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文 대통령 부산 초청 왜 거절했나?

입력 2019.11.21 (18:14) 수정 2019.11.2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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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오늘(2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지난 11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을 요청하는 친서를 보냈다고 공개했습니다. 또 김 위원장이 못 온다면 특사라도 방문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도 했습니다. 북한은 남측의 기대와 성의는 고맙지만 김 위원장이 부산에 가야 할 합당한 이유를 끝내 찾지 못했다며 문 대통령의 요청을 사실상 거절했습니다.


정중한 표현으로 시작했지만…북한 발표 분석해보니

북한의 발표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화법이 일관되지 않고 복합적입니다. 앞부분,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이고 정중한 표현을 쓰며 예의를 갖추고 있습니다. 고맙게 생각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문 대통령의 고뇌와 번민을 이해한다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조선중앙통신〉
"우리는 남측이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부산 방문과 관련한 경호와 의전 등 모든 영접 준비를 최상의 수준에서 갖추어 놓고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이 기회라도 놓치지 않고 현 북남 관계를 풀기 위한 새로운 계기 점과 여건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와 번민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이렇게 문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는 듯하더니, 다시 차가운 태도로 돌변합니다. 공격 대상은 남측 당국과 정치권으로 바뀝니다. 특히 남측의 공기가 흐려질 대로 흐려져 남북 관계에 매우 회의적이라고 지적하면서 남북 사이의 모든 문제를 민족 공조가 아니라 외세 의존으로 풀어가려는 그릇된 입장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미국 방문도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공격적인 어조로 한 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엔 참석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과연 현시점이 남북 정상이 만날 때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조선중앙통신〉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과 죄스러운 마음으로 삼고초려를 해도 모자랄 판국에 민족의 운명과 장래 문제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다른 나라 손님들을 요란하게 청해놓고 그들의 면전에서 북과 남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과 남 사이의 근본 문제, 민족 문제는 하나도 풀지 못하면서 북남 수뇌들 사이에 여전히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냄새나 피우고 저들이 주도한 《신남방정책》의 귀퉁이에 북남 관계를 슬쩍 끼워 넣어보자는 불순한 기도를 무턱대고 따를 우리가 아니다."



나흘 앞두고 매체에 불참 사실 공개한 의도는?

김정은 위원장이 초청장을 받은 건 11월 5일입니다. 지난달 30일 김 위원장이 모친상을 당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의문을 보내자, 문 대통령이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친서를 보내면서 초청 의사를 밝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보면 북한은 그 뒤 우리 정부에 불참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회의를 나흘 앞두고 굳이 친서와 특사 파견 요청 사실을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우리 대통령의 초청에 대해 답을 주려면 김정은 위원장의 직접 답신을 하는 것이 관례인데, 답신에 담지 못한 구체적인 결정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북한 매체를 통해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또 회의에 참여하는 아세안 국가들의 입장도 고려한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대외 메시지를 통해 북한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치적으로 일시적으로 이용당하는 상황은 더는 응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지속 가능한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조건과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그때 정상회담이든, 교류 협력이든 적극적으로 나오겠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단호해진 북한…남북 관계는 어떻게 되나

전문가들은 연내에 물꼬를 트지 않으면 북미 비핵화 협상이 중단될 수 있는 위기 상황이고, 북한이 금강산 관광까지 정리하려는 마당에, 한 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애초에 전환점이 될 수 없었다고 분석합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이 사실상 0%인데 김 위원장에게 특별정상회의 초청장을 보내면 그것을 수락할 수도 있다고 한국 정부가 판단했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나마 북한이 아직도 문 대통령에겐 우호적 태도를 보인 점은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양무진 교수는 "어쨌든 북한이 답신했다는 점, 또 내용의 톤이 지금까지 대남 비판의 수위와 비교할 때 굉장히 낮다는 점에서 북한은 상황 악화보다는 상황 관리에 방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임을출 교수도 "북한이 문 대통령의 초청은 거절했지만, 이 행사를 계기로 교착된 남북 관계를 풀어 보려는 문 대통령의 진정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번에 북한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현재 남북관계에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에 의존하는 정부의 대북정책과 남한 내부의 정치 상황입니다.

북한은 남측이 미국, 외세에 의존하는 모습을 버리지 않으면 남북 대화는 재개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정부는 북미 협상은 물론 남북 관계도 미국과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북제재의 촘촘한 틀을 뚫고 북한이 원하는 직접 거래는 할 수 없는 겁니다.

남한 내부 정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은 지금 우리 내부의 정치적 분열이 심각한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으며, 정치적 분열이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으면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북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머무르고 남북 교류도 멈추면서 남한 내의 여론도 점차 식어가고 있습니다. 남한은 북한과 달리 여론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앞으로 남북 관계를 다시 활발히 이어가기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은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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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文 대통령 부산 초청 왜 거절했나?
    • 입력 2019-11-21 18:14:31
    • 수정2019-11-21 18:19:20
    취재K
북한이 오늘(2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지난 11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을 요청하는 친서를 보냈다고 공개했습니다. 또 김 위원장이 못 온다면 특사라도 방문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도 했습니다. 북한은 남측의 기대와 성의는 고맙지만 김 위원장이 부산에 가야 할 합당한 이유를 끝내 찾지 못했다며 문 대통령의 요청을 사실상 거절했습니다.


정중한 표현으로 시작했지만…북한 발표 분석해보니

북한의 발표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화법이 일관되지 않고 복합적입니다. 앞부분,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이고 정중한 표현을 쓰며 예의를 갖추고 있습니다. 고맙게 생각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문 대통령의 고뇌와 번민을 이해한다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조선중앙통신〉
"우리는 남측이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부산 방문과 관련한 경호와 의전 등 모든 영접 준비를 최상의 수준에서 갖추어 놓고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이 기회라도 놓치지 않고 현 북남 관계를 풀기 위한 새로운 계기 점과 여건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와 번민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이렇게 문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는 듯하더니, 다시 차가운 태도로 돌변합니다. 공격 대상은 남측 당국과 정치권으로 바뀝니다. 특히 남측의 공기가 흐려질 대로 흐려져 남북 관계에 매우 회의적이라고 지적하면서 남북 사이의 모든 문제를 민족 공조가 아니라 외세 의존으로 풀어가려는 그릇된 입장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미국 방문도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공격적인 어조로 한 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엔 참석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과연 현시점이 남북 정상이 만날 때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조선중앙통신〉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과 죄스러운 마음으로 삼고초려를 해도 모자랄 판국에 민족의 운명과 장래 문제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다른 나라 손님들을 요란하게 청해놓고 그들의 면전에서 북과 남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과 남 사이의 근본 문제, 민족 문제는 하나도 풀지 못하면서 북남 수뇌들 사이에 여전히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냄새나 피우고 저들이 주도한 《신남방정책》의 귀퉁이에 북남 관계를 슬쩍 끼워 넣어보자는 불순한 기도를 무턱대고 따를 우리가 아니다."



나흘 앞두고 매체에 불참 사실 공개한 의도는?

김정은 위원장이 초청장을 받은 건 11월 5일입니다. 지난달 30일 김 위원장이 모친상을 당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의문을 보내자, 문 대통령이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친서를 보내면서 초청 의사를 밝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보면 북한은 그 뒤 우리 정부에 불참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회의를 나흘 앞두고 굳이 친서와 특사 파견 요청 사실을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우리 대통령의 초청에 대해 답을 주려면 김정은 위원장의 직접 답신을 하는 것이 관례인데, 답신에 담지 못한 구체적인 결정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북한 매체를 통해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또 회의에 참여하는 아세안 국가들의 입장도 고려한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대외 메시지를 통해 북한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치적으로 일시적으로 이용당하는 상황은 더는 응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지속 가능한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조건과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그때 정상회담이든, 교류 협력이든 적극적으로 나오겠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단호해진 북한…남북 관계는 어떻게 되나

전문가들은 연내에 물꼬를 트지 않으면 북미 비핵화 협상이 중단될 수 있는 위기 상황이고, 북한이 금강산 관광까지 정리하려는 마당에, 한 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애초에 전환점이 될 수 없었다고 분석합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이 사실상 0%인데 김 위원장에게 특별정상회의 초청장을 보내면 그것을 수락할 수도 있다고 한국 정부가 판단했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나마 북한이 아직도 문 대통령에겐 우호적 태도를 보인 점은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양무진 교수는 "어쨌든 북한이 답신했다는 점, 또 내용의 톤이 지금까지 대남 비판의 수위와 비교할 때 굉장히 낮다는 점에서 북한은 상황 악화보다는 상황 관리에 방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임을출 교수도 "북한이 문 대통령의 초청은 거절했지만, 이 행사를 계기로 교착된 남북 관계를 풀어 보려는 문 대통령의 진정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번에 북한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현재 남북관계에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에 의존하는 정부의 대북정책과 남한 내부의 정치 상황입니다.

북한은 남측이 미국, 외세에 의존하는 모습을 버리지 않으면 남북 대화는 재개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정부는 북미 협상은 물론 남북 관계도 미국과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북제재의 촘촘한 틀을 뚫고 북한이 원하는 직접 거래는 할 수 없는 겁니다.

남한 내부 정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은 지금 우리 내부의 정치적 분열이 심각한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으며, 정치적 분열이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으면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북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머무르고 남북 교류도 멈추면서 남한 내의 여론도 점차 식어가고 있습니다. 남한은 북한과 달리 여론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앞으로 남북 관계를 다시 활발히 이어가기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은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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