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했다 ‘간첩’ 몰린 일병…법원, 출소 30년 만에 재심 개시 결정

입력 2019.09.30 (16:40) 수정 2019.09.3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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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군에서 탈영했다 '간첩'으로 몰려 20년 가까이 옥살이를 한 70대 노인이, 재심을 받을 길이 열렸습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20부는 72살 박상은 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한 1심을 뒤집고, 재심 대상 판결에 대한 재심을 개시한다고 지난 26일 결정했습니다.

재판부가 재심 대상으로 결정한 판결은 1969년 적진에의 도주 미수 혐의로 기소된 박 씨에 대해 같은해 무기징역을 선고한 제2군단보통군법회의의 판결입니다.

박 씨는 군복무 중이던 1969년 5월 탈영해 적진인 북한으로 도주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검찰은 당시 박 씨가 "월북해 북한에서 돈을 많이 받고 간첩교육을 받은 후 남파되거나, 6.25와 같은 전쟁이 나면 인민군으로 입대해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가족을 만나 잘 살아보겠다"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월북을 하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 씨는 선임하사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참다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부대를 이탈했던 것뿐이라고 했지만, 수사과정에서 이같은 진술이 묵살됐습니다.

같은해 제2군단보통군법회의는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박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이후 육군고등군법회의와 대법원이 박 씨의 항소와 상고를 각각 기각하면서 1심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박 씨는 이후 감옥에서 19년 복역하다가 징역 20년으로 감형 후 만기를 4개월 정도 남기고 1989년 가석방됐고, 출소 30년 만인 지난해 4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박 씨는 사건 당시 수사기관이 증거를 허위로 조작했고 적법한 구속 절차를 거치지 않은 데다, 구속영장에 기재되지 않은 장소에서 박 씨를 불법감금하고 고문 등 가혹행위를 벌였다며 재심 청구 사유를 밝혔습니다. 아울러 당시 수사기관이 박 씨의 논산훈련소 입소 동기를 동원해 박 씨의 허위 자백을 유도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당시 박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고, 이 사건 판결에 재심 사유가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당시 수사기관이 박 씨를 구치소나 영창이 아닌 내무반에 감금한 것은 불법감금이나 가혹행위, 사법경찰관에 대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피고인(박 씨)에 대해 구금을 지시한 사법경찰관은 이 사건 재심대상 판결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사람이라고 봄이 타당하다"라면서 "그가 범한 직무상의 범죄는 그 공소시효가 완성됐음이 명백해 형사소송법 422조의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한다"라고 보고 박 씨 사건에 재심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이 즉시항고하지 않으면 서울고등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은 확정되고, 박 씨는 기존 판결이 확정된 지 49년 만에 다시 재판을 받게 됩니다.

KBS는 앞서 6월 22일 방송된 <뉴스9>를 통해 재심을 청구한 박 씨의 사연을 보도했습니다.

[연관기사] ‘간첩’ 몰린 軍가혹행위 피해자…출소 30년 만에 재심 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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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영했다 ‘간첩’ 몰린 일병…법원, 출소 30년 만에 재심 개시 결정
    • 입력 2019-09-30 16:40:13
    • 수정2019-09-30 21:44:12
    사회
50년 전 군에서 탈영했다 '간첩'으로 몰려 20년 가까이 옥살이를 한 70대 노인이, 재심을 받을 길이 열렸습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20부는 72살 박상은 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한 1심을 뒤집고, 재심 대상 판결에 대한 재심을 개시한다고 지난 26일 결정했습니다.

재판부가 재심 대상으로 결정한 판결은 1969년 적진에의 도주 미수 혐의로 기소된 박 씨에 대해 같은해 무기징역을 선고한 제2군단보통군법회의의 판결입니다.

박 씨는 군복무 중이던 1969년 5월 탈영해 적진인 북한으로 도주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검찰은 당시 박 씨가 "월북해 북한에서 돈을 많이 받고 간첩교육을 받은 후 남파되거나, 6.25와 같은 전쟁이 나면 인민군으로 입대해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가족을 만나 잘 살아보겠다"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월북을 하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 씨는 선임하사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참다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부대를 이탈했던 것뿐이라고 했지만, 수사과정에서 이같은 진술이 묵살됐습니다.

같은해 제2군단보통군법회의는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박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이후 육군고등군법회의와 대법원이 박 씨의 항소와 상고를 각각 기각하면서 1심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박 씨는 이후 감옥에서 19년 복역하다가 징역 20년으로 감형 후 만기를 4개월 정도 남기고 1989년 가석방됐고, 출소 30년 만인 지난해 4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박 씨는 사건 당시 수사기관이 증거를 허위로 조작했고 적법한 구속 절차를 거치지 않은 데다, 구속영장에 기재되지 않은 장소에서 박 씨를 불법감금하고 고문 등 가혹행위를 벌였다며 재심 청구 사유를 밝혔습니다. 아울러 당시 수사기관이 박 씨의 논산훈련소 입소 동기를 동원해 박 씨의 허위 자백을 유도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당시 박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고, 이 사건 판결에 재심 사유가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당시 수사기관이 박 씨를 구치소나 영창이 아닌 내무반에 감금한 것은 불법감금이나 가혹행위, 사법경찰관에 대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피고인(박 씨)에 대해 구금을 지시한 사법경찰관은 이 사건 재심대상 판결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사람이라고 봄이 타당하다"라면서 "그가 범한 직무상의 범죄는 그 공소시효가 완성됐음이 명백해 형사소송법 422조의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한다"라고 보고 박 씨 사건에 재심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이 즉시항고하지 않으면 서울고등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은 확정되고, 박 씨는 기존 판결이 확정된 지 49년 만에 다시 재판을 받게 됩니다.

KBS는 앞서 6월 22일 방송된 <뉴스9>를 통해 재심을 청구한 박 씨의 사연을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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