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 인공수정 자녀도 ‘친자식’

입력 2019.10.24 (08:15) 수정 2019.10.2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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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 TV 드라마의 단골 소재죠,

몰래 숨겨 둔 아이가 있다거나 친부모가 따로 있다거나 주로 이런 류의 스토리인데요.

달라진 시대상 때문일까요?

이 대사 잠시 들어보시죠.

["남편이 애를 못 낳으면 시동생 걸로 인공수정해서 낳을 수도 있는 거지, 그걸 기어이 가족들한테 다 폭로를 해?"]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정자로 인공 수정해서 낳은 아이.'

이 아이는 남편의 친자식일까.

드라마 같은 스토리가 어제, 대법원의 판단을 받았습니다.

먼저, 부부간에 벌어진 소송의 내막은 이렇습니다.

남편 A씨는 정자가 없는 무정자증이었습니다.

결국 부부는 다른 사람의 정자를 이용한 '제3자 인공 수정'을 통해 1993년 첫째 아이를 얻습니다.

1997년에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A씨는 무정자증이 나았다고 생각하고 출생 신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A씨는 둘째가 자신의 혈육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부인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임신을 했던 겁니다.

두 사람은 이 문제로 이혼했고, A씨는 첫째와 둘째 모두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쟁점이 됐던 건, 첫째 아들 즉 제3자의 정자로 낳은 아이를 친자로 볼 지 여부였습니다.

지난 5월엔 이 사안을 놓고 대법원 공개 변론까지 열렸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유전자 확인이 가능한 상황에서 친생자로 추정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주장과 자녀의 지위나 가정 보호를 위해 친자 관계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팽팽히 맞섰습니다.

자, 결과는 어땠을까요.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도 '친자로 봐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김명수/대법원장 :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하는 인공수정 시술에 동의함으로써 자녀가 출생하였다면, 그 자녀는 그 자체로 친생자로 보아야 하고…."]

대법원이 강조한 건 '법적 안정'과 '가정의 평화'였습니다.

한국의 민법(844조)은 '혼인 중에 아내가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합니다.

'부부가 동거하지 않은 것'이 명백히 확인될 때만 '예외적으로' 친생자를 부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친생 관계를 유전자로 금세 알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부부가 뒤늦게 이혼하며 가족·상속 범위가 될 수 있는 자녀의 법적 지위를 쉽게 부정할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최근 늘어난 인공 수정 자녀 역시 이 법의 예외가 아니란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김명수/대법원장 : "출생과 동시에 안정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자 한 친생추정 규정의 취지는 인공수정 자녀 대해서도 유지되어야 합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인공수정 출산이 널리 이뤄지는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불임 치료로 잘 알려진 인공수정은 남편의 정자를 아내의 자궁에 넣어 임신을 유도하는 방법이죠.

시작은 1978년, 노벨상 수상자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생리학자 에드워즈 박사가 첫 인공수정 아기를 탄생시켰습니다.

7년 후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에서도 국내 첫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고 지금은 일정 규모의 불임치료 병원에서 두루 시술할 정도로 보편화됐습니다.

드문 사례긴 합니다만 보신 것처럼 제3자 정자를 통한 인공 수정이라는 고도의 기술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많은 의식의 변화가 있어 왔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혈연에 대한 집착이 존재해 온 게 사실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혈연 관계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친자녀가 아니라고 하면 가정의 평화 유지라는 헌법 취지에 위반된다는 걸 재확인했습니다.

[배상원/대법원 재판연구관 : "(혈연관계 없이 형성된) 가족관계가 오랜 기간 유지되는 등 사회적으로 성숙해지고 견고해졌다면 그에 대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큽니다."]

일각에선, 이번 대법원의 판단이 유전자 검사 등 의학 기술의 발달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신의 섭리'에 도전한 획기적 기술인만큼 인공수정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고민을 던졌단 걸 이번 대법원 판결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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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자 인공수정 자녀도 ‘친자식’
    • 입력 2019-10-24 08:17:18
    • 수정2019-10-24 08: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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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 TV 드라마의 단골 소재죠,

몰래 숨겨 둔 아이가 있다거나 친부모가 따로 있다거나 주로 이런 류의 스토리인데요.

달라진 시대상 때문일까요?

이 대사 잠시 들어보시죠.

["남편이 애를 못 낳으면 시동생 걸로 인공수정해서 낳을 수도 있는 거지, 그걸 기어이 가족들한테 다 폭로를 해?"]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정자로 인공 수정해서 낳은 아이.'

이 아이는 남편의 친자식일까.

드라마 같은 스토리가 어제, 대법원의 판단을 받았습니다.

먼저, 부부간에 벌어진 소송의 내막은 이렇습니다.

남편 A씨는 정자가 없는 무정자증이었습니다.

결국 부부는 다른 사람의 정자를 이용한 '제3자 인공 수정'을 통해 1993년 첫째 아이를 얻습니다.

1997년에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A씨는 무정자증이 나았다고 생각하고 출생 신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A씨는 둘째가 자신의 혈육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부인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임신을 했던 겁니다.

두 사람은 이 문제로 이혼했고, A씨는 첫째와 둘째 모두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쟁점이 됐던 건, 첫째 아들 즉 제3자의 정자로 낳은 아이를 친자로 볼 지 여부였습니다.

지난 5월엔 이 사안을 놓고 대법원 공개 변론까지 열렸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유전자 확인이 가능한 상황에서 친생자로 추정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주장과 자녀의 지위나 가정 보호를 위해 친자 관계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팽팽히 맞섰습니다.

자, 결과는 어땠을까요.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도 '친자로 봐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김명수/대법원장 :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하는 인공수정 시술에 동의함으로써 자녀가 출생하였다면, 그 자녀는 그 자체로 친생자로 보아야 하고…."]

대법원이 강조한 건 '법적 안정'과 '가정의 평화'였습니다.

한국의 민법(844조)은 '혼인 중에 아내가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합니다.

'부부가 동거하지 않은 것'이 명백히 확인될 때만 '예외적으로' 친생자를 부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친생 관계를 유전자로 금세 알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부부가 뒤늦게 이혼하며 가족·상속 범위가 될 수 있는 자녀의 법적 지위를 쉽게 부정할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최근 늘어난 인공 수정 자녀 역시 이 법의 예외가 아니란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김명수/대법원장 : "출생과 동시에 안정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자 한 친생추정 규정의 취지는 인공수정 자녀 대해서도 유지되어야 합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인공수정 출산이 널리 이뤄지는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불임 치료로 잘 알려진 인공수정은 남편의 정자를 아내의 자궁에 넣어 임신을 유도하는 방법이죠.

시작은 1978년, 노벨상 수상자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생리학자 에드워즈 박사가 첫 인공수정 아기를 탄생시켰습니다.

7년 후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에서도 국내 첫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고 지금은 일정 규모의 불임치료 병원에서 두루 시술할 정도로 보편화됐습니다.

드문 사례긴 합니다만 보신 것처럼 제3자 정자를 통한 인공 수정이라는 고도의 기술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많은 의식의 변화가 있어 왔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혈연에 대한 집착이 존재해 온 게 사실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혈연 관계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친자녀가 아니라고 하면 가정의 평화 유지라는 헌법 취지에 위반된다는 걸 재확인했습니다.

[배상원/대법원 재판연구관 : "(혈연관계 없이 형성된) 가족관계가 오랜 기간 유지되는 등 사회적으로 성숙해지고 견고해졌다면 그에 대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큽니다."]

일각에선, 이번 대법원의 판단이 유전자 검사 등 의학 기술의 발달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신의 섭리'에 도전한 획기적 기술인만큼 인공수정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고민을 던졌단 걸 이번 대법원 판결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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