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가면쓰면 징역 1년?…‘복면금지법’으로 홍콩시위 새국면

입력 2019.10.0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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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를 이끄는 조슈아 윙 홍콩 데모시스토당 대표가 '한국의 촛불 집회'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던 홍콩 시위가 18주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홍콩 시위는 중국과 홍콩 사이의 범죄인 인도 법안인 ‘송환법’ 철회를 요구하며 시작됐습니다. 홍콩에 대한 중국의 통제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송환법마저 실행되면 반중 의견을 말하는 시민들이 중국에 보내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에서부터였습니다. 현재 송환법은 홍콩 정부가 공식 철회했습니다. 하지만 시위는 점차 격화되고 있습니다. 홍콩 정부가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입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폭도'라고 규정했습니다. 홍콩 경찰들은 진압봉, 최루탄 등을 쓰며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강경 진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난달 29일엔 인도네시아인 기자가 경찰이 쏜 고무탄에 맞아 오른쪽 눈을 실명했습니다. 지난 1일에는 경찰이 쏜 실탄에 18살 고등학생이 가슴을 맞아 크게 다치기도 했습니다. 공포감을 넘어 시민의 생명이 위태로워진 상황을 홍콩 시민들은 두 눈으로 본 것입니다. 이에 홍콩 시민들은 정부에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한 것을 철회할 것과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인 조사,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경찰 해체 그리고 행정장관 직선제 시행 등을 요구하며 강경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홍콩 시민의 요구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사실상 계엄령인 '긴급정황 규례 조례'를 50여 년 만에 부활시켜 대응했습니다. 이 법령은 1922년 제정된 제도로 공중의 안전을 위협하는 비상 상황에 홍콩의 입법회 승인 없이 행정장관이 법령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한 조례입니다. 이 법을 이용해 지난 4일 오후 홍콩 정부는 모든 공공 집회에 복면을 착용하지 못하게 하고 집회가 없어도 공공장소라면 경찰관이 복면을 착용한 모든 시민에게 복면을 벗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복면 금지법' 을 실행했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1년 징역형이나 홍콩달러로 2만 5천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80만 원 상당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입니다.


이에 대해 시위대는 '방어권'을 언급하면서 시위는 점차 격화되고 있습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공영방송 RTHK 등은 복면금지법이 시행된 뒤에도 복면과 가면 등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가 도심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습니다. 또 공공건물이나 친중국 기물이 파손됐고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며 해산에 나섰고 시위대는 화염병과 쇠파이프로 저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시위대 일부에서는 홍콩 자치정부를 부정하고 자체 임시정부 수립 계획을 담은 '홍콩 임시정부 선언'을 공표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한 강경 진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지난 4일, 복면 금지법 반대 집회에 참여한 14살 소년이 허벅지 부근에 경찰이 쏜 실탄을 맞고 병원으로 이송되는 등 유혈 사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홍콩 정부가 복면 금지법 위법 행위로 시위자 수십 명을 체포했다고 현지 언론은 추정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10살쯤 되는 어린아이도 있었다는 목격자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홍콩 시위에 기름을 부은 복면 금지법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실행될 뻔했습니다. 특정 시위에서 복면을 금지하자는 논의는 2003년과 2006년, 2009년 등에 추진됐다가 국회 임기 만료 등으로 법제화되지 못하고 폐기됐습니다. 가장 최근 논란은 2015년'민중총궐기 집회' 때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특히 복면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IS도 그렇게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굴을 감추고서"라며 복면 금지법의 필요성을 말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발언 이후 당시 새누리당에서는 '복면 시위 금지법'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자동 폐기됐던 지난 법들과 마찬가지로 국민 기본권 침해 논란과 함께 폐기됐습니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된 만큼 최대한 보장해야 하는데, 복면을 하면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해칠 수 있다는 추상적 가능성 때문에 집회나 시위 때 복면을 금지하는 건 과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외국 역시 집회나 시위 때 복면 금지에 대해선 신중합니다. 원천적으로 복면 금지를 시행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다만 미국과 독일, 캐나다, 프랑스 등 10여 개 국가에서 관련 조항은 있습니다. 하지만 집회나 시위와 관련된 목적이 아니라 대부분 종교적 이유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복면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1800년대 소작농 보호 정책을 반대하는 농장주들이 인디언으로 변장한 뒤 지주나 보안관을 공격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복면 금지를 도입했습니다. 1950년대부터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단이 그들의 특유의 두건을 쓰고 집단 폭력 행위를 하자 이를 막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종교적 이유로 복면 금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정교분리가 원칙이다보니 공공장소에서는 공식적으로 종교적 복장이나 상징물을 착용할 수 없습니다. 부르카나 히잡 등의 복면이 문제가 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은 폭력과 테러 상황이 아니라면 복면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지 않습니다. 집회의 자유는 인간의 주된 기본권이란 인식이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

홍콩에서 사실상의 계엄령으로 실행한 복면금지법과 관련해 전 세계에서 다양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마르타 후르타도 대변인은 홍콩 복면 금지법과 관련해 "어떠한 규제도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면서 "평화적으로 집회할 수 있는 자유는 근본적 권리이며, 가능한 최대로 제한 없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미국 의회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트위터에서 복면금지법에 대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킬 뿐이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홍콩 시민들의 격화되는 시위에 복면금지법으로 맞서는 홍콩정부, 과연 복면금지법이 어떤 상황을 불러오게 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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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08 13:45:45
    취재K
홍콩 시위를 이끄는 조슈아 윙 홍콩 데모시스토당 대표가 '한국의 촛불 집회'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던 홍콩 시위가 18주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홍콩 시위는 중국과 홍콩 사이의 범죄인 인도 법안인 ‘송환법’ 철회를 요구하며 시작됐습니다. 홍콩에 대한 중국의 통제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송환법마저 실행되면 반중 의견을 말하는 시민들이 중국에 보내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에서부터였습니다. 현재 송환법은 홍콩 정부가 공식 철회했습니다. 하지만 시위는 점차 격화되고 있습니다. 홍콩 정부가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입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폭도'라고 규정했습니다. 홍콩 경찰들은 진압봉, 최루탄 등을 쓰며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강경 진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난달 29일엔 인도네시아인 기자가 경찰이 쏜 고무탄에 맞아 오른쪽 눈을 실명했습니다. 지난 1일에는 경찰이 쏜 실탄에 18살 고등학생이 가슴을 맞아 크게 다치기도 했습니다. 공포감을 넘어 시민의 생명이 위태로워진 상황을 홍콩 시민들은 두 눈으로 본 것입니다. 이에 홍콩 시민들은 정부에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한 것을 철회할 것과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인 조사,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경찰 해체 그리고 행정장관 직선제 시행 등을 요구하며 강경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홍콩 시민의 요구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사실상 계엄령인 '긴급정황 규례 조례'를 50여 년 만에 부활시켜 대응했습니다. 이 법령은 1922년 제정된 제도로 공중의 안전을 위협하는 비상 상황에 홍콩의 입법회 승인 없이 행정장관이 법령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한 조례입니다. 이 법을 이용해 지난 4일 오후 홍콩 정부는 모든 공공 집회에 복면을 착용하지 못하게 하고 집회가 없어도 공공장소라면 경찰관이 복면을 착용한 모든 시민에게 복면을 벗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복면 금지법' 을 실행했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1년 징역형이나 홍콩달러로 2만 5천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80만 원 상당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입니다.


이에 대해 시위대는 '방어권'을 언급하면서 시위는 점차 격화되고 있습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공영방송 RTHK 등은 복면금지법이 시행된 뒤에도 복면과 가면 등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가 도심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습니다. 또 공공건물이나 친중국 기물이 파손됐고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며 해산에 나섰고 시위대는 화염병과 쇠파이프로 저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시위대 일부에서는 홍콩 자치정부를 부정하고 자체 임시정부 수립 계획을 담은 '홍콩 임시정부 선언'을 공표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한 강경 진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지난 4일, 복면 금지법 반대 집회에 참여한 14살 소년이 허벅지 부근에 경찰이 쏜 실탄을 맞고 병원으로 이송되는 등 유혈 사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홍콩 정부가 복면 금지법 위법 행위로 시위자 수십 명을 체포했다고 현지 언론은 추정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10살쯤 되는 어린아이도 있었다는 목격자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홍콩 시위에 기름을 부은 복면 금지법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실행될 뻔했습니다. 특정 시위에서 복면을 금지하자는 논의는 2003년과 2006년, 2009년 등에 추진됐다가 국회 임기 만료 등으로 법제화되지 못하고 폐기됐습니다. 가장 최근 논란은 2015년'민중총궐기 집회' 때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특히 복면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IS도 그렇게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굴을 감추고서"라며 복면 금지법의 필요성을 말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발언 이후 당시 새누리당에서는 '복면 시위 금지법'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자동 폐기됐던 지난 법들과 마찬가지로 국민 기본권 침해 논란과 함께 폐기됐습니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된 만큼 최대한 보장해야 하는데, 복면을 하면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해칠 수 있다는 추상적 가능성 때문에 집회나 시위 때 복면을 금지하는 건 과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외국 역시 집회나 시위 때 복면 금지에 대해선 신중합니다. 원천적으로 복면 금지를 시행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다만 미국과 독일, 캐나다, 프랑스 등 10여 개 국가에서 관련 조항은 있습니다. 하지만 집회나 시위와 관련된 목적이 아니라 대부분 종교적 이유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복면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1800년대 소작농 보호 정책을 반대하는 농장주들이 인디언으로 변장한 뒤 지주나 보안관을 공격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복면 금지를 도입했습니다. 1950년대부터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단이 그들의 특유의 두건을 쓰고 집단 폭력 행위를 하자 이를 막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종교적 이유로 복면 금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정교분리가 원칙이다보니 공공장소에서는 공식적으로 종교적 복장이나 상징물을 착용할 수 없습니다. 부르카나 히잡 등의 복면이 문제가 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은 폭력과 테러 상황이 아니라면 복면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지 않습니다. 집회의 자유는 인간의 주된 기본권이란 인식이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
홍콩에서 사실상의 계엄령으로 실행한 복면금지법과 관련해 전 세계에서 다양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마르타 후르타도 대변인은 홍콩 복면 금지법과 관련해 "어떠한 규제도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면서 "평화적으로 집회할 수 있는 자유는 근본적 권리이며, 가능한 최대로 제한 없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미국 의회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트위터에서 복면금지법에 대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킬 뿐이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홍콩 시민들의 격화되는 시위에 복면금지법으로 맞서는 홍콩정부, 과연 복면금지법이 어떤 상황을 불러오게 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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