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2019 태풍 평행이론…韓日 할퀸 ‘최다·최악’의 악몽들

입력 2019.10.1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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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전까지 우리 국민에게 태풍 하면 바로 떠오르는 한 단어가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했던 1959년 '사라'입니다. 이후 2002년 '루사', 2003년 '매미'가 한반도에 막대한 피해를 몰고 와 그 자리를 대체했지만,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올해 태풍 기록을 따져보다 보면 '사라'가 할퀴고 지난 '1959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60년 만에 재현된 韓 최다 태풍 기록 '7개'

국가기록원 제공 1959년 태풍 ‘사라’ 관련 영상국가기록원 제공 1959년 태풍 ‘사라’ 관련 영상

올해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은 이달 초 '미탁'까지 포함해 모두 7개입니다. 이렇게 많은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준 해가 있을까 싶은데 있습니다. 바로 그 해, 1959년입니다. 1959년에도 4호 '윌다'부터 5호 '빌리', 6호 '엘런', 9호 '조안', 11호 '루이스', 13호 '노라', 14호 '사라'까지 7개의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줬습니다. 특히 7번째 태풍 '사라'는 추석 연휴 한반도를 강타하며 8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태풍으로 남아 있습니다.

태풍 '하기비스', 1959년 '베라' 이후 日에 최악 피해

1959년 태풍 ‘베라’로 홍수가 난 나고야 지방. 사진 제공 : 일본 Chubu-Nippon Broadcasting1959년 태풍 ‘베라’로 홍수가 난 나고야 지방. 사진 제공 : 일본 Chubu-Nippon Broadcasting

1959년에 주목하는 건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지난 주말 태풍 '하기비스'가 할퀴고 지난 일본에서도 1959년이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당시 14호 태풍 '사라'가 한반도를 덮친 지 불과 열흘 뒤, 15호 태풍 '베라'가 일본 열도를 관통하며 '최악'의 피해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올해 태풍 '미탁'이 한반도에 큰 상처를 낸 지 열흘 만에 '하기비스'가 일본을 휩쓴 것과 판박이입니다. 태풍 '베라'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만 5천여 명, 부상자는 무려 6만 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올해 '하기비스'가 '베라' 이후 60년 만에 최악의 피해를 남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959-2019 태풍 평행이론, 왜?

이 정도면 1959년과 2019년의 태풍은 '평행이론'이라 할 만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무엇이 한국과 일본 양국에 60년 전의 악몽을 되풀이하게 한 걸까요? 당시 기상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1959년 9월 16일 밤 9시 지상 일기도. 자료 출처 : 기상자료개방포털1959년 9월 16일 밤 9시 지상 일기도. 자료 출처 : 기상자료개방포털

태풍 '사라'가 남해안에 상륙하기 하루 전인 1959년 9월 16일 밤 9시쯤 작성된 천기도입니다. 기상청의 전신인 국립중앙관상대에서 작성한 것으로 요즘 말하는 일기도입니다. 컴퓨터가 자동으로 작성하는 요즘의 일기도와 달리, 과거에는 이렇게 사람이 직접 수치를 적고 그 수치를 바탕으로 선을 이어가며 일기도를 그렸습니다.

일기도에서 제주 남쪽에 겹겹이 둘러싼 동심원 형태의 선(붉은색 원), 보이시죠? 14호 태풍 '사라'입니다. 한반도 코앞까지 북상했는데 중심기압이 935hPa(헥토파스칼)로 현재 기상청 기준 '매우 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라'가 상륙한 당시 부산에서 관측된 최저 기압은 951.5헥토파스칼(hPa)로 지금까지도 국내에서 깨지지 않는 가장 낮은 기압 관측치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강력한 태풍이 추석 무렵, 한반도에 상륙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위 일기도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 동쪽 해상을 보면 'H' 표시, 즉 고기압(high pressure, 파란색 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양한 자료를 분석해야 이 고기압의 정확한 정체가 밝혀지겠지만, 일단 이 일기도로만 봐서는 태풍의 진로를 좌우하는 북태평양고기압일 가능성이 큽니다. 결과적으로 북태평양고기압이 일본 열도를 뒤덮고 있었던 탓에 주로 일본을 향하는 예년의 9월 태풍과 달리 '사라'는 경남 남해안에 상륙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2019 10월 2일 오전 9시 지상 일기도. 자료 출처 : 기상청2019 10월 2일 오전 9시 지상 일기도. 자료 출처 : 기상청

올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태풍 '미탁'이 상륙하기 직전 일기도를 보면 일본 열도에 고기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탁' 역시 좀처럼 꺼지지 않는 북태평양고기압의 세력 때문에 10월인데도 한반도에 상륙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예년보다 유난히 늦게까지 세력을 유지한 북태평양고기압이 1959년에도, 2019년에도 매서운 가을 태풍을 한반도로 오게 한 주범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 고기압이 계절의 흐름에 밀려 동쪽으로 수축하는 과정에서 1959년에는 '베라'가, 2019년에는 '하기비스'가 각각 열흘 뒤 일본 열도를 덮쳤습니다.

5km 상공 고도장 편차. 자료 제공 : 박두선 조선대 교수5km 상공 고도장 편차. 자료 제공 : 박두선 조선대 교수

좀 더 기간을 넓혀 8~9월로 봐도 1959년과 2019년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북태평양고기압의 세력을 알 수 있는 5km 상공 고도장(500hPa eddy geopotential height)을 보면 두 해 모두 일본 열도 부근이 양(+)의 값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료를 분석한 박두선 조선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일본 상공에 상대적으로 고압대가 형성되면서 더 많은 태풍이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북상할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고 밝혔습니다.

또 같은 기간 바닷물 온도는 두 해 모두 남해상 부근이 유독 예년보다 높았는데,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태풍이 크게 세력을 잃지 않고 한반도와 일본에 상륙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60년 만에 되풀이된 악몽…달라진 점은?

1959년의 한국과 일본을 덮친 태풍들은 막대한 인명을 앗아갔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큰 자연 재난이 닥친 것입니다. 이렇게 수백, 수천 명씩 목숨을 잃었던 과거와 비교하면 최근에는 태풍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크게 줄었습니다. 과거보다 기상 예보가 발전하고, 국가와 국민의 재난 대응 능력도 크게 향상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설물이 크게 늘고, 특히 태풍에 취약한 해안가에 도시가 발달하면서 재산 피해는 압도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명 피해도 과거보다 줄긴 했지만, 다른 재난과 비교하면 전체 재난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여전히 상당합니다. 태풍은 여전히 악몽인 셈입니다.

더 우려되는 점은 그 주기가 짧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상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로 대기와 해양이 동시에 데워지면서 태풍의 에너지원인 수증기는 늘어나고, 방패막인 제트 기류는 약해지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최다·최악'이라는 기록들을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접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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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2019 태풍 평행이론…韓日 할퀸 ‘최다·최악’의 악몽들
    • 입력 2019-10-14 16:37:45
    취재K
2000년대 전까지 우리 국민에게 태풍 하면 바로 떠오르는 한 단어가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했던 1959년 '사라'입니다. 이후 2002년 '루사', 2003년 '매미'가 한반도에 막대한 피해를 몰고 와 그 자리를 대체했지만,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올해 태풍 기록을 따져보다 보면 '사라'가 할퀴고 지난 '1959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60년 만에 재현된 韓 최다 태풍 기록 '7개'

국가기록원 제공 1959년 태풍 ‘사라’ 관련 영상
올해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은 이달 초 '미탁'까지 포함해 모두 7개입니다. 이렇게 많은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준 해가 있을까 싶은데 있습니다. 바로 그 해, 1959년입니다. 1959년에도 4호 '윌다'부터 5호 '빌리', 6호 '엘런', 9호 '조안', 11호 '루이스', 13호 '노라', 14호 '사라'까지 7개의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줬습니다. 특히 7번째 태풍 '사라'는 추석 연휴 한반도를 강타하며 8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태풍으로 남아 있습니다.

태풍 '하기비스', 1959년 '베라' 이후 日에 최악 피해

1959년 태풍 ‘베라’로 홍수가 난 나고야 지방. 사진 제공 : 일본 Chubu-Nippon Broadcasting
1959년에 주목하는 건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지난 주말 태풍 '하기비스'가 할퀴고 지난 일본에서도 1959년이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당시 14호 태풍 '사라'가 한반도를 덮친 지 불과 열흘 뒤, 15호 태풍 '베라'가 일본 열도를 관통하며 '최악'의 피해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올해 태풍 '미탁'이 한반도에 큰 상처를 낸 지 열흘 만에 '하기비스'가 일본을 휩쓴 것과 판박이입니다. 태풍 '베라'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만 5천여 명, 부상자는 무려 6만 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올해 '하기비스'가 '베라' 이후 60년 만에 최악의 피해를 남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959-2019 태풍 평행이론, 왜?

이 정도면 1959년과 2019년의 태풍은 '평행이론'이라 할 만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무엇이 한국과 일본 양국에 60년 전의 악몽을 되풀이하게 한 걸까요? 당시 기상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1959년 9월 16일 밤 9시 지상 일기도. 자료 출처 : 기상자료개방포털
태풍 '사라'가 남해안에 상륙하기 하루 전인 1959년 9월 16일 밤 9시쯤 작성된 천기도입니다. 기상청의 전신인 국립중앙관상대에서 작성한 것으로 요즘 말하는 일기도입니다. 컴퓨터가 자동으로 작성하는 요즘의 일기도와 달리, 과거에는 이렇게 사람이 직접 수치를 적고 그 수치를 바탕으로 선을 이어가며 일기도를 그렸습니다.

일기도에서 제주 남쪽에 겹겹이 둘러싼 동심원 형태의 선(붉은색 원), 보이시죠? 14호 태풍 '사라'입니다. 한반도 코앞까지 북상했는데 중심기압이 935hPa(헥토파스칼)로 현재 기상청 기준 '매우 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라'가 상륙한 당시 부산에서 관측된 최저 기압은 951.5헥토파스칼(hPa)로 지금까지도 국내에서 깨지지 않는 가장 낮은 기압 관측치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강력한 태풍이 추석 무렵, 한반도에 상륙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위 일기도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 동쪽 해상을 보면 'H' 표시, 즉 고기압(high pressure, 파란색 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양한 자료를 분석해야 이 고기압의 정확한 정체가 밝혀지겠지만, 일단 이 일기도로만 봐서는 태풍의 진로를 좌우하는 북태평양고기압일 가능성이 큽니다. 결과적으로 북태평양고기압이 일본 열도를 뒤덮고 있었던 탓에 주로 일본을 향하는 예년의 9월 태풍과 달리 '사라'는 경남 남해안에 상륙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2019 10월 2일 오전 9시 지상 일기도. 자료 출처 : 기상청
올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태풍 '미탁'이 상륙하기 직전 일기도를 보면 일본 열도에 고기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탁' 역시 좀처럼 꺼지지 않는 북태평양고기압의 세력 때문에 10월인데도 한반도에 상륙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예년보다 유난히 늦게까지 세력을 유지한 북태평양고기압이 1959년에도, 2019년에도 매서운 가을 태풍을 한반도로 오게 한 주범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 고기압이 계절의 흐름에 밀려 동쪽으로 수축하는 과정에서 1959년에는 '베라'가, 2019년에는 '하기비스'가 각각 열흘 뒤 일본 열도를 덮쳤습니다.

5km 상공 고도장 편차. 자료 제공 : 박두선 조선대 교수
좀 더 기간을 넓혀 8~9월로 봐도 1959년과 2019년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북태평양고기압의 세력을 알 수 있는 5km 상공 고도장(500hPa eddy geopotential height)을 보면 두 해 모두 일본 열도 부근이 양(+)의 값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료를 분석한 박두선 조선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일본 상공에 상대적으로 고압대가 형성되면서 더 많은 태풍이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북상할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고 밝혔습니다.

또 같은 기간 바닷물 온도는 두 해 모두 남해상 부근이 유독 예년보다 높았는데,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태풍이 크게 세력을 잃지 않고 한반도와 일본에 상륙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60년 만에 되풀이된 악몽…달라진 점은?

1959년의 한국과 일본을 덮친 태풍들은 막대한 인명을 앗아갔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큰 자연 재난이 닥친 것입니다. 이렇게 수백, 수천 명씩 목숨을 잃었던 과거와 비교하면 최근에는 태풍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크게 줄었습니다. 과거보다 기상 예보가 발전하고, 국가와 국민의 재난 대응 능력도 크게 향상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설물이 크게 늘고, 특히 태풍에 취약한 해안가에 도시가 발달하면서 재산 피해는 압도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명 피해도 과거보다 줄긴 했지만, 다른 재난과 비교하면 전체 재난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여전히 상당합니다. 태풍은 여전히 악몽인 셈입니다.

더 우려되는 점은 그 주기가 짧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상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로 대기와 해양이 동시에 데워지면서 태풍의 에너지원인 수증기는 늘어나고, 방패막인 제트 기류는 약해지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최다·최악'이라는 기록들을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접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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