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베를린 농구팀, 치어리더 폐지…“여성은 막간 오락물이 아니다”

입력 2019.09.29 (09:29) 수정 2019.09.2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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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구 분데스리가 개막(9월 24일)과 함께 독일 언론에 시선을 끄는 뉴스 하나가 보도됐다. 베를린 연고팀 '알바 베를린(ALBA BERLIN)'이 이번 시즌부터 하프타임 치어리더 공연을 없애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이를 두고 농구팬들 사이에 파장이 일고 있다.


알바 베를린 "젊은 여성은 막간 오락물이 아니다"

알바 베를린은 26일 구단 홈페이지에 "댄서 없이 시즌 시작"이라는 공지를 올렸다. "25년 만에 알바 댄서와 작별을 한다. 앞으로 홈경기 하프타임 때 치어리더의 무대는 없을 것"이라는 공지였다. 마르코 발디 구단주는 "젊은 여성들이 스포츠 이벤트 도중 매력적인 막간 오락물로 나오는 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확신한다"고 폐지 이유를 설명했다.

발디 구단주는 치어리더 공연으로 인해 남자들이 농구를 하는 동안 여자는 춤을 추며 막간 오락을 담당한다는 인상이 생겼다고 말했다. 앞으로 여자들이 농구선수의 모습으로 나오고 선망의 대상이 되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알바 구단엔 여성팀도 있는데 여성팀은 지난해 처음으로 2부리그로 승격했다.


농구팬들 "치어리딩은 오락물이 아니라 스포츠"

구단의 치어리딩 폐지 소식이 알려지자 수백 명의 팬이 댓글을 달며 반응했다. 그런데 폐지를 옹호하는 내용보다 비판하는 내용이 다수였다.

'호프만'이란 팬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치어리딩은 막간 오락물이 아니라 스포츠"라며 "치어리딩을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비판했다. 알바 베를린 구단주를 향해서는 "당신이 치어리더를 매력적인 막간 오락물로 본다면 그게 바로 당신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치어리더들의 노고가 아닌 여자의 유혹만 생각한다는 걸 보여준 결정"이라는 글도 있었다.

한때 치어리더로 일했다는 한 여성은 "정말 안타깝다. 왜냐면 그녀들은 분명히 자유의지에 의해, 특히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치어리딩의 성적 측면을 강조할 때만 선정적이다"라며 "완전히 잘못된 접근방식"이라고 일갈했다. 다른 팬도 "그 여성들은 치어리딩을 즐겁게 하고 잘했다. 관객들도 좋아했고 그 누구도 괴로워하지 않았다"며 이번 결정은 소수가 다수 관객의 삶을 강요하려는 시도라고 표현했다.

알바 베를린과 함께 분데스리가 1부리그 소속인 FC 바이에른 뮌헨 농구팀의 마르코 페지치 구단주도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페지치 구단주는 먼저 해당 치어리더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우리가 치어리더들이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는지 보면 그것은 단순히 춤이 아니라 스포츠"라고 밝혔다.

'실업 문제'와 '구단의 비용절감 비판'으로 확산

일을 잃게 된 치어리더들의 딱한 처지를 걱정하는 글들도 올라왔다. 여러 팬이 "치어리더들이 실업자가 됐다"며 "성차별이라는 키워드로 여성들을 대중에서 추방시키고 있다.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비난의 화살은 이어 구단의 본뜻이 감춰졌다는 쪽으로 이어졌다. '헤르포'라는 팬은 "성차별을 빙자로 구단이 비용을 줄이려고 한다. 사람들은 솔직함이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다른 팬들도 구단이 비용을 절감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사실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꼬집으며, "금전적인 관점을 성적인 측면으로 뒤집어 놨다"고 가세했다.


"좋은 결정…농구에만 집중"

물론 치어리더 폐지 결정을 반기는 의견도 있었다. 여러 팬이 "아주 좋은 결정"이라며 농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적었다. "이제 아이들과 경기를 보러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부모도 있었다. "치어리딩 스포츠는 곡예만 발전했다"며 "여성상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알바 베를린 홈페이지에서 치어리딩 폐지 결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의견은 10% 미만의 소수였다.

끊임없는 '성상품화' 논란…'치어리더' 보호 묘안은?

알바 베를린 구단으로선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 됐다. 스포츠에서 성차별적인 요소를 없애고자 취한 조치가 오히려 성차별적 시각을 반영한 결정으로 비춰졌을 뿐 아니라, 즐겁게 일해왔던 치어리더들을 실업자로 만들었으며, 비용 절감을 위해 치어리더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받는 등 역풍을 맞았기 때문이다.

치어리더의 성 상품화 논란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경기에 흥을 북돋아주고, 선수와 관객 사이에서 응원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치어리더. 국제 치어리딩 대회가 열릴 정도로 정식 스포츠로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성추행, 성희롱의 위험에 노출돼 있고, 실제로 그런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면서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다.

하지만 일부 그릇된 시각을 가진 팬들이 있다 해서 아예 없애는 게 능사인 건지? 독일 농구팬의 지적처럼 성차별이 없는 곳에서도 성차별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는 건지? 스포츠로서 자기 일을 좋아하는 치어리더를 보호하고, 관객들의 경기에 대한 몰입도 증대시키는 묘안은 없는 건지? '알바 베를린'의 치어리더 폐지 결정은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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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베를린 농구팀, 치어리더 폐지…“여성은 막간 오락물이 아니다”
    • 입력 2019-09-29 09:29:54
    • 수정2019-09-29 16:02:31
    특파원 리포트
독일 농구 분데스리가 개막(9월 24일)과 함께 독일 언론에 시선을 끄는 뉴스 하나가 보도됐다. 베를린 연고팀 '알바 베를린(ALBA BERLIN)'이 이번 시즌부터 하프타임 치어리더 공연을 없애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이를 두고 농구팬들 사이에 파장이 일고 있다.


알바 베를린 "젊은 여성은 막간 오락물이 아니다"

알바 베를린은 26일 구단 홈페이지에 "댄서 없이 시즌 시작"이라는 공지를 올렸다. "25년 만에 알바 댄서와 작별을 한다. 앞으로 홈경기 하프타임 때 치어리더의 무대는 없을 것"이라는 공지였다. 마르코 발디 구단주는 "젊은 여성들이 스포츠 이벤트 도중 매력적인 막간 오락물로 나오는 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확신한다"고 폐지 이유를 설명했다.

발디 구단주는 치어리더 공연으로 인해 남자들이 농구를 하는 동안 여자는 춤을 추며 막간 오락을 담당한다는 인상이 생겼다고 말했다. 앞으로 여자들이 농구선수의 모습으로 나오고 선망의 대상이 되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알바 구단엔 여성팀도 있는데 여성팀은 지난해 처음으로 2부리그로 승격했다.


농구팬들 "치어리딩은 오락물이 아니라 스포츠"

구단의 치어리딩 폐지 소식이 알려지자 수백 명의 팬이 댓글을 달며 반응했다. 그런데 폐지를 옹호하는 내용보다 비판하는 내용이 다수였다.

'호프만'이란 팬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치어리딩은 막간 오락물이 아니라 스포츠"라며 "치어리딩을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비판했다. 알바 베를린 구단주를 향해서는 "당신이 치어리더를 매력적인 막간 오락물로 본다면 그게 바로 당신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치어리더들의 노고가 아닌 여자의 유혹만 생각한다는 걸 보여준 결정"이라는 글도 있었다.

한때 치어리더로 일했다는 한 여성은 "정말 안타깝다. 왜냐면 그녀들은 분명히 자유의지에 의해, 특히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치어리딩의 성적 측면을 강조할 때만 선정적이다"라며 "완전히 잘못된 접근방식"이라고 일갈했다. 다른 팬도 "그 여성들은 치어리딩을 즐겁게 하고 잘했다. 관객들도 좋아했고 그 누구도 괴로워하지 않았다"며 이번 결정은 소수가 다수 관객의 삶을 강요하려는 시도라고 표현했다.

알바 베를린과 함께 분데스리가 1부리그 소속인 FC 바이에른 뮌헨 농구팀의 마르코 페지치 구단주도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페지치 구단주는 먼저 해당 치어리더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우리가 치어리더들이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는지 보면 그것은 단순히 춤이 아니라 스포츠"라고 밝혔다.

'실업 문제'와 '구단의 비용절감 비판'으로 확산

일을 잃게 된 치어리더들의 딱한 처지를 걱정하는 글들도 올라왔다. 여러 팬이 "치어리더들이 실업자가 됐다"며 "성차별이라는 키워드로 여성들을 대중에서 추방시키고 있다.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비난의 화살은 이어 구단의 본뜻이 감춰졌다는 쪽으로 이어졌다. '헤르포'라는 팬은 "성차별을 빙자로 구단이 비용을 줄이려고 한다. 사람들은 솔직함이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다른 팬들도 구단이 비용을 절감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사실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꼬집으며, "금전적인 관점을 성적인 측면으로 뒤집어 놨다"고 가세했다.


"좋은 결정…농구에만 집중"

물론 치어리더 폐지 결정을 반기는 의견도 있었다. 여러 팬이 "아주 좋은 결정"이라며 농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적었다. "이제 아이들과 경기를 보러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부모도 있었다. "치어리딩 스포츠는 곡예만 발전했다"며 "여성상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알바 베를린 홈페이지에서 치어리딩 폐지 결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의견은 10% 미만의 소수였다.

끊임없는 '성상품화' 논란…'치어리더' 보호 묘안은?

알바 베를린 구단으로선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 됐다. 스포츠에서 성차별적인 요소를 없애고자 취한 조치가 오히려 성차별적 시각을 반영한 결정으로 비춰졌을 뿐 아니라, 즐겁게 일해왔던 치어리더들을 실업자로 만들었으며, 비용 절감을 위해 치어리더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받는 등 역풍을 맞았기 때문이다.

치어리더의 성 상품화 논란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경기에 흥을 북돋아주고, 선수와 관객 사이에서 응원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치어리더. 국제 치어리딩 대회가 열릴 정도로 정식 스포츠로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성추행, 성희롱의 위험에 노출돼 있고, 실제로 그런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면서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다.

하지만 일부 그릇된 시각을 가진 팬들이 있다 해서 아예 없애는 게 능사인 건지? 독일 농구팬의 지적처럼 성차별이 없는 곳에서도 성차별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는 건지? 스포츠로서 자기 일을 좋아하는 치어리더를 보호하고, 관객들의 경기에 대한 몰입도 증대시키는 묘안은 없는 건지? '알바 베를린'의 치어리더 폐지 결정은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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