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톡] 삭발과 시국선언, 언론이 ‘조국 논란’을 끌고가는 방법

입력 2019.09.2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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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이 임명된 지 한 달 가까이 됐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정치적 갈등이 장기화될 때 나타나는 큰 특징의 하나는, 정치인들의 특정 퍼포먼스와, 정치적 결정을 촉구하는 이른바 지식인들의 행위이다. 저널리즘 전문가인 '저널리즘 토크쇼 J'(이하 J) 고정 패널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현 사태를 다루는 언론 보도를 이렇게 평가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전과 임명 자체에 대한 논란을 다룬 언론보도는 압도적인 양이었다. 이 상황에서 조국 장관 퇴진을 촉구하는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조명하고, 야당 정치인들의 삭발에 주목한다. '여론이 압도적'이라는 통계들을 보여주거나 만들어내기 위해, 재료가 있다면 최대한으로 가져다 썼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삭발이 현재 정당한 투쟁의 방식인가, 시국 선언 대신 교수 사회의 제도나 구조를 지적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이같은 것이 정국을 푸는 해법이 맞나 분석하는 언론들은 드물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도 필요했던 재료였기 때문이다.”

이번주 '저널리즘 토크쇼 J'(이하 J)는 조국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교수들의 시국선언과 대중의 관심을 끌기위한 정치인들의 퍼포먼스, 그리고 이에 반응하는 언론들의 양상을 짚어본다.

숫자만 남은 ‘시국선언’ 보도

최근 조국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이하 정교모)이 주도한 '시국선언’ 서명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정교모는 지난 14일부터 온라인 링크를 통해 교수들의 서명을 받았는데, 동의한 인원이 급속도로 늘어났다고 수치를 실시간으로 온라인 홈페이지에 발표했다. 이같은 소식은 '단독' 말머리를 달고 일부 매체에서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의 시국선언 보도자료‘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의 시국선언 보도자료

정교모에서는 공식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자료에는 몇 개 대학, 몇 명의 교수가 시국선언에 참여했는지를 알리는 문구가 강조돼있었고, 참여 대학이름과 서명자의 숫자가 담겼다. 참여인원이 많은 대학들을 별도로 분류해 적기도 했다. 실제 언론 보도에는 “대학 별로는 조 장관의 모교인 서울대가 179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연세대·경북대 105명 등…”의 내용으로 기사화됐다. 이에 네티즌들은 대학 이름이 공개된 홈페이지에서, 명인대학교(드라마 ‘하얀거탑’에 나왔던 가상의 대학)을 비롯해 실존하지 않는 몇 개의 대학을 찾아내기도 했다.


서명 절차는 온라인으로 진행됐는데, 이름과 소속 대학, 학과,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기재해 전송하는 방식이었다. 교수 신분을 확인하는 사전 인증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누구나 일단 참여할 수 있는 형식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대학 등이 기재돼 집계된 것은, 제대로 된 확인 없이 서명자를 집계해 왔다는 방증이다. 정교모 총괄을 맡은 연세대 이삼현 교수는 "검증 작업을 걸친 뒤 언론에 명단을 공개했다면 '허위 서명' 논란을 없앴을 수 있지 않았겠냐"는 'J' 취재진의 질문에 "가짜 서명자들을 걸러내는 작업을 일일이 대학별로 했으며, 그 작업에 시간이 걸려 공개가 늦어졌다"고 입장을 밝혔다.

‘최순실 국정농단’ 때보다 참여인원이 많다?

일부 매체는 여기에 ‘의미부여’를 더했다. 조국 장관 퇴진 교수 시국선언의 참여인원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의 참여인원을 넘어섰다는 점에 주목해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최순실 사태 넘어선 규모의 교수들, 조국 시국선언>(지난 19일)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자발적인 교수들의 대규모 시국선언은 2016년 최순실 사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조국 사태가 나라를 뒤흔들었던 최순실 사태였던 만큼 엄중한 사안임을 보여주는 근거다.”라고 썼고, 조선일보는 <지금 조 장관 그만두지않으면 문 정부도 같이 몰락한다>(지난 20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016년 최순실 사태 당시 시국선언 참여 교수진 연구자 2200여 명을 뛰어넘는 규모다. 몰상식이 상식을 비웃는 데 대한 분노가 서로 얼굴도 모르는 교수 수천 명이 며칠 만에 뜻을 모으게 만들었을 것이다.”고 실었다.


그렇다면 언론이 인용한 ‘통계’는 사실에 기반한 것이었을까. '조국 퇴진 교수 시국선언의 참여인원'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의 참여인원을 넘어섰다는 보도의 근거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가 발표한 ‘박근혜 탄핵안의 즉각적 인용과 특검 연장을 촉구하는 시국선언’ 교수 명단 2,234명이다. 민교협 측은 ‘J'취재기자의 질문에 “2,234라는 숫자는 1차 시국선언 당시의 숫자다. 이후 2차, 3차 시국선언을 거쳐 총 4,080명의 교수 연구자가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각 대학별 참여 교수진의 명단은 당시 기자회견과 함께 대중에 함께 공개됐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료”라고 밝혔다.


강유정 교수는 “'최순실 사태'는 비정치인, 비행정가가 정치와 행정에 개입해서 말 그대로 ‘국정농단'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의 사태였다. '최순실 사태'때와의 숫자를 단순히 비교하려한다는 것은 특정한 의도가 있는 접근이다. 그때보다 참여인원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최순실 사태와 지금의 조국 장관을 둘러싼 일들이 비슷하다는 연상효과를 주려는 것이다. ‘조국 장관 문제에 대해서는 좌우나 세대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준희 교수는 “과거 1960년 4.19혁명 때나 1987년 이전의 교수 시국선언 당시만 해도 사회의 지적 권위자들까지 나섰다는 문제의식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교수들이 한 분야의 ‘전문가’로 분류되고 있는 지금에 와서 언론은 ‘조국 장관 퇴진 시국선언’을 다루면서 대중을 대상으로 ‘나를 따르라’라고 하는 과거의 형태로 다룬다. 언론이 민감도 높게 반응을 하면서 숫자를 중계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은, 언론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현재 사회를 얼마나 뒤처진 사회로 포장하려고 하는지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

전우용 교수는 “조국 장관의 과거 교수 시절 때의 기득권으로서의 행동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보도를 하려면, 실제 교수 집단이 현재 사회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해 왔는가, 반성할 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보도로 이어져야 하는데, 현재의 숫자 중계보도는 교수 사회의 문제들을 가릴 뿐 중요한 논의 자체를 끊어버렸다고 볼 수 있다. 또 '친문’ 성향의 누리꾼들이 공격해서 명단을 공개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는, 절차의 허술함과 정당한 의문을 제외하고 '소수, 친문 네티즌'이라는 프레임을 짜는데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치쇼가 된 ‘삭발 투쟁’과 이미지를 만드는 언론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후 야당 의원들의 '삭발 릴레이’가 이어졌다. 야당 의원들의 삭발 릴레이의 신호탄이 된 것은 지난 16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삭발이었다. 황 대표의 삭발을 언론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을까. 제1야당 대표의 삭발식 발언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삭발식 과정을 묘사하는데에 치중한 문구들이 눈에 띈다. 기사에는 “머리를 밀자 흰머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본 “당원들은 눈물을 글썽거렸다.”“지지자들은 황교안을 외치며 울부짖었다.”등의 묘사가 등장한다.


강유정 교수는 “ 이같은 묘사는, 종교적인 행위처럼 묘사하는, 신성시하는 표현을 택하고있다. 이 부분만 딱 잘라놓고 보면 마치 속세를 벗어나 출가를 하는 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에 신성시됐고 굉장한 의지를 보여줬던 행위들이 점차 이렇게 정치적인 행위로 잘못 쓰이게 되면서 이것이 갖고있는 본래의 의미가 결국은 훼손된다. 과연 이정도로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황교안 대표의 삭발 이미지는 다음날 다시 언론에 등장한다. <2030의 '삭발 황교안' 패러디>(조선일보),<인터넷 떠도는 '투블럭 황교안; 한국당도 예상 못한 삭발 효과>(중앙일보) 보도에서는 20~30대 네티즌들이 황 대표의 삭발 사진을 합성해 올린 이미지로 'SNS놀이'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준희 교수는 “더 이상 쓸 수 있는 이미지나 감성들이 사라지니 다른 데서 자꾸 재료를 찾게 된다. 지지자들이 강하게 반응하면서 결속할 것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온라인의 젊은층에서 반응이 나오자, 나름의 해석들을 더해 이 의제를 살려나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이미지 정치의 행위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사실은 실 내용은 소멸된 채, 그 이미지들이 남아서 결과적으로 최대한 끄는 데까지 끄는 정도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됐다”고 해석했다.

강유정 교수는 "언론과 정치의 스노비즘이 만난 상태다. 이언주 의원이 처음 삭발을 했을 때, 그렇게 많은 언론들이 주목하지않았다면, 단지 이미지만으로 의원 개인을 브랜딩화해주지 않았다면 그 이후 그렇게 많은 의원들이 머리를 밀었을까라는 질문을 해봐야 한다는 거다. 삭발 행위 자체를 중요한 홍보 보도자료처럼 기사화하고,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의원들이 이름을 걸고 개인 정치를 하기 위해서 활용했다. 언론이 애당초 이렇게 일종의 굉장히 세속적인 행위로서의 삭발을 그대로 브랜딩화하지 않았다면 이런 모습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라고 지적했다.

전우용 교수는 “삭발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면, 하나는, 이 방법으로밖에 알릴 수 없는 사안이 있을 때의 절실함, 두 번째로는 그야말로 무엇인가 비장한 결의의 표시다. 그런데 제1야당 대표의 발언과 주장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보도돼오고 있다. 지금 삭발할 만큼 언로가 막혀있는 상황인가, 제1야당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인가 를 지적하지 않고, 연속 삭발식 자체에 일종의 비장미를 동원해서 사태가 굉장히 엄중하고, 정말 헌정 사상유례없는 위기 상황이라는 식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이사진을 끌어다 쓰고 있는 정도, 그뿐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미 언론을 통해 목소리를 내오고 있는 정치인들이 이를 활용해버린다면, 마지막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이들의 절실한 목소리를 빼앗게 되는 게 될 우려도 있다. 적어도 언론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정부에 대해서 발언할 권리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사회적 약자의 방법들을 빼앗아 쓰는 것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J 61회는 오는 29(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된다.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 팟캐스트 MC 최욱, 영화평론가인 강유정 강남대 교수,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 김빛이라 KBS기자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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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리톡] 삭발과 시국선언, 언론이 ‘조국 논란’을 끌고가는 방법
    • 입력 2019-09-28 08:03:29
    저널리즘 토크쇼 J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임명된 지 한 달 가까이 됐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정치적 갈등이 장기화될 때 나타나는 큰 특징의 하나는, 정치인들의 특정 퍼포먼스와, 정치적 결정을 촉구하는 이른바 지식인들의 행위이다. 저널리즘 전문가인 '저널리즘 토크쇼 J'(이하 J) 고정 패널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현 사태를 다루는 언론 보도를 이렇게 평가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전과 임명 자체에 대한 논란을 다룬 언론보도는 압도적인 양이었다. 이 상황에서 조국 장관 퇴진을 촉구하는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조명하고, 야당 정치인들의 삭발에 주목한다. '여론이 압도적'이라는 통계들을 보여주거나 만들어내기 위해, 재료가 있다면 최대한으로 가져다 썼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삭발이 현재 정당한 투쟁의 방식인가, 시국 선언 대신 교수 사회의 제도나 구조를 지적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이같은 것이 정국을 푸는 해법이 맞나 분석하는 언론들은 드물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도 필요했던 재료였기 때문이다.”

이번주 '저널리즘 토크쇼 J'(이하 J)는 조국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교수들의 시국선언과 대중의 관심을 끌기위한 정치인들의 퍼포먼스, 그리고 이에 반응하는 언론들의 양상을 짚어본다.

숫자만 남은 ‘시국선언’ 보도

최근 조국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이하 정교모)이 주도한 '시국선언’ 서명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정교모는 지난 14일부터 온라인 링크를 통해 교수들의 서명을 받았는데, 동의한 인원이 급속도로 늘어났다고 수치를 실시간으로 온라인 홈페이지에 발표했다. 이같은 소식은 '단독' 말머리를 달고 일부 매체에서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의 시국선언 보도자료
정교모에서는 공식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자료에는 몇 개 대학, 몇 명의 교수가 시국선언에 참여했는지를 알리는 문구가 강조돼있었고, 참여 대학이름과 서명자의 숫자가 담겼다. 참여인원이 많은 대학들을 별도로 분류해 적기도 했다. 실제 언론 보도에는 “대학 별로는 조 장관의 모교인 서울대가 179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연세대·경북대 105명 등…”의 내용으로 기사화됐다. 이에 네티즌들은 대학 이름이 공개된 홈페이지에서, 명인대학교(드라마 ‘하얀거탑’에 나왔던 가상의 대학)을 비롯해 실존하지 않는 몇 개의 대학을 찾아내기도 했다.


서명 절차는 온라인으로 진행됐는데, 이름과 소속 대학, 학과,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기재해 전송하는 방식이었다. 교수 신분을 확인하는 사전 인증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누구나 일단 참여할 수 있는 형식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대학 등이 기재돼 집계된 것은, 제대로 된 확인 없이 서명자를 집계해 왔다는 방증이다. 정교모 총괄을 맡은 연세대 이삼현 교수는 "검증 작업을 걸친 뒤 언론에 명단을 공개했다면 '허위 서명' 논란을 없앴을 수 있지 않았겠냐"는 'J' 취재진의 질문에 "가짜 서명자들을 걸러내는 작업을 일일이 대학별로 했으며, 그 작업에 시간이 걸려 공개가 늦어졌다"고 입장을 밝혔다.

‘최순실 국정농단’ 때보다 참여인원이 많다?

일부 매체는 여기에 ‘의미부여’를 더했다. 조국 장관 퇴진 교수 시국선언의 참여인원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의 참여인원을 넘어섰다는 점에 주목해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최순실 사태 넘어선 규모의 교수들, 조국 시국선언>(지난 19일)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자발적인 교수들의 대규모 시국선언은 2016년 최순실 사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조국 사태가 나라를 뒤흔들었던 최순실 사태였던 만큼 엄중한 사안임을 보여주는 근거다.”라고 썼고, 조선일보는 <지금 조 장관 그만두지않으면 문 정부도 같이 몰락한다>(지난 20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016년 최순실 사태 당시 시국선언 참여 교수진 연구자 2200여 명을 뛰어넘는 규모다. 몰상식이 상식을 비웃는 데 대한 분노가 서로 얼굴도 모르는 교수 수천 명이 며칠 만에 뜻을 모으게 만들었을 것이다.”고 실었다.


그렇다면 언론이 인용한 ‘통계’는 사실에 기반한 것이었을까. '조국 퇴진 교수 시국선언의 참여인원'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의 참여인원을 넘어섰다는 보도의 근거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가 발표한 ‘박근혜 탄핵안의 즉각적 인용과 특검 연장을 촉구하는 시국선언’ 교수 명단 2,234명이다. 민교협 측은 ‘J'취재기자의 질문에 “2,234라는 숫자는 1차 시국선언 당시의 숫자다. 이후 2차, 3차 시국선언을 거쳐 총 4,080명의 교수 연구자가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각 대학별 참여 교수진의 명단은 당시 기자회견과 함께 대중에 함께 공개됐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료”라고 밝혔다.


강유정 교수는 “'최순실 사태'는 비정치인, 비행정가가 정치와 행정에 개입해서 말 그대로 ‘국정농단'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의 사태였다. '최순실 사태'때와의 숫자를 단순히 비교하려한다는 것은 특정한 의도가 있는 접근이다. 그때보다 참여인원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최순실 사태와 지금의 조국 장관을 둘러싼 일들이 비슷하다는 연상효과를 주려는 것이다. ‘조국 장관 문제에 대해서는 좌우나 세대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준희 교수는 “과거 1960년 4.19혁명 때나 1987년 이전의 교수 시국선언 당시만 해도 사회의 지적 권위자들까지 나섰다는 문제의식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교수들이 한 분야의 ‘전문가’로 분류되고 있는 지금에 와서 언론은 ‘조국 장관 퇴진 시국선언’을 다루면서 대중을 대상으로 ‘나를 따르라’라고 하는 과거의 형태로 다룬다. 언론이 민감도 높게 반응을 하면서 숫자를 중계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은, 언론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현재 사회를 얼마나 뒤처진 사회로 포장하려고 하는지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

전우용 교수는 “조국 장관의 과거 교수 시절 때의 기득권으로서의 행동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보도를 하려면, 실제 교수 집단이 현재 사회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해 왔는가, 반성할 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보도로 이어져야 하는데, 현재의 숫자 중계보도는 교수 사회의 문제들을 가릴 뿐 중요한 논의 자체를 끊어버렸다고 볼 수 있다. 또 '친문’ 성향의 누리꾼들이 공격해서 명단을 공개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는, 절차의 허술함과 정당한 의문을 제외하고 '소수, 친문 네티즌'이라는 프레임을 짜는데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치쇼가 된 ‘삭발 투쟁’과 이미지를 만드는 언론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후 야당 의원들의 '삭발 릴레이’가 이어졌다. 야당 의원들의 삭발 릴레이의 신호탄이 된 것은 지난 16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삭발이었다. 황 대표의 삭발을 언론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을까. 제1야당 대표의 삭발식 발언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삭발식 과정을 묘사하는데에 치중한 문구들이 눈에 띈다. 기사에는 “머리를 밀자 흰머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본 “당원들은 눈물을 글썽거렸다.”“지지자들은 황교안을 외치며 울부짖었다.”등의 묘사가 등장한다.


강유정 교수는 “ 이같은 묘사는, 종교적인 행위처럼 묘사하는, 신성시하는 표현을 택하고있다. 이 부분만 딱 잘라놓고 보면 마치 속세를 벗어나 출가를 하는 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에 신성시됐고 굉장한 의지를 보여줬던 행위들이 점차 이렇게 정치적인 행위로 잘못 쓰이게 되면서 이것이 갖고있는 본래의 의미가 결국은 훼손된다. 과연 이정도로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황교안 대표의 삭발 이미지는 다음날 다시 언론에 등장한다. <2030의 '삭발 황교안' 패러디>(조선일보),<인터넷 떠도는 '투블럭 황교안; 한국당도 예상 못한 삭발 효과>(중앙일보) 보도에서는 20~30대 네티즌들이 황 대표의 삭발 사진을 합성해 올린 이미지로 'SNS놀이'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준희 교수는 “더 이상 쓸 수 있는 이미지나 감성들이 사라지니 다른 데서 자꾸 재료를 찾게 된다. 지지자들이 강하게 반응하면서 결속할 것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온라인의 젊은층에서 반응이 나오자, 나름의 해석들을 더해 이 의제를 살려나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이미지 정치의 행위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사실은 실 내용은 소멸된 채, 그 이미지들이 남아서 결과적으로 최대한 끄는 데까지 끄는 정도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됐다”고 해석했다.

강유정 교수는 "언론과 정치의 스노비즘이 만난 상태다. 이언주 의원이 처음 삭발을 했을 때, 그렇게 많은 언론들이 주목하지않았다면, 단지 이미지만으로 의원 개인을 브랜딩화해주지 않았다면 그 이후 그렇게 많은 의원들이 머리를 밀었을까라는 질문을 해봐야 한다는 거다. 삭발 행위 자체를 중요한 홍보 보도자료처럼 기사화하고,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의원들이 이름을 걸고 개인 정치를 하기 위해서 활용했다. 언론이 애당초 이렇게 일종의 굉장히 세속적인 행위로서의 삭발을 그대로 브랜딩화하지 않았다면 이런 모습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라고 지적했다.

전우용 교수는 “삭발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면, 하나는, 이 방법으로밖에 알릴 수 없는 사안이 있을 때의 절실함, 두 번째로는 그야말로 무엇인가 비장한 결의의 표시다. 그런데 제1야당 대표의 발언과 주장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보도돼오고 있다. 지금 삭발할 만큼 언로가 막혀있는 상황인가, 제1야당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인가 를 지적하지 않고, 연속 삭발식 자체에 일종의 비장미를 동원해서 사태가 굉장히 엄중하고, 정말 헌정 사상유례없는 위기 상황이라는 식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이사진을 끌어다 쓰고 있는 정도, 그뿐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미 언론을 통해 목소리를 내오고 있는 정치인들이 이를 활용해버린다면, 마지막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이들의 절실한 목소리를 빼앗게 되는 게 될 우려도 있다. 적어도 언론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정부에 대해서 발언할 권리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사회적 약자의 방법들을 빼앗아 쓰는 것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J 61회는 오는 29(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된다.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 팟캐스트 MC 최욱, 영화평론가인 강유정 강남대 교수,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 김빛이라 KBS기자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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