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텔라, 델루시아…어느 별 이름? 둔촌주공 새 이름

입력 2019.10.23 (07:01) 수정 2019.10.2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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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루시아 vs. 이스텔라 vs. 에비뉴포레

한 강남권 아파트가 재건축 후 붙일 새 이름으로 고려하고 있는 후보군이다.

세대수 1만 2032가구에 달하는 국내 최대 재건축 아파트 사업장 둔촌주공 얘기다. 현재 재건축 공사를 하고 있는 이 곳은 주민 공모를 통해 새 아파트의 단지명 후보 3개를 정했는데, 다음달 관리처분 총회에서 명칭이 최종 확정된다.

'델루시아'나 '이스텔라' 등 고급스러운 느낌의 외래어 이름에서 아파트 이미지 향상을 위한 주민(조합원)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서울 강남구 역삼역 주변 아파트와 오피스텔촌을 둘러보면 마치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갖가지 외국어를 합성한 이름들로 넘친다.

에클라트, 리츠빌, 아르누보시티, 디오빌플러스, 블루밍코트......

강남권 미니 신도시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저층 재건축 단지.

올해부터 차례로 입주를 시작한 개포 재건축 단지들도 저마다 화려한 이름을 달았다.

2월 입주한 개포2단지는 건설사 브랜드(래미안)뒤에 붙일 이름으로 '블레스티지'를 선택했다. 몇 년 전 조합원들을 상대로 럭스티지, 트리스티지, 포레스티지, 블레스티지를 놓고 설문을 실시했다.

저마다 거창한 뜻을 담고 있다. 위신, 명예를 뜻하는 'prestige'의 ~티지를 뒤에 깔고 앞에는 luxury(호화로움), trinity(삼위일체), forest(숲), bless(축복)의 이름을 붙인 합성어다. 결국 투표 끝에 결정된 개포2단지의 새 이름은 래미안 블레스티지다.

그 옆 개포 3단지는 더 긴 이름을 붙였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의 브랜드명 '디 에치' 뒤에 아너힐즈(Honor Hills)를 붙였다. 이름은 '디 에치 아너힐즈'다.

현재 철거가 완료된 개포 4단지의 이름은 개포 프레지던스 자이다. 대통령직을 의미하는 '프레지던스'(presidence)라는 이름에는 개포단지 중에서 대장이 되겠다는 주민들의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영어 단어를 합성해 아파트 이름을 신경써서 짓는 이유는 건설사와 조합의 마케팅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고급스러운 느낌의 이름이 아파트 분양의 성공, 그리고 향후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이다.

지방도 사정은 비슷하다.

광주 광역시에서도 '중흥S-클래스 에코파크' '유니버시아드 힐스테이트' '무등산 그린웰 로제비앙' '광주 효천 스타프라디움' 등 길고 어려운 이름의 아파트들이 많이 탄생하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출처 : 연합뉴스

복잡해지는 서브네임

국내 아파트에 브랜드가 처음 도입된 1990년대 후반 이전까지는 '압구정 현대' 식으로 지역명과 건설사 이름을 붙였다. 부르기도 기억하기도 쉬웠다.

1998년 아파트 분양가가 자율화된 뒤 대형 건설사들이 앞다퉈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면서 영어식 아파트 이름이 등장했고, 200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브랜드가 등장했다. '래미안' '자이'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등이다. 이때만 해도 이름이 많이 어렵진 않았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건설사 브랜드 뒤에 서브 네임(sub-name)이 붙기 시작하면서 이름이 복잡해지고 있다. 좋은 의미의 단어를 합성해 뭔가 '있어 보이게' 작명 경쟁에 나서면서 복잡한 이름의 아파트들이 탄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기도에서 최근 분양 중인 한 아파트는 이름이 "푸르지오 클라테르다. '고급의''세련된' 등의 뜻을 가진 클래시(classy) 와 영토라는 뜻의 'territory'의 합성어로 고급 아파트라는 의미를 부각하고 있다.


현재 재건축 공사를 진행 중인 서울 서초구의 신반포2차, 반포경남 아파트는 새 단지명을 '래미안 원베일리'로 정했다. 베일리(bailey)는 성곽 안뜰이라는 뜻으로 중세 시대 영주와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성 중심부에 마련된 공간을 의미한다.

'디에이치 포레센트'(강남구 일원동)과 '푸르지오 더 프레티움'(동작구 사당동), 일루미스테이트(부천시 범박동) 등이 올해 분양한 아파트들인데, 이름만 보면 유럽의 성(城)을 짓는 듯하다. 좋은 의미의 외래어를 합성해 지었다지만 기억하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이름이 어렵다.

두산 중공업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 1가에 지은 고층 아파트는 이름이 '트리마제'다. 3개 동이라는 의미의 트리(tri)와 인상을 의미하는 이미지(image)를 섞어 작명했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 뉴타운 1구역을 재개발한 아파트 이름은 텐즈힐이다. 교통(traffic), 탁월함(excellence), 자연(nature), 청계천(stream)의 앞글자를 딴 것이라고 한다. 좋은 의미의 단어를 합성해서 독특한 이름이 만들어진 경우다.

출처 : 연합뉴스출처 : 연합뉴스

비슷해지는 이름…."헷갈린다"

저마다 좋은 이름의 아파트명을 찾다 보니, 이름도 어려워지고 비슷비슷해지는 문제도 생긴다.

최근 청약을 한 삼성동의 상아2차 아파트는 래미안 라클래시다. 불어(la)와 '고급의''세련된' 등의 뜻을 가진 클래시(classy) 를 합성한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여주시 한 아파트(클라테르)와 비슷한 느낌이다.

중심 입지를 강조한 '센트럴'과 공원 입지를 강조한 '파크'는 이곳 저곳의 아파트 이름에 붙어 있어 헷갈릴 정도다.

요즘엔 ○○○ 에듀포레, ○○○에듀파크, ○○○캠퍼스 식의 이름이 유행이다.

초등학교와 가깝거나 인근에 학원가가 발달하면 아파트값이 강세인 점에 착안해 교육 여건이 좋다는 점을 홍보하려는 작명 방법이다.

이렇게 새로 짓는 아파트의 이름이 점점 어려워지고 비슷비슷해지면서 세간에는 '시어머니가 집 못 찾아오기 위한 것'아니냐는 농담도 나온다.

실제로 아파트 단지명도 단지명이지만, 새로 짓는 아파트의 시설 곳곳에 영어 이름으로 간판을 달아놔 영어를 모르는 노인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사례도 나온다.

최근 아파트들은 공동 편의 시설, 즉 커뮤니티 시설에 투자를 많이 하는데, 새 아파트에는 'KIDS CLUB' 'LIBRARY' 'FITNESS' 등의 영어 간판이 버젓이 걸려 있다.

영어 이름과 영어 간판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이름이 아파트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는 믿음이다. 이 때문에 예전에 지어진 옛 브랜드 아파트들이 뜬금없이 새 브랜드로 간판을 다시 달기도 한다. 강력한 부동산 규제를 실시했던 노무현 정부 때는 아예 이런 '이름 바꿔달기'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파트 이름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브랜드나 이름에 따라 주택 가격이 달라진다는 생각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믿음일 뿐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아파트 가격은 입지, 학군, 교통 등의 변수가 가격을 좌우한다"며 "너무 길고 복잡한 이름이 아파트값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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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텔라, 델루시아…어느 별 이름? 둔촌주공 새 이름
    • 입력 2019-10-23 07:01:36
    • 수정2019-10-23 10: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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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루시아 vs. 이스텔라 vs. 에비뉴포레

한 강남권 아파트가 재건축 후 붙일 새 이름으로 고려하고 있는 후보군이다.

세대수 1만 2032가구에 달하는 국내 최대 재건축 아파트 사업장 둔촌주공 얘기다. 현재 재건축 공사를 하고 있는 이 곳은 주민 공모를 통해 새 아파트의 단지명 후보 3개를 정했는데, 다음달 관리처분 총회에서 명칭이 최종 확정된다.

'델루시아'나 '이스텔라' 등 고급스러운 느낌의 외래어 이름에서 아파트 이미지 향상을 위한 주민(조합원)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서울 강남구 역삼역 주변 아파트와 오피스텔촌을 둘러보면 마치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갖가지 외국어를 합성한 이름들로 넘친다.

에클라트, 리츠빌, 아르누보시티, 디오빌플러스, 블루밍코트......

강남권 미니 신도시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저층 재건축 단지.

올해부터 차례로 입주를 시작한 개포 재건축 단지들도 저마다 화려한 이름을 달았다.

2월 입주한 개포2단지는 건설사 브랜드(래미안)뒤에 붙일 이름으로 '블레스티지'를 선택했다. 몇 년 전 조합원들을 상대로 럭스티지, 트리스티지, 포레스티지, 블레스티지를 놓고 설문을 실시했다.

저마다 거창한 뜻을 담고 있다. 위신, 명예를 뜻하는 'prestige'의 ~티지를 뒤에 깔고 앞에는 luxury(호화로움), trinity(삼위일체), forest(숲), bless(축복)의 이름을 붙인 합성어다. 결국 투표 끝에 결정된 개포2단지의 새 이름은 래미안 블레스티지다.

그 옆 개포 3단지는 더 긴 이름을 붙였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의 브랜드명 '디 에치' 뒤에 아너힐즈(Honor Hills)를 붙였다. 이름은 '디 에치 아너힐즈'다.

현재 철거가 완료된 개포 4단지의 이름은 개포 프레지던스 자이다. 대통령직을 의미하는 '프레지던스'(presidence)라는 이름에는 개포단지 중에서 대장이 되겠다는 주민들의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영어 단어를 합성해 아파트 이름을 신경써서 짓는 이유는 건설사와 조합의 마케팅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고급스러운 느낌의 이름이 아파트 분양의 성공, 그리고 향후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이다.

지방도 사정은 비슷하다.

광주 광역시에서도 '중흥S-클래스 에코파크' '유니버시아드 힐스테이트' '무등산 그린웰 로제비앙' '광주 효천 스타프라디움' 등 길고 어려운 이름의 아파트들이 많이 탄생하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복잡해지는 서브네임

국내 아파트에 브랜드가 처음 도입된 1990년대 후반 이전까지는 '압구정 현대' 식으로 지역명과 건설사 이름을 붙였다. 부르기도 기억하기도 쉬웠다.

1998년 아파트 분양가가 자율화된 뒤 대형 건설사들이 앞다퉈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면서 영어식 아파트 이름이 등장했고, 200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브랜드가 등장했다. '래미안' '자이'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등이다. 이때만 해도 이름이 많이 어렵진 않았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건설사 브랜드 뒤에 서브 네임(sub-name)이 붙기 시작하면서 이름이 복잡해지고 있다. 좋은 의미의 단어를 합성해 뭔가 '있어 보이게' 작명 경쟁에 나서면서 복잡한 이름의 아파트들이 탄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기도에서 최근 분양 중인 한 아파트는 이름이 "푸르지오 클라테르다. '고급의''세련된' 등의 뜻을 가진 클래시(classy) 와 영토라는 뜻의 'territory'의 합성어로 고급 아파트라는 의미를 부각하고 있다.


현재 재건축 공사를 진행 중인 서울 서초구의 신반포2차, 반포경남 아파트는 새 단지명을 '래미안 원베일리'로 정했다. 베일리(bailey)는 성곽 안뜰이라는 뜻으로 중세 시대 영주와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성 중심부에 마련된 공간을 의미한다.

'디에이치 포레센트'(강남구 일원동)과 '푸르지오 더 프레티움'(동작구 사당동), 일루미스테이트(부천시 범박동) 등이 올해 분양한 아파트들인데, 이름만 보면 유럽의 성(城)을 짓는 듯하다. 좋은 의미의 외래어를 합성해 지었다지만 기억하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이름이 어렵다.

두산 중공업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 1가에 지은 고층 아파트는 이름이 '트리마제'다. 3개 동이라는 의미의 트리(tri)와 인상을 의미하는 이미지(image)를 섞어 작명했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 뉴타운 1구역을 재개발한 아파트 이름은 텐즈힐이다. 교통(traffic), 탁월함(excellence), 자연(nature), 청계천(stream)의 앞글자를 딴 것이라고 한다. 좋은 의미의 단어를 합성해서 독특한 이름이 만들어진 경우다.

출처 : 연합뉴스
비슷해지는 이름…."헷갈린다"

저마다 좋은 이름의 아파트명을 찾다 보니, 이름도 어려워지고 비슷비슷해지는 문제도 생긴다.

최근 청약을 한 삼성동의 상아2차 아파트는 래미안 라클래시다. 불어(la)와 '고급의''세련된' 등의 뜻을 가진 클래시(classy) 를 합성한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여주시 한 아파트(클라테르)와 비슷한 느낌이다.

중심 입지를 강조한 '센트럴'과 공원 입지를 강조한 '파크'는 이곳 저곳의 아파트 이름에 붙어 있어 헷갈릴 정도다.

요즘엔 ○○○ 에듀포레, ○○○에듀파크, ○○○캠퍼스 식의 이름이 유행이다.

초등학교와 가깝거나 인근에 학원가가 발달하면 아파트값이 강세인 점에 착안해 교육 여건이 좋다는 점을 홍보하려는 작명 방법이다.

이렇게 새로 짓는 아파트의 이름이 점점 어려워지고 비슷비슷해지면서 세간에는 '시어머니가 집 못 찾아오기 위한 것'아니냐는 농담도 나온다.

실제로 아파트 단지명도 단지명이지만, 새로 짓는 아파트의 시설 곳곳에 영어 이름으로 간판을 달아놔 영어를 모르는 노인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사례도 나온다.

최근 아파트들은 공동 편의 시설, 즉 커뮤니티 시설에 투자를 많이 하는데, 새 아파트에는 'KIDS CLUB' 'LIBRARY' 'FITNESS' 등의 영어 간판이 버젓이 걸려 있다.

영어 이름과 영어 간판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이름이 아파트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는 믿음이다. 이 때문에 예전에 지어진 옛 브랜드 아파트들이 뜬금없이 새 브랜드로 간판을 다시 달기도 한다. 강력한 부동산 규제를 실시했던 노무현 정부 때는 아예 이런 '이름 바꿔달기'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파트 이름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브랜드나 이름에 따라 주택 가격이 달라진다는 생각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믿음일 뿐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아파트 가격은 입지, 학군, 교통 등의 변수가 가격을 좌우한다"며 "너무 길고 복잡한 이름이 아파트값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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