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문재인 영입 1호’ 표창원이 불출마 결심한 이유

입력 2019.10.24 (20:21) 수정 2019.10.24 (21:1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24일 불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지난 15일 불출마를 선언했던 이철희 의원에 이어, 민주당 초선 의원의 두 번째 불출마 선언입니다.

표 의원은 불출마 선언 이유로 '책임감'을 들었습니다. 표 의원은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사상 최악의 20대 국회, 책임을 지겠다"며 "국회가 정쟁에 매몰 돼 민생을 외면하고 본분을 망각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상대 정파가 아닌 중립적 시민 혹은 저를 지지했던 시민들에게서조차 '실망했다'는 말을 듣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며 "하나하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는 4년의 임기를 끝으로 불출마함으로써 그 총체적 책임을 지고자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재인 영입 1호'의 화려한 국회 입성

그를 여의도로 데려온 건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2015년 12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던 문 대통령은 직접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 표 의원을 가장 먼저 발탁했습니다. 표 의원이 본인의 SNS에 '정치 안 합니다.'라고 정계 입문설을 부정하는 글을 쓴 지 두 달만이었습니다. 이 일로 그는 '번복의 아이콘'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대중적 지지도를 갖춘 인물로서 당에 큰 힘이 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2015년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함께 입당 기자회견을 연 표창원 의원2015년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함께 입당 기자회견을 연 표창원 의원

당시 표 의원이 쓴 민주당 입당 소감문을 살펴봤습니다. 표 의원은 "신인, 새내기 정치인으로서 참신하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신사의 품격'과 '전사의 용맹함', 이 두 가지를 갖춘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이 문구는 현재 표 의원의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이기도 합니다)

표 의원은 또 "기성 정치인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면, 더 추한 모습을 보이기 전에 퇴출해 달라"며 "아마 저는 그 전에 스스로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지금의 정치 상황과 본인의 미래를 예측하고, 당시 이러한 글을 썼던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기성 정치인으로서 때가 묻어간다는 반성이, 어쩌면 오늘 불출마 선언에 이르게 한 배경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철희와 표창원의 선언…그 다음은 누구?

표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이철희 의원의 불출마 선언 며칠 만이었습니다. 이철희 의원이야 사석에서 여러 차례 불출마 입장을 밝혀왔었지만, 표 의원의 불출마 표명은 전격적이었습니다. 두 의원 다 초선이지만, 주목받던 정치인이었던 만큼 당내 파장도 간단치 않았습니다. 특히 초선이 연 '불출마의 문'이 당내 물갈이 흐름으로 이어질지를 주목하는 기류가 상당했습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통상의 불출마 선언 문법들과는 다르고, 적잖은 파장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면서 "보통은 중진들이 용퇴 형식으로 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물갈이의 큰 흐름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 초선 의원은 "초선이 국회 상황에 책임지겠다고 불출마하는데, 중진들이 압박을 좀 느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1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질의 중인 표창원 의원지난 21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질의 중인 표창원 의원

아쉬움의 목소리도 물론 있습니다. 정치 신인으로서 낡은 정치를 바꾸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비례대표 초선이자 내년 총선에서 경북 구미을 지역구 출마를 노리고 있는 김현권 의원은 자신의 SNS에 "누군들 떠나고 싶지 않겠느냐"며 "우리는 총선에서 사활을 걸고 싸워야 한다, 차제에 대구, 경북으로 오시라"고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표창원 "물러나는 사람 있어야 새로운 공간 생겨"

이런 여당의 속사정을 표 의원도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자들을 만난 표 의원은 불출마 발표를 하기 불과 10분 전에 당 지도부에 의사를 전달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도부에 미리 말하면 출마를 설득할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서로 불편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좀 불쾌하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표 의원은 또 "제가 속한 집단에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다"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마라톤 뛰는 페이스로 정치한다면 나는 100m 달리기로 한 것 같고, 더는 못 뛰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물러나는 사람이 있어야 새로운 사람을 모실 공간이 생긴다, 누군가 저와 배턴터치를 해주셔야 한다"며, 자신의 불출마 선언이 당의 인적 쇄신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표창원 "조국 못 지켰고, 내로남불로 비치는 게 아팠다"

표 의원의 결심을 굳히는 데는 조국 정국도 영향을 상당히 미쳤던 것 같습니다. 표 의원은 최근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조 전 장관이나 지지자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지켜보고 싶었지만 지키지 못했고, 반면에 공정과 정의를 주장하던 우리 스스로에게 공정성 시비가 생기면서 내로남불로 비치는 게 너무 가슴 아팠다"고 했습니다.

오늘(24일) 표창원 의원이 자신의 의원실에서 기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오늘(24일) 표창원 의원이 자신의 의원실에서 기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철희와 표창원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인의 불출마 선언은 '기득권의 포기'로 포장되곤 했지만, 그 중 상당수는 현실적으로 재선이 쉽지 않거나 당의 불출마 압박을 받는 경우였습니다. 이번 이철희, 표창원 의원의 불출마가 당 안팎에 울림을 주는 건 그런 사례와 달랐기 때문일 겁니다.

스타 초선 의원들이 '탈진'을 호소하며 의회 정치에 회의감을 드러내는 상황. 이런 이들이 계속 떠나가면, 앞으로 여의도에는 누가 남을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정쟁에 매몰된 국회가 구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정치에 대한 실망감, 무력감만이 남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여심야심] ‘문재인 영입 1호’ 표창원이 불출마 결심한 이유
    • 입력 2019-10-24 20:21:21
    • 수정2019-10-24 21:13:23
    여심야심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24일 불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지난 15일 불출마를 선언했던 이철희 의원에 이어, 민주당 초선 의원의 두 번째 불출마 선언입니다.

표 의원은 불출마 선언 이유로 '책임감'을 들었습니다. 표 의원은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사상 최악의 20대 국회, 책임을 지겠다"며 "국회가 정쟁에 매몰 돼 민생을 외면하고 본분을 망각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상대 정파가 아닌 중립적 시민 혹은 저를 지지했던 시민들에게서조차 '실망했다'는 말을 듣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며 "하나하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는 4년의 임기를 끝으로 불출마함으로써 그 총체적 책임을 지고자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재인 영입 1호'의 화려한 국회 입성

그를 여의도로 데려온 건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2015년 12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던 문 대통령은 직접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 표 의원을 가장 먼저 발탁했습니다. 표 의원이 본인의 SNS에 '정치 안 합니다.'라고 정계 입문설을 부정하는 글을 쓴 지 두 달만이었습니다. 이 일로 그는 '번복의 아이콘'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대중적 지지도를 갖춘 인물로서 당에 큰 힘이 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2015년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함께 입당 기자회견을 연 표창원 의원
당시 표 의원이 쓴 민주당 입당 소감문을 살펴봤습니다. 표 의원은 "신인, 새내기 정치인으로서 참신하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신사의 품격'과 '전사의 용맹함', 이 두 가지를 갖춘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이 문구는 현재 표 의원의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이기도 합니다)

표 의원은 또 "기성 정치인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면, 더 추한 모습을 보이기 전에 퇴출해 달라"며 "아마 저는 그 전에 스스로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지금의 정치 상황과 본인의 미래를 예측하고, 당시 이러한 글을 썼던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기성 정치인으로서 때가 묻어간다는 반성이, 어쩌면 오늘 불출마 선언에 이르게 한 배경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철희와 표창원의 선언…그 다음은 누구?

표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이철희 의원의 불출마 선언 며칠 만이었습니다. 이철희 의원이야 사석에서 여러 차례 불출마 입장을 밝혀왔었지만, 표 의원의 불출마 표명은 전격적이었습니다. 두 의원 다 초선이지만, 주목받던 정치인이었던 만큼 당내 파장도 간단치 않았습니다. 특히 초선이 연 '불출마의 문'이 당내 물갈이 흐름으로 이어질지를 주목하는 기류가 상당했습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통상의 불출마 선언 문법들과는 다르고, 적잖은 파장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면서 "보통은 중진들이 용퇴 형식으로 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물갈이의 큰 흐름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 초선 의원은 "초선이 국회 상황에 책임지겠다고 불출마하는데, 중진들이 압박을 좀 느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1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질의 중인 표창원 의원
아쉬움의 목소리도 물론 있습니다. 정치 신인으로서 낡은 정치를 바꾸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비례대표 초선이자 내년 총선에서 경북 구미을 지역구 출마를 노리고 있는 김현권 의원은 자신의 SNS에 "누군들 떠나고 싶지 않겠느냐"며 "우리는 총선에서 사활을 걸고 싸워야 한다, 차제에 대구, 경북으로 오시라"고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표창원 "물러나는 사람 있어야 새로운 공간 생겨"

이런 여당의 속사정을 표 의원도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자들을 만난 표 의원은 불출마 발표를 하기 불과 10분 전에 당 지도부에 의사를 전달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도부에 미리 말하면 출마를 설득할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서로 불편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좀 불쾌하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표 의원은 또 "제가 속한 집단에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다"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마라톤 뛰는 페이스로 정치한다면 나는 100m 달리기로 한 것 같고, 더는 못 뛰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물러나는 사람이 있어야 새로운 사람을 모실 공간이 생긴다, 누군가 저와 배턴터치를 해주셔야 한다"며, 자신의 불출마 선언이 당의 인적 쇄신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표창원 "조국 못 지켰고, 내로남불로 비치는 게 아팠다"

표 의원의 결심을 굳히는 데는 조국 정국도 영향을 상당히 미쳤던 것 같습니다. 표 의원은 최근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조 전 장관이나 지지자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지켜보고 싶었지만 지키지 못했고, 반면에 공정과 정의를 주장하던 우리 스스로에게 공정성 시비가 생기면서 내로남불로 비치는 게 너무 가슴 아팠다"고 했습니다.

오늘(24일) 표창원 의원이 자신의 의원실에서 기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철희와 표창원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인의 불출마 선언은 '기득권의 포기'로 포장되곤 했지만, 그 중 상당수는 현실적으로 재선이 쉽지 않거나 당의 불출마 압박을 받는 경우였습니다. 이번 이철희, 표창원 의원의 불출마가 당 안팎에 울림을 주는 건 그런 사례와 달랐기 때문일 겁니다.

스타 초선 의원들이 '탈진'을 호소하며 의회 정치에 회의감을 드러내는 상황. 이런 이들이 계속 떠나가면, 앞으로 여의도에는 누가 남을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정쟁에 매몰된 국회가 구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정치에 대한 실망감, 무력감만이 남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