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화성]② 강도였나, 연쇄살인 실패였나…‘화성 용의자’ 범행 미스터리

입력 2019.09.27 (16:22) 수정 2019.09.2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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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끝나지 않은 화성②]
수원서 강도 시도하다 구속
범행시기 7차와 9차 사건 사이
구속 중 '화성 수사팀' 조사받아
"강도 아닌 연쇄살인 시도 가능성"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56살 이 모 씨의 DNA는 현재까지 5·7·9차 사건의 증거물에서 나온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DNA가 감정 결과가 틀릴 확률은 10의 23제곱분의 1이다. 언뜻 숫자를 떠올릴 수도 없는 희박한 확률이기 때문에 적어도 5·7·9차 사건의 범인은 이 씨로 봐도 무방하다.

3개 사건 가운데 이 씨는 7차와 9차 사건은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모방범죄로 드러나 범인이 잡힌 8차 사건을 빼면 7차와 9차 사건 사이에는 2년 2개월이라는 공백이 있는데, 이는 연쇄살인 사건 사이의 시간 간격 중에 가장 긴 것이다.

이 시간 동안 이 씨는 강도 행각을 벌이려다 붙잡혀 6개월 넘게 구치소에 있었다. 당시 판결문을 살펴보면 이 씨가 강도 범행을 시도한 게 맞는지, 아니면 연쇄살인을 추가로 시도하다 실패한 건지 의심스러운 대목이 있다.


수원서 강도 범행 시도하다 덜미
이 씨의 강도 예비 등 혐의 사건 1·2심 판결문을 보면 이 씨는 1989년 9월 26일 0시 55분 수원시 권선구에 사는 A 씨 집에 들어갔다. 이 씨는 미리 준비한 흉기 1개와 면장갑 1개를 챙겨갔다.

집 안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 이 씨는 방문 앞에서 방 안의 동정을 살피다 A 씨에게 발각됐다. 뭘 해보기도 전에 덜미를 잡힌 것이다.

이 씨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는 명확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 씨는 현장에서 잡혀 구속돼 재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심 판결문에는 '선고 전의 구금 일수 중 130일을 형에 삽입한다'는 말이 있다.

재판을 받을 때부터 구치소에 있었으니, 그 기간을 형을 산 걸로 쳐준다는 의미다. 법조계에 따르면 당시에는 구금 일수 중 형에 삽입하는 기간을 판사가 정했다. 이 씨가 1심 판결 전까지 구속된 기간이 130일을 넘을 수도 있다는 얘긴데, 최소 130일이라고 해도 4달이 넘는 기간이다.


"구타한 청년 쫓다 피해자 집 들어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이 씨는 구속된 상태로 항소해 2심 재판을 받았다. 이 씨는 항소심에서 "낯모르는 청년으로부터 구타당한 후 그를 쫓다가 피해자 집에 들어가게 된 것일 뿐 금품을 빼앗기 위해 침입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흉기와 면장갑까지 챙겨간 상황에서 우연히 남의 집에 들어갔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은데, 이 씨는 이러한 이유를 들어 1심 형량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증거들을 살펴보면 유죄로 판단한 1심 판결은 적절하다면서도 형량은 이 사건에 나타난 모든 양형 조건들에 비춰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씨는 항소 이유로 피해자가 입은 피해가 가볍고, 자신의 가정형편이 딱한 점 등을 들어 형이 무겁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주장을 2심 재판부가 받아들인 걸로 보인다.


구속 당시 '화성 수사팀' 조사받아
이 씨는 1988년 9월 7일 7차 사건을 저질렀다. 7차 사건은 52살 안 모 씨가 수원에서 일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와서 자신이 사는 마을 입구에서 내려 귀가하다 피살된 사건이다.
강도 범행 시도는 7차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정도 지난 시점에 있었다. 이때 구속된 걸로 추정되는 이 씨는 1990년 2월 7일 1심 판결을 받았고, 1990년 4월 19일에 2심 판결을 받았다. 이때 집행유예가 선고돼 곧바로 석방된 걸로 보인다.

석방 이후 7개월 만인 1990년 11월 15일 이 씨는 9차 사건을 저질렀다. 9차 사건은 13살 김 모 양이 친구와 헤어져 귀가하다 피살된 사건이다.

구속 기간을 계산해보면 1989년 9월부터 1990년 4월까지 6~7개월가량인데, 이 사이 이 씨는 화성 사건 수사팀의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1990년 초 화성 수사팀이 이 씨를 조사했다고 밝혔다. 6차 사건 이후인 1987년, 8차 사건 이후인 1988년 말~1989년 4월에 이은 세 번째 조사였다. 이 씨가 구속된 걸 알고 조사했는지, 조사하려고 하다 구속된 걸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수사팀은 이 씨가 최초 조사를 받은 6차 사건과 관련해 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발자국과 이 씨 발자국이 다르다는 이유로 용의 선상에서 배제했다. 당시 수사에 참여한 형사도 범행을 입증할 증거나 목격자가 없어서 이 씨를 배제했다고 진술했다.


강도였나, 연쇄살인 시도였나
이 씨는 여성을 성폭행한 뒤 살해하는 연쇄살인을 잇달아 저질렀는데, 중간에 강도 범행을 시도했다는 건 일반적인 범죄자의 특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 씨가 강도가 아닌 연쇄살인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집에 누가 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연쇄살인을 마음먹고 집 안에 들어갔는데, 남성이 있어서 범행에 실패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 씨는 범행을 시도하기도 전에 피해자에게 발각됐다.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흉기를 들고 들어간 상황 때문에 강도예비 등 혐의가 적용됐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이 부분은 현재 수사 중인 경찰이 밝혀야 할 부분이다.

임 교수는 또 "강도와 이 씨의 연쇄살인은 범행 대상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자신보다 힘이 약한 여성만을 상대로 범행한 이 씨가 누가 상대가 될지 모르는 강도 범행을 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다.

이 씨는 구속까지 됐다가 풀려났음에도 연쇄살인을 이어갔다. 임 교수는 "이 씨의 범죄 충동이 구속 이후에도 참을 수 없을 정도 강력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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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나지 않은 화성]② 강도였나, 연쇄살인 실패였나…‘화성 용의자’ 범행 미스터리
    • 입력 2019-09-27 16:22:12
    • 수정2019-09-27 19:51:16
    취재K
[끝나지 않은 화성②]<br />수원서 강도 시도하다 구속<br />범행시기 7차와 9차 사건 사이<br />구속 중 '화성 수사팀' 조사받아<br />"강도 아닌 연쇄살인 시도 가능성"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56살 이 모 씨의 DNA는 현재까지 5·7·9차 사건의 증거물에서 나온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DNA가 감정 결과가 틀릴 확률은 10의 23제곱분의 1이다. 언뜻 숫자를 떠올릴 수도 없는 희박한 확률이기 때문에 적어도 5·7·9차 사건의 범인은 이 씨로 봐도 무방하다.

3개 사건 가운데 이 씨는 7차와 9차 사건은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모방범죄로 드러나 범인이 잡힌 8차 사건을 빼면 7차와 9차 사건 사이에는 2년 2개월이라는 공백이 있는데, 이는 연쇄살인 사건 사이의 시간 간격 중에 가장 긴 것이다.

이 시간 동안 이 씨는 강도 행각을 벌이려다 붙잡혀 6개월 넘게 구치소에 있었다. 당시 판결문을 살펴보면 이 씨가 강도 범행을 시도한 게 맞는지, 아니면 연쇄살인을 추가로 시도하다 실패한 건지 의심스러운 대목이 있다.


수원서 강도 범행 시도하다 덜미
이 씨의 강도 예비 등 혐의 사건 1·2심 판결문을 보면 이 씨는 1989년 9월 26일 0시 55분 수원시 권선구에 사는 A 씨 집에 들어갔다. 이 씨는 미리 준비한 흉기 1개와 면장갑 1개를 챙겨갔다.

집 안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 이 씨는 방문 앞에서 방 안의 동정을 살피다 A 씨에게 발각됐다. 뭘 해보기도 전에 덜미를 잡힌 것이다.

이 씨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는 명확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 씨는 현장에서 잡혀 구속돼 재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심 판결문에는 '선고 전의 구금 일수 중 130일을 형에 삽입한다'는 말이 있다.

재판을 받을 때부터 구치소에 있었으니, 그 기간을 형을 산 걸로 쳐준다는 의미다. 법조계에 따르면 당시에는 구금 일수 중 형에 삽입하는 기간을 판사가 정했다. 이 씨가 1심 판결 전까지 구속된 기간이 130일을 넘을 수도 있다는 얘긴데, 최소 130일이라고 해도 4달이 넘는 기간이다.


"구타한 청년 쫓다 피해자 집 들어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이 씨는 구속된 상태로 항소해 2심 재판을 받았다. 이 씨는 항소심에서 "낯모르는 청년으로부터 구타당한 후 그를 쫓다가 피해자 집에 들어가게 된 것일 뿐 금품을 빼앗기 위해 침입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흉기와 면장갑까지 챙겨간 상황에서 우연히 남의 집에 들어갔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은데, 이 씨는 이러한 이유를 들어 1심 형량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증거들을 살펴보면 유죄로 판단한 1심 판결은 적절하다면서도 형량은 이 사건에 나타난 모든 양형 조건들에 비춰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씨는 항소 이유로 피해자가 입은 피해가 가볍고, 자신의 가정형편이 딱한 점 등을 들어 형이 무겁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주장을 2심 재판부가 받아들인 걸로 보인다.


구속 당시 '화성 수사팀' 조사받아
이 씨는 1988년 9월 7일 7차 사건을 저질렀다. 7차 사건은 52살 안 모 씨가 수원에서 일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와서 자신이 사는 마을 입구에서 내려 귀가하다 피살된 사건이다.
강도 범행 시도는 7차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정도 지난 시점에 있었다. 이때 구속된 걸로 추정되는 이 씨는 1990년 2월 7일 1심 판결을 받았고, 1990년 4월 19일에 2심 판결을 받았다. 이때 집행유예가 선고돼 곧바로 석방된 걸로 보인다.

석방 이후 7개월 만인 1990년 11월 15일 이 씨는 9차 사건을 저질렀다. 9차 사건은 13살 김 모 양이 친구와 헤어져 귀가하다 피살된 사건이다.

구속 기간을 계산해보면 1989년 9월부터 1990년 4월까지 6~7개월가량인데, 이 사이 이 씨는 화성 사건 수사팀의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1990년 초 화성 수사팀이 이 씨를 조사했다고 밝혔다. 6차 사건 이후인 1987년, 8차 사건 이후인 1988년 말~1989년 4월에 이은 세 번째 조사였다. 이 씨가 구속된 걸 알고 조사했는지, 조사하려고 하다 구속된 걸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수사팀은 이 씨가 최초 조사를 받은 6차 사건과 관련해 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발자국과 이 씨 발자국이 다르다는 이유로 용의 선상에서 배제했다. 당시 수사에 참여한 형사도 범행을 입증할 증거나 목격자가 없어서 이 씨를 배제했다고 진술했다.


강도였나, 연쇄살인 시도였나
이 씨는 여성을 성폭행한 뒤 살해하는 연쇄살인을 잇달아 저질렀는데, 중간에 강도 범행을 시도했다는 건 일반적인 범죄자의 특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 씨가 강도가 아닌 연쇄살인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집에 누가 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연쇄살인을 마음먹고 집 안에 들어갔는데, 남성이 있어서 범행에 실패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 씨는 범행을 시도하기도 전에 피해자에게 발각됐다.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흉기를 들고 들어간 상황 때문에 강도예비 등 혐의가 적용됐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이 부분은 현재 수사 중인 경찰이 밝혀야 할 부분이다.

임 교수는 또 "강도와 이 씨의 연쇄살인은 범행 대상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자신보다 힘이 약한 여성만을 상대로 범행한 이 씨가 누가 상대가 될지 모르는 강도 범행을 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다.

이 씨는 구속까지 됐다가 풀려났음에도 연쇄살인을 이어갔다. 임 교수는 "이 씨의 범죄 충동이 구속 이후에도 참을 수 없을 정도 강력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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