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영국에 간다더니 사라진 아이들”…베트남 24가족 실종신고

입력 2019.10.28 (11:00) 수정 2019.10.2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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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영국 냉동 컨테이너 트럭에서 39구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영국에 간다던 자녀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베트남 당국에 접수됐습니다. 모두 24건에 달합니다. 베트남 중부 하틴성과 응에안성 두 곳에서 각 10건, 14건씩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가운데 9건이 27일 하루 만에 추가된 신고로,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희생자의 국적은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베트남 현지 언론은 '사라진 아이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20살 실종자 응웬 딘 르엉씨의 가족. (사진출처: 로이터)20살 실종자 응웬 딘 르엉씨의 가족. (사진출처: 로이터)

●'VIP 방법'으로 영국에 간다던 아들...지난 23일 이후 연락 두절

응웬 딘 쟈 씨의 아들 20살 응웬 딘 르엉 씨는 23일 이후 연락이 끊겼습니다. 2017년 8월 아들은 유럽에 도착했습니다. 베트남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독일 등을 거치는 여정이었습니다. 18,000달러의 비용이 들어 이때 빚이 생겼습니다. 2018년 4월에 프랑스에 도착한 르엉 씨는 베트남 사장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1년 2개월 동안 일했습니다. 이곳의 월급은 2,150달러 정도였다고 합니다.

"올해 10월 10일쯤 아들이 빚을 거의 다 갚았고, 영국에 가서 정착하려 한다고 전화가 왔어요. 그곳에서는 3~4배 정도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 같다면서요."

르엉 씨는 유럽에 있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연락하면 영국에 갈 방법이 있을 거라며 여정에 성공하게 된다면 이후 비용을 낼 거라고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르엉 씨의 아버지 응웬 딘 쟈 씨 (사진출처:VNexpress) 르엉 씨의 아버지 응웬 딘 쟈 씨 (사진출처:VNexpress)

르엉 씨가 가족들에게 말한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밀입국하는 방법은 2가지였습니다. '고된 방법(Difficult way)' 또는 'VIP 방법'(VIP way). 'VIP 방법'은 안전하고 더 쉽고, 발각될 가능성도 낮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두 번째 방법이 지난주 39명이 숨진 채 발견된 장소와 같은 컨테이너 트럭 또는 천으로 덮인 트럭에 숨는 방식이었습니다.

지난 21일 아들은 파리로 가고 있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했습니다. 그리고 3일 뒤인 24일, 가족들은 "아들을 태우고 가던 차량이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들을 고용했던 옛 사장의 전화였습니다. 아버지 쟈 씨는 아들이 'VIP 길'에서 숨진 것이라고 직감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26살 실종자 팜 티 짜 미의 가족들 (사진출처: AP)26살 실종자 팜 티 짜 미의 가족들 (사진출처: AP)

●오빠에게 택시 사준 둘째 딸…"숨을 쉴 수 없어. 미안해 엄마"

하틴 성에 사는 55살 팜 반 틴 씨는 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26살 딸 팜 티 짜 미 씨는 10월 3일 베트남을 출국했습니다. 중국, 그리고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10월 23일 딸에게 받은 문자를 엄마는 다음날 확인했습니다. "죄송해요. 엄마. 외국행은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아요.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죽을 것 같아. 엄마 미안해."

다음날, 미 씨의 남동생이 곧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울린 채 미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미는 틴 씨의 둘째 딸입니다. 응에안 성의 빈시티 대학을 중퇴한 딸은 몇 해 전 일본에 갔습니다. 올해 초 베트남에 돌아온 미 씨는 오빠에게 택시 운전을 하라며 차를 사줬습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봤다고 합니다.

틴 씨는 딸이 영국으로 가기 위해 40,800달러의 비용을 누군가에게 냈다고 기억합니다. 또, 딸을 데려가는 이들은 추가로 22,000달러를 요구하며 마련하지 못한 돈은 영국에 간 이후 갚아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미 씨의 엄마 응웬 티 펑 씨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딸을 말리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털어놓습니다. "미에게 베트남에 정착하고, 결혼하라고 했지만, 딸은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갈 거라고 했어요. 부모님을 가난에서 먼저 벗어나게 한 뒤에 결혼을 생각할 거라고 했죠." 미의 부모는 작은 노점을 운영하고 있고, 성인이 된 오빠와 남동생은 아직 안정적인 직장을 잡지 못했습니다.

주말 응에안에서 열린 추도 미사 (사진출처: AP)주말 응에안에서 열린 추도 미사 (사진출처: AP)

●가족 빚 갚기 위해 떠난 아들이 실종된 이웃들

중부 응에안 성의 65살 응웬 딘 섯 씨도 20일부터 아들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26살 아들 응웬 딘 투 씨는 3,000 달러를 내고, 2018년 공식 해외 근로 프로그램에 지원했습니다. 동유럽에 먼저 간 뒤에 독일로 옮겼습니다. 10월 20일 투 씨는 가족에게 프랑스에서 유럽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화했습니다. 이 연락이 현재로선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였습니다. 투 시는 섯 씨의 다섯 째 막내아들입니다. 고향에 새집을 지으며 생긴 빚을 갚고 싶다며 아들은 해외로 떠났습니다.

투 씨의 이웃인 레 투안 씨네 가족들도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둘째 아들 30살 레 반 하 씨는 3개월 전에 베트남을 떠났습니다. 말레이시아로 간 뒤 영국에 가기 위해 유럽의 다른 나라에 얼마간 체류했다고 합니다. 지난 21일 아버지와 나눈 짧은 통화에서 하 씨는 "영국으로 갈 준비를 하려고, 지금 프랑스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언제 출발할지 몰랐던 아버지는 "몸 조심히, 그리고 도착하면 꼭 연락해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업체를 통해서 아들이 움직이고 있는지, 수만 달러가 들었다고 했지만, 비용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돈이 필요하다는 아들의 연락에 고향의 집 두 채를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가족들은 아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 밀입국 실태 조사·신원확인 협조 지시

현지 언론 등 외신은 실종자 대부분이 경제적인 이유로 영국행을 선택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하틴성과 응에안성은 베트남에서도 소득수준이 낮은 농촌 마을입니다. 사람들의 평균 월급이 300달러 수준인 베트남에서는 지역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 지급합니다. 호찌민과 하노이의 최저임금 기준 월급은 (2020년 예상 기준) 192달러, 응에안성은 이보다 낮은 133달러 수준입니다.

영국 경찰은 수사 초기, 희생자들의 국적이 중국인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위조된 신분증을 지녔을 가능성 등을 고려해 다시 정확한 신분 확인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베트남의 가족들은 실종된 자녀의 사진을 영국에 거주하는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보냈고, 지방 당국을 통해 피해자 신원 확인을 위한 연락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영국 BBC 방송 등은 영국 내 베트남 커뮤니티 등을 근거로, 희생자 가운데 최소 7명~20명 가까운 베트남인들이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응웬 쑤언 푹 총리는 지난 26일 밀입국에 대한 조사를 명령했고, 베트남 경찰은 희생자로 추정되는 이들의 가족 DNA 시료를 채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베트남 외교부도 주말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영국 주재 베트남 대사관에 현지 경찰과 신원 확인 등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라고 지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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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영국에 간다더니 사라진 아이들”…베트남 24가족 실종신고
    • 입력 2019-10-28 11:00:54
    • 수정2019-10-28 11:05:33
    특파원 리포트
지난 23일 영국 냉동 컨테이너 트럭에서 39구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영국에 간다던 자녀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베트남 당국에 접수됐습니다. 모두 24건에 달합니다. 베트남 중부 하틴성과 응에안성 두 곳에서 각 10건, 14건씩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가운데 9건이 27일 하루 만에 추가된 신고로,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희생자의 국적은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베트남 현지 언론은 '사라진 아이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20살 실종자 응웬 딘 르엉씨의 가족. (사진출처: 로이터)
●'VIP 방법'으로 영국에 간다던 아들...지난 23일 이후 연락 두절

응웬 딘 쟈 씨의 아들 20살 응웬 딘 르엉 씨는 23일 이후 연락이 끊겼습니다. 2017년 8월 아들은 유럽에 도착했습니다. 베트남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독일 등을 거치는 여정이었습니다. 18,000달러의 비용이 들어 이때 빚이 생겼습니다. 2018년 4월에 프랑스에 도착한 르엉 씨는 베트남 사장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1년 2개월 동안 일했습니다. 이곳의 월급은 2,150달러 정도였다고 합니다.

"올해 10월 10일쯤 아들이 빚을 거의 다 갚았고, 영국에 가서 정착하려 한다고 전화가 왔어요. 그곳에서는 3~4배 정도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 같다면서요."

르엉 씨는 유럽에 있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연락하면 영국에 갈 방법이 있을 거라며 여정에 성공하게 된다면 이후 비용을 낼 거라고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르엉 씨의 아버지 응웬 딘 쟈 씨 (사진출처:VNexpress)
르엉 씨가 가족들에게 말한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밀입국하는 방법은 2가지였습니다. '고된 방법(Difficult way)' 또는 'VIP 방법'(VIP way). 'VIP 방법'은 안전하고 더 쉽고, 발각될 가능성도 낮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두 번째 방법이 지난주 39명이 숨진 채 발견된 장소와 같은 컨테이너 트럭 또는 천으로 덮인 트럭에 숨는 방식이었습니다.

지난 21일 아들은 파리로 가고 있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했습니다. 그리고 3일 뒤인 24일, 가족들은 "아들을 태우고 가던 차량이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들을 고용했던 옛 사장의 전화였습니다. 아버지 쟈 씨는 아들이 'VIP 길'에서 숨진 것이라고 직감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26살 실종자 팜 티 짜 미의 가족들 (사진출처: AP)
●오빠에게 택시 사준 둘째 딸…"숨을 쉴 수 없어. 미안해 엄마"

하틴 성에 사는 55살 팜 반 틴 씨는 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26살 딸 팜 티 짜 미 씨는 10월 3일 베트남을 출국했습니다. 중국, 그리고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10월 23일 딸에게 받은 문자를 엄마는 다음날 확인했습니다. "죄송해요. 엄마. 외국행은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아요.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죽을 것 같아. 엄마 미안해."

다음날, 미 씨의 남동생이 곧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울린 채 미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미는 틴 씨의 둘째 딸입니다. 응에안 성의 빈시티 대학을 중퇴한 딸은 몇 해 전 일본에 갔습니다. 올해 초 베트남에 돌아온 미 씨는 오빠에게 택시 운전을 하라며 차를 사줬습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봤다고 합니다.

틴 씨는 딸이 영국으로 가기 위해 40,800달러의 비용을 누군가에게 냈다고 기억합니다. 또, 딸을 데려가는 이들은 추가로 22,000달러를 요구하며 마련하지 못한 돈은 영국에 간 이후 갚아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미 씨의 엄마 응웬 티 펑 씨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딸을 말리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털어놓습니다. "미에게 베트남에 정착하고, 결혼하라고 했지만, 딸은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갈 거라고 했어요. 부모님을 가난에서 먼저 벗어나게 한 뒤에 결혼을 생각할 거라고 했죠." 미의 부모는 작은 노점을 운영하고 있고, 성인이 된 오빠와 남동생은 아직 안정적인 직장을 잡지 못했습니다.

주말 응에안에서 열린 추도 미사 (사진출처: AP)
●가족 빚 갚기 위해 떠난 아들이 실종된 이웃들

중부 응에안 성의 65살 응웬 딘 섯 씨도 20일부터 아들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26살 아들 응웬 딘 투 씨는 3,000 달러를 내고, 2018년 공식 해외 근로 프로그램에 지원했습니다. 동유럽에 먼저 간 뒤에 독일로 옮겼습니다. 10월 20일 투 씨는 가족에게 프랑스에서 유럽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화했습니다. 이 연락이 현재로선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였습니다. 투 시는 섯 씨의 다섯 째 막내아들입니다. 고향에 새집을 지으며 생긴 빚을 갚고 싶다며 아들은 해외로 떠났습니다.

투 씨의 이웃인 레 투안 씨네 가족들도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둘째 아들 30살 레 반 하 씨는 3개월 전에 베트남을 떠났습니다. 말레이시아로 간 뒤 영국에 가기 위해 유럽의 다른 나라에 얼마간 체류했다고 합니다. 지난 21일 아버지와 나눈 짧은 통화에서 하 씨는 "영국으로 갈 준비를 하려고, 지금 프랑스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언제 출발할지 몰랐던 아버지는 "몸 조심히, 그리고 도착하면 꼭 연락해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업체를 통해서 아들이 움직이고 있는지, 수만 달러가 들었다고 했지만, 비용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돈이 필요하다는 아들의 연락에 고향의 집 두 채를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가족들은 아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 밀입국 실태 조사·신원확인 협조 지시

현지 언론 등 외신은 실종자 대부분이 경제적인 이유로 영국행을 선택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하틴성과 응에안성은 베트남에서도 소득수준이 낮은 농촌 마을입니다. 사람들의 평균 월급이 300달러 수준인 베트남에서는 지역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 지급합니다. 호찌민과 하노이의 최저임금 기준 월급은 (2020년 예상 기준) 192달러, 응에안성은 이보다 낮은 133달러 수준입니다.

영국 경찰은 수사 초기, 희생자들의 국적이 중국인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위조된 신분증을 지녔을 가능성 등을 고려해 다시 정확한 신분 확인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베트남의 가족들은 실종된 자녀의 사진을 영국에 거주하는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보냈고, 지방 당국을 통해 피해자 신원 확인을 위한 연락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영국 BBC 방송 등은 영국 내 베트남 커뮤니티 등을 근거로, 희생자 가운데 최소 7명~20명 가까운 베트남인들이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응웬 쑤언 푹 총리는 지난 26일 밀입국에 대한 조사를 명령했고, 베트남 경찰은 희생자로 추정되는 이들의 가족 DNA 시료를 채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베트남 외교부도 주말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영국 주재 베트남 대사관에 현지 경찰과 신원 확인 등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라고 지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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