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8차’ 국과수 감정 제대로 됐나…핵심은 ‘분석 노하우’

입력 2019.11.0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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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중성자로 체모 분석
윤 씨 옥살이에 결정적 역할
'1000명 DB' 쌓아야 하는 분석법
윤 씨 측, 수치 해석에 의문

윤 모 씨가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붙잡힐 때 결정적 역할은 한 건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체모 감정 결과였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윤 씨의 체모가 일치한다는 취지의 이 결과는 재판에서도 증거로 채택됐다.

국과수 감정은 과학이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통한다.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 그럼 '국과수 감정 결과가 잘못된 것이냐'는 의문이 가장 먼저 제기된 이유다.

국과수는 경찰 요청으로 30년 전 감정이 제대로 된 게 맞는지 검증하고 있다. KBS는 당시 국과수가 외부에 공개한 연구자료 등을 입수해 국과수 감정의 타당성을 따져봤다.


방사선 활용해 원소 함량 분석

국과수가 8차 사건에서 사용한 감정법은 '중성자 방사화 분석법'이다. 중성자를 체모에 쏴서 인공 방사선을 만든 뒤 이를 분석해 체모의 원소 성분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국과수는 우선 8차 사건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를 분석했다. 일반인과 비교하면 알루미늄, 망간, 티타늄 성분 함량이 높게 나왔다. 국과수는 이를 근거로 범인이 금속 물질 등을 다루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봤다.

경찰은 범행 현장 주변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추렸다. 여기에는 윤 씨도 포함됐다. 혈액형과 체모 형태 등으로 용의자를 좁혔고, 마지막엔 윤 씨만 남았다.


윤 씨 체모를 분석해보니 범행 현장에서 나온 체모와 성분 함량이 일치했다. 정확히 말하면 40% 편차 이내에서 일치했다. 알루미늄은 현장 체모가 190ppm, 윤 씨 체모가 211ppm이었다. 망간은 8.8ppm과 12.8ppm, 티타늄은 13.7ppm과 11ppm이었다. 나머지 7개 원소를 포함해 모두 10개 원소가 40% 편차 이내에서 성분 함량이 일치했다.

국과수는 체모 2개가 40% 편차 이내에서 10개 원소 함량이 일치하면, 동일인의 체모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윤 씨 체모 감정의 경우 잘못된 판단일 확률이 3600만 분의 1, 혹은 1억 분의 1이라고 봤다.

국과수는 이 결과를 경찰에 전달했고, 경찰은 윤 씨를 체포해 자백을 받아냈다. 윤 씨는 이 자백이 강압에 의한 허위 자백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1000명 분석해야 쓸 수 있다"…실제는?

국과수는 중성자 방사화 분석법을 1980년대 중반부터 연구했다. 국과수 연보를 보면 1984년에 이 연구가 처음 등장한다.

같은 해에 연보와 별도로 낸 논문을 보면 체모 분석을 범죄 수사에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이 나온다. '두 모발을 상호 비교해 동일성 판단에 이용하자면, 1000명 정도의 모발 시료가 분석돼서 통계처리 돼야 하며, 직업별 및 지역에 따른 변화도 아울러 조사함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국과수는 이 무렵부터 1989년까지 1986년을 제외하고 5차례에 걸쳐 연구 논문을 연보에 실었다. 연구할 때마다 결과를 외부에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1984년에는 20~22세 남성들의 모발 99개, 1985년에는 같은 연령대 남성들의 모발 50개를 분석한 결과를 실었다. 1987년에는 유리공장에서 일하는 15명의 모발, 1989년에는 사무직에 종사하는 성인남성 7명의 모발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를 다 합치면 150명이 조금 넘는다. 직업별로는 유리공장 노동자와 사무직 노동자뿐이며, 지역별 분류는 드러나지 않는다. 1000명을 분석하고 직업별, 지역별로도 살펴봐야 실전에 쓸 수 있다는 전제에 크게 못 미치는 내용이다.

연구를 통해 쌓은 데이터베이스가 150명이 조금 넘는 양이라면, 모발에서 검출된 수치를 해석하는 '분석 노하우'가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기계도, 조직도 없었던 국과수

국과수 연구관이 1990년 외부 기관을 통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중성자 방사화 분석법과 관련한 국과수의 열악한 현실이 드러나 있다.

중성자 방사화 분석법에 사용하는 원자로는 설치 비용이 당시 돈으로 1000억 원이었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외부 기관의 기계를 사용했다.

국과수는 그러나 원자로 외에도 방사화 분석기기 등도 자체 시설을 갖추지 못해 원자력연구원 등 외부 기관에 의존했다. 방사화 분석 전문 부서도 없었다. 이 역시 '분석 노하우'가 탄탄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정황이다.

윤 씨 측도 국과수의 분석 노하우를 의심하고 있다. 윤 씨 재심을 돕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는 "체모에서 검출된 수치에 대한 해석이 말이 안 된다"며 "아주 비과학적이고 단정적인 해석을 했다"고 주장했다. 현장에서 나온 체모와 윤 씨 체모를 각각 분석해 나온 원소 함량을 해석해 동일인 판단을 하는 과정이 잘못됐다는 의미다.

국과수에는 30년 전 분석했던 체모는 남아 있지 않다. 분석에 관여한 핵심 연구관은 퇴직했고, 상당히 고령이다. 관련 자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감정 결과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과수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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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 8차’ 국과수 감정 제대로 됐나…핵심은 ‘분석 노하우’
    • 입력 2019-11-01 09:10:15
    취재K
중성자로 체모 분석 <br />윤 씨 옥살이에 결정적 역할 <br />'1000명 DB' 쌓아야 하는 분석법 <br />윤 씨 측, 수치 해석에 의문
윤 모 씨가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붙잡힐 때 결정적 역할은 한 건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체모 감정 결과였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윤 씨의 체모가 일치한다는 취지의 이 결과는 재판에서도 증거로 채택됐다.

국과수 감정은 과학이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통한다.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 그럼 '국과수 감정 결과가 잘못된 것이냐'는 의문이 가장 먼저 제기된 이유다.

국과수는 경찰 요청으로 30년 전 감정이 제대로 된 게 맞는지 검증하고 있다. KBS는 당시 국과수가 외부에 공개한 연구자료 등을 입수해 국과수 감정의 타당성을 따져봤다.


방사선 활용해 원소 함량 분석

국과수가 8차 사건에서 사용한 감정법은 '중성자 방사화 분석법'이다. 중성자를 체모에 쏴서 인공 방사선을 만든 뒤 이를 분석해 체모의 원소 성분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국과수는 우선 8차 사건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를 분석했다. 일반인과 비교하면 알루미늄, 망간, 티타늄 성분 함량이 높게 나왔다. 국과수는 이를 근거로 범인이 금속 물질 등을 다루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봤다.

경찰은 범행 현장 주변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추렸다. 여기에는 윤 씨도 포함됐다. 혈액형과 체모 형태 등으로 용의자를 좁혔고, 마지막엔 윤 씨만 남았다.


윤 씨 체모를 분석해보니 범행 현장에서 나온 체모와 성분 함량이 일치했다. 정확히 말하면 40% 편차 이내에서 일치했다. 알루미늄은 현장 체모가 190ppm, 윤 씨 체모가 211ppm이었다. 망간은 8.8ppm과 12.8ppm, 티타늄은 13.7ppm과 11ppm이었다. 나머지 7개 원소를 포함해 모두 10개 원소가 40% 편차 이내에서 성분 함량이 일치했다.

국과수는 체모 2개가 40% 편차 이내에서 10개 원소 함량이 일치하면, 동일인의 체모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윤 씨 체모 감정의 경우 잘못된 판단일 확률이 3600만 분의 1, 혹은 1억 분의 1이라고 봤다.

국과수는 이 결과를 경찰에 전달했고, 경찰은 윤 씨를 체포해 자백을 받아냈다. 윤 씨는 이 자백이 강압에 의한 허위 자백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1000명 분석해야 쓸 수 있다"…실제는?

국과수는 중성자 방사화 분석법을 1980년대 중반부터 연구했다. 국과수 연보를 보면 1984년에 이 연구가 처음 등장한다.

같은 해에 연보와 별도로 낸 논문을 보면 체모 분석을 범죄 수사에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이 나온다. '두 모발을 상호 비교해 동일성 판단에 이용하자면, 1000명 정도의 모발 시료가 분석돼서 통계처리 돼야 하며, 직업별 및 지역에 따른 변화도 아울러 조사함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국과수는 이 무렵부터 1989년까지 1986년을 제외하고 5차례에 걸쳐 연구 논문을 연보에 실었다. 연구할 때마다 결과를 외부에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1984년에는 20~22세 남성들의 모발 99개, 1985년에는 같은 연령대 남성들의 모발 50개를 분석한 결과를 실었다. 1987년에는 유리공장에서 일하는 15명의 모발, 1989년에는 사무직에 종사하는 성인남성 7명의 모발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를 다 합치면 150명이 조금 넘는다. 직업별로는 유리공장 노동자와 사무직 노동자뿐이며, 지역별 분류는 드러나지 않는다. 1000명을 분석하고 직업별, 지역별로도 살펴봐야 실전에 쓸 수 있다는 전제에 크게 못 미치는 내용이다.

연구를 통해 쌓은 데이터베이스가 150명이 조금 넘는 양이라면, 모발에서 검출된 수치를 해석하는 '분석 노하우'가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기계도, 조직도 없었던 국과수

국과수 연구관이 1990년 외부 기관을 통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중성자 방사화 분석법과 관련한 국과수의 열악한 현실이 드러나 있다.

중성자 방사화 분석법에 사용하는 원자로는 설치 비용이 당시 돈으로 1000억 원이었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외부 기관의 기계를 사용했다.

국과수는 그러나 원자로 외에도 방사화 분석기기 등도 자체 시설을 갖추지 못해 원자력연구원 등 외부 기관에 의존했다. 방사화 분석 전문 부서도 없었다. 이 역시 '분석 노하우'가 탄탄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정황이다.

윤 씨 측도 국과수의 분석 노하우를 의심하고 있다. 윤 씨 재심을 돕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는 "체모에서 검출된 수치에 대한 해석이 말이 안 된다"며 "아주 비과학적이고 단정적인 해석을 했다"고 주장했다. 현장에서 나온 체모와 윤 씨 체모를 각각 분석해 나온 원소 함량을 해석해 동일인 판단을 하는 과정이 잘못됐다는 의미다.

국과수에는 30년 전 분석했던 체모는 남아 있지 않다. 분석에 관여한 핵심 연구관은 퇴직했고, 상당히 고령이다. 관련 자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감정 결과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과수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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