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분야 골목대장 대한민국, 언제 ‘3등그룹’ 벗어날까

입력 2019.10.20 (09:03) 수정 2019.10.2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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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분야의 유엔, 'ICAO' 이사국에 7회 연속 진출

인천공항을 출발해 프랑스 파리까지 가는 항공기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항공기는 유라시아 대륙 하늘을 가로질러 파리로 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나라의 영공과 비행정보구역을 넘나들어야 한다. 단 한 대의 항공기가 움직이더라도 어디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갈 건지 수많은 표준과 지침이 필요하다. 항공분야에서 국가 간 협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이런 국가 간 협력을 총괄하는 기구가 1947년 설립된 ICAO(국제민간항공기구)다. UN 전문기구이기도 한 ICAO는 항공산업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국제표준화를 주도하고, 항공 관련 기준과 지침을 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대한민국도 ICAO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이사국 자격이다. 최근에는 7회 연속으로 이사국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 1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ICAO 총회의 투표를 통해서다.

국토부와 외교부 등이 주축이 된 한국정부와 관련 기관들은 이사국 선출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직접 몬트리올에 가서 각종 면담이나 리셉션을 돌면서 각 회원국 대표들을 일일이 접촉했다. 선거 전날인 9월 30일 저녁에는 한국이 단독으로 개최하는 '한국의 밤' 리셉션을 통해 한국에 대한 지지를 당부하는 등 그야말로 총력전을 벌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투표에 참여한 177개 국가 가운데 모두 164표를 얻어 역대 최다 득표로 이사국이 된 것이다.


피파랭킹 5위권 스페인이 70위권 기니와 같은 '톱시드'라면?

그런데 이사국이 된 나라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조금 이상(?)하다. 우리와 함께 이사국이 된 국가들은 그리스, 페루, 도미니카공화국, 튀니지, UAE, 파라과이, 코트디부아르, 잠비아, 코스타리카, 말레이시아, 적도기니, 수단 등 13개국이다.

지난해 한국의 항공 수송실적은 291억 4천7백만 톤으로 전 세계 국가 중 6위였다. 국제선 기준 화물은 5위, 여객은 8위로 모두 10위권 내에 들었다. 더구나 한국은 세계공항순위에서 늘 1, 2위를 다투는 아시아의 대표 허브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12개국과는 항공산업의 규모 자체가 크게 차이가 있다. 얼핏 봐도 사이즈 자체가 너무 차이 난다. 한국이 내는 ICAO 정규 분담금은 세계 12위 정도이다. ICAO에서 실시한 항공안전종합평가(USOAP3)에서 국제기준 이행률이 99%에 달할 정도로 항공 관련 기술과 안전 수준도 높다.

다른 나라가 문제라기보다는 한국이 서 있는 위치가 살펴볼수록 어색하다. 덩치에 안 맞는 작은 옷을 입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 이유는 한국이 속한 그룹이 가장 하위 그룹인 '파트 III'이기 때문이다. 주요 지역 대표국가들이 속해있다고는 하지만 한국과 어깨를 견주는 주요국가들은 '파트 I'과 '파트 II'에 속해있다. 가장 상위그룹인 파트 I그룹은 브라질, 독일, 일본, 호주, 미국, 중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가 속해있다. "항공운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국가"라는 설명이 붙는다. 파트 II그룹은 "국제항공항행 관련 시설 설치에 공헌한 국가"가 속해 있다. 싱가포르, 이집트, 베네수엘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 포르투갈, 나이지리아, 노르웨이, 인도, 스페인, 멕시코, 아르헨티나가 이사국이다.


혈투 끝에 따낸 ICAO 이사국…'3등 그룹'끼리 경쟁?

대한민국이 파트 III에 속해 있다고 해서 이사회의 각종 의사결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의결권은 원칙적으로 어느 그룹에 속해 있든지 동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파트III에 속하면서 얻는 불이익이 적지 않다. 한국의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 점도 있지만 3년에 한 번 돌아오는 이사국 선거마다 총력을 기울이면서 소모하는 유무형의 비용이 크다. 역설적이게도 하위그룹인 파트 III의 이사국의 선거가 가장 치열하기 때문이다.

ICAO 이사국 신규진출을 노리는 국가들은 파트 III를 목표로 삼는다. 이 때문에 항상 이사국 자리보다 많은 국가들이 입후보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반면 파트 I,II그룹에 속한 국가들은 선거마다 해당 그룹 내 득표순위는 달라지지만, 그룹에서 탈락하는 국가는 없어서 안정적으로 이사국 지위를 유지한다.

특히 ICAO 이사국 선거는 지역별 배분이 매우 중요한데 파트III에 아시아 국가의 몫으로 여겨지는 이사국 자리는 2개다. 이번에는 대한민국과 말레이시아가 이사국에 뽑혔지만, 인도네시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도전을 계속해서 수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사국 자리를 둘러싼 쟁탈전은 국가들 사이의 치열한 외교전으로 이어진다. 해당 국가들은 선거 1년 전부터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외교 공관을 통한 비망록 전달 등을 통해 전력투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어떤 국가들은 이사국 선거 지지를 대가로 운수권 확보를 요구하기도 하고, 다른 국제기구 선거에서의 지지를 요청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가 치열할수록 우리가 이사국 지지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양보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한국 정부, "파트 I, II그룹을 늘려라!"

우리 정부도 이같은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 파트 I, II그룹의 숫자를 늘려 상위 그룹으로 올라가겠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파트 I, II그룹에 속한 기존 국가들의 기득권이 공고한 만큼 원래 속한 국가들을 밀어내고 한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전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권용복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국제질서라는 게 한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들어가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은 상위그룹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회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다. 상위그룹 이사국의 숫자를 늘리는 안은 우리 정부의 제안으로 2016년 ICAO총회에서 발의돼 이사국 사이에서는 이미 의결된 상태다. 다만, 이사국의 의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93개 ICAO 회원국 전체의 비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있다.

2019년 9월 기준으로 193개 국가 가운데 약 절반 정도의 비준을 받은 상태다. 남은 국가들을 설득해 비준을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외교적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 세계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항공 분야 무상교육훈련 실시, 안전기금 지원, 우리나라 전문가의 ICAO 사무국 파견, 안전관리 소프트웨어 개발․보급 등의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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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0 09:03:05
    • 수정2019-10-20 09:39:01
    취재K
■항공분야의 유엔, 'ICAO' 이사국에 7회 연속 진출

인천공항을 출발해 프랑스 파리까지 가는 항공기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항공기는 유라시아 대륙 하늘을 가로질러 파리로 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나라의 영공과 비행정보구역을 넘나들어야 한다. 단 한 대의 항공기가 움직이더라도 어디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갈 건지 수많은 표준과 지침이 필요하다. 항공분야에서 국가 간 협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이런 국가 간 협력을 총괄하는 기구가 1947년 설립된 ICAO(국제민간항공기구)다. UN 전문기구이기도 한 ICAO는 항공산업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국제표준화를 주도하고, 항공 관련 기준과 지침을 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대한민국도 ICAO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이사국 자격이다. 최근에는 7회 연속으로 이사국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 1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ICAO 총회의 투표를 통해서다.

국토부와 외교부 등이 주축이 된 한국정부와 관련 기관들은 이사국 선출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직접 몬트리올에 가서 각종 면담이나 리셉션을 돌면서 각 회원국 대표들을 일일이 접촉했다. 선거 전날인 9월 30일 저녁에는 한국이 단독으로 개최하는 '한국의 밤' 리셉션을 통해 한국에 대한 지지를 당부하는 등 그야말로 총력전을 벌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투표에 참여한 177개 국가 가운데 모두 164표를 얻어 역대 최다 득표로 이사국이 된 것이다.


피파랭킹 5위권 스페인이 70위권 기니와 같은 '톱시드'라면?

그런데 이사국이 된 나라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조금 이상(?)하다. 우리와 함께 이사국이 된 국가들은 그리스, 페루, 도미니카공화국, 튀니지, UAE, 파라과이, 코트디부아르, 잠비아, 코스타리카, 말레이시아, 적도기니, 수단 등 13개국이다.

지난해 한국의 항공 수송실적은 291억 4천7백만 톤으로 전 세계 국가 중 6위였다. 국제선 기준 화물은 5위, 여객은 8위로 모두 10위권 내에 들었다. 더구나 한국은 세계공항순위에서 늘 1, 2위를 다투는 아시아의 대표 허브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12개국과는 항공산업의 규모 자체가 크게 차이가 있다. 얼핏 봐도 사이즈 자체가 너무 차이 난다. 한국이 내는 ICAO 정규 분담금은 세계 12위 정도이다. ICAO에서 실시한 항공안전종합평가(USOAP3)에서 국제기준 이행률이 99%에 달할 정도로 항공 관련 기술과 안전 수준도 높다.

다른 나라가 문제라기보다는 한국이 서 있는 위치가 살펴볼수록 어색하다. 덩치에 안 맞는 작은 옷을 입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 이유는 한국이 속한 그룹이 가장 하위 그룹인 '파트 III'이기 때문이다. 주요 지역 대표국가들이 속해있다고는 하지만 한국과 어깨를 견주는 주요국가들은 '파트 I'과 '파트 II'에 속해있다. 가장 상위그룹인 파트 I그룹은 브라질, 독일, 일본, 호주, 미국, 중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가 속해있다. "항공운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국가"라는 설명이 붙는다. 파트 II그룹은 "국제항공항행 관련 시설 설치에 공헌한 국가"가 속해 있다. 싱가포르, 이집트, 베네수엘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 포르투갈, 나이지리아, 노르웨이, 인도, 스페인, 멕시코, 아르헨티나가 이사국이다.


혈투 끝에 따낸 ICAO 이사국…'3등 그룹'끼리 경쟁?

대한민국이 파트 III에 속해 있다고 해서 이사회의 각종 의사결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의결권은 원칙적으로 어느 그룹에 속해 있든지 동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파트III에 속하면서 얻는 불이익이 적지 않다. 한국의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 점도 있지만 3년에 한 번 돌아오는 이사국 선거마다 총력을 기울이면서 소모하는 유무형의 비용이 크다. 역설적이게도 하위그룹인 파트 III의 이사국의 선거가 가장 치열하기 때문이다.

ICAO 이사국 신규진출을 노리는 국가들은 파트 III를 목표로 삼는다. 이 때문에 항상 이사국 자리보다 많은 국가들이 입후보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반면 파트 I,II그룹에 속한 국가들은 선거마다 해당 그룹 내 득표순위는 달라지지만, 그룹에서 탈락하는 국가는 없어서 안정적으로 이사국 지위를 유지한다.

특히 ICAO 이사국 선거는 지역별 배분이 매우 중요한데 파트III에 아시아 국가의 몫으로 여겨지는 이사국 자리는 2개다. 이번에는 대한민국과 말레이시아가 이사국에 뽑혔지만, 인도네시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도전을 계속해서 수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사국 자리를 둘러싼 쟁탈전은 국가들 사이의 치열한 외교전으로 이어진다. 해당 국가들은 선거 1년 전부터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외교 공관을 통한 비망록 전달 등을 통해 전력투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어떤 국가들은 이사국 선거 지지를 대가로 운수권 확보를 요구하기도 하고, 다른 국제기구 선거에서의 지지를 요청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가 치열할수록 우리가 이사국 지지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양보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한국 정부, "파트 I, II그룹을 늘려라!"

우리 정부도 이같은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 파트 I, II그룹의 숫자를 늘려 상위 그룹으로 올라가겠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파트 I, II그룹에 속한 기존 국가들의 기득권이 공고한 만큼 원래 속한 국가들을 밀어내고 한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전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권용복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국제질서라는 게 한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들어가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은 상위그룹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회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다. 상위그룹 이사국의 숫자를 늘리는 안은 우리 정부의 제안으로 2016년 ICAO총회에서 발의돼 이사국 사이에서는 이미 의결된 상태다. 다만, 이사국의 의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93개 ICAO 회원국 전체의 비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있다.

2019년 9월 기준으로 193개 국가 가운데 약 절반 정도의 비준을 받은 상태다. 남은 국가들을 설득해 비준을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외교적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 세계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항공 분야 무상교육훈련 실시, 안전기금 지원, 우리나라 전문가의 ICAO 사무국 파견, 안전관리 소프트웨어 개발․보급 등의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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