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미군 나가자 엉망진창”…험난한 ‘테러와의 전쟁 종식’

입력 2019.10.21 (19:23) 수정 2019.10.2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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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일 쿠르드족 장악 지역인 시리아 북동부 주둔 미군의 철군을 명령한 뒤 그 일대는 대혼돈에 빠졌다.

시리아 북동부를 장악하고 있던 쿠르드 민병대(YPG)를 자국 내 쿠르드 분리주의 테러단체 '쿠르드 노동자당(PKK)'의 분파로 보고 있는 터키는 오래전부터 호시탐탐 YPG를 공격할 기회를 엿보았으며, 미군 철수 발표가 나오자 즉각 군사 작전을 감행했다. 미군 철수는 결과적으로 터키에게 YPG 공격의 길을 터준 꼴이 됐다.

터키의 군사력에 밀린 YPG는 다급한 나머지 적이었던 시리아 정부군과 손을 잡았고, 시리아 정부군과 싸워온 또 다른 시리아 반군 단체인 시리아 국가군(SNA)은 터키 편에 섰다. 수많은 사상자와 피난민이 생겨난 아수라장에 러시아도 끼어들 태세다. 미국 언론은 "시리아에서 미군이 빠져나간 자리에 러시아군이 들어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왔다. 미군 철군으로 시리아 내전 구도가 '정부군+YPG+러시아' VS '터키+SNA'로 확대·재편되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시리아 철군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미국 정치권도 이 문제로 시끄럽다. 트럼프의 절친한 친구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조차 철군 결정만큼은 반대한다.

시리아 철군은 ''수렁' 같은 중동에서 벗어나 중국 때리기에 집중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내려진 결정이다. 하지만 시리아 철군에 따른 혼돈과 이를 둘러싼 거센 논쟁은, 수십 년 간 유지돼온 국제질서의 변화를 추구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진통이자 도전이다.

■ 미군 빠지자 쿠르드족 때린 터키 ... "'독립국 건설' 추진 세력 몽땅 쫓아낸다"

쿠르드족은 터키(1,470만 명)와 이란(810만 명), 이라크(550만 명), 시리아(170만 명)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세계 최대 유랑 민족으로 3,000만~4,000만 명의 단일민족이 고유문화·언어·사회구조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국가 없이 중동 산악지대에서 유목하며 살고 있다.


터키는 터키와 시리아에 걸쳐 사는 쿠르드족이 국가를 수립할 가능성 때문에 이들을 극도로 견제한다. 2011년 내전 발발 이후 시리아 북동부를 장악한 쿠르드 민병대(YPG)는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참여해 미국의 동맹으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터키는 YPG를 자국의 쿠르드 분리주의 테러단체 '쿠르드 노동자당(PKK)'의 시리아 분파로 보고 최대 안보 위협으로 여겨왔다.

이 때문에 터키는 시리아 국경을 넘어 쿠르드족 격퇴에 나서고 싶었지만, 시리아 북동부에 주둔한 미군에 막혀왔다. 미군이 YPG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해준 셈이다. 하지만 이후 IS 격퇴전이 공식 종료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준비하자 터키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리아 북동부에 둥지를 튼 YPG 기반 쿠르드족을 몰아내기 위한 '평화의 샘' 작전에 나섰다.

터키군 탱크가 시리아와 접한 국경 지역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현지시각 9일)터키군 탱크가 시리아와 접한 국경 지역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현지시각 9일)

터키군의 공격을 받은 시리아 북동부 도시 라스 알-아인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현지시각 9일)터키군의 공격을 받은 시리아 북동부 도시 라스 알-아인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현지시각 9일)

세계를 테러 공포에 떨게 한 IS를 격파한 쿠르드족이지만, 터키군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쿠르드 측은 IS 격퇴전을 함께 수행한 국제동맹군에게 '터키 전투기의 진입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작전 개시 이후 756명의 YPG 전투원들이 사망하거나 부상 또는 생포됐다"고 전했다.

시리아 북동부 5㎞ 이내 지역에는 쿠르드족 약 45만 명이 거주 중이었다. 터키군은 시리아 국경에서 30㎞까지 진격하는 것을 작전 목표로 정했었다. '독립국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어 위협이 될만한 자국 안팎의 분리주의 쿠르드족 세력을 멀찌감치 쫓아내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유엔은 개전 초기인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시리아 북동부에서 약 10만 명이 피란을 떠났다"고 밝혔다.

■ "쿠르드족 배신" 공격받는 트럼프 ... "분쟁까지 끼어들 이유 없어"

YPG가 장악했던 시리아 북동부는 시리아와 터키가 수백 년 동안 싸워온 화약고다. '광활한 영토'와 '종교 갈등으로 얽힌 복잡하고도 오래된 지역 분쟁'은 세계 최강 미군마저도 깊은 수렁에 빠뜨릴 정도로 전쟁의 종식을 어렵게 만든 구조적 특징이다. 아프간이나 이라크처럼 '시리아 북동부'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북부 땅을 놓고 시리아와 터키가 싸우는 건 수백 년 동안 내려온 다툼이고 그들의 문제다. 쿠르드도 수백 년 동안 투쟁했는데 그쪽이 모두 엉망진창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터키와 시리아 싸움에 끼어들 이유가 없다"고 했다. '미국이 IS 격퇴전에 함께한 동맹 쿠르드족을 외면했다'는 지적에 반박하는 과정에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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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른바 '셰일 혁명'을 통해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된 미국이 '더는 중동 산유국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그런 만큼 중동 문제에도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는 전략적 소신에 기반을 둔 발언으로, 쿠르드족이 미국과 IS 격퇴를 함께했다고 해서 쿠르드족이 엮인 복잡한 분쟁에까지 미국이 개입할 의무는 없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서도 기회가 되는대로 '시리아 철군'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시리아에서 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나는 우스꽝스럽고 값비싼 끝없는 전쟁들로부터 우리 군인들이 집에 돌아오도록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트윗 글에는 '미국이 중동 문제에 개입해봤자 해결할 수도 없을뿐더러 득도 없고 미군 희생만 감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르드족을 향해 "그들은 우리와 함께 싸웠지만, 그들이 천사는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그는 PKK까지 거론하면서 "쿠르드족의 일원인 PKK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마도 ISIS(IS의 옛 이름)보다 더 나쁘고 오히려 테러리스트로 더 큰 위협이다"라고까지 했다. 그러면서 "쿠르드는 자기 땅을 얻기 위해 싸웠다"고 강조했다. 미국이든 쿠르드족이든 IS 격퇴전에 나선 건 결국 '자국 이익'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감성적인 '쿠르드족 배신' 프레임에 맞서 현실주의적 관점을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에도 '개입주의'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우군 중 한 명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조차 트럼프 대통령이 매티스 전 국방장관과 대립각을 세우며 시리아 철군 계획을 발표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철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을 정도다.

■ 러시아 그림자 아른거리자 '중재' 나선 미국 ... '휴전 합의' 이행이 1차 고비

'개입주의'를 탈피한다는 입장이 확고한 트럼프 대통령도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 사태가 악화하지 않도록 상황은 관리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주변국까지 도미노처럼 참전하는 확전 양상으로 전개되면 '미국이 개입해야 한다'는 여론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쿠르드 민병대(YPG)가 소속된 시리아 민주군(SDF)의 총사령관은 현지시각 12일 미국을 향해 "당신들은 우리를 포기했다. 우리가 학살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며 미군 철군 결정을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또 터키의 진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자신들을 보호하려 나서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 적으로 싸워온 시리아 정부는 물론 그 지지세력인 러시아와도 손을 잡겠다고 밝혔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터키로 떠나기 위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현지시각 16일)마이크 펜스 부통령(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터키로 떠나기 위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현지시각 16일)

이처럼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미국 정부는 '중재'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터키로 날아가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났다. 이를 통해 현지시각 17일 도출된 합의는 '휴전'이었다. 합의안은 '쿠르드족이 장악한 시리아 북동부와 터키 국경 사이에 폭 30㎞, 길이 480㎞에 이르는 '안전지대'를 설정하고, YPG가 안전지대 밖으로 철수하도록 터키는 5일 동안 군사작전을 중단한다. YPG 철군 이후 안전지대 관리는 터키군이 맡고 터키 내 시리아 난민들을 이주시킨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휴전 합의는 시작부터 불안해 보였다. 일부 전선에서는 지금까지도 교전이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현지시각 20일 YPG가 북동부 도시 라스 알-아인에서 완전히 철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YPG가 합의를 존중하지 않으면 120시간 뒤 '평화의 샘' 작전을 재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 휴전 합의대로 'YPG 철수'와 '시한 내 안전지대 확보' 여부가 시리아 미군 철군 사태의 1차 고비가 될 전망이다.

■ '이란 견제'에 필요한 '귀한 몸' ... 터키가 유리한 합의안 이끌어 낸 힘은?

이런 가운데 시리아 내 미군 철군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시리아 북동부에서 미군 철수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철수에) 몇 주가 걸릴 것이며 이 병력을 서부 이라크로 재배치하는 게 현재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시리아나 아프간 등지에 주둔했던 병력을 축소하되 남은 인력을 재배치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 전략은 '이란 견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주변 동맹들의 협조가 절실한데,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중심 역할을 맡아 왔다. 그리고 최근 미국이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는 나라가 바로 터키다. 미국은 중국·북한이나 러시아, 이란 등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과 미국의 연대 강화', '동맹 간 연대 강화', '방위비 분담금 인상으로 동맹들의 부담을 늘리는 방안'을 선호한다. 미군 병력이 감소한 지역에서는 군사 작전 시 동맹 끼리 결성한 연합군이 주축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과거와 달라진 특징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오사카 G20 계기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6월 29일)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오사카 G20 계기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6월 29일)

이런 측면에서 세계 군사력 순위 9위(2019년 '글로벌파이어파워' 발표 기준)인 '중동의 강호' 터키는 미국으로서는 멀리하기 어려운 카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왔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쿠르드족의 편을 들면 터키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역학관계가 트럼프 대통령이 터키에 대한 제재 카드를 국내 정치용으로만 꺼내 보인 뒤 휴전 설득을 위해 부통령까지 보내는 성의를 보인 이유다. 미국을 향해 '합의안이 잘 지켜지도록 미국도 노력하라'고 호통치는 에르도안을 보면 그도 미국이 터키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듯하다.

■ '철군 당위성' 흐트러질까 노심초사 ... '테러와의 전쟁 종식'이 어려운 이유는?

미국의 전직 관료들까지 '시리아 철군이 쿠르드 동맹의 터전을 잃게 했다'는 식의 비판에 가세하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대표적인 중동 우방인 사우디까지 직접 날아가 지역 안보 문제를 논의했다. 시점이 절묘하다. 사우디도 푸틴 대통령을 극진히 맞이했다고 한다.

'러시아가 미국의 공백을 메울 것'이라는 비판 외에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 대한 견제'와 'IS의 재준동 방지'이다. 이 두 가지가 미국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명분이기 때문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오바마 정부가 2013년 화학무기를 사용한 아사드 정권을 공격하지 않은 사실을 들춰내고 있는 이유이며,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에스퍼 국방 장관이 "IS의 재등장을 막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살만 사우디 국왕(가운데)의 영접을 받고 있다 (현지시각 14일)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살만 사우디 국왕(가운데)의 영접을 받고 있다 (현지시각 14일)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시리아 문제 개입을 우려한 기자의 질문에 "거기에 모래가 많은데 자기들끼리 실컷 모래를 갖고 놀면 된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반기를 든 그레이엄 의원을 향해서는 "그러면 중동에 미군을 1000년 동안 파병해야 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 있어 '중동 문제'는 국제 질서와 세계 구도가 바뀌었다고 해도 단번에 전략을 뒤집기 어렵게 하는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다.

미국이 지금까지처럼 중동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 명분은 '테러와의 전쟁'이었다. 미국을 이 기나긴 전쟁에 뛰어들게 한 건 소련붕괴 이후 적수가 없어 보였던 미국의 심장부를 때린 2001년 '911테러'였다. 중동 문제를 둘러싼 미국 내 논란을 볼 때면, '개입주의를 고수하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테러에 대한 방어 심리'가 깊숙이 내재해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나 아프간 철군을 강행하면서 '더는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해왔다. 중동의 전략적 가치가 과거와 달라졌음은 물론, 사실상 테러와의 전쟁도 끝났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세계 초강대국의 국민이면서도 어느 나라 국민보다 극심한 '테러의 공포' 속에 살아왔다. 여전히 많은 동맹국이 자국의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고, 워싱턴 정가는 어느 때보다 대립과 반목이 심각한 게 지금 현실이다. '테러와의 전쟁 종식' 선언에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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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돋보기] “미군 나가자 엉망진창”…험난한 ‘테러와의 전쟁 종식’
    • 입력 2019-10-21 19:23:35
    • 수정2019-10-21 19: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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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일 쿠르드족 장악 지역인 시리아 북동부 주둔 미군의 철군을 명령한 뒤 그 일대는 대혼돈에 빠졌다.

시리아 북동부를 장악하고 있던 쿠르드 민병대(YPG)를 자국 내 쿠르드 분리주의 테러단체 '쿠르드 노동자당(PKK)'의 분파로 보고 있는 터키는 오래전부터 호시탐탐 YPG를 공격할 기회를 엿보았으며, 미군 철수 발표가 나오자 즉각 군사 작전을 감행했다. 미군 철수는 결과적으로 터키에게 YPG 공격의 길을 터준 꼴이 됐다.

터키의 군사력에 밀린 YPG는 다급한 나머지 적이었던 시리아 정부군과 손을 잡았고, 시리아 정부군과 싸워온 또 다른 시리아 반군 단체인 시리아 국가군(SNA)은 터키 편에 섰다. 수많은 사상자와 피난민이 생겨난 아수라장에 러시아도 끼어들 태세다. 미국 언론은 "시리아에서 미군이 빠져나간 자리에 러시아군이 들어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왔다. 미군 철군으로 시리아 내전 구도가 '정부군+YPG+러시아' VS '터키+SNA'로 확대·재편되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시리아 철군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미국 정치권도 이 문제로 시끄럽다. 트럼프의 절친한 친구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조차 철군 결정만큼은 반대한다.

시리아 철군은 ''수렁' 같은 중동에서 벗어나 중국 때리기에 집중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내려진 결정이다. 하지만 시리아 철군에 따른 혼돈과 이를 둘러싼 거센 논쟁은, 수십 년 간 유지돼온 국제질서의 변화를 추구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진통이자 도전이다.

■ 미군 빠지자 쿠르드족 때린 터키 ... "'독립국 건설' 추진 세력 몽땅 쫓아낸다"

쿠르드족은 터키(1,470만 명)와 이란(810만 명), 이라크(550만 명), 시리아(170만 명)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세계 최대 유랑 민족으로 3,000만~4,000만 명의 단일민족이 고유문화·언어·사회구조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국가 없이 중동 산악지대에서 유목하며 살고 있다.


터키는 터키와 시리아에 걸쳐 사는 쿠르드족이 국가를 수립할 가능성 때문에 이들을 극도로 견제한다. 2011년 내전 발발 이후 시리아 북동부를 장악한 쿠르드 민병대(YPG)는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참여해 미국의 동맹으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터키는 YPG를 자국의 쿠르드 분리주의 테러단체 '쿠르드 노동자당(PKK)'의 시리아 분파로 보고 최대 안보 위협으로 여겨왔다.

이 때문에 터키는 시리아 국경을 넘어 쿠르드족 격퇴에 나서고 싶었지만, 시리아 북동부에 주둔한 미군에 막혀왔다. 미군이 YPG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해준 셈이다. 하지만 이후 IS 격퇴전이 공식 종료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준비하자 터키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리아 북동부에 둥지를 튼 YPG 기반 쿠르드족을 몰아내기 위한 '평화의 샘' 작전에 나섰다.

터키군 탱크가 시리아와 접한 국경 지역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현지시각 9일)
터키군의 공격을 받은 시리아 북동부 도시 라스 알-아인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현지시각 9일)
세계를 테러 공포에 떨게 한 IS를 격파한 쿠르드족이지만, 터키군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쿠르드 측은 IS 격퇴전을 함께 수행한 국제동맹군에게 '터키 전투기의 진입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작전 개시 이후 756명의 YPG 전투원들이 사망하거나 부상 또는 생포됐다"고 전했다.

시리아 북동부 5㎞ 이내 지역에는 쿠르드족 약 45만 명이 거주 중이었다. 터키군은 시리아 국경에서 30㎞까지 진격하는 것을 작전 목표로 정했었다. '독립국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어 위협이 될만한 자국 안팎의 분리주의 쿠르드족 세력을 멀찌감치 쫓아내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유엔은 개전 초기인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시리아 북동부에서 약 10만 명이 피란을 떠났다"고 밝혔다.

■ "쿠르드족 배신" 공격받는 트럼프 ... "분쟁까지 끼어들 이유 없어"

YPG가 장악했던 시리아 북동부는 시리아와 터키가 수백 년 동안 싸워온 화약고다. '광활한 영토'와 '종교 갈등으로 얽힌 복잡하고도 오래된 지역 분쟁'은 세계 최강 미군마저도 깊은 수렁에 빠뜨릴 정도로 전쟁의 종식을 어렵게 만든 구조적 특징이다. 아프간이나 이라크처럼 '시리아 북동부'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북부 땅을 놓고 시리아와 터키가 싸우는 건 수백 년 동안 내려온 다툼이고 그들의 문제다. 쿠르드도 수백 년 동안 투쟁했는데 그쪽이 모두 엉망진창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터키와 시리아 싸움에 끼어들 이유가 없다"고 했다. '미국이 IS 격퇴전에 함께한 동맹 쿠르드족을 외면했다'는 지적에 반박하는 과정에서 한 말이다.

[연관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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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른바 '셰일 혁명'을 통해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된 미국이 '더는 중동 산유국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그런 만큼 중동 문제에도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는 전략적 소신에 기반을 둔 발언으로, 쿠르드족이 미국과 IS 격퇴를 함께했다고 해서 쿠르드족이 엮인 복잡한 분쟁에까지 미국이 개입할 의무는 없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서도 기회가 되는대로 '시리아 철군'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시리아에서 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나는 우스꽝스럽고 값비싼 끝없는 전쟁들로부터 우리 군인들이 집에 돌아오도록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트윗 글에는 '미국이 중동 문제에 개입해봤자 해결할 수도 없을뿐더러 득도 없고 미군 희생만 감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르드족을 향해 "그들은 우리와 함께 싸웠지만, 그들이 천사는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그는 PKK까지 거론하면서 "쿠르드족의 일원인 PKK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마도 ISIS(IS의 옛 이름)보다 더 나쁘고 오히려 테러리스트로 더 큰 위협이다"라고까지 했다. 그러면서 "쿠르드는 자기 땅을 얻기 위해 싸웠다"고 강조했다. 미국이든 쿠르드족이든 IS 격퇴전에 나선 건 결국 '자국 이익'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감성적인 '쿠르드족 배신' 프레임에 맞서 현실주의적 관점을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에도 '개입주의'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우군 중 한 명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조차 트럼프 대통령이 매티스 전 국방장관과 대립각을 세우며 시리아 철군 계획을 발표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철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을 정도다.

■ 러시아 그림자 아른거리자 '중재' 나선 미국 ... '휴전 합의' 이행이 1차 고비

'개입주의'를 탈피한다는 입장이 확고한 트럼프 대통령도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 사태가 악화하지 않도록 상황은 관리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주변국까지 도미노처럼 참전하는 확전 양상으로 전개되면 '미국이 개입해야 한다'는 여론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쿠르드 민병대(YPG)가 소속된 시리아 민주군(SDF)의 총사령관은 현지시각 12일 미국을 향해 "당신들은 우리를 포기했다. 우리가 학살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며 미군 철군 결정을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또 터키의 진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자신들을 보호하려 나서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 적으로 싸워온 시리아 정부는 물론 그 지지세력인 러시아와도 손을 잡겠다고 밝혔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터키로 떠나기 위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현지시각 16일)
이처럼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미국 정부는 '중재'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터키로 날아가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났다. 이를 통해 현지시각 17일 도출된 합의는 '휴전'이었다. 합의안은 '쿠르드족이 장악한 시리아 북동부와 터키 국경 사이에 폭 30㎞, 길이 480㎞에 이르는 '안전지대'를 설정하고, YPG가 안전지대 밖으로 철수하도록 터키는 5일 동안 군사작전을 중단한다. YPG 철군 이후 안전지대 관리는 터키군이 맡고 터키 내 시리아 난민들을 이주시킨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휴전 합의는 시작부터 불안해 보였다. 일부 전선에서는 지금까지도 교전이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현지시각 20일 YPG가 북동부 도시 라스 알-아인에서 완전히 철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YPG가 합의를 존중하지 않으면 120시간 뒤 '평화의 샘' 작전을 재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 휴전 합의대로 'YPG 철수'와 '시한 내 안전지대 확보' 여부가 시리아 미군 철군 사태의 1차 고비가 될 전망이다.

■ '이란 견제'에 필요한 '귀한 몸' ... 터키가 유리한 합의안 이끌어 낸 힘은?

이런 가운데 시리아 내 미군 철군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시리아 북동부에서 미군 철수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철수에) 몇 주가 걸릴 것이며 이 병력을 서부 이라크로 재배치하는 게 현재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시리아나 아프간 등지에 주둔했던 병력을 축소하되 남은 인력을 재배치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 전략은 '이란 견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주변 동맹들의 협조가 절실한데,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중심 역할을 맡아 왔다. 그리고 최근 미국이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는 나라가 바로 터키다. 미국은 중국·북한이나 러시아, 이란 등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과 미국의 연대 강화', '동맹 간 연대 강화', '방위비 분담금 인상으로 동맹들의 부담을 늘리는 방안'을 선호한다. 미군 병력이 감소한 지역에서는 군사 작전 시 동맹 끼리 결성한 연합군이 주축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과거와 달라진 특징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오사카 G20 계기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6월 29일)
이런 측면에서 세계 군사력 순위 9위(2019년 '글로벌파이어파워' 발표 기준)인 '중동의 강호' 터키는 미국으로서는 멀리하기 어려운 카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왔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쿠르드족의 편을 들면 터키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역학관계가 트럼프 대통령이 터키에 대한 제재 카드를 국내 정치용으로만 꺼내 보인 뒤 휴전 설득을 위해 부통령까지 보내는 성의를 보인 이유다. 미국을 향해 '합의안이 잘 지켜지도록 미국도 노력하라'고 호통치는 에르도안을 보면 그도 미국이 터키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듯하다.

■ '철군 당위성' 흐트러질까 노심초사 ... '테러와의 전쟁 종식'이 어려운 이유는?

미국의 전직 관료들까지 '시리아 철군이 쿠르드 동맹의 터전을 잃게 했다'는 식의 비판에 가세하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대표적인 중동 우방인 사우디까지 직접 날아가 지역 안보 문제를 논의했다. 시점이 절묘하다. 사우디도 푸틴 대통령을 극진히 맞이했다고 한다.

'러시아가 미국의 공백을 메울 것'이라는 비판 외에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 대한 견제'와 'IS의 재준동 방지'이다. 이 두 가지가 미국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명분이기 때문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오바마 정부가 2013년 화학무기를 사용한 아사드 정권을 공격하지 않은 사실을 들춰내고 있는 이유이며,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에스퍼 국방 장관이 "IS의 재등장을 막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살만 사우디 국왕(가운데)의 영접을 받고 있다 (현지시각 14일)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시리아 문제 개입을 우려한 기자의 질문에 "거기에 모래가 많은데 자기들끼리 실컷 모래를 갖고 놀면 된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반기를 든 그레이엄 의원을 향해서는 "그러면 중동에 미군을 1000년 동안 파병해야 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 있어 '중동 문제'는 국제 질서와 세계 구도가 바뀌었다고 해도 단번에 전략을 뒤집기 어렵게 하는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다.

미국이 지금까지처럼 중동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 명분은 '테러와의 전쟁'이었다. 미국을 이 기나긴 전쟁에 뛰어들게 한 건 소련붕괴 이후 적수가 없어 보였던 미국의 심장부를 때린 2001년 '911테러'였다. 중동 문제를 둘러싼 미국 내 논란을 볼 때면, '개입주의를 고수하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테러에 대한 방어 심리'가 깊숙이 내재해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나 아프간 철군을 강행하면서 '더는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해왔다. 중동의 전략적 가치가 과거와 달라졌음은 물론, 사실상 테러와의 전쟁도 끝났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세계 초강대국의 국민이면서도 어느 나라 국민보다 극심한 '테러의 공포' 속에 살아왔다. 여전히 많은 동맹국이 자국의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고, 워싱턴 정가는 어느 때보다 대립과 반목이 심각한 게 지금 현실이다. '테러와의 전쟁 종식' 선언에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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