

'무단이탈' 예방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를 명분으로 신분증을 압수하고, 보증금을 걸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어떻게든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다른 국가에서 이 같은 차별을 받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외국인 학생들을 잠재적 관리대상으로 보는 인식 개선과 제도 마련이 함께 이뤄져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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