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도심 속 미세먼지 굴뚝, 지하철 환기구…얼마나 심하길래?

입력 2019.10.21 (11:19) 수정 2019.10.2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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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성' 미세먼지 뒤범벅된 지하철 선로터널

지하철 승강장에 전조등을 켠 지하철 한 대가 들어온다. 열차는 승강장에 멈춰 서기 위해 속도를 줄인다. 이때 브레이크 패드가 마모된다.

승객을 태운 지하철은 다시 속도를 내 지하 선로구간에 진입한다. 가속하면서 열차 바퀴와 선로의 마찰이 커진다. 특히 오르막 구간이나, 선로 연결 용접부, 곡선부, 분기부 등에서 마모로 인한 미세먼지가 발생한다.

게다가 열차가 지나갈 때는 '열차풍'이 발생하는데 강한 바람이 터널 바닥에 쌓여있던 미세먼지를 흩뿌린다. 지하철 선로터널이 미세먼지의 'Hot Spot(초고농도 지역)'이 된 이유다.

국내 연구진이 지하철 4호선 미아역에서 미세먼지를 측정한 결과 전체 농도는 PM10 기준 200~300㎍/㎥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철과 나트륨, 마그네슘 등 금속성 미세먼지의 비율은 PM10의 경우 50%, PM2.5의 경우 56%로 분석됐다.


성분 분석을 토대로 오염원을 추가 분석해보니, 레일, 바퀴 및 브레이크 마모와 관련한 오염원이 59.6%, 전력 카이블 마모에 의한 오염이 8.1%, 디젤 청소차량 운행으로 인한 기름 오염원이 17%로 지하선로 내부의 오염원 기여도가 70%를 넘었다.

취재진이 입수한 '도시철도 터널 Hot Spot 구간 관리기술 개발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지하철 2호선 터널의 PM10 오염도는 잠실~종합운동장, 서초~사당, 홍대입구~한양대 구간의 미세먼지 농도가 평균 100㎍ 이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스크린도어'로 막았지만.. 미세먼지는 지상으로?

선로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건 일단 승강장의 승객들이다. 하지만 이미 이 같은 문제점들이 여러 차례 지적되면서 이제는 거의 모든 지하철의 승강장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됐다. 지하선로 미세먼지의 '1차 방어벽'이 생겨난 셈이다.

하지만, '개구멍'이 있었다. 그것도 수도권에만 수백 개에 달한다. 바로 지상에 설치된 지하철 환기구다. 환기구를 통해 오염된 지하선로의 공기가 지상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지하철 환기구는 일반적으로 역사 주변에 하나, 역과 역 사이 선로에 하나씩 둔다. 역사 주변의 환기구에서 나오는 공기도 미세먼지 농도가 높지만, 가장 심각한 건 선로 중간에 설치된 환기구다.


취재진은 4호선 평촌역과 범계역 사이에 설치된 환기구의 미세먼지 오염도를 직접 측정해봤다. 지하 15m 깊이의 환기구에 내려가 보니 강제환기설비를 통해 배출되는 탁한 공기 때문에 방진 마스크를 써도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국가공인 시험공정에 따른 방법으로 한국환경공단이 19시간 연속 측정한 결과 환기구의 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290㎍/㎥로 '매우 나쁨' 기준인 150㎍/㎥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특히 열차가 지날 땐 최대 984㎍까지 농도가 치솟았다.


아무런 여과없이 '지하 선로 → 지상'

지하의 공기를 지상으로 강제 배출시키는 환기팬을 열어봤다. 1992년 만들어진 환기팬은 안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 내부 철망의 구멍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환기팬을 청소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필터나 정전기 집진 방식의 미세먼지 저감설비는 전혀 없었다. 취재진이 확인해보니 코레일과 서울교통공사가 관리하는 수도권 지하철도 환기구의 사정은 모두 비슷했다. 지하선로에서 직통으로 공기가 지상 배출되는 셈이다.


특히 취재진이 찾은 평촌역~범계역 사이 환기구는 공원 내부에 설치돼 주변에서 늘 아이들이 뛰노는 장소였다. 다른 환기구들도 보도 주변 등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공간에 설치된 경우가 많아 건강위험이 커 보였다.

이와 관련해 측정을 담당했던 환경공단의 한 연구자는 "도심에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굴뚝이 수백 개 있는데, 거기서 19시간 동안 쉼 없이 미세먼지를 포함한 오염물질이 나오는 셈"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오늘처럼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에는 지하선로의 미세먼지도 덩달아 높아진다.

4호선 미아역에 대한 과거의 측정 결과들을 보면 지하 선로터널이 월평균 190~345㎍/㎥, 승강장이 월평균 89~188 ㎍/㎥였다.

하지만 지상에 고농도기간이 찾아올 때는 지하 역시 농도가 더 나빠져 지하 선로터널이 평균 331~507㎍/㎥, 승강장이 75~233㎍/㎥까지 올라갔다. 지하 미세먼지와 지상 미세먼지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셈이다.


시민 건강과 직결.. 실질적인 대책 마련 시급

정부는 지하역사 공기 질 개선을 위해 2019년도 본예산 199억 원을 책정한 데 이어 추경안에서 411억 원을 증액하는 등 올해에만 611억 원을 편성했다. 여기에는 환기설비 교체와 공기정화시설 설치, 노후역사 환경개선 공사 비용들이 포함돼있다.

하지만 국회의 추가경정예산 검토보고서를 보면 '터널 본선의 환기설비 집진 효율 개선사업'의 경우 사업기간이 12개월에 달한다는 점에서 추경안의 연내 집행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하철이 운행하는 터널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열차 운행이 종료된 제한된 새벽에만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단순히 공사가 어렵다는 이야기로 미뤄둘 수만은 없다.

연구결과 환기구 한곳에서 1년간 배출하는 미세먼지 양은 약 251kg으로 예상된다. 수도권의 모든 도로이동오염원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한해에 409만 6천 톤인 점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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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1 11:19:55
    • 수정2019-10-21 11:24:43
    취재후·사건후
'금속성' 미세먼지 뒤범벅된 지하철 선로터널

지하철 승강장에 전조등을 켠 지하철 한 대가 들어온다. 열차는 승강장에 멈춰 서기 위해 속도를 줄인다. 이때 브레이크 패드가 마모된다.

승객을 태운 지하철은 다시 속도를 내 지하 선로구간에 진입한다. 가속하면서 열차 바퀴와 선로의 마찰이 커진다. 특히 오르막 구간이나, 선로 연결 용접부, 곡선부, 분기부 등에서 마모로 인한 미세먼지가 발생한다.

게다가 열차가 지나갈 때는 '열차풍'이 발생하는데 강한 바람이 터널 바닥에 쌓여있던 미세먼지를 흩뿌린다. 지하철 선로터널이 미세먼지의 'Hot Spot(초고농도 지역)'이 된 이유다.

국내 연구진이 지하철 4호선 미아역에서 미세먼지를 측정한 결과 전체 농도는 PM10 기준 200~300㎍/㎥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철과 나트륨, 마그네슘 등 금속성 미세먼지의 비율은 PM10의 경우 50%, PM2.5의 경우 56%로 분석됐다.


성분 분석을 토대로 오염원을 추가 분석해보니, 레일, 바퀴 및 브레이크 마모와 관련한 오염원이 59.6%, 전력 카이블 마모에 의한 오염이 8.1%, 디젤 청소차량 운행으로 인한 기름 오염원이 17%로 지하선로 내부의 오염원 기여도가 70%를 넘었다.

취재진이 입수한 '도시철도 터널 Hot Spot 구간 관리기술 개발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지하철 2호선 터널의 PM10 오염도는 잠실~종합운동장, 서초~사당, 홍대입구~한양대 구간의 미세먼지 농도가 평균 100㎍ 이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스크린도어'로 막았지만.. 미세먼지는 지상으로?

선로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건 일단 승강장의 승객들이다. 하지만 이미 이 같은 문제점들이 여러 차례 지적되면서 이제는 거의 모든 지하철의 승강장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됐다. 지하선로 미세먼지의 '1차 방어벽'이 생겨난 셈이다.

하지만, '개구멍'이 있었다. 그것도 수도권에만 수백 개에 달한다. 바로 지상에 설치된 지하철 환기구다. 환기구를 통해 오염된 지하선로의 공기가 지상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지하철 환기구는 일반적으로 역사 주변에 하나, 역과 역 사이 선로에 하나씩 둔다. 역사 주변의 환기구에서 나오는 공기도 미세먼지 농도가 높지만, 가장 심각한 건 선로 중간에 설치된 환기구다.


취재진은 4호선 평촌역과 범계역 사이에 설치된 환기구의 미세먼지 오염도를 직접 측정해봤다. 지하 15m 깊이의 환기구에 내려가 보니 강제환기설비를 통해 배출되는 탁한 공기 때문에 방진 마스크를 써도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국가공인 시험공정에 따른 방법으로 한국환경공단이 19시간 연속 측정한 결과 환기구의 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290㎍/㎥로 '매우 나쁨' 기준인 150㎍/㎥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특히 열차가 지날 땐 최대 984㎍까지 농도가 치솟았다.


아무런 여과없이 '지하 선로 → 지상'

지하의 공기를 지상으로 강제 배출시키는 환기팬을 열어봤다. 1992년 만들어진 환기팬은 안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 내부 철망의 구멍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환기팬을 청소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필터나 정전기 집진 방식의 미세먼지 저감설비는 전혀 없었다. 취재진이 확인해보니 코레일과 서울교통공사가 관리하는 수도권 지하철도 환기구의 사정은 모두 비슷했다. 지하선로에서 직통으로 공기가 지상 배출되는 셈이다.


특히 취재진이 찾은 평촌역~범계역 사이 환기구는 공원 내부에 설치돼 주변에서 늘 아이들이 뛰노는 장소였다. 다른 환기구들도 보도 주변 등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공간에 설치된 경우가 많아 건강위험이 커 보였다.

이와 관련해 측정을 담당했던 환경공단의 한 연구자는 "도심에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굴뚝이 수백 개 있는데, 거기서 19시간 동안 쉼 없이 미세먼지를 포함한 오염물질이 나오는 셈"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오늘처럼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에는 지하선로의 미세먼지도 덩달아 높아진다.

4호선 미아역에 대한 과거의 측정 결과들을 보면 지하 선로터널이 월평균 190~345㎍/㎥, 승강장이 월평균 89~188 ㎍/㎥였다.

하지만 지상에 고농도기간이 찾아올 때는 지하 역시 농도가 더 나빠져 지하 선로터널이 평균 331~507㎍/㎥, 승강장이 75~233㎍/㎥까지 올라갔다. 지하 미세먼지와 지상 미세먼지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셈이다.


시민 건강과 직결.. 실질적인 대책 마련 시급

정부는 지하역사 공기 질 개선을 위해 2019년도 본예산 199억 원을 책정한 데 이어 추경안에서 411억 원을 증액하는 등 올해에만 611억 원을 편성했다. 여기에는 환기설비 교체와 공기정화시설 설치, 노후역사 환경개선 공사 비용들이 포함돼있다.

하지만 국회의 추가경정예산 검토보고서를 보면 '터널 본선의 환기설비 집진 효율 개선사업'의 경우 사업기간이 12개월에 달한다는 점에서 추경안의 연내 집행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하철이 운행하는 터널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열차 운행이 종료된 제한된 새벽에만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단순히 공사가 어렵다는 이야기로 미뤄둘 수만은 없다.

연구결과 환기구 한곳에서 1년간 배출하는 미세먼지 양은 약 251kg으로 예상된다. 수도권의 모든 도로이동오염원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한해에 409만 6천 톤인 점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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