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훈민정음 상주본, 원래부터 10장은 없었다”

입력 2019.10.07 (18:10) 수정 2019.10.07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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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실물을 찾아줘도 10%는 보상금으로 준다. 훈민정음 가치가 1조 원이라고 하니, 나는 1,000억 원은 받아야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을 가지고 있다는 배익기 씨의 말입니다. 2008년 배 씨가 언론에 일부를 공개한 뒤로, 우여곡절 끝에 올해 7월 소유권이 배 씨가 아닌 문화재청에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상주본이 공개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보상금 때문입니다. 귀중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하고 합당한 보상금을 주면 당장에라도 상주본을 공개하겠다는 게 배 씨의 입장입니다.

상주본 논란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보상금을 마련해 문화재청과 함께 환수하겠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50억 원, 100억 원 얘기가 나온 것은 이 때문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언제부턴가는 상주본이 공개되느냐 마느냐가 보상금으로 얼마를 주느냐에 달린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상주본에는 세종대왕의 친필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배 씨가 가지고 있다는 상주본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최근 KBS 취재진과 만난 배익기 씨는 전혀 새로운 얘기를 하나 꺼냈습니다. 상주본은 당시 세종대왕이 직접 보던 이른바 어람본(御覽本)으로 책 안에 세종의 친필이 남아 있다는 겁니다. 배 씨는 나름대로 조사를 해서 어렵게 내린 결론이라면서 그 근거로 상주본의 제본 방식이 일반적인 고서적과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책 전체에 구멍을 뚫어 실로 묶는 것이 우리나라 고서적의 제본 방식인데, 상주본에는 책 안쪽에 또 다른 연결장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상주본 곳곳에 남아 있는 손글씨. 배익기 씨는 이 손글씨를 세종대왕의 친필이라고 주장했다.상주본 곳곳에 남아 있는 손글씨. 배익기 씨는 이 손글씨를 세종대왕의 친필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상주본 실물이 공개돼야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배 씨가 보상금 해결 전에는 누구에게도 실물을 보여줄 수 없다고 고집하고 있어서 뭐라 평가하기도 어렵습니다. 배 씨가 말한 세종의 친필은 위 사진에 있는 것으로 목판으로 찍은 본문 위쪽에 있는 손글씨입니다. 손글씨의 존재는 공개 당시부터 알려진 것으로 학계에서는 후대의 소장자가 책의 내용이나 자기 생각을 정리해 적어넣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참고서나 교과서에 필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런데 배 씨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현재 거의 전해지지 않는 것은 세종 당대에도 책을 아주 적게 찍어냈기 때문이라면서, 그렇게 귀한 책에 누가 함부로 필기를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또, 해례본의 내용은 세종이 직접 서술한 것인데, 세종 본인이 아니고서는 본문과 다른 내용을 감히 써넣을 수는 없다는 게 배 씨의 얘기입니다.

기존에 알려진 대로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해례본(간송본)보다 누락돼 없어진 낙장의 수가 많다는 건 상주본이 불리한 점이지만, 어람본으로서 세종의 친필이 남아있는 만큼 상주본이 간송본보다 가치가 더 높다는 것이 배 씨의 새로운 주장입니다. 천억 원 이상의 보상금을 받아야 하는 이유라는 것이죠.

2008년 촬영본 분석해보니…"상주본은 공개 당시부터 10장은 없었다."

취재진은 전문가와 함께 상주본의 가치를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실물을 본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는데, 2008년 배 씨의 상주본 공개를 독점 촬영한 안동MBC의 당시 촬영원본을 입수해 가지고 있는 안동대학교 천명희 교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언론사의 취재물이기는 하지만 배 씨가 이후로는 상주본을 거의 공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이 촬영원본이 상주본의 면모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취재와 보도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배 씨는 2015년 자신의 집에 불이 나자, 상주본은 무사하다며 낱장의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는데 2008년 촬영원본에는 낱장이 아닌 책자 형태로 된 상주본의 모습이 확인됩니다.

사진 속 컴퓨터에서 재생되는 화면이 2008년 안동MBC가 촬영한 영상. 표지와 함께 책이 공개된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컴퓨터 화면에 어둡게 보이는 것이 상주본의 표지사진 속 컴퓨터에서 재생되는 화면이 2008년 안동MBC가 촬영한 영상. 표지와 함께 책이 공개된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컴퓨터 화면에 어둡게 보이는 것이 상주본의 표지

20여 분 분량의 촬영원본을 분석한 천명희 교수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전체 33장으로 된 책인데, 상주본은 공개 당시부터 최소한 10장 정도가 낙장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촬영원본에서 확인되는 가장 앞부분은 해례본의 9번째 장입니다. 1장이 2쪽으로 구성된다고 할 때 촬영원본 속 상주본은 1쪽부터 16쪽까지 8장이 없고, 17쪽부터 시작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배 씨가 당시 취재진들에게 "책 앞부분이 없고, 중간에도 1장이 없고, 끝에도 1장이 없다."고 말한 것이 촬영원본에 녹음돼 있습니다. 천 교수는 "표지와 함께 공개된 촬영원본에서 앞부분 8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2장이 없다는 배 씨의 말을 종합해보면 전체 1/3 정도 분량인 10장이 없는 불완전한 책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2015년 화재 때 1장 이상이 소실 또는 분실됐다고 배 씨가 밝히고 있는 만큼 최소 11장 이상이 없다고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상주본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배 씨가 정확히 밝힌 적은 없지만, 현재로서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분석입니다.

간송본도 맨 앞 2장은 낙장이었던 것을 후대에 복원한 것이라서 만약 상주본에 이 부분이 있었다면 최초의 발견이었겠지만 상주본에도 이 부분이 없다는 것은 배 씨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가치가 높다고 해도 3분의 1 이상이 없는 책으로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요구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천명희 교수의 지적입니다.

책에 있는 손글씨가 세종 친필이라는 배 씨의 주장에 대해 천 교수는 "처음 접하는 얘기라 뭐라 말하기는 조심스럽다."면서도 손글씨의 내용이 훈민정음의 체계와 중국의 음운학을 비교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학자가 훈민정음의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중국의 음운학의 내용을 적어넣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문서나 현판 글씨로 친필이 남아 있는 다른 왕과 달리 세종의 친필은 전해지는 것이 하나도 없어 비교 대상도 없습니다. 배 씨도 이 사실을 바탕으로 상주본의 글씨가 최초의 세종 친필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압수수색 어렵다."…보상금 문제가 돼버린 '훈민정음'

대법원 판결로 소유권을 최종 확정받은 문화재청은 법적으로 압수수색 등을 통해 상주본을 환수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배 씨가 상주본을 여러 곳에 나눠서 보관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어서 압수수색을 해도 상주본을 온전히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문화재청의 입장입니다. 그러는 사이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 속에 보상금 액수만 부풀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만 남은 책이니 관심을 끊자고 하기에는 '그래도 훈민정음인데'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주본 논란이 11년째 해결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오늘 밤 KBS 9시 뉴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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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실물을 찾아줘도 10%는 보상금으로 준다. 훈민정음 가치가 1조 원이라고 하니, 나는 1,000억 원은 받아야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을 가지고 있다는 배익기 씨의 말입니다. 2008년 배 씨가 언론에 일부를 공개한 뒤로, 우여곡절 끝에 올해 7월 소유권이 배 씨가 아닌 문화재청에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상주본이 공개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보상금 때문입니다. 귀중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하고 합당한 보상금을 주면 당장에라도 상주본을 공개하겠다는 게 배 씨의 입장입니다.

상주본 논란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보상금을 마련해 문화재청과 함께 환수하겠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50억 원, 100억 원 얘기가 나온 것은 이 때문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언제부턴가는 상주본이 공개되느냐 마느냐가 보상금으로 얼마를 주느냐에 달린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상주본에는 세종대왕의 친필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배 씨가 가지고 있다는 상주본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최근 KBS 취재진과 만난 배익기 씨는 전혀 새로운 얘기를 하나 꺼냈습니다. 상주본은 당시 세종대왕이 직접 보던 이른바 어람본(御覽本)으로 책 안에 세종의 친필이 남아 있다는 겁니다. 배 씨는 나름대로 조사를 해서 어렵게 내린 결론이라면서 그 근거로 상주본의 제본 방식이 일반적인 고서적과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책 전체에 구멍을 뚫어 실로 묶는 것이 우리나라 고서적의 제본 방식인데, 상주본에는 책 안쪽에 또 다른 연결장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상주본 곳곳에 남아 있는 손글씨. 배익기 씨는 이 손글씨를 세종대왕의 친필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상주본 실물이 공개돼야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배 씨가 보상금 해결 전에는 누구에게도 실물을 보여줄 수 없다고 고집하고 있어서 뭐라 평가하기도 어렵습니다. 배 씨가 말한 세종의 친필은 위 사진에 있는 것으로 목판으로 찍은 본문 위쪽에 있는 손글씨입니다. 손글씨의 존재는 공개 당시부터 알려진 것으로 학계에서는 후대의 소장자가 책의 내용이나 자기 생각을 정리해 적어넣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참고서나 교과서에 필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런데 배 씨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현재 거의 전해지지 않는 것은 세종 당대에도 책을 아주 적게 찍어냈기 때문이라면서, 그렇게 귀한 책에 누가 함부로 필기를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또, 해례본의 내용은 세종이 직접 서술한 것인데, 세종 본인이 아니고서는 본문과 다른 내용을 감히 써넣을 수는 없다는 게 배 씨의 얘기입니다.

기존에 알려진 대로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해례본(간송본)보다 누락돼 없어진 낙장의 수가 많다는 건 상주본이 불리한 점이지만, 어람본으로서 세종의 친필이 남아있는 만큼 상주본이 간송본보다 가치가 더 높다는 것이 배 씨의 새로운 주장입니다. 천억 원 이상의 보상금을 받아야 하는 이유라는 것이죠.

2008년 촬영본 분석해보니…"상주본은 공개 당시부터 10장은 없었다."

취재진은 전문가와 함께 상주본의 가치를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실물을 본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는데, 2008년 배 씨의 상주본 공개를 독점 촬영한 안동MBC의 당시 촬영원본을 입수해 가지고 있는 안동대학교 천명희 교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언론사의 취재물이기는 하지만 배 씨가 이후로는 상주본을 거의 공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이 촬영원본이 상주본의 면모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취재와 보도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배 씨는 2015년 자신의 집에 불이 나자, 상주본은 무사하다며 낱장의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는데 2008년 촬영원본에는 낱장이 아닌 책자 형태로 된 상주본의 모습이 확인됩니다.

사진 속 컴퓨터에서 재생되는 화면이 2008년 안동MBC가 촬영한 영상. 표지와 함께 책이 공개된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컴퓨터 화면에 어둡게 보이는 것이 상주본의 표지
20여 분 분량의 촬영원본을 분석한 천명희 교수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전체 33장으로 된 책인데, 상주본은 공개 당시부터 최소한 10장 정도가 낙장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촬영원본에서 확인되는 가장 앞부분은 해례본의 9번째 장입니다. 1장이 2쪽으로 구성된다고 할 때 촬영원본 속 상주본은 1쪽부터 16쪽까지 8장이 없고, 17쪽부터 시작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배 씨가 당시 취재진들에게 "책 앞부분이 없고, 중간에도 1장이 없고, 끝에도 1장이 없다."고 말한 것이 촬영원본에 녹음돼 있습니다. 천 교수는 "표지와 함께 공개된 촬영원본에서 앞부분 8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2장이 없다는 배 씨의 말을 종합해보면 전체 1/3 정도 분량인 10장이 없는 불완전한 책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2015년 화재 때 1장 이상이 소실 또는 분실됐다고 배 씨가 밝히고 있는 만큼 최소 11장 이상이 없다고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상주본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배 씨가 정확히 밝힌 적은 없지만, 현재로서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분석입니다.

간송본도 맨 앞 2장은 낙장이었던 것을 후대에 복원한 것이라서 만약 상주본에 이 부분이 있었다면 최초의 발견이었겠지만 상주본에도 이 부분이 없다는 것은 배 씨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가치가 높다고 해도 3분의 1 이상이 없는 책으로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요구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천명희 교수의 지적입니다.

책에 있는 손글씨가 세종 친필이라는 배 씨의 주장에 대해 천 교수는 "처음 접하는 얘기라 뭐라 말하기는 조심스럽다."면서도 손글씨의 내용이 훈민정음의 체계와 중국의 음운학을 비교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학자가 훈민정음의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중국의 음운학의 내용을 적어넣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문서나 현판 글씨로 친필이 남아 있는 다른 왕과 달리 세종의 친필은 전해지는 것이 하나도 없어 비교 대상도 없습니다. 배 씨도 이 사실을 바탕으로 상주본의 글씨가 최초의 세종 친필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압수수색 어렵다."…보상금 문제가 돼버린 '훈민정음'

대법원 판결로 소유권을 최종 확정받은 문화재청은 법적으로 압수수색 등을 통해 상주본을 환수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배 씨가 상주본을 여러 곳에 나눠서 보관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어서 압수수색을 해도 상주본을 온전히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문화재청의 입장입니다. 그러는 사이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 속에 보상금 액수만 부풀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만 남은 책이니 관심을 끊자고 하기에는 '그래도 훈민정음인데'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주본 논란이 11년째 해결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오늘 밤 KBS 9시 뉴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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