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농민의 눈물된 ‘왕의 열매’ 아로니아

입력 2019.10.28 (18:43) 수정 2019.10.2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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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열매' 아로니아를 아시나요?
베리류의 열매인 아로니아는 6~7년 전 건강과 미용 식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노화 방지와 시력 개선에 효과가 좋은 안토시아닌이 포도보다 약 80배나 많다고 알려진 게 아로니아 열풍의 시작이었습니다. 한때 아로니아 1kg에 4만 원까지 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농민들 사이에 고소득 작목으로 소문이 나며 아로니아를 심는 농가들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도 보조금을 주며 재배를 권장하는가 하면, 지역 특산물로 육성하며 가공 공장까지 지었습니다.


고소득 작목이라더니…
올해 80살인 홍성남 씨가 아로니아 재배에 뛰어든 것도 그 무렵입니다. 아로니아가 건강에도 좋고 유망하다는 말에 충남 보령에서 가장 먼저 아로니아 묘목을 사다 심기 시작했습니다.

집 주변 땅까지 빌려 재배에 나섰는데 면적이 4.6ha나 됩니다. 3.3㎡에 평균 10그루라고 계산하면 14만 그루에 이릅니다. 처음 3년은 나무를 키우느라 수확을 못했고, 2017년에야 첫 수확을 했습니다. 수확량이 10톤이나 됐다고 하니 그 규모가 짐작이 가시나요?

하지만 수확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수확량이 고스란히 재고가 됐기 때문입니다.


창고마다 말린 아로니아 쌓여
홍성남 씨는 취재진을 만나 창고를 보여 주었습니다. 창고에는 말린 아로니아가 비닐봉지에 담긴 채 쌓여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아로니아로 만든 농축액도 상자에 포장된 채 쌓여 있었습니다. 상자를 뜯어 확인한 농축액 겉면에 적힌 유통기한은 '2017년 8월'. 이미 날짜가 지나 팔 수도 없지만 처분할 방법도 마땅치 않아 방치해 둔 상태였습니다.

반면, 창고 뒤쪽 저장고는 전기도 끊긴채 텅 비어 있었습니다. 홍성남 씨는 올해 수확하면 아로니아를 저장해두려고 일부러 비워뒀는데 소용이 없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창고 화재 등에 대비해서 한 달에 만 원씩 내던 보험료도 지난달부터는 부담이 돼 보험을 해지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홍성남씨는 2017년 첫 수확을 한 이후 지난해와 올해 수확을 포기했습니다. 농장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바짝 마른 아로니아 열매가 듬성듬성 매달려 있고, 바닥에는 떨어진 열매가 가득했습니다. 밭고랑에는 제멋대로 자란 잡초가 무릎을 덮을 정도였습니다. 농장에는 참새 등 작은 새 수십 마리만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아로니아 열매를 쪼아 먹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과잉 공급에 가격 폭락
홍 씨가 처음 아로니아 재배에 뛰어들던 2013년 국내 아로니아 생산량은 117톤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2014년에 1,198톤으로 늘더니 해를 거듭할수록 생산량이 3,623톤(2015), 6,481톤(2016), 8,779톤(2017), 10,784톤(2018)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렇게 국내 재배가 늘며 생산량이 는 데다 해외에서 아로니아 분말 수입량이 증가하며 가격하락을 부추겼다는 게 농민들 주장입니다. 실제로 2014년에 2톤에 불과하던 분말 수입량은 2015년 200톤, 2016년 420톤, 2017년에 520톤까지 늘었습니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분말 수입 증가로 국산 아로니아 생과 가격이 하락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지난 1월에 이미 설명자료를 내고 국내 생산 과잉에 더해 아로니아를 대체하는 다른 건강식품이 등장하며 소비가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요. 그 근거로 2018년 수입량이 52톤으로 1년 만에 10분의 1수준으로 감소한 점을 들었습니다.


재고 폐기 지원하겠다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농가마다 쌓여가는 아로니아를 해결해야 할 대책이 필요한 시점인 건 분명해 보이는데요.

최근 정부에서는 kg당 1,688원씩 아로니아 재고 폐기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아로니아의 2018년 평균 도매시장 거래 가격을 기준 삼아 지원금 산출근거를 정했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아로니아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농민들은 정부가 제시한 가격이 생산비에 턱없이 못 미친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1kg당 아로니아 생산비를 따져 보면 퇴비와 전지, 제초, 친환경 농약제, 수확, 인건비 등 3천 5백 원, 냉동보관 2백 원, 수매 운반 폐기처분 등 경비 3백 원이 들어 모두 더하면 4천 원이나 된다는 건데요. 1,688원은 생산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미 올해 농민들은 아로니아 과원 정비 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6백ha에 걸쳐 아로니아 나무를 캐냈습니다. 2017년 지자체 행정조사 재배 면적인 1,831ha의 3분의 1입니다.

왕의 열매로 환영받던 아로니아는 이제 농민의 눈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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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농민의 눈물된 ‘왕의 열매’ 아로니아
    • 입력 2019-10-28 18:43:01
    • 수정2019-10-28 18:43:21
    취재후·사건후
'왕의 열매' 아로니아를 아시나요?
베리류의 열매인 아로니아는 6~7년 전 건강과 미용 식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노화 방지와 시력 개선에 효과가 좋은 안토시아닌이 포도보다 약 80배나 많다고 알려진 게 아로니아 열풍의 시작이었습니다. 한때 아로니아 1kg에 4만 원까지 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농민들 사이에 고소득 작목으로 소문이 나며 아로니아를 심는 농가들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도 보조금을 주며 재배를 권장하는가 하면, 지역 특산물로 육성하며 가공 공장까지 지었습니다.


고소득 작목이라더니…
올해 80살인 홍성남 씨가 아로니아 재배에 뛰어든 것도 그 무렵입니다. 아로니아가 건강에도 좋고 유망하다는 말에 충남 보령에서 가장 먼저 아로니아 묘목을 사다 심기 시작했습니다.

집 주변 땅까지 빌려 재배에 나섰는데 면적이 4.6ha나 됩니다. 3.3㎡에 평균 10그루라고 계산하면 14만 그루에 이릅니다. 처음 3년은 나무를 키우느라 수확을 못했고, 2017년에야 첫 수확을 했습니다. 수확량이 10톤이나 됐다고 하니 그 규모가 짐작이 가시나요?

하지만 수확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수확량이 고스란히 재고가 됐기 때문입니다.


창고마다 말린 아로니아 쌓여
홍성남 씨는 취재진을 만나 창고를 보여 주었습니다. 창고에는 말린 아로니아가 비닐봉지에 담긴 채 쌓여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아로니아로 만든 농축액도 상자에 포장된 채 쌓여 있었습니다. 상자를 뜯어 확인한 농축액 겉면에 적힌 유통기한은 '2017년 8월'. 이미 날짜가 지나 팔 수도 없지만 처분할 방법도 마땅치 않아 방치해 둔 상태였습니다.

반면, 창고 뒤쪽 저장고는 전기도 끊긴채 텅 비어 있었습니다. 홍성남 씨는 올해 수확하면 아로니아를 저장해두려고 일부러 비워뒀는데 소용이 없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창고 화재 등에 대비해서 한 달에 만 원씩 내던 보험료도 지난달부터는 부담이 돼 보험을 해지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홍성남씨는 2017년 첫 수확을 한 이후 지난해와 올해 수확을 포기했습니다. 농장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바짝 마른 아로니아 열매가 듬성듬성 매달려 있고, 바닥에는 떨어진 열매가 가득했습니다. 밭고랑에는 제멋대로 자란 잡초가 무릎을 덮을 정도였습니다. 농장에는 참새 등 작은 새 수십 마리만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아로니아 열매를 쪼아 먹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과잉 공급에 가격 폭락
홍 씨가 처음 아로니아 재배에 뛰어들던 2013년 국내 아로니아 생산량은 117톤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2014년에 1,198톤으로 늘더니 해를 거듭할수록 생산량이 3,623톤(2015), 6,481톤(2016), 8,779톤(2017), 10,784톤(2018)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렇게 국내 재배가 늘며 생산량이 는 데다 해외에서 아로니아 분말 수입량이 증가하며 가격하락을 부추겼다는 게 농민들 주장입니다. 실제로 2014년에 2톤에 불과하던 분말 수입량은 2015년 200톤, 2016년 420톤, 2017년에 520톤까지 늘었습니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분말 수입 증가로 국산 아로니아 생과 가격이 하락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지난 1월에 이미 설명자료를 내고 국내 생산 과잉에 더해 아로니아를 대체하는 다른 건강식품이 등장하며 소비가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요. 그 근거로 2018년 수입량이 52톤으로 1년 만에 10분의 1수준으로 감소한 점을 들었습니다.


재고 폐기 지원하겠다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농가마다 쌓여가는 아로니아를 해결해야 할 대책이 필요한 시점인 건 분명해 보이는데요.

최근 정부에서는 kg당 1,688원씩 아로니아 재고 폐기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아로니아의 2018년 평균 도매시장 거래 가격을 기준 삼아 지원금 산출근거를 정했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아로니아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농민들은 정부가 제시한 가격이 생산비에 턱없이 못 미친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1kg당 아로니아 생산비를 따져 보면 퇴비와 전지, 제초, 친환경 농약제, 수확, 인건비 등 3천 5백 원, 냉동보관 2백 원, 수매 운반 폐기처분 등 경비 3백 원이 들어 모두 더하면 4천 원이나 된다는 건데요. 1,688원은 생산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미 올해 농민들은 아로니아 과원 정비 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6백ha에 걸쳐 아로니아 나무를 캐냈습니다. 2017년 지자체 행정조사 재배 면적인 1,831ha의 3분의 1입니다.

왕의 열매로 환영받던 아로니아는 이제 농민의 눈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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