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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최초 ‘투 스타’ 강선영 소장…“여군 한계짓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입력 2019.11.22 (07:00) 수정 2019.11.22 (08:24) 취재K
여군 최초 ‘투 스타’ 강선영 소장…“여군 한계짓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육, 해, 공군을 통틀어 처음으로 여군 소장이 탄생했습니다. 여성 최초로 이른바 '투 스타' 장군이 된 강선영 육군 소장은 어제(21일) 육군 항공작전사령관에 취임했습니다. 항작사령관에 여군이 임명된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강선영 소장은 여군으로서 '최초'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강 소장은 1990년 임관한 뒤 1993년 육군 항공학교에 입교해 회전익 조종사 95기를 1등으로 수료했습니다. 이후 여군 최초 정조종사, 특전사 대대 최초 여성 팀장, 최초 여성 항공대대장, 최초 여성 항공단장 등을 거쳤습니다.

강선영 소장은 취임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최초'로 이뤄놓은 것이 여군들이 할 수 있는 한계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라면서, "내가 못하면 나의 한계로 끝나지 않고 후배들에게 한계가 되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해왔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강선영 소장은 이 밖에도 지난 군 생활을 하며 겪은 어려움과 기울인 노력, 항작사령관으로서의 포부 등을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아래 영상에 담았습니다.


- 여군 최초 소장, 항공작전사령관으로 취임했는데 소감은

제가 90년도에 임관할 때는 저희 임관한 인원 35명을 총 포함해서 여군 장교가 간호 장교 빼고 99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만 명을 넘어섰거든요. 당시에는 부대에 가면 여러 가지 생활 기반도 어려웠고, 여건도 어려웠고, 제도도 어려웠고, 또 보직의 기회를 잘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에 조종사로 갔을 때 편견은 엄청나게 많았는데 사실 상관들의 편견보다 동료들의 편견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저 여군이 오면 근무를 한 번이라도 내가 더 서야 하지 않을까?" "어려운 걸 내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동료들과 가까워지는 노력을 상당히 했습니다. 가깝게 하려고 노력하고, 어려운 걸 부탁도 하고, 또 부탁도 들어주면서. 그렇게 하면서 훈련을 나가서 차츰 어려운 걸 같이 하면 가까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 여군 '최초'라는 타이틀로 부담은 없었는지

최초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처음 문을 연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처음이기 때문에 경험을 전수해줄 수 있는 선배들이 없는 거예요.

또, 내가 최초로 이뤄놓은 것이 항상 여군들이 할 수 있는 한계 또는 기준이 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특전사에서 제가 707 부대에 있었기 때문에 사격을 잘했어요. 그래서 부대 전입 갔을 때 사격왕을 했어요. 권총 사격을 제일 잘해서. 그랬더니 그다음부터는 "아, 여군이 사격을 잘하는구나" 여군이 사격 못 한다는 편견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달리기를 잘하면 여군은 달리기를 못 한다는 편견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특정한 어떤 것을 제가 못하면 "아, 여군은 그걸 못해." 그러고 여군을 그걸 시키지를 않는 거예요. 제가 못하는 게 나의 한계로 끝나는 게 아니라 후배들의 제한, 한계로 머물지 않도록 제가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순간도 많았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임관했을 때와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저는 대위 때, 지금은 이름이 지휘참모과정이라고 바뀌었지만 그전에는 고등군사반을 마쳤을 때 성적을 되게 좋게 받았는데도 그걸 마친 모든 남군들은 작전장교나 교육장교를 주는데 저는 작전장교나 교육장교 보직을 안 줬어요.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운항장교를 했는데 운항장교 하면서 교육장교 역할을 옆에서 도와주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하고.

처음에 중대장을 할 때도 중대장을 시켜야 하는지를 막 회의를 하고 대대장 할 때도 대대장 시켜야 되는지 회의하고. 그런데 지금은 제가 중대장도 했고 대대장도 했고 단장도 하면서 이제 여군들 중대장도 많고 대대장도 많아졌거든요. 보직의 기회가 굉장히 많이 열렸고요. 이제는 '여군은 이렇다'라는 일반화된 것이 아니라 여군이든 남군이든 개별적 능력에 맞게 보직과 기회를 많이 열어주고 있습니다.

- '항공작전사령관'으로서의 목표와 포부

그건 훨씬 무거운 문제인데요. 저는 육군 항공병과장 겸 항공작전사령관입니다. 육군 항공이 금년도 69주년이거든요. 내년에 70주년인데. 육군 항공은 헬기가 굉장히 오래돼서 지금 변화기를 맞고 있어요. UH-1H는 이미 내년에 도태가 결정됐고. 500MD는 2030년 정도가 되면 도태가 될 거예요. 그래서 지금 수리온이란 헬기도 개발되어서 전력화 진행 중이에요. 그리고 LAH라는 소형공격헬기를 지금 개발 중입니다.

지금은 신형 항공기의 전력화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과거의 노후화된 헬기를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되는 문제, 그리고 2050년이 되면 육군 항공 100년이 되면서 현재 육군이 추진하는 초일류 육군의 미래가 2050년이거든요. 그 초일류 육군인 2050년에 미래의 육군 항공의 헬기, 헬기라고 하기에는 지금은 저렇게 이륙하지만 수직이착륙기, 또 유인기와 무인기가 복합되는 4차산업혁명의 초지능, 초연결, 무인화를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그런 비전을 잘 건설해나가야 됩니다.

-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실 저희(항공부대)는 적과만 싸우는 게 아닙니다. 기상과도 싸워야 되고 장비와도 싸워야 되고 나쁜 의미가 아니라 항상 장비가 안전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육군 항공은 평시 교육훈련, 또 전시에 즉각 출동태세를 갖추고. 그러면서도 항공안전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항작사 모두는 항공기를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그러려면 여러 가지 인적 요소, 환경적 요소를 다 고려해서 편안하게 관리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육군 항공에 많은 여군들이 있고 일반 부대에 여군들이 있는데, 조직에서 과거에 비해 많이 배려해주는 만큼 본인도 희생과, 열심히 하겠다는 노력으로 조직에 승수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여군 최초 ‘투 스타’ 강선영 소장…“여군 한계짓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 입력 2019.11.22 (07:00)
    • 수정 2019.11.22 (08:24)
    취재K
여군 최초 ‘투 스타’ 강선영 소장…“여군 한계짓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육, 해, 공군을 통틀어 처음으로 여군 소장이 탄생했습니다. 여성 최초로 이른바 '투 스타' 장군이 된 강선영 육군 소장은 어제(21일) 육군 항공작전사령관에 취임했습니다. 항작사령관에 여군이 임명된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강선영 소장은 여군으로서 '최초'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강 소장은 1990년 임관한 뒤 1993년 육군 항공학교에 입교해 회전익 조종사 95기를 1등으로 수료했습니다. 이후 여군 최초 정조종사, 특전사 대대 최초 여성 팀장, 최초 여성 항공대대장, 최초 여성 항공단장 등을 거쳤습니다.

강선영 소장은 취임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최초'로 이뤄놓은 것이 여군들이 할 수 있는 한계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라면서, "내가 못하면 나의 한계로 끝나지 않고 후배들에게 한계가 되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해왔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강선영 소장은 이 밖에도 지난 군 생활을 하며 겪은 어려움과 기울인 노력, 항작사령관으로서의 포부 등을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아래 영상에 담았습니다.


- 여군 최초 소장, 항공작전사령관으로 취임했는데 소감은

제가 90년도에 임관할 때는 저희 임관한 인원 35명을 총 포함해서 여군 장교가 간호 장교 빼고 99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만 명을 넘어섰거든요. 당시에는 부대에 가면 여러 가지 생활 기반도 어려웠고, 여건도 어려웠고, 제도도 어려웠고, 또 보직의 기회를 잘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에 조종사로 갔을 때 편견은 엄청나게 많았는데 사실 상관들의 편견보다 동료들의 편견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저 여군이 오면 근무를 한 번이라도 내가 더 서야 하지 않을까?" "어려운 걸 내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동료들과 가까워지는 노력을 상당히 했습니다. 가깝게 하려고 노력하고, 어려운 걸 부탁도 하고, 또 부탁도 들어주면서. 그렇게 하면서 훈련을 나가서 차츰 어려운 걸 같이 하면 가까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 여군 '최초'라는 타이틀로 부담은 없었는지

최초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처음 문을 연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처음이기 때문에 경험을 전수해줄 수 있는 선배들이 없는 거예요.

또, 내가 최초로 이뤄놓은 것이 항상 여군들이 할 수 있는 한계 또는 기준이 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특전사에서 제가 707 부대에 있었기 때문에 사격을 잘했어요. 그래서 부대 전입 갔을 때 사격왕을 했어요. 권총 사격을 제일 잘해서. 그랬더니 그다음부터는 "아, 여군이 사격을 잘하는구나" 여군이 사격 못 한다는 편견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달리기를 잘하면 여군은 달리기를 못 한다는 편견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특정한 어떤 것을 제가 못하면 "아, 여군은 그걸 못해." 그러고 여군을 그걸 시키지를 않는 거예요. 제가 못하는 게 나의 한계로 끝나는 게 아니라 후배들의 제한, 한계로 머물지 않도록 제가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순간도 많았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임관했을 때와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저는 대위 때, 지금은 이름이 지휘참모과정이라고 바뀌었지만 그전에는 고등군사반을 마쳤을 때 성적을 되게 좋게 받았는데도 그걸 마친 모든 남군들은 작전장교나 교육장교를 주는데 저는 작전장교나 교육장교 보직을 안 줬어요.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운항장교를 했는데 운항장교 하면서 교육장교 역할을 옆에서 도와주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하고.

처음에 중대장을 할 때도 중대장을 시켜야 하는지를 막 회의를 하고 대대장 할 때도 대대장 시켜야 되는지 회의하고. 그런데 지금은 제가 중대장도 했고 대대장도 했고 단장도 하면서 이제 여군들 중대장도 많고 대대장도 많아졌거든요. 보직의 기회가 굉장히 많이 열렸고요. 이제는 '여군은 이렇다'라는 일반화된 것이 아니라 여군이든 남군이든 개별적 능력에 맞게 보직과 기회를 많이 열어주고 있습니다.

- '항공작전사령관'으로서의 목표와 포부

그건 훨씬 무거운 문제인데요. 저는 육군 항공병과장 겸 항공작전사령관입니다. 육군 항공이 금년도 69주년이거든요. 내년에 70주년인데. 육군 항공은 헬기가 굉장히 오래돼서 지금 변화기를 맞고 있어요. UH-1H는 이미 내년에 도태가 결정됐고. 500MD는 2030년 정도가 되면 도태가 될 거예요. 그래서 지금 수리온이란 헬기도 개발되어서 전력화 진행 중이에요. 그리고 LAH라는 소형공격헬기를 지금 개발 중입니다.

지금은 신형 항공기의 전력화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과거의 노후화된 헬기를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되는 문제, 그리고 2050년이 되면 육군 항공 100년이 되면서 현재 육군이 추진하는 초일류 육군의 미래가 2050년이거든요. 그 초일류 육군인 2050년에 미래의 육군 항공의 헬기, 헬기라고 하기에는 지금은 저렇게 이륙하지만 수직이착륙기, 또 유인기와 무인기가 복합되는 4차산업혁명의 초지능, 초연결, 무인화를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그런 비전을 잘 건설해나가야 됩니다.

-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실 저희(항공부대)는 적과만 싸우는 게 아닙니다. 기상과도 싸워야 되고 장비와도 싸워야 되고 나쁜 의미가 아니라 항상 장비가 안전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육군 항공은 평시 교육훈련, 또 전시에 즉각 출동태세를 갖추고. 그러면서도 항공안전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항작사 모두는 항공기를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그러려면 여러 가지 인적 요소, 환경적 요소를 다 고려해서 편안하게 관리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육군 항공에 많은 여군들이 있고 일반 부대에 여군들이 있는데, 조직에서 과거에 비해 많이 배려해주는 만큼 본인도 희생과, 열심히 하겠다는 노력으로 조직에 승수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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