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경악’ 유기견 사체 사료화…책임자 처벌은 흐지부지

입력 2019.10.28 (15:33) 수정 2019.10.2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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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우고, 쪄서, 가루로 만듭니다."

안락사한 유기견 사체를 '렌더링 처리' 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되묻자, 담당 공무원은 잠시 망설인 뒤 이렇게 답했습니다. 귀를 의심했습니다. 만들어진 가루를 재활용한다는 설명까지 듣고 나니 멍해졌습니다. 전국적인 공분을 산 '제주도 동물보호센터 유기견 사체 재활용' 취재는 넉 달 전 한 공무원의 고백으로 시작됐습니다. 현장 취재를 어떻게 할지 막막했지만, 알고도 모른 척 넘기긴 힘들었습니다. 유기견 사체를 전달받는 처리 공장 연락처를 구하고 업체를 설득한 끝에 문제의 재활용 공정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 임시보호 유기견이 '1kg당 480원' 동물 사료 원료가 되기까지…


취재진이 공장에 도착하자 뭐라 표현하기 힘든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큰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렌더링 기계가 있었고, 그 옆에 노란 컨테이너들이 쌓여있었습니다. 핏물이 흘러내려 바닥을 적시는 컨테이너 상자들에 담긴 것은 죽은 돼지와 가축 부산물이 대다수였지만, 유기견 사체도 그곳에 함께 있었습니다.

문제의 재활용 공정을 직접 보고 설명을 들을수록, 마음은 착잡해졌습니다. 유기견 사체를 사료 원료로 탈바꿈하기까지는 두 시간 남짓 걸립니다. 기계에 쏟아부어진 뒤 150도 가까운 열처리를 거치면 고형물이 남습니다. 고형물은 분쇄돼 가루가 되어 사료 원료로 포장돼 다른 지방 사료제조회사로 팔려나갔습니다.

이 방식으로 처리한 제주도 동물보호센터 유기견은 올해 들어 모두 3,829마리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동물보호센터 직원이 유기견 사체를 직접 공장에 가져다줬는데, 2019년 1월부터 이달 8일까지 열 달 가까이 25톤가량이 이른바 '재활용'됐습니다.


임시보호 기간이 끝나고 머물 곳이 없어진 유기견을 안락사한 뒤 폐기물 재활용 공장으로 보내 사료 원료를 만드는 구조입니다. 짧으면 한 달 새 이 모든 과정이 끝납니다. 숨진 유기견이 공장에 맡겨질 땐 1kg에 275원의 처리 비용이 드는 폐기물이 됐다가, 재활용 공정을 거치면 1kg에 480원의 사료 원료 상품으로 분류됐습니다.

■ 경악스런 유기견 사료화…누구의 책임인가?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제주도 동물보호센터와 공장 직원들은 악마인가?" 유기견 사료화 이슈를 접한 네티즌 반응을 살펴보니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넉 달 전부터 취재하면서 부딪힌 근본적인 문제는 센터나 업체에 있지 않았습니다. 위법성을 알면서도 사체 재활용 처리 방식을 고수하다 문제가 불거지자 책임을 업체에 떠넘긴 제주도 동물위생시험소, 언론의 문제 제기에도 넉 달 넘게 관리·감독에 손 놓은 제주시 환경지도과, 재활용 불가능한 의료폐기물이라는 법령 해석을 기관에 전한 뒤 '강 건너 불구경'한 환경부가 유기견 사료화 문제를 키웠습니다.


유기견 사체 재활용 이슈는 지난 국정감사에서 윤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로 주목받았습니다. 이에 앞서 위법성을 지적하는 뉴스는 넉 달 전인 6월부터 지역 뉴스로 두 차례나 방송됐는데요. 동물위생시험소는 언론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도 왜 방식을 바꾸지 않았을까요?


동물보호센터 운영을 총괄하는 제주도 동물위생시험소 당시 방역진단과장의 말을 옮겨보겠습니다. 폐기물관리법 위반 여부에 대해선 "건강한 유기견의 사체만 생활폐기물로 재활용 처리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고 했고, 도리어 기자에게 "이게 보도할 만한 공익적 가치가 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또 "보도하면 동물보호단체가 좋아하겠나. 동물보호단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이 발언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오프 더 레코드'로 나온 말들이 아닙니다. 유기견 사체 재활용 문제에 대한 시험소 공식 입장을 듣기 위해 소장과 과장급 공무원들과 기자가 배석한 자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후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에서 관련 자료를 요구하고 나서야, 동물위생시험소는 뒤늦게 유기견 사체 재활용을 멈추고 의료폐기물로 처리하기로 방침을 바꿨습니다. KBS의 6월 첫 보도 이후 약 15톤의 유기동물 사체를 이미 동물 사료 원료로 재활용한 이후 조치가 바뀐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위법성'을 인지한 시점입니다. 9월 4일 환경부는 해당 유기견 사체가 재활용할 수 없는 '의료폐기물'이라는 법령 해석을 동물위생시험소에 전달했습니다. 환경부 공문을 받고도 동물위생시험소는 한 달 넘게 렌더링 공장에 사체 처리를 맡겼습니다. 위법 행위를 알고도 지속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자의 계속된 요청에도 시험소는 월별 재활용 사체 무게를 비공개하고 있습니다.


렌더링 업체 측은 "제주도의 부탁을 받아 할 수 없이 사체 처리를 맡았다"고 했습니다. 또 "불법 행위에 따른 책임은 달게 받겠지만, 위법 행위라는 것을 사전에 알려줬다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고 억울함을 내비쳤습니다. 제주도는 이 업체에 1개월 영업 정지 행정처분과 잔여 원료 회수 조치를 명령했습니다. 업체 측에 대한 형사 고발 등도 검토하고 있는데, 유기견 사료화 불법 행위를 사실상 방조한 제주도가 업체를 조사하는 주체가 된 상황입니다.


폐기물을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했다가 질타를 받은 제주시는 이번에도 폐기물 처리의 허술함을 드러냈습니다. 폐기물 불법 처리에 대한 관리·감독을 환경부로부터 위임받은 제주시는 언론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도 넉 달 넘게 환경부에 단 한 차례 확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생활폐기물이 맞으니 확인해 볼 필요도 없다"는 게 당시 제주시 환경지도과장이 기자에게 한 설명이었습니다. 전국적인 이슈가 불거지고 일주일이 흐른 10월 25일 담당 부서에 다시 전화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동물위생시험소가 법을 잘 모르고 재활용한 것이고, 현재 의료폐기물 처리로 바꿨으니 괜찮아진 게 아니냐"는 담당 공무원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여전히 관리·감독에 손 놓고 있는 겁니다.

■ 한 차례 공개 질문도 받지 않는 '후속 조치' 잘 될까?

다소 긴 기사인데도 여기까지 모두 읽으셨다면 유기견 사료화 문제에 평소 궁금증과 답답함이 큰 독자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동물권과 관련해 '경악'할만한 뉴스들은 대부분 단발성으로 소비된 뒤 잊혀지기 부지기수입니다. 사람이 아닌 말 못하는 동물에게 벌어진 끔찍한 일에 대해 책임자 처벌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유기견 사체 사료화 문제가 전국적인 공분을 사자 제주도는 10월 19일 토요일 저녁 6시 두 장의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이것이 공식 입장 전부입니다. 기자실 브리핑도 지금까지 없고, 당연히 공개 질의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제주도의 이러한 후속 조치는 들끓는 비판 여론도 한때라는 판단에서 비롯됐을지 모릅니다. 잘못된 점에 대한 구체적인 사과와 철저한 조사, 제대로 된 후속 조치와 관련 책임자 처벌까지 갈 수 있을까요? 첫 보도 이후 지금까지 넉 달의 과정을 되짚어봤을 때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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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경악’ 유기견 사체 사료화…책임자 처벌은 흐지부지
    • 입력 2019-10-28 15:33:28
    • 수정2019-10-28 15: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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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우고, 쪄서, 가루로 만듭니다."

안락사한 유기견 사체를 '렌더링 처리' 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되묻자, 담당 공무원은 잠시 망설인 뒤 이렇게 답했습니다. 귀를 의심했습니다. 만들어진 가루를 재활용한다는 설명까지 듣고 나니 멍해졌습니다. 전국적인 공분을 산 '제주도 동물보호센터 유기견 사체 재활용' 취재는 넉 달 전 한 공무원의 고백으로 시작됐습니다. 현장 취재를 어떻게 할지 막막했지만, 알고도 모른 척 넘기긴 힘들었습니다. 유기견 사체를 전달받는 처리 공장 연락처를 구하고 업체를 설득한 끝에 문제의 재활용 공정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 임시보호 유기견이 '1kg당 480원' 동물 사료 원료가 되기까지…


취재진이 공장에 도착하자 뭐라 표현하기 힘든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큰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렌더링 기계가 있었고, 그 옆에 노란 컨테이너들이 쌓여있었습니다. 핏물이 흘러내려 바닥을 적시는 컨테이너 상자들에 담긴 것은 죽은 돼지와 가축 부산물이 대다수였지만, 유기견 사체도 그곳에 함께 있었습니다.

문제의 재활용 공정을 직접 보고 설명을 들을수록, 마음은 착잡해졌습니다. 유기견 사체를 사료 원료로 탈바꿈하기까지는 두 시간 남짓 걸립니다. 기계에 쏟아부어진 뒤 150도 가까운 열처리를 거치면 고형물이 남습니다. 고형물은 분쇄돼 가루가 되어 사료 원료로 포장돼 다른 지방 사료제조회사로 팔려나갔습니다.

이 방식으로 처리한 제주도 동물보호센터 유기견은 올해 들어 모두 3,829마리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동물보호센터 직원이 유기견 사체를 직접 공장에 가져다줬는데, 2019년 1월부터 이달 8일까지 열 달 가까이 25톤가량이 이른바 '재활용'됐습니다.


임시보호 기간이 끝나고 머물 곳이 없어진 유기견을 안락사한 뒤 폐기물 재활용 공장으로 보내 사료 원료를 만드는 구조입니다. 짧으면 한 달 새 이 모든 과정이 끝납니다. 숨진 유기견이 공장에 맡겨질 땐 1kg에 275원의 처리 비용이 드는 폐기물이 됐다가, 재활용 공정을 거치면 1kg에 480원의 사료 원료 상품으로 분류됐습니다.

■ 경악스런 유기견 사료화…누구의 책임인가?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제주도 동물보호센터와 공장 직원들은 악마인가?" 유기견 사료화 이슈를 접한 네티즌 반응을 살펴보니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넉 달 전부터 취재하면서 부딪힌 근본적인 문제는 센터나 업체에 있지 않았습니다. 위법성을 알면서도 사체 재활용 처리 방식을 고수하다 문제가 불거지자 책임을 업체에 떠넘긴 제주도 동물위생시험소, 언론의 문제 제기에도 넉 달 넘게 관리·감독에 손 놓은 제주시 환경지도과, 재활용 불가능한 의료폐기물이라는 법령 해석을 기관에 전한 뒤 '강 건너 불구경'한 환경부가 유기견 사료화 문제를 키웠습니다.


유기견 사체 재활용 이슈는 지난 국정감사에서 윤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로 주목받았습니다. 이에 앞서 위법성을 지적하는 뉴스는 넉 달 전인 6월부터 지역 뉴스로 두 차례나 방송됐는데요. 동물위생시험소는 언론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도 왜 방식을 바꾸지 않았을까요?


동물보호센터 운영을 총괄하는 제주도 동물위생시험소 당시 방역진단과장의 말을 옮겨보겠습니다. 폐기물관리법 위반 여부에 대해선 "건강한 유기견의 사체만 생활폐기물로 재활용 처리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고 했고, 도리어 기자에게 "이게 보도할 만한 공익적 가치가 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또 "보도하면 동물보호단체가 좋아하겠나. 동물보호단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이 발언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오프 더 레코드'로 나온 말들이 아닙니다. 유기견 사체 재활용 문제에 대한 시험소 공식 입장을 듣기 위해 소장과 과장급 공무원들과 기자가 배석한 자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후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에서 관련 자료를 요구하고 나서야, 동물위생시험소는 뒤늦게 유기견 사체 재활용을 멈추고 의료폐기물로 처리하기로 방침을 바꿨습니다. KBS의 6월 첫 보도 이후 약 15톤의 유기동물 사체를 이미 동물 사료 원료로 재활용한 이후 조치가 바뀐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위법성'을 인지한 시점입니다. 9월 4일 환경부는 해당 유기견 사체가 재활용할 수 없는 '의료폐기물'이라는 법령 해석을 동물위생시험소에 전달했습니다. 환경부 공문을 받고도 동물위생시험소는 한 달 넘게 렌더링 공장에 사체 처리를 맡겼습니다. 위법 행위를 알고도 지속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자의 계속된 요청에도 시험소는 월별 재활용 사체 무게를 비공개하고 있습니다.


렌더링 업체 측은 "제주도의 부탁을 받아 할 수 없이 사체 처리를 맡았다"고 했습니다. 또 "불법 행위에 따른 책임은 달게 받겠지만, 위법 행위라는 것을 사전에 알려줬다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고 억울함을 내비쳤습니다. 제주도는 이 업체에 1개월 영업 정지 행정처분과 잔여 원료 회수 조치를 명령했습니다. 업체 측에 대한 형사 고발 등도 검토하고 있는데, 유기견 사료화 불법 행위를 사실상 방조한 제주도가 업체를 조사하는 주체가 된 상황입니다.


폐기물을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했다가 질타를 받은 제주시는 이번에도 폐기물 처리의 허술함을 드러냈습니다. 폐기물 불법 처리에 대한 관리·감독을 환경부로부터 위임받은 제주시는 언론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도 넉 달 넘게 환경부에 단 한 차례 확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생활폐기물이 맞으니 확인해 볼 필요도 없다"는 게 당시 제주시 환경지도과장이 기자에게 한 설명이었습니다. 전국적인 이슈가 불거지고 일주일이 흐른 10월 25일 담당 부서에 다시 전화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동물위생시험소가 법을 잘 모르고 재활용한 것이고, 현재 의료폐기물 처리로 바꿨으니 괜찮아진 게 아니냐"는 담당 공무원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여전히 관리·감독에 손 놓고 있는 겁니다.

■ 한 차례 공개 질문도 받지 않는 '후속 조치' 잘 될까?

다소 긴 기사인데도 여기까지 모두 읽으셨다면 유기견 사료화 문제에 평소 궁금증과 답답함이 큰 독자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동물권과 관련해 '경악'할만한 뉴스들은 대부분 단발성으로 소비된 뒤 잊혀지기 부지기수입니다. 사람이 아닌 말 못하는 동물에게 벌어진 끔찍한 일에 대해 책임자 처벌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유기견 사체 사료화 문제가 전국적인 공분을 사자 제주도는 10월 19일 토요일 저녁 6시 두 장의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이것이 공식 입장 전부입니다. 기자실 브리핑도 지금까지 없고, 당연히 공개 질의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제주도의 이러한 후속 조치는 들끓는 비판 여론도 한때라는 판단에서 비롯됐을지 모릅니다. 잘못된 점에 대한 구체적인 사과와 철저한 조사, 제대로 된 후속 조치와 관련 책임자 처벌까지 갈 수 있을까요? 첫 보도 이후 지금까지 넉 달의 과정을 되짚어봤을 때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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