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임기 반환점 돈 대통령에게〉 책사 윤여준의 당부 “취임사 다시 읽어주길”

입력 2019.11.10 (10:05) 수정 2019.11.1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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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맞붙었던 2012년 12월. 한 원로 정치인의 TV 찬조연설이 전파를 탔습니다. 문 대통령과 처음 만난 2시간을 회고하며 "문재인 후보가 민주주의를 더 잘 실천할 수 있고 통합을 더 잘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솔직하다, 겸손하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습니다.

당시 반응은 상당했습니다. "후보가 아닌 지지자의 찬조연설을 이렇게 몰입해서 보기는 처음", "역대 최고의 찬조연설", "당의 약점을 후보의 강점으로 바꿔버린 전략의 극치"라는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카메라에 비친 인물은 '보수의 책사'로 불리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보수 정당에 번번이 승리를 안겼던 선거 전략가가 '적진(敵陣)'에서 나선 겁니다. 비록 이 선거에는 졌지만, 연설은 두고두고 회자됐습니다.

9일로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맞았습니다. 윤 전 장관에게 임기 절반을 지낸 문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당부를 가감 없이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여당에 힘 실어주고 야당 인정해야"

2012년 9월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담쟁이캠프’ 회의에 참석한 윤여준 국민통합추진위원장(왼쪽 첫 번째)2012년 9월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담쟁이캠프’ 회의에 참석한 윤여준 국민통합추진위원장(왼쪽 첫 번째)

윤 전 장관은 우선 정치 분야에 대한 평가부터 풀어갔습니다. 평가는 박했습니다. "50점 드리기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촛불 정신은 민주주의를 심화·발전시켜달라는 국민의 요구인데,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대의제인 만큼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해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야당을 인정하지 않다 보니, 야당이 극렬히 저항하고 그래서 국회가 마비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는 게 윤 전 장관의 진단이었습니다.

국회는 사실 4월 패스트트랙 정국, 이후 조국 정국을 거치며 계속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 실타래는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한다고 보는지, 들어봤습니다. 윤 전 장관은 여당에 권한을 더 주라고 했습니다. "여당이 국정 중심에 설 수 있게 힘을 실어주라"는 겁니다.

"여당이 대통령을 추종만 해버리니까 야당이 여당을 인정 안 하는 거에요. 대통령을 따라만 다니니까. 그러니까 야당은 대통령을 직접 상대하려고 하는 거죠. 이게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 일이에요."

그리고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을 인정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윤 전 장관은 "아무리 '적폐'나 '친일파 후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야당 의원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국민의 대표이고, 불법적으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만큼, 제도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통령이 야당에 정중하게 뭘 부탁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대통령의 통상적인 업무예요. 솔직히 난 이런 생각을 한 것인데, 그렇게 받아들이신다면 바꾸겠다든지, 그렇지 않다면 설득한다든지.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역대 최고의 취임사…다시 읽어보라"

 2019년 5월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원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는 윤여준 전 장관 2019년 5월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원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는 윤여준 전 장관

윤 전 장관은 "지금 우연히 문 대통령을 만나면 딱 한마디만 하겠다"고 했습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 중 가장 훌륭하다. 지금, 다시 취임사를 읽어보라" 하고 싶다는 겁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당부인데, "반전의 기회가 남아있다"고도 했습니다. 임기 후반부의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윤 전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절대 급속히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2040층의 뒷받침이 있으니, 약간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견고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지금도 40%를 웃도는 수준. 임기 반환점을 돈 대통령에게 낮은 수치는 아닙니다. 다만 임기 하반기 정국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대통령 뜻대로 하기에는 부족한 수치라는 겁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시도, 방법은 '인사 혁신'을 꼽았습니다. 잘 아는 사람, 편한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다시 한 번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거나 '그 나물에 그 밥'이란 평가가 나오면 안 된다"며,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폭넓은 인재 등용과 철저한 인사검증을 주문했습니다.

"국민적 분노도 가라앉히고, 불안감을 달래고. 이렇게 하려면 전면적인 쇄신이 있어서 분위기가 확 바뀌어야 해요. 그래야 기회가 살아납니다.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잖아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바꾸어야 하는데, 좋은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폭넓게 사람을 구하라는 거죠. 민주주의 정부는 두 가지 중요한 일을 해야 합니다. 반응성과 책임성. 국민의 요구에 반응하고, 책임을 져야 해요."

"보수가 갈라져서 신뢰를 못 받나요?"

‘인재영입 논란’으로 내상을 입은 뒤 서둘러 ‘보수통합’ 논의에 나선 자유한국당. ‘보수의 책사’로도 불렸던 윤 전 장관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곧바로 ‘식상하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인재영입 논란’으로 내상을 입은 뒤 서둘러 ‘보수통합’ 논의에 나선 자유한국당. ‘보수의 책사’로도 불렸던 윤 전 장관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곧바로 ‘식상하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보수통합 얘기를 식상할 정도로 자주 했어요. 지금 국민들이 야당이 뭉치지 않아서 신뢰를 안 하는 건가요? 통합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윤 전 장관은 "보수정당이 자신들이 보는 시대 상황을 규정하고 이에 따라 국가는, 당은, 정치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며 "매번 비판만 하는 야당은 야당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런 상태로 뭉친다 해도 지지율이 몇 퍼센트나 더 늘어날 것 같으냐"며 "근본적인 문제를 잘못 짚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전망해 달라고 했습니다. 반평생을 '정치판'에서, 정파를 넘나들며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살기 원했던 원로 정치인은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정의당 의석이 늘어 좋은 역할을 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조국 사태'로 큰 타격을 받아 안타까워요.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기득권을 가진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은 깨졌으면 합니다. 이 방식으로는 대의제도는 기능을 못 해요. 여야는 바뀌지만, 정치는 안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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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심야심] 〈임기 반환점 돈 대통령에게〉 책사 윤여준의 당부 “취임사 다시 읽어주길”
    • 입력 2019-11-10 10:05:03
    • 수정2019-11-10 10:31:57
    여심야심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맞붙었던 2012년 12월. 한 원로 정치인의 TV 찬조연설이 전파를 탔습니다. 문 대통령과 처음 만난 2시간을 회고하며 "문재인 후보가 민주주의를 더 잘 실천할 수 있고 통합을 더 잘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솔직하다, 겸손하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습니다.

당시 반응은 상당했습니다. "후보가 아닌 지지자의 찬조연설을 이렇게 몰입해서 보기는 처음", "역대 최고의 찬조연설", "당의 약점을 후보의 강점으로 바꿔버린 전략의 극치"라는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카메라에 비친 인물은 '보수의 책사'로 불리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보수 정당에 번번이 승리를 안겼던 선거 전략가가 '적진(敵陣)'에서 나선 겁니다. 비록 이 선거에는 졌지만, 연설은 두고두고 회자됐습니다.

9일로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맞았습니다. 윤 전 장관에게 임기 절반을 지낸 문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당부를 가감 없이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여당에 힘 실어주고 야당 인정해야"

2012년 9월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담쟁이캠프’ 회의에 참석한 윤여준 국민통합추진위원장(왼쪽 첫 번째)
윤 전 장관은 우선 정치 분야에 대한 평가부터 풀어갔습니다. 평가는 박했습니다. "50점 드리기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촛불 정신은 민주주의를 심화·발전시켜달라는 국민의 요구인데,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대의제인 만큼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해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야당을 인정하지 않다 보니, 야당이 극렬히 저항하고 그래서 국회가 마비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는 게 윤 전 장관의 진단이었습니다.

국회는 사실 4월 패스트트랙 정국, 이후 조국 정국을 거치며 계속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 실타래는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한다고 보는지, 들어봤습니다. 윤 전 장관은 여당에 권한을 더 주라고 했습니다. "여당이 국정 중심에 설 수 있게 힘을 실어주라"는 겁니다.

"여당이 대통령을 추종만 해버리니까 야당이 여당을 인정 안 하는 거에요. 대통령을 따라만 다니니까. 그러니까 야당은 대통령을 직접 상대하려고 하는 거죠. 이게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 일이에요."

그리고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을 인정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윤 전 장관은 "아무리 '적폐'나 '친일파 후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야당 의원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국민의 대표이고, 불법적으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만큼, 제도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통령이 야당에 정중하게 뭘 부탁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대통령의 통상적인 업무예요. 솔직히 난 이런 생각을 한 것인데, 그렇게 받아들이신다면 바꾸겠다든지, 그렇지 않다면 설득한다든지.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역대 최고의 취임사…다시 읽어보라"

 2019년 5월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원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는 윤여준 전 장관
윤 전 장관은 "지금 우연히 문 대통령을 만나면 딱 한마디만 하겠다"고 했습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 중 가장 훌륭하다. 지금, 다시 취임사를 읽어보라" 하고 싶다는 겁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당부인데, "반전의 기회가 남아있다"고도 했습니다. 임기 후반부의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윤 전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절대 급속히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2040층의 뒷받침이 있으니, 약간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견고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지금도 40%를 웃도는 수준. 임기 반환점을 돈 대통령에게 낮은 수치는 아닙니다. 다만 임기 하반기 정국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대통령 뜻대로 하기에는 부족한 수치라는 겁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시도, 방법은 '인사 혁신'을 꼽았습니다. 잘 아는 사람, 편한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다시 한 번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거나 '그 나물에 그 밥'이란 평가가 나오면 안 된다"며,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폭넓은 인재 등용과 철저한 인사검증을 주문했습니다.

"국민적 분노도 가라앉히고, 불안감을 달래고. 이렇게 하려면 전면적인 쇄신이 있어서 분위기가 확 바뀌어야 해요. 그래야 기회가 살아납니다.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잖아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바꾸어야 하는데, 좋은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폭넓게 사람을 구하라는 거죠. 민주주의 정부는 두 가지 중요한 일을 해야 합니다. 반응성과 책임성. 국민의 요구에 반응하고, 책임을 져야 해요."

"보수가 갈라져서 신뢰를 못 받나요?"

‘인재영입 논란’으로 내상을 입은 뒤 서둘러 ‘보수통합’ 논의에 나선 자유한국당. ‘보수의 책사’로도 불렸던 윤 전 장관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곧바로 ‘식상하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보수통합 얘기를 식상할 정도로 자주 했어요. 지금 국민들이 야당이 뭉치지 않아서 신뢰를 안 하는 건가요? 통합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윤 전 장관은 "보수정당이 자신들이 보는 시대 상황을 규정하고 이에 따라 국가는, 당은, 정치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며 "매번 비판만 하는 야당은 야당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런 상태로 뭉친다 해도 지지율이 몇 퍼센트나 더 늘어날 것 같으냐"며 "근본적인 문제를 잘못 짚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전망해 달라고 했습니다. 반평생을 '정치판'에서, 정파를 넘나들며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살기 원했던 원로 정치인은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정의당 의석이 늘어 좋은 역할을 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조국 사태'로 큰 타격을 받아 안타까워요.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기득권을 가진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은 깨졌으면 합니다. 이 방식으로는 대의제도는 기능을 못 해요. 여야는 바뀌지만, 정치는 안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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