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누명]① “진술서 내용 완전 반대”…목격자 진술마저 조작한 경찰

입력 2019.10.18 (11:22) 수정 2019.10.1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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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20년 동안 옥살이를 한 윤 모 씨는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30년 전 자백이 강요에 의한 허위 자백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윤 씨의 주장으로 당시 경찰 수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윤 씨 주장은 좀 더 따져봐야 하지만, 30년 전 누명을 썼다가 간신히 빠져나온 용의자들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9차 사건 용의자였던 윤 모 군(당시 19살)과 2·7차 사건 용의자였던 박 모 씨(당시 29살)도 억울한 용의자 가운데 하나다. 이들의 억울함을 당시 KBS 취재자료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살펴봤다.



윤 군, 강제추행으로 잡혔다가 자백

경찰은 1990년 12월 20일 9차 사건 범인으로 윤 군을 잡아서 자백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9차 사건은 1990년 11월 15일 14살 김 모 양이 희생된 사건이다.

사건 34일 만에 용의자를 잡은 경찰은 윤 군이 9차 사건 6일 전인 11월 9일 20대 여성을 강제추행했고, 이 사건 범인으로 잡아 조사하던 중 윤 군이 9차 사건을 자백했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은 윤 군을 취재진 앞에 공개했다. 악기 공장 노동자였던 윤 군은 파란색 점퍼 차림으로 취재진 앞에 섰다. 윤 군은 10분가량 대화를 나눴는데, 당시 대화 장면을 보면 작은 목소리지만 범행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자백했다.

―범행 일체를 자백한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심경이 어때요?
▶마음이 편합니다.
자백한 동기가 어떻게 됩니까?
언젠가는 탄로 날 거 같아서….
경찰의 가혹 행위는 전혀 없었다 이거죠?

어디 맞거나 그런 거 없고요?

왜 죽이기까지 했어요?
소리쳐가지고 겁이 나가지고요, 목하고 입을 막았는데요….


"시키는 대로 자백했다" 범행 부인

경찰은 12월 22일 윤 군을 9차 사건 현장으로 데려가 현장검증을 했다. 현장에는 주민들이 나와 윤 군에게 욕을 하고, 주먹으로 때리기도 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윤 군은 현장검증에서 범행을 부인했다. 윤 군 아버지가 "죽어도 좋으니 양심대로 말하라"고 소리치자 윤 군은 갑자기 고개를 저으며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범행을 부인하며 현장검증을 거부했다.

검찰은 현장검증을 중단하고 나흘 뒤인 12월 26일 2차 현장검증을 했다. 이때도 윤 군은 범행을 부인했다. 당시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윤 군은 변호인을 만나 경찰이 강제로 자백을 강요한 뒤 수차례 강간살해 장면을 머릿속에 주입해 경찰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털어놨다.


"진술서, 우리 생각과 달라" 목격자도 반발

경찰은 윤 군이 범인이라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목격자 진술을 제시했다. 범행시각 즈음에 범행현장 근처에서 윤 군을 봤다는 목격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에서 진술서를 받아간 목격자들은 KBS 취재진에게 경찰 발표와 다른 말을 했다. 이들은 윤 군을 평소에 마주친 적은 있다고 했지만, 범행 당일인 11월 15일에는 보지 못했다고 분명히 말했다.

―범행 당시 윤 군을 분명히 봤습니까?
▶아니요. 못 봤어요.
―경찰에서는 왜 (당신이 윤 군을) 봤다고 얘길 하죠?
▶모르죠.
―경찰에서 그렇게 진술 안 했습니까?
▶저는 여기서 진술서 쓸 때요, 분명히 15일 날은 못 보고 다른 날 전후로 해서 얼굴만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봤다고 했을 뿐이에요.
―진술서를 쓸 때 읽어보고 지장을 찍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안 읽어봤어요.
―그냥 지장만 찍었습니까?
▶네 옆에서 형사분이 묻고 쓰고 전 대답하고, 그랬을 뿐이에요.

또 다른 목격자는 아예 경찰 진술서를 부정하는 말까지 했다.

―진술서 쓸 때 상황을 좀 설명해주시죠.
▶여기 우리 직원들하고 다 있는 데서 썼거든요, 진술서를. 그런데 우리하고는, 우리가 생각했던 거 하고는 완전 반대가 돼 있었어요, 진술서 내용이….

두 목격자의 증언을 종합하면 당시 경찰은 목격자가 한 말을 그대로 진술서에 적지 않고, 진술을 고쳐서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적었다. 명백한 진술 조작인 셈이다.


윤 군, DNA 불일치로 무혐의 처분

윤 군이 강압 수사를 주장한 데다 목격자들도 경찰의 수사 내용을 부정하면서 경찰 수사는 믿음이 완전히 깨졌다.

경찰은 윤 군의 점퍼에서 혈흔이 발견됐다고 했지만, 피해자 김 양의 도시락에서 발견된 지문은 윤 군의 것이 아니었다. 사건 현장 소나무에서 경찰이 발견했다는 혈흔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감정할 수 없다는 답변이 왔다.

검찰은 12월 28일 일본 과학경찰연구소에 김 양의 교복을 감정 의뢰했다. 화성연쇄살인 수사에서 DNA 감정을 시도한 첫 사례였다.

해가 바뀌고 1991년 2월 초 일본 과학경찰연구소는 김 양 교복에 묻은 체액의 DNA와 윤 군의 DNA가 다르다고 통보했다.

검찰은 윤 군을 9차 사건 범인으로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했다. 무혐의 처분이었다. 윤 군은 최초에 검거됐던 강제추행 혐의로만 재판에 넘겨져 처벌을 받았다.

당시 경찰은 무리하고 강압적인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경찰의 강압 수사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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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의 누명]① “진술서 내용 완전 반대”…목격자 진술마저 조작한 경찰
    • 입력 2019-10-18 11:22:15
    • 수정2019-10-18 11:31:10
    취재K
[편집자 주]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20년 동안 옥살이를 한 윤 모 씨는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30년 전 자백이 강요에 의한 허위 자백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윤 씨의 주장으로 당시 경찰 수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윤 씨 주장은 좀 더 따져봐야 하지만, 30년 전 누명을 썼다가 간신히 빠져나온 용의자들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9차 사건 용의자였던 윤 모 군(당시 19살)과 2·7차 사건 용의자였던 박 모 씨(당시 29살)도 억울한 용의자 가운데 하나다. 이들의 억울함을 당시 KBS 취재자료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살펴봤다.



윤 군, 강제추행으로 잡혔다가 자백

경찰은 1990년 12월 20일 9차 사건 범인으로 윤 군을 잡아서 자백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9차 사건은 1990년 11월 15일 14살 김 모 양이 희생된 사건이다.

사건 34일 만에 용의자를 잡은 경찰은 윤 군이 9차 사건 6일 전인 11월 9일 20대 여성을 강제추행했고, 이 사건 범인으로 잡아 조사하던 중 윤 군이 9차 사건을 자백했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은 윤 군을 취재진 앞에 공개했다. 악기 공장 노동자였던 윤 군은 파란색 점퍼 차림으로 취재진 앞에 섰다. 윤 군은 10분가량 대화를 나눴는데, 당시 대화 장면을 보면 작은 목소리지만 범행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자백했다.

―범행 일체를 자백한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심경이 어때요?
▶마음이 편합니다.
자백한 동기가 어떻게 됩니까?
언젠가는 탄로 날 거 같아서….
경찰의 가혹 행위는 전혀 없었다 이거죠?

어디 맞거나 그런 거 없고요?

왜 죽이기까지 했어요?
소리쳐가지고 겁이 나가지고요, 목하고 입을 막았는데요….


"시키는 대로 자백했다" 범행 부인

경찰은 12월 22일 윤 군을 9차 사건 현장으로 데려가 현장검증을 했다. 현장에는 주민들이 나와 윤 군에게 욕을 하고, 주먹으로 때리기도 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윤 군은 현장검증에서 범행을 부인했다. 윤 군 아버지가 "죽어도 좋으니 양심대로 말하라"고 소리치자 윤 군은 갑자기 고개를 저으며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범행을 부인하며 현장검증을 거부했다.

검찰은 현장검증을 중단하고 나흘 뒤인 12월 26일 2차 현장검증을 했다. 이때도 윤 군은 범행을 부인했다. 당시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윤 군은 변호인을 만나 경찰이 강제로 자백을 강요한 뒤 수차례 강간살해 장면을 머릿속에 주입해 경찰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털어놨다.


"진술서, 우리 생각과 달라" 목격자도 반발

경찰은 윤 군이 범인이라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목격자 진술을 제시했다. 범행시각 즈음에 범행현장 근처에서 윤 군을 봤다는 목격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에서 진술서를 받아간 목격자들은 KBS 취재진에게 경찰 발표와 다른 말을 했다. 이들은 윤 군을 평소에 마주친 적은 있다고 했지만, 범행 당일인 11월 15일에는 보지 못했다고 분명히 말했다.

―범행 당시 윤 군을 분명히 봤습니까?
▶아니요. 못 봤어요.
―경찰에서는 왜 (당신이 윤 군을) 봤다고 얘길 하죠?
▶모르죠.
―경찰에서 그렇게 진술 안 했습니까?
▶저는 여기서 진술서 쓸 때요, 분명히 15일 날은 못 보고 다른 날 전후로 해서 얼굴만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봤다고 했을 뿐이에요.
―진술서를 쓸 때 읽어보고 지장을 찍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안 읽어봤어요.
―그냥 지장만 찍었습니까?
▶네 옆에서 형사분이 묻고 쓰고 전 대답하고, 그랬을 뿐이에요.

또 다른 목격자는 아예 경찰 진술서를 부정하는 말까지 했다.

―진술서 쓸 때 상황을 좀 설명해주시죠.
▶여기 우리 직원들하고 다 있는 데서 썼거든요, 진술서를. 그런데 우리하고는, 우리가 생각했던 거 하고는 완전 반대가 돼 있었어요, 진술서 내용이….

두 목격자의 증언을 종합하면 당시 경찰은 목격자가 한 말을 그대로 진술서에 적지 않고, 진술을 고쳐서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적었다. 명백한 진술 조작인 셈이다.


윤 군, DNA 불일치로 무혐의 처분

윤 군이 강압 수사를 주장한 데다 목격자들도 경찰의 수사 내용을 부정하면서 경찰 수사는 믿음이 완전히 깨졌다.

경찰은 윤 군의 점퍼에서 혈흔이 발견됐다고 했지만, 피해자 김 양의 도시락에서 발견된 지문은 윤 군의 것이 아니었다. 사건 현장 소나무에서 경찰이 발견했다는 혈흔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감정할 수 없다는 답변이 왔다.

검찰은 12월 28일 일본 과학경찰연구소에 김 양의 교복을 감정 의뢰했다. 화성연쇄살인 수사에서 DNA 감정을 시도한 첫 사례였다.

해가 바뀌고 1991년 2월 초 일본 과학경찰연구소는 김 양 교복에 묻은 체액의 DNA와 윤 군의 DNA가 다르다고 통보했다.

검찰은 윤 군을 9차 사건 범인으로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했다. 무혐의 처분이었다. 윤 군은 최초에 검거됐던 강제추행 혐의로만 재판에 넘겨져 처벌을 받았다.

당시 경찰은 무리하고 강압적인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경찰의 강압 수사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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