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한 고비 넘겼더니 이번엔 ‘예산 갈등’…5·18진상규명 언제쯤?

입력 2019.11.04 (16:36) 수정 2019.11.0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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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습니다. 진상규명 조사위원 자격 요건에 '군인으로 20년 이상 복무한 사람'을 추가하는 내용의 법안입니다. 이번 통과가 의미가 있는 건, 조사위원의 자격 문제를 두고 옥신각신 다투던 여야가 가까스로 합의해 마련한 법안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관련 특별법 시행 1년이 넘도록 구성조차 못 하던 진상조사위가 곧 출범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 등 비쟁점법안 160여 건을 통과시킨 국회 본회의지난달 31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 등 비쟁점법안 160여 건을 통과시킨 국회 본회의

'조사위원 자격' 두고 1년 넘게 허송세월

왜 '군인 자격'이 진상조사위 구성에 중요한 문제였을까요. 발단은 올해 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9명의 조사위원 가운데 3명의 추천 권한을 가진 자유한국당은 차기환 전 수원지방법원 판사와 권태오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를 추천합니다.

조사위원 임명권이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권 전 처장과 이 전 기자가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임명하지 않고 재추천을 요구했습니다. "특별법에 명시된 '법조인·교수·법의학 전공자 등 분야에서 5년 이상 경력'이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한국당은 "헬기 사격 의혹 등을 규명하려면 군 출신 위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반발했습니다.

팽팽한 갈등은 5·18 기념식을 한 달쯤 앞두고서야 풀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조사위를 조기에 구성해 달라'는 문 대통령의 당부에, 한국당 요구를 받아들여 군 경력을 조사 위원 자격에 포함하겠다고 한 발 뒤로 물러선 것입니다. 이후 한국당이 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조사위 출범에 파란 불이 켜지나 싶었지만, 끝이 아니었습니다. 패스트트랙 사태·조국 정국 등을 거치며 여야 논의가 지지부진하면서 법안 통과엔 반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지난 1일 국회 정론관에서 5·18 진상규명 특별법 통과 기자회견을 연 5·18 단체들지난 1일 국회 정론관에서 5·18 진상규명 특별법 통과 기자회견을 연 5·18 단체들

5·18 단체들 '환영'…한국 "추천 절차 진행"

5·18 관련 단체들은 법안 통과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등 5개 단체는 법안 통과 다음 날인 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는 조사위원회 구성이 지체될 아무런 이유와 명분이 없어졌다"며 "자유한국당은 조사위원회 위원을 즉각 추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가칭 대안신당의 유성엽 대표는 "내년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해"라면서 "이제라도 조사위를 빨리 꾸려서 40주년 기념식 전에 어느 정도 성과를 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조사위원 추천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1일 "권태오 전 처장을 (다른 후보로) 교체하려고 한다"면서 "이미 사람은 특정돼 있고 서류가 준비되는 대로 절차를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존 후보였다가 임명이 거부된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에 대해서는 "(추천을 위한) 서류를 보완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전 기자는 현행 특별법의 조사위원 자격 요건인 '역사 연구가' 경력을 보완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고비 넘었더니 '예산 갈등' 2라운드?

이제 정말 모든 준비가 끝났나 싶은데 또 복병이 나타났습니다. '예산 정국'에서 또 다른 갈등이 생길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내년도 예산을 삭감하겠다며 선정한 '100대 문제 사업'에 5·18 진상규명위원회의 예산을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진상규명위원회 운영에 배정된 내년 예산은 78억 6천만 원, 자유한국당은 이 중 6억 9천만 원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올해 예산(71억 4백만 원)에서 증액된 부분 중 대부분 삭감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당은 '100대 문제사업 보고서'에서 "내년도 위원회의 정상 활동이 개시되는 시점 등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라, 예산을 증액한 것은 과도하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내년도 예산 증액분에는 위원회가 쓸 서울 사무실의 임차보증금(6억 4천5백만 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말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소유한 서울의 한 빌딩에 사무실을 구하면서, 임차보증금을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 나중에 내기로 계약했습니다. 광주 사무실의 임차보증금(1억 6천만 원)은 올해 예산으로 지급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비싼 서울 사무실의 임차보증금은 일종의 '후불' 형태로 치러 예산을 아끼고자 한 것입니다.

가칭 대안신당의 최경환 의원(광주 북구 을)은 KBS와의 통화에서 "한국당의 예산 삭감 주장은 서울 사무실을 아예 쓰지 말라는 주장"이라면서 "한국당이 추천 인사를 내놓으면 연말까지 충분히 조사위를 구성할 수 있고, 내년 초 본격적인 조사위 활동이 가능한데, 언제 출범할지 몰라서 반드시 필요한 예산을 줄이라는 건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습니다.

광주 시내에 마련됐지만, 텅 비어있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사무실광주 시내에 마련됐지만, 텅 비어있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사무실

1년 가까이 방치된 사무실…타들어 가는 피해자들의 마음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쓸 사무실들은 현판도 없이 책상과 사무기기만 덩그러니 놓인 채 1년 가까이 방치된 상태입니다. 매달 임대료와 관리비가 1억 원가량 나가고 있고, 모두 국민 세금입니다. 조사위 출범이 늦어질수록 낭비되는 돈은 더 늘어갈 겁니다.

하지만 예산 문제보다 더 급한 건 타들어 가는 피해자들의 마음일 겁니다. 헬기 사격, 암매장과 성폭력 의혹 등 밝혀져야 할 그 날의 진실은 여전히 많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진상조사위가 제 역할을 하도록 정치권이 힘을 모으기를, 피해자들은 간절히 기대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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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심야심] 한 고비 넘겼더니 이번엔 ‘예산 갈등’…5·18진상규명 언제쯤?
    • 입력 2019-11-04 16:36:15
    • 수정2019-11-04 16:52:57
    여심야심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습니다. 진상규명 조사위원 자격 요건에 '군인으로 20년 이상 복무한 사람'을 추가하는 내용의 법안입니다. 이번 통과가 의미가 있는 건, 조사위원의 자격 문제를 두고 옥신각신 다투던 여야가 가까스로 합의해 마련한 법안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관련 특별법 시행 1년이 넘도록 구성조차 못 하던 진상조사위가 곧 출범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 등 비쟁점법안 160여 건을 통과시킨 국회 본회의
'조사위원 자격' 두고 1년 넘게 허송세월

왜 '군인 자격'이 진상조사위 구성에 중요한 문제였을까요. 발단은 올해 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9명의 조사위원 가운데 3명의 추천 권한을 가진 자유한국당은 차기환 전 수원지방법원 판사와 권태오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를 추천합니다.

조사위원 임명권이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권 전 처장과 이 전 기자가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임명하지 않고 재추천을 요구했습니다. "특별법에 명시된 '법조인·교수·법의학 전공자 등 분야에서 5년 이상 경력'이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한국당은 "헬기 사격 의혹 등을 규명하려면 군 출신 위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반발했습니다.

팽팽한 갈등은 5·18 기념식을 한 달쯤 앞두고서야 풀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조사위를 조기에 구성해 달라'는 문 대통령의 당부에, 한국당 요구를 받아들여 군 경력을 조사 위원 자격에 포함하겠다고 한 발 뒤로 물러선 것입니다. 이후 한국당이 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조사위 출범에 파란 불이 켜지나 싶었지만, 끝이 아니었습니다. 패스트트랙 사태·조국 정국 등을 거치며 여야 논의가 지지부진하면서 법안 통과엔 반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지난 1일 국회 정론관에서 5·18 진상규명 특별법 통과 기자회견을 연 5·18 단체들
5·18 단체들 '환영'…한국 "추천 절차 진행"

5·18 관련 단체들은 법안 통과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등 5개 단체는 법안 통과 다음 날인 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는 조사위원회 구성이 지체될 아무런 이유와 명분이 없어졌다"며 "자유한국당은 조사위원회 위원을 즉각 추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가칭 대안신당의 유성엽 대표는 "내년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해"라면서 "이제라도 조사위를 빨리 꾸려서 40주년 기념식 전에 어느 정도 성과를 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조사위원 추천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1일 "권태오 전 처장을 (다른 후보로) 교체하려고 한다"면서 "이미 사람은 특정돼 있고 서류가 준비되는 대로 절차를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존 후보였다가 임명이 거부된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에 대해서는 "(추천을 위한) 서류를 보완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전 기자는 현행 특별법의 조사위원 자격 요건인 '역사 연구가' 경력을 보완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고비 넘었더니 '예산 갈등' 2라운드?

이제 정말 모든 준비가 끝났나 싶은데 또 복병이 나타났습니다. '예산 정국'에서 또 다른 갈등이 생길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내년도 예산을 삭감하겠다며 선정한 '100대 문제 사업'에 5·18 진상규명위원회의 예산을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진상규명위원회 운영에 배정된 내년 예산은 78억 6천만 원, 자유한국당은 이 중 6억 9천만 원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올해 예산(71억 4백만 원)에서 증액된 부분 중 대부분 삭감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당은 '100대 문제사업 보고서'에서 "내년도 위원회의 정상 활동이 개시되는 시점 등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라, 예산을 증액한 것은 과도하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내년도 예산 증액분에는 위원회가 쓸 서울 사무실의 임차보증금(6억 4천5백만 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말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소유한 서울의 한 빌딩에 사무실을 구하면서, 임차보증금을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 나중에 내기로 계약했습니다. 광주 사무실의 임차보증금(1억 6천만 원)은 올해 예산으로 지급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비싼 서울 사무실의 임차보증금은 일종의 '후불' 형태로 치러 예산을 아끼고자 한 것입니다.

가칭 대안신당의 최경환 의원(광주 북구 을)은 KBS와의 통화에서 "한국당의 예산 삭감 주장은 서울 사무실을 아예 쓰지 말라는 주장"이라면서 "한국당이 추천 인사를 내놓으면 연말까지 충분히 조사위를 구성할 수 있고, 내년 초 본격적인 조사위 활동이 가능한데, 언제 출범할지 몰라서 반드시 필요한 예산을 줄이라는 건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습니다.

광주 시내에 마련됐지만, 텅 비어있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사무실
1년 가까이 방치된 사무실…타들어 가는 피해자들의 마음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쓸 사무실들은 현판도 없이 책상과 사무기기만 덩그러니 놓인 채 1년 가까이 방치된 상태입니다. 매달 임대료와 관리비가 1억 원가량 나가고 있고, 모두 국민 세금입니다. 조사위 출범이 늦어질수록 낭비되는 돈은 더 늘어갈 겁니다.

하지만 예산 문제보다 더 급한 건 타들어 가는 피해자들의 마음일 겁니다. 헬기 사격, 암매장과 성폭력 의혹 등 밝혀져야 할 그 날의 진실은 여전히 많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진상조사위가 제 역할을 하도록 정치권이 힘을 모으기를, 피해자들은 간절히 기대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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