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50만 명 늘어난 비정규직…통계청에 무슨 일이?

입력 2019.10.2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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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의 비정규직 노동자 발표 이후 혼란이 왔다.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 숫자는 748만1천 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 가운데 36.4%를 차지했다. 2007년 3월 조사 때 36.6% 이후 12년 만에 가장 높은 비정규직 노동자 비중이다. 비정규직 숫자로는 지난해보다 86만7천 명이 늘었고 정규직은 35만 3천 명이 감소했다.


■ 하루아침에 늘어난 비정규직 50만 명

이상하다. 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힘을 쏟겠다고 말해왔는데 12년 만에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비중이 최대로 급증한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답은 조사 방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동안 우리 정부가 전통적으로 써오던 조사방식에 대해 ILO(국제노동기구)가 제동을 건 것이다. 우리나라 조사방식이 현실을 쫓아가지 못하니 새로운 통계방식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비정규직 노동자 증가에 논란이 될까 봐 강신욱 통계청장까지 나서서 비정규직 증가 이유를 설명했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브리핑에서 "병행조사에서 그동안 없었던 예상근로기간을 묻는 문항이 추가됐고, 그것이 본인의 계약기간이 정해졌다는 것을 환기시킴으로써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다'라는 응답 비율이 높아지도록 만들었다"며 "그것이 전년 대비 기간제 근로자의 규모나 비중을 크게 한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그러면서 "3월부터 실시한 병행조사의 효과로 그동안 포착되지 않았던 기간제 근로자를 추가로 포착해 올해 조사에만 약 35만~50만 명이 (비정규직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결국, 좀 더 세밀한 조사를 통해 하루아침에 숨어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를 최대 50만 명 찾아낸 것이다.

■ 비정규직 조사 어떻게 해왔길래?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정규직, 비정규직 여부를 판단하는 조사는 어떻게 해왔길래, 이렇게 조사 방식이 달라진 걸까?

통상 정규직은 근로계약서에 입사일만 표시되고 (~ 0월 0일) 언제까지 일한다고 표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한시적 근로기간이 명시돼 있다. 특히 수습사원의 경우 수습이 연장될 수도 있고 수습 뒤에 정규직화되지 않고 정규직 고용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또, 1년 임시로 일해보고, 정규직 전환 여부를 결정하는 회사들도 있다.

그런데 과거에는 이런 사람들이 상당수 정규직으로 분류됐다. 왜냐면 통계청 조사 방식이 회사에 찾아가 근로계약서를 보고 조사하는 게 아니라 개별 가구 집으로 찾아가서 개인의 기억에 의존해 방문 조사하다 보니 조사대상 본인이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를 명확히 판단 못 하는 경우가 있었다.

개인에 따라서는 막연히 회사에 취업했고 지금 일하고 있으니까 정규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고용예상기간을 노동자에게 물으면 60세까지 일하는 게 아니라 서류상 단기간에 계약이 만료되거나 조건에 따라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조사방식 변경에 대해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결국 통계청의 통계분류 방식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나라의 통계방식이 보수적이었고, 글로벌스탠다드 기준을 따르지 않아서 과소 추정돼 왔던 게 현실화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 새로운 '플랫폼 노동' 등장에 정교한 '노동시장 모니터' 필요

무엇보다 새로운 통계방식을 ILO가 권고한 것은 최근에 플랫폼 노동과 같은 새로운 노동 형태가 등장해서 전 세계적으로 숨겨진 노동에 대해 새로운 통계 방식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올해부터 기존 통계방식에 ILO에서 권고하는 통계방식을 병행해서 조사한 것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배달 앱이나 '타다' 같은 플랫폼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이들도 새로운 고용형태로 자리 잡았다. ILO는 이같은 노동자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정확히 분류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실상 우리나라에서 배달 앱 노동자 등은 통계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일부 통계에 잡혔다면 비정규직이 아닌 자영업자로 분류되곤 했다"라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그러면서 "이처럼 새로운 노동 형태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통계에 제대로 포착되지 못했고 과소추정됐던 게 조사방식의 변화로 제대로 확인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ILO의 권고에 따라 새로운 통계 방식이 적용됐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 숫자와 비중이 다시 지난해 수준으로 급격하게 내려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새로운 통계방식이 비정규직을 더 정교하게 찾아냈기 때문에 비정규직 숫자가 늘어난 것은 분명해졌다. 정부 기준으로 임금노동자 10명 가운데 3.6명,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조사 기준으로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인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을 줄이려는 노력은 그래서 더 힘을 받아야 한다.

또, 배달 앱 같은 플랫폼 노동자의 등장은 비단 통계 방식의 변화뿐 아니라 정부의 노동자 정책에도 발 빠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IT 기술 변화와 함께 일자리 형태도 빠르게 변화하는 데 일자리·노동자 정책이 과거 방식에 머물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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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아침에 50만 명 늘어난 비정규직…통계청에 무슨 일이?
    • 입력 2019-10-29 17:18:20
    취재K
통계청의 비정규직 노동자 발표 이후 혼란이 왔다.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 숫자는 748만1천 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 가운데 36.4%를 차지했다. 2007년 3월 조사 때 36.6% 이후 12년 만에 가장 높은 비정규직 노동자 비중이다. 비정규직 숫자로는 지난해보다 86만7천 명이 늘었고 정규직은 35만 3천 명이 감소했다.


■ 하루아침에 늘어난 비정규직 50만 명

이상하다. 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힘을 쏟겠다고 말해왔는데 12년 만에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비중이 최대로 급증한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답은 조사 방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동안 우리 정부가 전통적으로 써오던 조사방식에 대해 ILO(국제노동기구)가 제동을 건 것이다. 우리나라 조사방식이 현실을 쫓아가지 못하니 새로운 통계방식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비정규직 노동자 증가에 논란이 될까 봐 강신욱 통계청장까지 나서서 비정규직 증가 이유를 설명했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브리핑에서 "병행조사에서 그동안 없었던 예상근로기간을 묻는 문항이 추가됐고, 그것이 본인의 계약기간이 정해졌다는 것을 환기시킴으로써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다'라는 응답 비율이 높아지도록 만들었다"며 "그것이 전년 대비 기간제 근로자의 규모나 비중을 크게 한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그러면서 "3월부터 실시한 병행조사의 효과로 그동안 포착되지 않았던 기간제 근로자를 추가로 포착해 올해 조사에만 약 35만~50만 명이 (비정규직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결국, 좀 더 세밀한 조사를 통해 하루아침에 숨어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를 최대 50만 명 찾아낸 것이다.

■ 비정규직 조사 어떻게 해왔길래?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정규직, 비정규직 여부를 판단하는 조사는 어떻게 해왔길래, 이렇게 조사 방식이 달라진 걸까?

통상 정규직은 근로계약서에 입사일만 표시되고 (~ 0월 0일) 언제까지 일한다고 표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한시적 근로기간이 명시돼 있다. 특히 수습사원의 경우 수습이 연장될 수도 있고 수습 뒤에 정규직화되지 않고 정규직 고용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또, 1년 임시로 일해보고, 정규직 전환 여부를 결정하는 회사들도 있다.

그런데 과거에는 이런 사람들이 상당수 정규직으로 분류됐다. 왜냐면 통계청 조사 방식이 회사에 찾아가 근로계약서를 보고 조사하는 게 아니라 개별 가구 집으로 찾아가서 개인의 기억에 의존해 방문 조사하다 보니 조사대상 본인이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를 명확히 판단 못 하는 경우가 있었다.

개인에 따라서는 막연히 회사에 취업했고 지금 일하고 있으니까 정규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고용예상기간을 노동자에게 물으면 60세까지 일하는 게 아니라 서류상 단기간에 계약이 만료되거나 조건에 따라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조사방식 변경에 대해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결국 통계청의 통계분류 방식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나라의 통계방식이 보수적이었고, 글로벌스탠다드 기준을 따르지 않아서 과소 추정돼 왔던 게 현실화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 새로운 '플랫폼 노동' 등장에 정교한 '노동시장 모니터' 필요

무엇보다 새로운 통계방식을 ILO가 권고한 것은 최근에 플랫폼 노동과 같은 새로운 노동 형태가 등장해서 전 세계적으로 숨겨진 노동에 대해 새로운 통계 방식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올해부터 기존 통계방식에 ILO에서 권고하는 통계방식을 병행해서 조사한 것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배달 앱이나 '타다' 같은 플랫폼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이들도 새로운 고용형태로 자리 잡았다. ILO는 이같은 노동자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정확히 분류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실상 우리나라에서 배달 앱 노동자 등은 통계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일부 통계에 잡혔다면 비정규직이 아닌 자영업자로 분류되곤 했다"라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그러면서 "이처럼 새로운 노동 형태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통계에 제대로 포착되지 못했고 과소추정됐던 게 조사방식의 변화로 제대로 확인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ILO의 권고에 따라 새로운 통계 방식이 적용됐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 숫자와 비중이 다시 지난해 수준으로 급격하게 내려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새로운 통계방식이 비정규직을 더 정교하게 찾아냈기 때문에 비정규직 숫자가 늘어난 것은 분명해졌다. 정부 기준으로 임금노동자 10명 가운데 3.6명,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조사 기준으로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인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을 줄이려는 노력은 그래서 더 힘을 받아야 한다.

또, 배달 앱 같은 플랫폼 노동자의 등장은 비단 통계 방식의 변화뿐 아니라 정부의 노동자 정책에도 발 빠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IT 기술 변화와 함께 일자리 형태도 빠르게 변화하는 데 일자리·노동자 정책이 과거 방식에 머물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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