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 기부금 내면 진학과 취업에 인성평가 자료로 쓰인다고요?”

입력 2019.10.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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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회사원 박 모 씨. 어느 날 배우자가 건넨 '가정통신문'에 "너무 황당했다"고 합니다. 10살 아들은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른 채, 학교에서 받아와 엄마에게 건넨 한 장짜리 가정통신문이었습니다. '희망 천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안내문이었는데, 한편에는 '대한적십자사' 표시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용돈을 기부하면 '희망 천사'가 되고, 소속 학교는 '희망 나눔 천사학교'가 되는 프로그램인데, 국내 위기 가정, 재난 구호 활동, 생명 보호 활동 등 선택 분야가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박 씨의 눈을 의심케 한 건 '참여 혜택' 안내였습니다.

"학생들의 기부 내역은 전산으로 관리되어, 진학과 취업 시 인성평가 자료로 사용"

자료 제공-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실자료 제공-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실

박 씨의 배우자는 이 부분을 가리키며, "남들도 할 텐데, 우리도 해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박 씨에게 물었고, 박 씨도 순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남들이 다 하면 나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다른 사람, 다른 학부모가 해서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면, 우리 아이만 안 하면 우리 아이만 손해 보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부모와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기부 금액은 적게는 한 달에 6천 원부터 3만 원까지였지만, 기부금을 더 추가할 수 있도록 빈칸에 금액을 쓸 수도 있게 돼 있습니다. 박 씨는 "적은 액수는 아닌 것 같다"면서 "경제적 형편이 안되는 부모로서는 너무 화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초등학생이라면 용돈을 모은다 한들 그 용돈도 부모의 경제력에서 오는 것일 텐데, 부모의 돈을 가지고 아이의 인성을 평가한다는 게 너무 화가 났고요. 안내를 보면 학부모가 연말 정산을 할 때 세액 공제가 된다고 돼 있거든요. 학부모 지출이라는 걸 적십자사에서도 명백하게 인지를 하는 건데, 이해가 안 가죠."


이 같은 '희망천사 프로그램' 안내문은 2018년에도 같은 내용이 담겨 배포됐는데요.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이 대한적십자사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까지 5천 6백여 명이 기부에 참여해 모두 2억 7천만여 원이 모였습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기부금이 인성 평가 자료로 쓰일 수는 있을까요? 교육부가 만든 '2019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을 보면,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물품 및 현금의 단순 기부는 봉사활동 시간으로 환산하여 인정할 수 없으므로 학교생활기록부 어떠한 항목에도 입력하지 않는다"

교육부 관계자는 적십자사 기부 프로그램과 관련해 "대한적십자사와 교육부, 교육청이 협의한 내용이 전혀 없고, 법적인 근거도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물품이나 현금을 기부하더라도, 봉사활동 시간으로 환산되도록 인정되는 것도 없고, 생활기록부상에도 입력하지 않게 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적십자사가 자의적으로 안내문을 만들고, 개별 학교와 직접 접촉해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대한적십자사는 학생들이 자기소개서에 '기부 경험'을 기술할 수 있고, 이를 증빙하기 위한 '후원 확인서'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해당 내용을 안내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의미 전달에 오해가 생겼다"면서 해당 안내문을 전량 폐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은 "대한적십자사에서 학부모들을 기망했다"라면서, "매우 부적절해 보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 부분은 바로잡아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습니다.

'기부'의 사전적 의미는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재물을 무상으로 내줌〉으로 돼 있습니다.
'이웃 돕기' 뒤에 '진학'과 '취업'을 숨겨 둔 적십자사의 가정통신문, 적십자사에 기부의 의미를 다시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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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십자 기부금 내면 진학과 취업에 인성평가 자료로 쓰인다고요?”
    • 입력 2019-10-29 18:00:58
    취재K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회사원 박 모 씨. 어느 날 배우자가 건넨 '가정통신문'에 "너무 황당했다"고 합니다. 10살 아들은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른 채, 학교에서 받아와 엄마에게 건넨 한 장짜리 가정통신문이었습니다. '희망 천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안내문이었는데, 한편에는 '대한적십자사' 표시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용돈을 기부하면 '희망 천사'가 되고, 소속 학교는 '희망 나눔 천사학교'가 되는 프로그램인데, 국내 위기 가정, 재난 구호 활동, 생명 보호 활동 등 선택 분야가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박 씨의 눈을 의심케 한 건 '참여 혜택' 안내였습니다.

"학생들의 기부 내역은 전산으로 관리되어, 진학과 취업 시 인성평가 자료로 사용"

자료 제공-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실
박 씨의 배우자는 이 부분을 가리키며, "남들도 할 텐데, 우리도 해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박 씨에게 물었고, 박 씨도 순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남들이 다 하면 나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다른 사람, 다른 학부모가 해서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면, 우리 아이만 안 하면 우리 아이만 손해 보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부모와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기부 금액은 적게는 한 달에 6천 원부터 3만 원까지였지만, 기부금을 더 추가할 수 있도록 빈칸에 금액을 쓸 수도 있게 돼 있습니다. 박 씨는 "적은 액수는 아닌 것 같다"면서 "경제적 형편이 안되는 부모로서는 너무 화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초등학생이라면 용돈을 모은다 한들 그 용돈도 부모의 경제력에서 오는 것일 텐데, 부모의 돈을 가지고 아이의 인성을 평가한다는 게 너무 화가 났고요. 안내를 보면 학부모가 연말 정산을 할 때 세액 공제가 된다고 돼 있거든요. 학부모 지출이라는 걸 적십자사에서도 명백하게 인지를 하는 건데, 이해가 안 가죠."


이 같은 '희망천사 프로그램' 안내문은 2018년에도 같은 내용이 담겨 배포됐는데요.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이 대한적십자사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까지 5천 6백여 명이 기부에 참여해 모두 2억 7천만여 원이 모였습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기부금이 인성 평가 자료로 쓰일 수는 있을까요? 교육부가 만든 '2019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을 보면,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물품 및 현금의 단순 기부는 봉사활동 시간으로 환산하여 인정할 수 없으므로 학교생활기록부 어떠한 항목에도 입력하지 않는다"

교육부 관계자는 적십자사 기부 프로그램과 관련해 "대한적십자사와 교육부, 교육청이 협의한 내용이 전혀 없고, 법적인 근거도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물품이나 현금을 기부하더라도, 봉사활동 시간으로 환산되도록 인정되는 것도 없고, 생활기록부상에도 입력하지 않게 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적십자사가 자의적으로 안내문을 만들고, 개별 학교와 직접 접촉해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대한적십자사는 학생들이 자기소개서에 '기부 경험'을 기술할 수 있고, 이를 증빙하기 위한 '후원 확인서'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해당 내용을 안내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의미 전달에 오해가 생겼다"면서 해당 안내문을 전량 폐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은 "대한적십자사에서 학부모들을 기망했다"라면서, "매우 부적절해 보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 부분은 바로잡아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습니다.

'기부'의 사전적 의미는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재물을 무상으로 내줌〉으로 돼 있습니다.
'이웃 돕기' 뒤에 '진학'과 '취업'을 숨겨 둔 적십자사의 가정통신문, 적십자사에 기부의 의미를 다시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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