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노동자 보고서③] 직원도 교원도 아닌 ‘유령강사’ 아직도 서울대에?

입력 2019.10.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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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환기도 안 되는 계단 밑 휴게실에서 60대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얼마 뒤엔 학생식당과 카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30년 만에 파업에 나섰습니다. 모두 서울대학교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우리의 노동을 천대하며 정당한 대우를 거부하고 있다." … 학교의 일상을 지탱해 온 서울대 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KBS는 서울대 노동자들의 싵태를 3회에 걸쳐 조명합니다.

[글 싣는 순서]
① ‘분절된 미래’…서울대에는 ‘자체 직원’이 있다
② ‘정규직화’ 약속은 정말 지켜졌나요?
③ 직원도 교원도 아닌 '유령강사' 아직도 서울대에?


"학교에서 보면 저희는 약간 유령같은 '없는 존재'인 거예요."

2001년부터 지금까지 18년간 언어교육원에서 외국인 어학연수생과 교환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온 A 씨의 말이다.

20년 가까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 A 씨의 학내 신분은 '교원'이 아니라 '자체직원'이다.

A 씨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일반 사무직과 업무형태가 다르다. 주 5일씩 강의가 있지도 않고, 추가 강의에 대한 급여도 강의 시간당 일정액을 기준으로 받는다.

하지만 한국어강의는 고등교육법상 정규교육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은 고등교육법상의 교원이 될 수 없다. 이에 학교는 2013년부터 이들을 일반 행정 사무직원과 같은 '자체직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강사지만 직원이고 하는 일은 직원은 아닌, 그래서 A 씨는 자신을 유령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임금 적지만 대신 근로시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2001년부터 서울대 언어교육원에서 18년을 일했지만 매달 A씨가 손에 쥐는 돈은 230만 원 남짓, 이마저도 초과강의를 4시간 정도 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다.

2006년부터 무기계약직 전임교원으로 전환돼 매년 연봉계약을 체결했지만 13년간 연봉총액은 800만 원 정도 올랐다. 월급으로 따지면 13년간 62만 원가량 오른 셈이다.

이처럼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계속 한국어 강사 일을 하는 이유는 "근무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고 남는 시간을 조금 더 여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A 씨는 말했다.

A 씨는 언어교육원에서 10주 교육과정이 끝나면 돌아오는 3주간의 준비 기간에는 일종의 '방학'처럼 근무를 하지 않는다. 교육과정은 10주 교육, 3주 휴식, 10주 교육, 3주 휴식의 형태로 반복되는데, 이 3주간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기계약직 직원으로 월급을 받았기 때문에 3주간 쉬는 기간에도 월급은 똑같이 나온다. 이에 대해 A 씨는 "10주간 일한 것을 13주간 나눠서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대신 월급이 적은 것으로 이해했다는 의미다.

언어교육원 시간강사들 지난 6월 무기계약직 전환 전격 합의했지만..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에는 A 씨와 같은 전임교원 40명 외에 37명(현재 기준)의 시간강사가 있다. 모두 2년 이상 일했고, 10년 이상 일한 사람도 있지만, 그동안 매년 계약을 갱신한 비정규직이었다. 올해 초 이들은 고용불안 문제를 해결하고자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냈고, 그 결과 지난 6월 학교 측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기존 40명의 무기계약직 전임교원 외에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던 37명의 시간강사가 추가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무기계약직 전환 약속 이행을 위해 근로조건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학교 측은 37명의 시간강사 외에 40명의 전임교원과도 새롭게 표준근로계약 체결을 원했다. 그리고 전임교원과 시간강사에게 이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근로조건을 요구했다.

'방학' 3주 두고..근무해라 vs 근무 못한다

언어교육원이 기존 무기계약직 전임교원과 시간강사들에게 내민 표준근로계약서에 따르면 1년에 네 번 있는 3주씩의 '방학기간'에도 근무를 해야 했다. 그동안 전임교원도 시간강사도 10주 강의가 끝난 후 돌아오는 3주간의 강의준비 기간에는 근무를 하지 않았다.

강사들 입장에서는 급여를 늘려주지도 않으면서 근무시간은 1년에 12주, 거의 석 달이나 늘리겠다는 제안인 셈이다.

전임교원은 급여가 늘지도 않는데, 그동안 근무하지 않았던 '방학'에 근무를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시간강사 역시 그동안 방학이 있었고, 전임교원도 쉬고 있던 것을 알고 있으니 이 같은 학교 측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학교 관계자는 "그동안 쉬고 있던 게 비정상이었다"며 "기존 전임교원을 3주간 쉬지 못하게 해야 했는데, 시간강사와의 형평성 때문에 그동안 쉬는 것을 허용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제 모든 강사가 자체직원 신분이 되니 당연히 다른 자체직원과 마찬가지로 방학 없이 매주 근무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전임교원 한국어 강사'는 직원일까, 강사일까

언어교육원에서 일하는 무기계약직 전임교원 한국어 강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한국어 강사들은 본인들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근로계약이 체결되고, '자체직원'이 아닌 새로운 직군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의가 없는 기간에 굳이 근무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그동안 출근하지도 않았고, 학교에서 근로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A 씨는 "전임교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단 한 번도 방학 동안 출근하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시간강사 역시 이 같은 무기계약직 전환을 받아들이긴 어렵다.

하지만 학교 측은 무기계약직 전임교원을 자체직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모든 자체직원이 방학 없이 쉬는데, 동일한 분류로 돼 있는 자체직원이면서 1년에 석 달을 쉬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이 한국어 강사들의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체직원의 근로 형태를 계속 강요한다면 한국어 강사들과 서울대 언어교육원의 입장 차는 좁혀지기 어렵다. 결국, 당분간은 지난 6월 체결한 시간강사들의 무기계약직 전환 약속도 지켜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간강사들은 학교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고, 그동안 받지 못한 '연차수당과 주휴수당'을 받기 위한 노동청 진정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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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노동자 보고서③] 직원도 교원도 아닌 ‘유령강사’ 아직도 서울대에?
    • 입력 2019-10-15 10:00:24
    취재K
※ 지난 8월, 환기도 안 되는 계단 밑 휴게실에서 60대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얼마 뒤엔 학생식당과 카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30년 만에 파업에 나섰습니다. 모두 서울대학교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우리의 노동을 천대하며 정당한 대우를 거부하고 있다." … 학교의 일상을 지탱해 온 서울대 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KBS는 서울대 노동자들의 싵태를 3회에 걸쳐 조명합니다.

[글 싣는 순서]
① ‘분절된 미래’…서울대에는 ‘자체 직원’이 있다
② ‘정규직화’ 약속은 정말 지켜졌나요?
③ 직원도 교원도 아닌 '유령강사' 아직도 서울대에?


"학교에서 보면 저희는 약간 유령같은 '없는 존재'인 거예요."

2001년부터 지금까지 18년간 언어교육원에서 외국인 어학연수생과 교환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온 A 씨의 말이다.

20년 가까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 A 씨의 학내 신분은 '교원'이 아니라 '자체직원'이다.

A 씨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일반 사무직과 업무형태가 다르다. 주 5일씩 강의가 있지도 않고, 추가 강의에 대한 급여도 강의 시간당 일정액을 기준으로 받는다.

하지만 한국어강의는 고등교육법상 정규교육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은 고등교육법상의 교원이 될 수 없다. 이에 학교는 2013년부터 이들을 일반 행정 사무직원과 같은 '자체직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강사지만 직원이고 하는 일은 직원은 아닌, 그래서 A 씨는 자신을 유령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임금 적지만 대신 근로시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2001년부터 서울대 언어교육원에서 18년을 일했지만 매달 A씨가 손에 쥐는 돈은 230만 원 남짓, 이마저도 초과강의를 4시간 정도 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다.

2006년부터 무기계약직 전임교원으로 전환돼 매년 연봉계약을 체결했지만 13년간 연봉총액은 800만 원 정도 올랐다. 월급으로 따지면 13년간 62만 원가량 오른 셈이다.

이처럼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계속 한국어 강사 일을 하는 이유는 "근무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고 남는 시간을 조금 더 여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A 씨는 말했다.

A 씨는 언어교육원에서 10주 교육과정이 끝나면 돌아오는 3주간의 준비 기간에는 일종의 '방학'처럼 근무를 하지 않는다. 교육과정은 10주 교육, 3주 휴식, 10주 교육, 3주 휴식의 형태로 반복되는데, 이 3주간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기계약직 직원으로 월급을 받았기 때문에 3주간 쉬는 기간에도 월급은 똑같이 나온다. 이에 대해 A 씨는 "10주간 일한 것을 13주간 나눠서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대신 월급이 적은 것으로 이해했다는 의미다.

언어교육원 시간강사들 지난 6월 무기계약직 전환 전격 합의했지만..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에는 A 씨와 같은 전임교원 40명 외에 37명(현재 기준)의 시간강사가 있다. 모두 2년 이상 일했고, 10년 이상 일한 사람도 있지만, 그동안 매년 계약을 갱신한 비정규직이었다. 올해 초 이들은 고용불안 문제를 해결하고자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냈고, 그 결과 지난 6월 학교 측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기존 40명의 무기계약직 전임교원 외에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던 37명의 시간강사가 추가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무기계약직 전환 약속 이행을 위해 근로조건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학교 측은 37명의 시간강사 외에 40명의 전임교원과도 새롭게 표준근로계약 체결을 원했다. 그리고 전임교원과 시간강사에게 이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근로조건을 요구했다.

'방학' 3주 두고..근무해라 vs 근무 못한다

언어교육원이 기존 무기계약직 전임교원과 시간강사들에게 내민 표준근로계약서에 따르면 1년에 네 번 있는 3주씩의 '방학기간'에도 근무를 해야 했다. 그동안 전임교원도 시간강사도 10주 강의가 끝난 후 돌아오는 3주간의 강의준비 기간에는 근무를 하지 않았다.

강사들 입장에서는 급여를 늘려주지도 않으면서 근무시간은 1년에 12주, 거의 석 달이나 늘리겠다는 제안인 셈이다.

전임교원은 급여가 늘지도 않는데, 그동안 근무하지 않았던 '방학'에 근무를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시간강사 역시 그동안 방학이 있었고, 전임교원도 쉬고 있던 것을 알고 있으니 이 같은 학교 측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학교 관계자는 "그동안 쉬고 있던 게 비정상이었다"며 "기존 전임교원을 3주간 쉬지 못하게 해야 했는데, 시간강사와의 형평성 때문에 그동안 쉬는 것을 허용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제 모든 강사가 자체직원 신분이 되니 당연히 다른 자체직원과 마찬가지로 방학 없이 매주 근무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전임교원 한국어 강사'는 직원일까, 강사일까

언어교육원에서 일하는 무기계약직 전임교원 한국어 강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한국어 강사들은 본인들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근로계약이 체결되고, '자체직원'이 아닌 새로운 직군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의가 없는 기간에 굳이 근무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그동안 출근하지도 않았고, 학교에서 근로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A 씨는 "전임교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단 한 번도 방학 동안 출근하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시간강사 역시 이 같은 무기계약직 전환을 받아들이긴 어렵다.

하지만 학교 측은 무기계약직 전임교원을 자체직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모든 자체직원이 방학 없이 쉬는데, 동일한 분류로 돼 있는 자체직원이면서 1년에 석 달을 쉬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이 한국어 강사들의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체직원의 근로 형태를 계속 강요한다면 한국어 강사들과 서울대 언어교육원의 입장 차는 좁혀지기 어렵다. 결국, 당분간은 지난 6월 체결한 시간강사들의 무기계약직 전환 약속도 지켜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간강사들은 학교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고, 그동안 받지 못한 '연차수당과 주휴수당'을 받기 위한 노동청 진정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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