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시계 제로’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민주당은 ‘전략 제로’(?)

입력 2019.10.26 (10: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흔히들 가을을 '결실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이 '결실의 계절'이 국회에도 찾아오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사법개혁특위와 정치개혁특위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 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야는 이달 들어 국회의장과 여야 5당 대표의 정치협상회의와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중심이 된 '3+3 협의체'를 꾸려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협상 테이블은 차려진 셈이지만, 논의는 더디기만 합니다.

정치협상회의는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빠진 채 한 차례 모임을 했지만 이후 문희상 국회의장의 해외 순방, 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방러 일정 등이 겹치면서 다음 모임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3+3 협의체' 역시 사법개혁 법안과 선거법 개정안 문제를 놓고 지난주부터 잇따라 회의를 열긴 했지만,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데 그쳤습니다.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난항…여당의 전략 부재 탓?

정치권에서는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문제가 이렇게 난항을 겪는 건 원내 1당이자 여당인 민주당의 '전략 부재'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 14일 조국 전 장관이 전격 사퇴한 이후 민주당은 패스트트랙 법안 가운데 공수처법을 최우선 현안 법안으로 지목했습니다.

검찰 개혁, 그중에서도 공수처 설치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높은 만큼 공수처법을 핵심 고리로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복안이었습니다.

지난 20일 민주당 검찰개혁특위 회의 뒤 박찬대 원내대변인은 패스트트랙 법안 가운데 공수처법을 분리해 우선 처리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검찰개혁특별위원회 회의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검찰개혁특별위원회 회의

그렇지만 이 같은 '공수처 우선 처리' 전략은 시작부터 꼬였습니다.

'공수처 절대 불가'를 내건 한국당은 논외로 하더라도, 다른 야당들도 공수처법을 우선 처리하는 데는 반대 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애초 합의가 선거법 개정안을 먼저 처리하고 사법개혁 법안을 처리하자는 것이었던 만큼, 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여당의 편일 줄 알았던 여론도 사뭇 달랐습니다. '국민 80%가 지지한다'고 했지만, 올해 초와 비교하면 공수처 설치 찬성 여론은 약해지고 반대 의견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공수처법 우선 처리' 놓고 혼선…원내대변인 질책도

이렇게 되자 여당의 입장이 난감해졌습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기자들에게 "박찬대 원내대변인이 '공수처법 우선 처리'라고 얘기를 해서 언론에 다 깔리고 수정이 잘 안 되어서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우리는 차분하게 상황을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수처법 우선 처리 방침은 애초에 확정된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알아보니 지난 20일 "공수처법을 우선 처리하기로 했다"고 브리핑 한 박찬대 원내대변인에게 이인영 원내대표가 "왜 회의에서 결정되지 않은 내용을 브리핑했느냐"며 질책했다고 합니다. 고성도 오갔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원내대변인이 결정 안 된 내용을 브리핑했든 어찌 됐든, 결국 설익은(?) 전략을 노출하고 그로 인해 혼선을 빚은 셈이 된 겁니다.

'여야 4당 공조' 복원 카드 냈지만…

이렇게 '공수처 우선 처리' 카드를 사실상 접은 민주당은 그 대안으로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지정을 가능하게 한 여야 4당 공조를 복원하겠다는 카드를 내놨습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어제(25일)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우리 당은 지난 4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과 검찰 개혁과 정치 개혁을 위해서 굳게 손을 잡았고 6달이 지나 이 약속을 실천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면서, "검찰 개혁과 정치 개혁을 약속했던 정당들과 뜻을 모아나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벌써 회의론이 나옵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공조가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큰 힘을 발휘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 전략이 과연 지금도 유효하겠느냐는 겁니다.

민주당 관계자는 "바른미래당은 내홍으로 분당 직전이고, 민주평화당은 이미 갈라져 있는 상태"라면서 "정의당은 여전히 공조의 한 축 역할을 해주겠지만 다른 당들은 어떨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검찰 개혁 법안에 무게를 싣는 민주당과 달리 다른 야당들엔 선거법 개정안이 더 큰 관심사인 것도 원활한 공조를 어렵게 하는 요인입니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와 있는 선거법 개정안은 의원 정수를 유지하면서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게 돼 있습니다.

이런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민주평화당 탈당파 의원들로 이뤄진 가칭 대안신당은 "지역구 의석수 축소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을 설득하려면 의원정수를 확대해야 하는 방향으로 선거법 개정안을 다시 마련해야 하는데, 자칫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여당은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여권 관계자는 "(의원정수 확대를 위해) 대신 총대를 매주겠다던 정의당도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머뭇거리는 것 같다"면서 "누가 그 문제를 공론화하고 싶어 하겠느냐,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2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2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의총서도 '뾰족한 수' 없어…당 중진도 '전략 부재' 비판

실타래가 얽히고설킨 상황, 민주당 지도부는 의원들로부터 허심탄회한 의견을 들어보겠다며 어제(25일)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여기서도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답답한 모습에 대해 익명을 원한 민주당의 중진 의원은 "지도부가 아무런 전략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결국 '야당이 반대해서 안 됐다'고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농부들은 가을걷이에도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때를 놓치면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김매기를 해준 지난 봄여름의 노력이 다 허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20대 국회의 마지막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데,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라는 수확을 위해 어떤 전략을 내놓을지, 고민 가득한 여당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여심야심] ‘시계 제로’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민주당은 ‘전략 제로’(?)
    • 입력 2019-10-26 10:00:31
    여심야심
흔히들 가을을 '결실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이 '결실의 계절'이 국회에도 찾아오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사법개혁특위와 정치개혁특위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 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야는 이달 들어 국회의장과 여야 5당 대표의 정치협상회의와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중심이 된 '3+3 협의체'를 꾸려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협상 테이블은 차려진 셈이지만, 논의는 더디기만 합니다.

정치협상회의는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빠진 채 한 차례 모임을 했지만 이후 문희상 국회의장의 해외 순방, 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방러 일정 등이 겹치면서 다음 모임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3+3 협의체' 역시 사법개혁 법안과 선거법 개정안 문제를 놓고 지난주부터 잇따라 회의를 열긴 했지만,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데 그쳤습니다.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난항…여당의 전략 부재 탓?

정치권에서는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문제가 이렇게 난항을 겪는 건 원내 1당이자 여당인 민주당의 '전략 부재'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 14일 조국 전 장관이 전격 사퇴한 이후 민주당은 패스트트랙 법안 가운데 공수처법을 최우선 현안 법안으로 지목했습니다.

검찰 개혁, 그중에서도 공수처 설치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높은 만큼 공수처법을 핵심 고리로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복안이었습니다.

지난 20일 민주당 검찰개혁특위 회의 뒤 박찬대 원내대변인은 패스트트랙 법안 가운데 공수처법을 분리해 우선 처리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검찰개혁특별위원회 회의
그렇지만 이 같은 '공수처 우선 처리' 전략은 시작부터 꼬였습니다.

'공수처 절대 불가'를 내건 한국당은 논외로 하더라도, 다른 야당들도 공수처법을 우선 처리하는 데는 반대 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애초 합의가 선거법 개정안을 먼저 처리하고 사법개혁 법안을 처리하자는 것이었던 만큼, 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여당의 편일 줄 알았던 여론도 사뭇 달랐습니다. '국민 80%가 지지한다'고 했지만, 올해 초와 비교하면 공수처 설치 찬성 여론은 약해지고 반대 의견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공수처법 우선 처리' 놓고 혼선…원내대변인 질책도

이렇게 되자 여당의 입장이 난감해졌습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기자들에게 "박찬대 원내대변인이 '공수처법 우선 처리'라고 얘기를 해서 언론에 다 깔리고 수정이 잘 안 되어서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우리는 차분하게 상황을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수처법 우선 처리 방침은 애초에 확정된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알아보니 지난 20일 "공수처법을 우선 처리하기로 했다"고 브리핑 한 박찬대 원내대변인에게 이인영 원내대표가 "왜 회의에서 결정되지 않은 내용을 브리핑했느냐"며 질책했다고 합니다. 고성도 오갔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원내대변인이 결정 안 된 내용을 브리핑했든 어찌 됐든, 결국 설익은(?) 전략을 노출하고 그로 인해 혼선을 빚은 셈이 된 겁니다.

'여야 4당 공조' 복원 카드 냈지만…

이렇게 '공수처 우선 처리' 카드를 사실상 접은 민주당은 그 대안으로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지정을 가능하게 한 여야 4당 공조를 복원하겠다는 카드를 내놨습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어제(25일)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우리 당은 지난 4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과 검찰 개혁과 정치 개혁을 위해서 굳게 손을 잡았고 6달이 지나 이 약속을 실천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면서, "검찰 개혁과 정치 개혁을 약속했던 정당들과 뜻을 모아나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벌써 회의론이 나옵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공조가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큰 힘을 발휘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 전략이 과연 지금도 유효하겠느냐는 겁니다.

민주당 관계자는 "바른미래당은 내홍으로 분당 직전이고, 민주평화당은 이미 갈라져 있는 상태"라면서 "정의당은 여전히 공조의 한 축 역할을 해주겠지만 다른 당들은 어떨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검찰 개혁 법안에 무게를 싣는 민주당과 달리 다른 야당들엔 선거법 개정안이 더 큰 관심사인 것도 원활한 공조를 어렵게 하는 요인입니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와 있는 선거법 개정안은 의원 정수를 유지하면서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게 돼 있습니다.

이런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민주평화당 탈당파 의원들로 이뤄진 가칭 대안신당은 "지역구 의석수 축소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을 설득하려면 의원정수를 확대해야 하는 방향으로 선거법 개정안을 다시 마련해야 하는데, 자칫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여당은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여권 관계자는 "(의원정수 확대를 위해) 대신 총대를 매주겠다던 정의당도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머뭇거리는 것 같다"면서 "누가 그 문제를 공론화하고 싶어 하겠느냐,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2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의총서도 '뾰족한 수' 없어…당 중진도 '전략 부재' 비판

실타래가 얽히고설킨 상황, 민주당 지도부는 의원들로부터 허심탄회한 의견을 들어보겠다며 어제(25일)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여기서도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답답한 모습에 대해 익명을 원한 민주당의 중진 의원은 "지도부가 아무런 전략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결국 '야당이 반대해서 안 됐다'고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농부들은 가을걷이에도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때를 놓치면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김매기를 해준 지난 봄여름의 노력이 다 허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20대 국회의 마지막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데,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라는 수확을 위해 어떤 전략을 내놓을지, 고민 가득한 여당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