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밝혀진 ‘화성 초등생 실종’…미제 아닌 미제로 남나

입력 2019.10.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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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범죄 피해 정황에도 '가출인' 분류
"수사관계자들 기억 못 해"
김 양 어디있나…수색 난항

화성연쇄살인 피의자 이춘재는 살인 14건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언론에서는 화성 사건 10건 가운데 범인이 잡혀 옥살이를 한 8차 사건을 제외한 9건을 이춘재가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춘재는 그러나 8차 사건도 자신이 했다고 털어놨다. 화성 사건을 제외한 여죄는 4건이라는 얘기다. 청주·수원의 미제 사건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왔고, 경찰은 실제로 청주 2건, 수원 1건이 이춘재의 자백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나머지 1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30년 전 발생한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이다. 그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이 늦게나마 진실 규명의 기회를 잡은 것인데, 온전한 해결을 위한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피 묻은 소지품에 발견에도 '가출인' 처리

1989년 7월, 화성군 태안읍에 살던 초등학교 2학년생 김 모 양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실종됐다.

김 양은 함께 있던 친구와 헤어진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실종 당일 학교 근처 건널목에서 김 양이 40대 남성과 함께 가는 걸 봤다는 목격자 진술이 있을 뿐이었다.

5개월 후인 1989년 12월 태안읍의 한 야산에서 김 양의 옷과 속옷, 가방 등 소지품이 발견됐다. 일부 소지품에서는 사람의 피가 감정됐는데, 혈액형은 밝혀내지 못했다.

당시 화성은 연쇄살인으로 '공포의 도가니'였다. 김 양의 소지품이 발견되고 11개월 후인 1990년 11월에는 소지품 발견 장소 근처에서 9차 사건 희생자가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화성연쇄살인과 김 양 실종의 연관성을 수사했지만, 수사기록에는 김 양을 '가출인'으로 분류했다. 가출은 스스로 집을 나갔다는 의미인데, 입고 있던 옷이 야산에서 발견된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기록엔 없고 기억은 지워지고…

당시 경찰은 김 양의 소지품이 야산에서 발견된 사실을 김 양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김 양 가족은 경찰이 화성 재수사를 시작한 최근에서야 30년 만에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왜 알리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지만, 이유를 알 길은 없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수사관계자 대부분이 기억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사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다.

김 양을 가출인으로 분류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수사기록에 가출인으로 돼 있을 뿐 왜 그렇게 했는지 나와 있지는 않다. 범죄 피해 가능성을 충분히 수사해놓고 표현만 가출인으로 한 건지, 표현대로 단순 실종 사건으로 처리한 것인지 오리무중이다.

없어진 기록이 나타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니, 유일한 방법은 수사관계자들이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다.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의 하나는 최면을 걸어 조사하는 '법 최면' 수사다.
경찰은 그러나 수사관계자를 상대로 한 법 최면 수사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법 최면은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수단은 없고, 강제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산 3번 변한 화성…김 양은 어디에?

30년 전 당시 수사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김 양을 찾는 일이다. 김 양을 찾지 못한다면 미제 사건을 해결하고도 미제로 남는 안타까운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이춘재는 살인 사건을 자백하면서 김 양의 시신과 소지품을 야산의 풀숲에 유기했다고 말했다. 이 장소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춘재가 진술한 장소와 현장 출동 경찰이 말한 소지품 발견 장소는 다소 차이가 난다. 100m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가깝다고 볼 수도 있고, 거리가 좀 멀다고 볼 수도 있는 거리다.

문제는 화성이 지난 30년간 몰라보게 변했다는 점이다. 야산과 논·밭이 대부분이었던 화성은 강산이 세 번 변할 동안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했다. 이춘재가 진술한 장소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현장 출동 경찰이 말한 장소는 지금은 도로의 경계 지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흙깎이나 이런 게 많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기존 지형을 밀어버렸다는 의미라 풀숲에 놓였던 김 양을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찰은 장소를 최대한 특정한 후에 수색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수색에는 'GPR'이라는 장비가 동원된다. 이 장비는 레이더로 땅속을 들여다봐서 묻혀 있는 물질을 찾아내는 장비다.

경찰은 신중하지만 30년을 기다린 김 양 가족 입장에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다. 경찰 관계자는 "수차례 가족들을 만나서 이해를 시키고 수사 상황을 말씀드리고 있다"며 "장비는 다 준비를 해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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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늦게 밝혀진 ‘화성 초등생 실종’…미제 아닌 미제로 남나
    • 입력 2019-10-26 07:00:22
    취재K
범죄 피해 정황에도 '가출인' 분류 <br />"수사관계자들 기억 못 해" <br />김 양 어디있나…수색 난항
화성연쇄살인 피의자 이춘재는 살인 14건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언론에서는 화성 사건 10건 가운데 범인이 잡혀 옥살이를 한 8차 사건을 제외한 9건을 이춘재가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춘재는 그러나 8차 사건도 자신이 했다고 털어놨다. 화성 사건을 제외한 여죄는 4건이라는 얘기다. 청주·수원의 미제 사건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왔고, 경찰은 실제로 청주 2건, 수원 1건이 이춘재의 자백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나머지 1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30년 전 발생한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이다. 그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이 늦게나마 진실 규명의 기회를 잡은 것인데, 온전한 해결을 위한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피 묻은 소지품에 발견에도 '가출인' 처리

1989년 7월, 화성군 태안읍에 살던 초등학교 2학년생 김 모 양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실종됐다.

김 양은 함께 있던 친구와 헤어진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실종 당일 학교 근처 건널목에서 김 양이 40대 남성과 함께 가는 걸 봤다는 목격자 진술이 있을 뿐이었다.

5개월 후인 1989년 12월 태안읍의 한 야산에서 김 양의 옷과 속옷, 가방 등 소지품이 발견됐다. 일부 소지품에서는 사람의 피가 감정됐는데, 혈액형은 밝혀내지 못했다.

당시 화성은 연쇄살인으로 '공포의 도가니'였다. 김 양의 소지품이 발견되고 11개월 후인 1990년 11월에는 소지품 발견 장소 근처에서 9차 사건 희생자가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화성연쇄살인과 김 양 실종의 연관성을 수사했지만, 수사기록에는 김 양을 '가출인'으로 분류했다. 가출은 스스로 집을 나갔다는 의미인데, 입고 있던 옷이 야산에서 발견된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기록엔 없고 기억은 지워지고…

당시 경찰은 김 양의 소지품이 야산에서 발견된 사실을 김 양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김 양 가족은 경찰이 화성 재수사를 시작한 최근에서야 30년 만에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왜 알리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지만, 이유를 알 길은 없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수사관계자 대부분이 기억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사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다.

김 양을 가출인으로 분류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수사기록에 가출인으로 돼 있을 뿐 왜 그렇게 했는지 나와 있지는 않다. 범죄 피해 가능성을 충분히 수사해놓고 표현만 가출인으로 한 건지, 표현대로 단순 실종 사건으로 처리한 것인지 오리무중이다.

없어진 기록이 나타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니, 유일한 방법은 수사관계자들이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다.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의 하나는 최면을 걸어 조사하는 '법 최면' 수사다.
경찰은 그러나 수사관계자를 상대로 한 법 최면 수사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법 최면은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수단은 없고, 강제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산 3번 변한 화성…김 양은 어디에?

30년 전 당시 수사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김 양을 찾는 일이다. 김 양을 찾지 못한다면 미제 사건을 해결하고도 미제로 남는 안타까운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이춘재는 살인 사건을 자백하면서 김 양의 시신과 소지품을 야산의 풀숲에 유기했다고 말했다. 이 장소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춘재가 진술한 장소와 현장 출동 경찰이 말한 소지품 발견 장소는 다소 차이가 난다. 100m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가깝다고 볼 수도 있고, 거리가 좀 멀다고 볼 수도 있는 거리다.

문제는 화성이 지난 30년간 몰라보게 변했다는 점이다. 야산과 논·밭이 대부분이었던 화성은 강산이 세 번 변할 동안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했다. 이춘재가 진술한 장소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현장 출동 경찰이 말한 장소는 지금은 도로의 경계 지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흙깎이나 이런 게 많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기존 지형을 밀어버렸다는 의미라 풀숲에 놓였던 김 양을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찰은 장소를 최대한 특정한 후에 수색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수색에는 'GPR'이라는 장비가 동원된다. 이 장비는 레이더로 땅속을 들여다봐서 묻혀 있는 물질을 찾아내는 장비다.

경찰은 신중하지만 30년을 기다린 김 양 가족 입장에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다. 경찰 관계자는 "수차례 가족들을 만나서 이해를 시키고 수사 상황을 말씀드리고 있다"며 "장비는 다 준비를 해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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