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헌법재판관, 상설협의체 논의했다”…“이전투구 아니다”

입력 2019.11.21 (15:45) 수정 2019.11.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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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상설협의체'를 만들자. 그런 제도를 하나 만들어 […] 비공식적으로 하자. […] 그런 견해까지 나왔습니다. 심지어 헌재의 모 재판관님하고 대법원의 모 대법관님이 상의한 적도 있습니다."

오늘(21일) 열린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서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흥미로운 옛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법원 내 헌법 전문가였고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실장이 오늘의 이야기꾼이었습니다.

"헌재와 대법원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이규진 피고인의 현재 의견을 듣고 싶다"라는 주심 판사(김용신 판사)의 질문을 받고, 피고인석에 앉은 이 전 실장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한국의 '양대 최고법원'으로 자리잡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밀도 높은 고민과 기억이 법정에 펼쳐졌습니다. '사법농단' 재판의 쟁점과는 별개로 이 전 실장의 발언 내용이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그 내용을 상세히 기록해두려 합니다.


처음에는 '같은 식구'였지만…

"구체적으로 정리된 건 아닌데요"라고 말문을 연 이 전 실장은 헌법재판소 출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생긴 이래로 대법원에서 헌재 법관도 파견하였고, 또 많은 고위법관들이 헌재 재판관으로 가면서 대법원에서 생각하는 헌재, 그리고 헌재에서 생각하는 대법원은 '같은 식구'라는 견해가 많았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헌재에서도 대법원에서 파견하는 법관들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많이 받았고, 의지하는 면도 많았기 때문에 대법원에서는 헌재를 다른 기관이나 경쟁 상대 기관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점차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위상을 키워가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96년도에 소득세법 관련해서 대법원과 헌재가 대립하면서, 그때부터 좀 갈등이 시작된 걸로 저는 배웠고, 그 다음에 헌법재판소에서 많은 판례들을 형성하면서 대법에서 약간의 위기 의식이랄까 이런 것을 느낀 것도 사실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근데 제가 헌법연구회나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운영하는 헌법연구반에서 활동하면서 제가 느낀 것은, 우선 헌법재판소는 나름대로 기관의 영역, 권한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실제로 그런 증거들을 제가 헌재에서 (파견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목도도 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법원의 고유 권한까지 '침범'할 지경에 이르자, 다수의 법원 사람들은 의문을 가졌다고 합니다.

"헌재가 국가기관으로서, 또 국민의 권익보호를 위해서 권한을 확대한다는 건 옳다고 저는 봤습니다. […] 다만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에 비춰봐서 과연 헌재가 위헌법률심판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서 변형결정까지 할 권한 있는지에 대해 법관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의문을 가졌고. 당시 제가 (헌재에) 파견나갔던 2001~2002년 모셨던 헌법재판관님들도 다수가 그런 생각하셨습니다. 특히 변형결정에서도 헌법불합치와 한정위헌에 대해 많은 논란 있었는데, 헌법불합치는 그래도 유예기간을 둔다는 측면에서 법적안정성 측면에서 큰 문제는 없다 봤지만 한정위헌은 정면으로 법원에 특히 대법원 전원합의체나 이런 데서 나오는 법원의 법률해석 권한을 전면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대법원에서는 그 문제를 보통 심각하게 본 게 아니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 결정에 대법원이 기존 권한을 '위협'받는다고 인식하게 되면서, 두 기관의 대립 지점이 생겼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법-헌재 비공식 상설협의체 논의 있었다"

이 전 실장은 이런 양 기관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입법기관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국회는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헌재와 대법의 관계는, 헌재는 한정위헌 결정이 법리적으로 옳고그름을 떠나 '당연히 할 수 있는 권한'이라 생각하는 거고, 대법원은 '그걸 할 수 없다'는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건 해결되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근데 법리적으로 어떻다 떠나서, 국회나 정부에서 해결책을 제시 안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하든지 헌법 개정하든지 뭔가 조치를 해줘야 법원과 헌재가 그에 따라서 판시를 하고 국민의 권익도 이중으로 판단을 받거나, 매립지사건처럼. 그렇게 안되고, 정상적으로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하는데. 지금 국회에서는 그걸 하지 않고 있고, 헌재하고 법원은 서로 대립만 되고 있고. 그게 계속 반복되는 현상입니다."

이렇게 국회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문제 해결을 위해 '비밀스런' 논의를 했다고도 이 전 실장은 회고했습니다. 이 논의가 실패로 돌아간 이유도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희 (대법원) 헌법연구반에서 검토했던 게… 대법원과 헌재가 '상설협의체'를 만들자.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세 분, 대법에서 대법관 세 분. 이렇게 모여서 서로 한정위헌이나 헌법불합치를 할 우려가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법원에서도 의견 내고, 또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대해서 의견을 낼 수 있는 그런 제도를 하나 만들어 비공식적으로 하자. 이런 견해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그거에 대해서는 헌재의 모 재판관님하고 대법원의 모 대법관님이 상의한 적도 있습니다. 근데 그게 출범하지 못했던 이유는 헌재에서는 헌재의 기득권, 결정례를 유지하고자 하는 분들이 계셨고, 대법원에서는 '대법원이 최고법원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겠냐'하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양승태 코트' 절대명제, "한정위헌 결정은 어떻게든 막아보자"

두 기관의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던 2015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시절이던 그 해에,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 결정 가능성에 대한 대법원의 우려는 극에 달했다고 이 전 실장은 말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대법과 헌재의 관계는 […]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무엇이 진정하게 국민 권리구제에 맞는 것인지에 대해 한번 논의해보자는. 협조 또는 협의, 구성체가 뭐가 되든 간에 그런 절차와 제도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절차와 제도가 법률적으로 준비안된다면 비공식적으로라도 해야한다는 생각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실현안되고 있는 가운데 2015년도에 전원합의체 업무방해 관련된 한정위헌 움직임이 나왔고, 거기에 대해 대법원 상층부에서 너무나 큰 우려를 했기 때문에. 한쪽으로는 그런 걸 검토하면서도 한정위헌은 막아야 한다는 절대 명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 전 실장은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이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음도 시사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근거가 과연 명확하냐. 독일은 법률적 근거가 있고 제도도 정비돼 왔지만,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저는 법률가로서 의문 갖고 있었고 여러 연구도 나와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헌재가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헌재 한정위헌 결정을 어떻게든 막아보자'는 대법원장 결정에 대해 이의하지 않았습니다."


헌재 기밀 유출, "부적절했지만 양기관 협조 위한 것이었다"

이 전 실장은 다만 양 전 원장 시절 대법원이 단지 헌재보다 위상을 높이려는 "이전투구"나 "어린 애 같은 짓"을 하려고 헌재 파견 법관을 통해 헌재 내부 자료를 수집한 건 아니라며, 검찰이 오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주장할 내용을 일부 맛보기로 진술한 겁니다.

"최희준 부장(헌재 파견법관)이 헌재에서 그 자료를 받고 하는 것에 대해, 사실 제가 부적절함은 인정합니다. 다만 제가 그때 그런(부적절하다는) 인식이 없었던 건 헌재와 대법이 유리된 기관이란 인식이 부족했었고. 최희준 부장도 협조 차원에서 본인이 어떤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도 있어서 재판관이 하시는 말씀이나 이런 걸 그때 그때 저에게 알려줬습니다. 자료를 유출해서 헌재에 대해 기관우위를 점하기 위해 그런 어린애 같은 짓을 한 게 아니고, 대법과 헌재는 협조해서 좋은 결과 얻어야 하지 않느냐. 그럼 저쪽에서 의견도 주고."

헌법재판관들의 평의 결과를 알아본 것도, '기밀 누출' 차원이 아니고 양 기관의 협조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반박했습니다. 헌법재판소법 34조는 "평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해, 평의 내용을 비밀에 부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평의 결과 말씀하시는데, '도대체 몇 대 몇인지 알아봐라. 내부 평의 움직임이 왜 그러냐'그런 취지가 아니고. '한정위헌 관련해서 이 부분이 진짜 문제가 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얼마나 많은 재판관, 연구관이 그렇게 생각하냐. 이건 아니지 않냐. 법원과 협조 관계 유지가 맞지 않냐'.(라는 차원이었습니다.) 법원도 저희가 연구한 자료를 최희준 부장 통해 (헌재에) 전달도 했고, 최희준 부장이 헌재에서 나온 자료도 저희한테 보내줬고. 다만 그 과정에서 헌재에서 유출되면 안될 만한 그런 자료가 섞여있다는 건 저도 분명히 인정합니다. 사실관계를 다투는 게 아니라, 그 의도가 검찰 공소사실과 같이 '기관 대 기관의 이전투구'는 절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전 실장은 말을 맺는 단계에 가서야, 주심 판사의 질문에 비로소 답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질문하신 헌재와 대법의 바람직한 관계라는 거는, 대법과 헌재가 서로 협의할 수 있는, 또 상의하면서 판결의 방향을 독립적으로 재판하면서도, '대법 입장에선 이런 거구나' '헌재 입장에선 이런 게 있구나'라고 이해하면서 조화롭게 판시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균형 있는 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상입니다."

이 전 실장 사건의 재판에는 김정원 헌법재판소 사무차장과 최희준 전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이 곧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인데요. 두 사람도 법원과 헌재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고민들을 법정에서 이야기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정 형사 사건의 실체적 진실뿐 아니라, 때때로 사회적 쟁점에 대한 논의의 장이 된다는 점에서 '사법농단' 사건 재판은 흥미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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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관-헌법재판관, 상설협의체 논의했다”…“이전투구 아니다”
    • 입력 2019-11-21 15:45:52
    • 수정2019-11-25 15:16:33
    취재K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상설협의체'를 만들자. 그런 제도를 하나 만들어 […] 비공식적으로 하자. […] 그런 견해까지 나왔습니다. 심지어 헌재의 모 재판관님하고 대법원의 모 대법관님이 상의한 적도 있습니다."

오늘(21일) 열린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서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흥미로운 옛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법원 내 헌법 전문가였고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실장이 오늘의 이야기꾼이었습니다.

"헌재와 대법원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이규진 피고인의 현재 의견을 듣고 싶다"라는 주심 판사(김용신 판사)의 질문을 받고, 피고인석에 앉은 이 전 실장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한국의 '양대 최고법원'으로 자리잡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밀도 높은 고민과 기억이 법정에 펼쳐졌습니다. '사법농단' 재판의 쟁점과는 별개로 이 전 실장의 발언 내용이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그 내용을 상세히 기록해두려 합니다.


처음에는 '같은 식구'였지만…

"구체적으로 정리된 건 아닌데요"라고 말문을 연 이 전 실장은 헌법재판소 출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생긴 이래로 대법원에서 헌재 법관도 파견하였고, 또 많은 고위법관들이 헌재 재판관으로 가면서 대법원에서 생각하는 헌재, 그리고 헌재에서 생각하는 대법원은 '같은 식구'라는 견해가 많았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헌재에서도 대법원에서 파견하는 법관들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많이 받았고, 의지하는 면도 많았기 때문에 대법원에서는 헌재를 다른 기관이나 경쟁 상대 기관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점차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위상을 키워가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96년도에 소득세법 관련해서 대법원과 헌재가 대립하면서, 그때부터 좀 갈등이 시작된 걸로 저는 배웠고, 그 다음에 헌법재판소에서 많은 판례들을 형성하면서 대법에서 약간의 위기 의식이랄까 이런 것을 느낀 것도 사실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근데 제가 헌법연구회나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운영하는 헌법연구반에서 활동하면서 제가 느낀 것은, 우선 헌법재판소는 나름대로 기관의 영역, 권한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실제로 그런 증거들을 제가 헌재에서 (파견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목도도 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법원의 고유 권한까지 '침범'할 지경에 이르자, 다수의 법원 사람들은 의문을 가졌다고 합니다.

"헌재가 국가기관으로서, 또 국민의 권익보호를 위해서 권한을 확대한다는 건 옳다고 저는 봤습니다. […] 다만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에 비춰봐서 과연 헌재가 위헌법률심판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서 변형결정까지 할 권한 있는지에 대해 법관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의문을 가졌고. 당시 제가 (헌재에) 파견나갔던 2001~2002년 모셨던 헌법재판관님들도 다수가 그런 생각하셨습니다. 특히 변형결정에서도 헌법불합치와 한정위헌에 대해 많은 논란 있었는데, 헌법불합치는 그래도 유예기간을 둔다는 측면에서 법적안정성 측면에서 큰 문제는 없다 봤지만 한정위헌은 정면으로 법원에 특히 대법원 전원합의체나 이런 데서 나오는 법원의 법률해석 권한을 전면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대법원에서는 그 문제를 보통 심각하게 본 게 아니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 결정에 대법원이 기존 권한을 '위협'받는다고 인식하게 되면서, 두 기관의 대립 지점이 생겼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법-헌재 비공식 상설협의체 논의 있었다"

이 전 실장은 이런 양 기관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입법기관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국회는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헌재와 대법의 관계는, 헌재는 한정위헌 결정이 법리적으로 옳고그름을 떠나 '당연히 할 수 있는 권한'이라 생각하는 거고, 대법원은 '그걸 할 수 없다'는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건 해결되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근데 법리적으로 어떻다 떠나서, 국회나 정부에서 해결책을 제시 안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하든지 헌법 개정하든지 뭔가 조치를 해줘야 법원과 헌재가 그에 따라서 판시를 하고 국민의 권익도 이중으로 판단을 받거나, 매립지사건처럼. 그렇게 안되고, 정상적으로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하는데. 지금 국회에서는 그걸 하지 않고 있고, 헌재하고 법원은 서로 대립만 되고 있고. 그게 계속 반복되는 현상입니다."

이렇게 국회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문제 해결을 위해 '비밀스런' 논의를 했다고도 이 전 실장은 회고했습니다. 이 논의가 실패로 돌아간 이유도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희 (대법원) 헌법연구반에서 검토했던 게… 대법원과 헌재가 '상설협의체'를 만들자.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세 분, 대법에서 대법관 세 분. 이렇게 모여서 서로 한정위헌이나 헌법불합치를 할 우려가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법원에서도 의견 내고, 또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대해서 의견을 낼 수 있는 그런 제도를 하나 만들어 비공식적으로 하자. 이런 견해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그거에 대해서는 헌재의 모 재판관님하고 대법원의 모 대법관님이 상의한 적도 있습니다. 근데 그게 출범하지 못했던 이유는 헌재에서는 헌재의 기득권, 결정례를 유지하고자 하는 분들이 계셨고, 대법원에서는 '대법원이 최고법원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겠냐'하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양승태 코트' 절대명제, "한정위헌 결정은 어떻게든 막아보자"

두 기관의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던 2015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시절이던 그 해에,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 결정 가능성에 대한 대법원의 우려는 극에 달했다고 이 전 실장은 말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대법과 헌재의 관계는 […]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무엇이 진정하게 국민 권리구제에 맞는 것인지에 대해 한번 논의해보자는. 협조 또는 협의, 구성체가 뭐가 되든 간에 그런 절차와 제도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절차와 제도가 법률적으로 준비안된다면 비공식적으로라도 해야한다는 생각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실현안되고 있는 가운데 2015년도에 전원합의체 업무방해 관련된 한정위헌 움직임이 나왔고, 거기에 대해 대법원 상층부에서 너무나 큰 우려를 했기 때문에. 한쪽으로는 그런 걸 검토하면서도 한정위헌은 막아야 한다는 절대 명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 전 실장은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이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음도 시사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근거가 과연 명확하냐. 독일은 법률적 근거가 있고 제도도 정비돼 왔지만,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저는 법률가로서 의문 갖고 있었고 여러 연구도 나와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헌재가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헌재 한정위헌 결정을 어떻게든 막아보자'는 대법원장 결정에 대해 이의하지 않았습니다."


헌재 기밀 유출, "부적절했지만 양기관 협조 위한 것이었다"

이 전 실장은 다만 양 전 원장 시절 대법원이 단지 헌재보다 위상을 높이려는 "이전투구"나 "어린 애 같은 짓"을 하려고 헌재 파견 법관을 통해 헌재 내부 자료를 수집한 건 아니라며, 검찰이 오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주장할 내용을 일부 맛보기로 진술한 겁니다.

"최희준 부장(헌재 파견법관)이 헌재에서 그 자료를 받고 하는 것에 대해, 사실 제가 부적절함은 인정합니다. 다만 제가 그때 그런(부적절하다는) 인식이 없었던 건 헌재와 대법이 유리된 기관이란 인식이 부족했었고. 최희준 부장도 협조 차원에서 본인이 어떤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도 있어서 재판관이 하시는 말씀이나 이런 걸 그때 그때 저에게 알려줬습니다. 자료를 유출해서 헌재에 대해 기관우위를 점하기 위해 그런 어린애 같은 짓을 한 게 아니고, 대법과 헌재는 협조해서 좋은 결과 얻어야 하지 않느냐. 그럼 저쪽에서 의견도 주고."

헌법재판관들의 평의 결과를 알아본 것도, '기밀 누출' 차원이 아니고 양 기관의 협조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반박했습니다. 헌법재판소법 34조는 "평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해, 평의 내용을 비밀에 부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평의 결과 말씀하시는데, '도대체 몇 대 몇인지 알아봐라. 내부 평의 움직임이 왜 그러냐'그런 취지가 아니고. '한정위헌 관련해서 이 부분이 진짜 문제가 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얼마나 많은 재판관, 연구관이 그렇게 생각하냐. 이건 아니지 않냐. 법원과 협조 관계 유지가 맞지 않냐'.(라는 차원이었습니다.) 법원도 저희가 연구한 자료를 최희준 부장 통해 (헌재에) 전달도 했고, 최희준 부장이 헌재에서 나온 자료도 저희한테 보내줬고. 다만 그 과정에서 헌재에서 유출되면 안될 만한 그런 자료가 섞여있다는 건 저도 분명히 인정합니다. 사실관계를 다투는 게 아니라, 그 의도가 검찰 공소사실과 같이 '기관 대 기관의 이전투구'는 절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전 실장은 말을 맺는 단계에 가서야, 주심 판사의 질문에 비로소 답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질문하신 헌재와 대법의 바람직한 관계라는 거는, 대법과 헌재가 서로 협의할 수 있는, 또 상의하면서 판결의 방향을 독립적으로 재판하면서도, '대법 입장에선 이런 거구나' '헌재 입장에선 이런 게 있구나'라고 이해하면서 조화롭게 판시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균형 있는 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상입니다."

이 전 실장 사건의 재판에는 김정원 헌법재판소 사무차장과 최희준 전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이 곧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인데요. 두 사람도 법원과 헌재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고민들을 법정에서 이야기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정 형사 사건의 실체적 진실뿐 아니라, 때때로 사회적 쟁점에 대한 논의의 장이 된다는 점에서 '사법농단' 사건 재판은 흥미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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