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홍콩의 눈물은 최루탄 때문만은 아니었다

입력 2019.10.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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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첫 해외 취재가 홍콩이었다. 1996년. 홍콩의 중국 반환 3년 전이었다. 2박 3일의 짧은 출장이어서 취재 현장 외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취재가 끝난 뒤 주룽반도 침사추이 지역에서 홍콩섬을 바라보았던 저녁 야경. 그리고 야시장 정도가 기억난다. 그리고 23년 뒤 또 홍콩을 가게 됐다. 이번 홍콩 취재는 그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홍콩의 민주화 시위라는 주제의 무게도 무게지만 홍콩이 겉모습이 아니라 홍콩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봤다는 차원에서 색다른 경험이었다.

극에 달한 홍콩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

'범죄인 인도 법안' 통칭 '송환법'의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위가 벌써 4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이 4개월 동안 가장 크게 바뀐 것이 바로 경찰에 대한 시선이라고 한다. 기자가 홍콩에 도착한 지난 10월 11일. 바로 전날 저녁에 홍콩의 중문 대학교 여학생 소니아 응 씨가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면서 경찰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같은 날 바닷가에서 발견된 천옌린(15살 소녀)의 석연치 않은 익사체는 홍콩 시위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고 경찰의 성폭력을 폭로한 소니아 응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고 경찰의 성폭력을 폭로한 소니아 응

얼굴을 드러내고 경찰의 성폭력에 맞서다

지금까지 경찰의 성폭력 의혹은 많이 제기돼왔다고 한다. 여러 여성이 경찰에 체포돼 성적 유린을 당했다며 시위 현장에서 공개적으로 증언했었다. 하지만 모두 얼굴을 가린 채 증언을 했다. 그래서 정부와 경찰은 그 증언 자체가 거짓이라고 일축했다. 특히 경찰은 증거를 가져오라고만 했다. 이러던 상황을 참지 못한 소니아 응 씨가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면서 경찰의 성폭력 행위를 폭로한 것이었다. 여성으로서 느낄 수 있는 극도의 수치심을 그리고 증언 후 생겨난 모든 불이익을 모두 감수하면서 말이다. 소니아 응 씨는 경찰의 추가적인 체포 등을 피하고자 현재 은신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폭로는 폭발력이 컸다. 이 폭로 이후 시위현장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경찰의 불법적인 폭력에 분개했다. 소니아 응 씨가 바로 경찰 성폭력의 증거가 된 것이다.

천옌린 사진천옌린 사진

꼬리를 무는 의문의 자살...'자살 당하는 사람들' 신조어도

천옌린의 익사체는 여러 가지 많은 의혹을 남겼다. 우선 경찰이 부검 결과 성폭행 등의 흔적이 없다며 자살로 결론을 내린다. 이후 유가족들에게 시신을 인도하지 않고 바로 화장을 했다고 한다. 홍콩에서 화장하려면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의 화장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이뿐만 아니다. 천옌린이 다녔던 홍콩 다자인 학교 CCTV를 보면 그녀가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나갔다며 경찰은 자살의 근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학교 측이 공개한 CCTV는 군데군데 모자이크를 하거나 화면이 갑자기 튀는 등 편집한 흔적이 역력했다. 학생들은 믿을 수 없다며 CCTV 원본을 공개할 것을 계속 촉구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녀가 수영 실력이 뛰어났다는 점과 익사체에서 흔히들 발견되는 붓기 같은 증상이 없었다는 점도 이상한 점이었다. 이런 와중에 천옌린의 어머니가 갑자기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자살이 맞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지만,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홍콩 시민들은 천옌린 또한 '자살 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경찰이 시위자를 체포해 특히 여성 시위자들에 대해서 성적 유린을 한다고 믿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송환법 철회 등 5대 요구조건에서는 경찰의 불법적인 폭력을 조사하는 위원회 구성이 두 번째에 들어가 있다. 시위 때마다 경찰 해체는 단골 구호로 등장한 지 오래됐다. 심지어 경찰을 조롱하는 주제가도 만들어 합창하기도 했다. 경찰은 홍콩 시민들에게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특히 '자살 당하다'라는 표현에 이르러서는 경찰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음을 알 수 있다. 홍콩 시위가 계속되고 난 뒤 의문사한 경우가 왕왕 생기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남성이 빌딩에서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져 사망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이 시신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별문제 없다며 실족으로 인한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들어 사람들은 '자살 당했다'라고 한다. 이 말은 경찰이 또는 경찰과 관련 있는 쪽에서 살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깔고 있다.

홍콩 시위 현장홍콩 시위 현장

'민중을 때려잡는 몽둥이'가 된 홍콩 경찰...신뢰 회복은 가능할까?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하는데 홍콩에서 경찰은 '민중을 때려잡는 몽둥이'가 된 상황이다. 그 몽둥이에 홍콩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들이 쏜 최루탄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 일차적으로 그 눈물은 억울함에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 상황을 어쩌지 못하는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에 흘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제삼자 입장에서 바라봤던 기자는 더욱 안타까웠다. 그들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지금의 상황. 어쩌면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국제적인 노력이 지금 바로 절실한 때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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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돋보기] 홍콩의 눈물은 최루탄 때문만은 아니었다
    • 입력 2019-10-24 09: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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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첫 해외 취재가 홍콩이었다. 1996년. 홍콩의 중국 반환 3년 전이었다. 2박 3일의 짧은 출장이어서 취재 현장 외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취재가 끝난 뒤 주룽반도 침사추이 지역에서 홍콩섬을 바라보았던 저녁 야경. 그리고 야시장 정도가 기억난다. 그리고 23년 뒤 또 홍콩을 가게 됐다. 이번 홍콩 취재는 그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홍콩의 민주화 시위라는 주제의 무게도 무게지만 홍콩이 겉모습이 아니라 홍콩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봤다는 차원에서 색다른 경험이었다.

극에 달한 홍콩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

'범죄인 인도 법안' 통칭 '송환법'의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위가 벌써 4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이 4개월 동안 가장 크게 바뀐 것이 바로 경찰에 대한 시선이라고 한다. 기자가 홍콩에 도착한 지난 10월 11일. 바로 전날 저녁에 홍콩의 중문 대학교 여학생 소니아 응 씨가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면서 경찰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같은 날 바닷가에서 발견된 천옌린(15살 소녀)의 석연치 않은 익사체는 홍콩 시위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고 경찰의 성폭력을 폭로한 소니아 응
얼굴을 드러내고 경찰의 성폭력에 맞서다

지금까지 경찰의 성폭력 의혹은 많이 제기돼왔다고 한다. 여러 여성이 경찰에 체포돼 성적 유린을 당했다며 시위 현장에서 공개적으로 증언했었다. 하지만 모두 얼굴을 가린 채 증언을 했다. 그래서 정부와 경찰은 그 증언 자체가 거짓이라고 일축했다. 특히 경찰은 증거를 가져오라고만 했다. 이러던 상황을 참지 못한 소니아 응 씨가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면서 경찰의 성폭력 행위를 폭로한 것이었다. 여성으로서 느낄 수 있는 극도의 수치심을 그리고 증언 후 생겨난 모든 불이익을 모두 감수하면서 말이다. 소니아 응 씨는 경찰의 추가적인 체포 등을 피하고자 현재 은신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폭로는 폭발력이 컸다. 이 폭로 이후 시위현장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경찰의 불법적인 폭력에 분개했다. 소니아 응 씨가 바로 경찰 성폭력의 증거가 된 것이다.

천옌린 사진
꼬리를 무는 의문의 자살...'자살 당하는 사람들' 신조어도

천옌린의 익사체는 여러 가지 많은 의혹을 남겼다. 우선 경찰이 부검 결과 성폭행 등의 흔적이 없다며 자살로 결론을 내린다. 이후 유가족들에게 시신을 인도하지 않고 바로 화장을 했다고 한다. 홍콩에서 화장하려면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의 화장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이뿐만 아니다. 천옌린이 다녔던 홍콩 다자인 학교 CCTV를 보면 그녀가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나갔다며 경찰은 자살의 근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학교 측이 공개한 CCTV는 군데군데 모자이크를 하거나 화면이 갑자기 튀는 등 편집한 흔적이 역력했다. 학생들은 믿을 수 없다며 CCTV 원본을 공개할 것을 계속 촉구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녀가 수영 실력이 뛰어났다는 점과 익사체에서 흔히들 발견되는 붓기 같은 증상이 없었다는 점도 이상한 점이었다. 이런 와중에 천옌린의 어머니가 갑자기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자살이 맞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지만,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홍콩 시민들은 천옌린 또한 '자살 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경찰이 시위자를 체포해 특히 여성 시위자들에 대해서 성적 유린을 한다고 믿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송환법 철회 등 5대 요구조건에서는 경찰의 불법적인 폭력을 조사하는 위원회 구성이 두 번째에 들어가 있다. 시위 때마다 경찰 해체는 단골 구호로 등장한 지 오래됐다. 심지어 경찰을 조롱하는 주제가도 만들어 합창하기도 했다. 경찰은 홍콩 시민들에게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특히 '자살 당하다'라는 표현에 이르러서는 경찰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음을 알 수 있다. 홍콩 시위가 계속되고 난 뒤 의문사한 경우가 왕왕 생기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남성이 빌딩에서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져 사망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이 시신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별문제 없다며 실족으로 인한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들어 사람들은 '자살 당했다'라고 한다. 이 말은 경찰이 또는 경찰과 관련 있는 쪽에서 살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깔고 있다.

홍콩 시위 현장
'민중을 때려잡는 몽둥이'가 된 홍콩 경찰...신뢰 회복은 가능할까?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하는데 홍콩에서 경찰은 '민중을 때려잡는 몽둥이'가 된 상황이다. 그 몽둥이에 홍콩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들이 쏜 최루탄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 일차적으로 그 눈물은 억울함에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 상황을 어쩌지 못하는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에 흘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제삼자 입장에서 바라봤던 기자는 더욱 안타까웠다. 그들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지금의 상황. 어쩌면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국제적인 노력이 지금 바로 절실한 때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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