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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의 나라…‘도넛 국경’의 사연
입력 2019.10.12 (22:01) 수정 2019.10.12 (22:31)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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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의 나라…‘도넛 국경’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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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중동의 아라비아 반도는 드넓은 사막으로 알고 있지만 반도 동쪽은 험준한 바위로 이뤄진 산악 지역입니다.

특히 이곳에선 아주 특별한 형태의 국경을 만날 수 있는데요.

아랍에미리트 땅 안에 오만의 일부 지역이 있고, 또 그 안에 다시 아랍에미리트 땅이 자리잡고 있어서, 국경 모습이 마치 '도넛'을 떠올리게 합니다.

왜 이런 국경이 생겼을까요? 두바이 박석호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중동의 경제 중심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빌딩 숲을 벗어나, 황금빛 사막에 놓인 아스팔트를 모래 먼지와 함께 끝없이 달리면, 해발 3,000미터가 넘는 바위 산들이 눈앞을 가로 막습니다.

험준한 고개를 넘어서니 공사가 한창인 소도시가 나타나고, 작은 샛길로 들어서자 오만 마드하 방문을 환영한다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철책도, 검문소도, 세관도 통과하지 않았는데, 휴대전화는 갑자기 로밍으로 전환되고, 주위에 있는 깃발은 어느새 아랍에미리트 국기에서 오만 국기로 바뀌었습니다.

[유시프 알 사디/마드하 주민 : "이곳 오만 마드하는 아랍에미리트 세 지역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쪽이 푸자이라, 20km쯤 가면 라스알카이마, 이쪽은 샤르자죠."]

지도로 살펴 보니 마드하는 오만 본토에서 따로 떨어져 아랍에미리트 땅 안에 갇혀 있는데, 그 마드하 안에는 다시 아랍에미리트 영토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국경 모양이 위 아래가 눌린 '도넛'처럼 생긴 겁니다.

왜 이런 국경선이 생긴 걸까?

옛날에 마드하 사람들이 살던 곳을 찾아가 봤습니다.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오랜 침식으로 만들어진 계곡을 가다듬은 비포장 도로.

길 양쪽의 절벽은 바위와 흙이 섞인 퇴적층입니다.

이 곳은 과거 마드하 주민들이 이용하던 길입니다. 계곡을 따라서 길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비만 오면 강으로 변하던 곳이었습니다.

아라비아해의 습한 바람이 산맥을 만나 비를 뿌리기 때문인데, 덕분에 마드하 원주민들이 살던 곳은 척박한 인근 지역과는 달리 대추야자 나무가 가득합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곳곳에 맑은 물이 샘솟는 우물이 있습니다.

["농장에서 우물을 쓰는 곳도 있고, 지하수를 사용하기도 하고, 계곡 물을 끌어오기도 합니다."]

800년 넘게 이곳을 지켜온 나무는 이 지역에 가득했던 물의 기운을 상징합니다.

이 나무 주변에는 아직도 과일 농장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대추야자로 유명하고, 석류, 레몬, 망고도 자랍니다. 과거에는 벼도 키우고 밀도 경작했었습니다."]

그렇다면 풍부했던 수량이 국경선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마을의 역사를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원로를 찾아가 봤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렘 알 마드하니/원로 : "여기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천년 무렵입니다. 이 지역은 3분의 2 이상이 유적지나 마찬가지인데, 과거 인구 밀도가 높았다는 뜻이죠."]

마을 박물관에 있는 유물들은 원로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토기와 청동검을 비롯한 고대 유물들의 수가 적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세와 근현대 사료들도 많이 전시돼 있는데 14세기에 만들어진 중국의 칼이나 20세기 초 영국에서 들어온 총도 눈에 띕니다.

[무함마드 알 사디/박물관 학예사 : "이곳은 과거 무역의 통로였습니다. 또 대포나 총도 많이 발견되는데 많은 침략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다와 사막을 잇는 곳인데다 물과 식량이 풍부했으니 전쟁과 통상을 위해 꼭 필요한 요충지였던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외부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고, 1971년 인근 부족들이 아랍에미리트연합을 따르기로 했을 때 마드하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당시 더 강대국이었던 오만을 선택했습니다.

지금의 국경은 여기에서 비롯된 겁니다.

[무함마드 빈 살렘 알 마드하니/원로 : "옛날에 마드하는 부유했고 중요한 지역이었죠. 땅도 지금보다 더 넓었습니다. 지금은 국경선 때문에 좀 특이해졌죠."]

그런데 국경선이 그어진 후에 아랍에미리트가 석유 강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물보다 석유가 더 중요한 세상에서 마드하의 위상이 약화된 겁니다.

게다가 최근엔 기후 변화로 강수량까지 줄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이런 인공 폭포를 만들어서 아름다운 과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드하 주민의 상당 수가 아랍에미리트 지역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형제나 사촌 사이에서도 아랍에미리트와 오만으로 국적이 나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랍에미리트에 살더라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반드시 고향을 찾아 가족을 만납니다.

[마흐마드 알마드하니 : "금요일마다 사촌까지 모입니다. 점심식사 자리가 오후 4시까지 이어지죠.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손님도 옵니다. 좋은 전통이고 오래 유지될 겁니다."]

오만 정부도 최근에는 마드하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며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압둘라 알 하미디/마드하 부족장 : "(과거엔 낙타를 탔지만) 지금은 길도 뚫리고 집집마다 차도 있어요. 위급한 일이 있으면 경찰과 군이 헬리콥터도 보냅니다."]

물과 석유 때문에 독특한 국경과 부침의 역사를 갖게 된 곳.

주민들은 언젠가 이곳에 또다른 부흥의 시대가 오리라 믿으며 마드하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오만 마드하에서 박석호입니다.
  • 나라 안의 나라…‘도넛 국경’의 사연
    • 입력 2019.10.12 (22:01)
    • 수정 2019.10.12 (22:31)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나라 안의 나라…‘도넛 국경’의 사연
[앵커]

중동의 아라비아 반도는 드넓은 사막으로 알고 있지만 반도 동쪽은 험준한 바위로 이뤄진 산악 지역입니다.

특히 이곳에선 아주 특별한 형태의 국경을 만날 수 있는데요.

아랍에미리트 땅 안에 오만의 일부 지역이 있고, 또 그 안에 다시 아랍에미리트 땅이 자리잡고 있어서, 국경 모습이 마치 '도넛'을 떠올리게 합니다.

왜 이런 국경이 생겼을까요? 두바이 박석호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중동의 경제 중심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빌딩 숲을 벗어나, 황금빛 사막에 놓인 아스팔트를 모래 먼지와 함께 끝없이 달리면, 해발 3,000미터가 넘는 바위 산들이 눈앞을 가로 막습니다.

험준한 고개를 넘어서니 공사가 한창인 소도시가 나타나고, 작은 샛길로 들어서자 오만 마드하 방문을 환영한다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철책도, 검문소도, 세관도 통과하지 않았는데, 휴대전화는 갑자기 로밍으로 전환되고, 주위에 있는 깃발은 어느새 아랍에미리트 국기에서 오만 국기로 바뀌었습니다.

[유시프 알 사디/마드하 주민 : "이곳 오만 마드하는 아랍에미리트 세 지역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쪽이 푸자이라, 20km쯤 가면 라스알카이마, 이쪽은 샤르자죠."]

지도로 살펴 보니 마드하는 오만 본토에서 따로 떨어져 아랍에미리트 땅 안에 갇혀 있는데, 그 마드하 안에는 다시 아랍에미리트 영토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국경 모양이 위 아래가 눌린 '도넛'처럼 생긴 겁니다.

왜 이런 국경선이 생긴 걸까?

옛날에 마드하 사람들이 살던 곳을 찾아가 봤습니다.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오랜 침식으로 만들어진 계곡을 가다듬은 비포장 도로.

길 양쪽의 절벽은 바위와 흙이 섞인 퇴적층입니다.

이 곳은 과거 마드하 주민들이 이용하던 길입니다. 계곡을 따라서 길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비만 오면 강으로 변하던 곳이었습니다.

아라비아해의 습한 바람이 산맥을 만나 비를 뿌리기 때문인데, 덕분에 마드하 원주민들이 살던 곳은 척박한 인근 지역과는 달리 대추야자 나무가 가득합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곳곳에 맑은 물이 샘솟는 우물이 있습니다.

["농장에서 우물을 쓰는 곳도 있고, 지하수를 사용하기도 하고, 계곡 물을 끌어오기도 합니다."]

800년 넘게 이곳을 지켜온 나무는 이 지역에 가득했던 물의 기운을 상징합니다.

이 나무 주변에는 아직도 과일 농장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대추야자로 유명하고, 석류, 레몬, 망고도 자랍니다. 과거에는 벼도 키우고 밀도 경작했었습니다."]

그렇다면 풍부했던 수량이 국경선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마을의 역사를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원로를 찾아가 봤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렘 알 마드하니/원로 : "여기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천년 무렵입니다. 이 지역은 3분의 2 이상이 유적지나 마찬가지인데, 과거 인구 밀도가 높았다는 뜻이죠."]

마을 박물관에 있는 유물들은 원로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토기와 청동검을 비롯한 고대 유물들의 수가 적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세와 근현대 사료들도 많이 전시돼 있는데 14세기에 만들어진 중국의 칼이나 20세기 초 영국에서 들어온 총도 눈에 띕니다.

[무함마드 알 사디/박물관 학예사 : "이곳은 과거 무역의 통로였습니다. 또 대포나 총도 많이 발견되는데 많은 침략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다와 사막을 잇는 곳인데다 물과 식량이 풍부했으니 전쟁과 통상을 위해 꼭 필요한 요충지였던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외부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고, 1971년 인근 부족들이 아랍에미리트연합을 따르기로 했을 때 마드하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당시 더 강대국이었던 오만을 선택했습니다.

지금의 국경은 여기에서 비롯된 겁니다.

[무함마드 빈 살렘 알 마드하니/원로 : "옛날에 마드하는 부유했고 중요한 지역이었죠. 땅도 지금보다 더 넓었습니다. 지금은 국경선 때문에 좀 특이해졌죠."]

그런데 국경선이 그어진 후에 아랍에미리트가 석유 강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물보다 석유가 더 중요한 세상에서 마드하의 위상이 약화된 겁니다.

게다가 최근엔 기후 변화로 강수량까지 줄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이런 인공 폭포를 만들어서 아름다운 과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드하 주민의 상당 수가 아랍에미리트 지역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형제나 사촌 사이에서도 아랍에미리트와 오만으로 국적이 나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랍에미리트에 살더라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반드시 고향을 찾아 가족을 만납니다.

[마흐마드 알마드하니 : "금요일마다 사촌까지 모입니다. 점심식사 자리가 오후 4시까지 이어지죠.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손님도 옵니다. 좋은 전통이고 오래 유지될 겁니다."]

오만 정부도 최근에는 마드하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며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압둘라 알 하미디/마드하 부족장 : "(과거엔 낙타를 탔지만) 지금은 길도 뚫리고 집집마다 차도 있어요. 위급한 일이 있으면 경찰과 군이 헬리콥터도 보냅니다."]

물과 석유 때문에 독특한 국경과 부침의 역사를 갖게 된 곳.

주민들은 언젠가 이곳에 또다른 부흥의 시대가 오리라 믿으며 마드하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오만 마드하에서 박석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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