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287일 병상일지로 승소…엄마는 ‘도움’이 되고 싶었다

입력 2019.11.25 (07:01) 수정 2019.11.2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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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입니다. 24살이던 김 모 씨는 하루 아침에 걷지 못하게 됩니다. 시작은 수술 때문이었습니다. 김 씨는 지난 2017년 2월 서울 강남세브란스 병원에서 발목 철심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척수 경색 등으로 신경이 손상돼 영구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후 의료진의 과실을 밝히기 위한 지난한 소송이 시작됐고, 지난달 16일에야 1심 법원이 80%의 병원 과실을 인정하며 15억 5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결정했습니다. 2년 동안의 법정 싸움이었습니다.

[연관 기사] 척추마취 뒤 하반신 마비…승소 이끈 '어머니의 병상일지' KBS '뉴스9' (2019.11.23)

이 싸움에서는 뉴스에서 전해드린대로 '엄마의 기록'이 주효했습니다. 수술 직후 아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소변을 보지 못하자 어머니는 '기록(記錄)'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엄마로서 느끼는 불안감 때문에 일지를 적기 시작했다"고 김 씨 어머니는 당시를 기억합니다.

그렇게 적어내려간 '매일'이 287일 동안 쌓였습니다. 아들의 고통이 어떤지, 아들의 수술 당시 기억은 무엇인지, 심지어 아픈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까지 담겨 있는 이 병상일지는 소송 과정에서 결정적인 근거가 됐습니다.

■ 1심 이겼지만 병원이 항소…"뉴스 출연해도 괜찮을까"

처음 취재를 시작한 뒤 김 씨 어머니가 뉴스에 나오기까지 약 2주가 걸렸습니다. 1심 판결 뒤 병원이 항소를 하고, 이에 따라 김 씨 측도 함께 항소한 상황이어서 우선 두려움이 컸습니다. 혹시나 이 소식이 뉴스에 나왔을 때 항소심에 악영향을 미칠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15억 5천만 원이라는 손해배상액도 어머니를 멈칫하게 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지난한 의료 사고 소송을 다른 이들이 '돈의 크기'로만 볼까봐 너무 걱정이 됐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만약 뉴스에 악성 댓글이 달릴 경우 이를 본 아들이 상처를 입을까봐 겁이 났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2주 동안을 고민한 끝에 KBS와의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김 씨 어머니가 꼼꼼하게 적어내려간 병상 일지김 씨 어머니가 꼼꼼하게 적어내려간 병상 일지

■ "다른 의료 사고 피해자에게 도움 되고 싶어요"

그렇다면 어머니가 고심 끝에 뉴스에 나오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어머니가 뉴스에 나오기로 결심한 이유는 단 하나, 다른 의료 사고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습니다.

김 씨 어머니는 출연을 결심한 뒤 취재팀에 메일 한 통을 보냈습니다. 김 씨의 의료 사고 경위와 소송 과정에 대해 정리한 내용이었는데요. 그 안에는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직접 '의료 사고 발생시 해야할 일'을 정리한 내용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여러 걱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험을 의료사고를 겪은 피해자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의료 사고가 일어났을 때 준비할 것 ▲
- 수술기록지, 경과기록지, 간호기록지, 검사결과지 등 빠르게 확보하기
- 환자 상태와 의료 행위 중심으로 병상일지 작성하기
- 환자 상태를 증언할 사람들의 녹취 확보하기
- 의료 사고 관련 단체에 방문해 도움 요청하기
-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상담하기

"의료 소송은 법과 의료라는 두 가지 전문가 영역이 겹쳐 일반인이 대응하기 어려워요. 의무 기록지도 우리에게는 암호 같거든요." 어머니는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술실 CCTV 법제화를 통해 영상으로라도 과실을 밝혀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2년의 시간을 거치며, 어머니는 어느새 '의료사고'의 전문가가 되어버린 듯했습니다. 병상일지를 써서 아들의 소송 과정에서 이겨낸 엄마는, 이제 다른 의료 사고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김 씨 가족은 이제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강남세브란스 병원이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다시 한 번 다투겠다고 항소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병상일지가 아닌 법정일기를 쓰면서 또 다시 법정 싸움을 견뎌야하겠지요. 아무쪼록 김씨 가족의 사연과 김 씨 어머니가 공유하고 싶다고 알려주신 내용이 '의료사고'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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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287일 병상일지로 승소…엄마는 ‘도움’이 되고 싶었다
    • 입력 2019-11-25 07:01:14
    • 수정2019-11-25 07:02:43
    취재후·사건후
2년 전입니다. 24살이던 김 모 씨는 하루 아침에 걷지 못하게 됩니다. 시작은 수술 때문이었습니다. 김 씨는 지난 2017년 2월 서울 강남세브란스 병원에서 발목 철심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척수 경색 등으로 신경이 손상돼 영구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후 의료진의 과실을 밝히기 위한 지난한 소송이 시작됐고, 지난달 16일에야 1심 법원이 80%의 병원 과실을 인정하며 15억 5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결정했습니다. 2년 동안의 법정 싸움이었습니다.

[연관 기사] 척추마취 뒤 하반신 마비…승소 이끈 '어머니의 병상일지' KBS '뉴스9' (2019.11.23)

이 싸움에서는 뉴스에서 전해드린대로 '엄마의 기록'이 주효했습니다. 수술 직후 아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소변을 보지 못하자 어머니는 '기록(記錄)'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엄마로서 느끼는 불안감 때문에 일지를 적기 시작했다"고 김 씨 어머니는 당시를 기억합니다.

그렇게 적어내려간 '매일'이 287일 동안 쌓였습니다. 아들의 고통이 어떤지, 아들의 수술 당시 기억은 무엇인지, 심지어 아픈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까지 담겨 있는 이 병상일지는 소송 과정에서 결정적인 근거가 됐습니다.

■ 1심 이겼지만 병원이 항소…"뉴스 출연해도 괜찮을까"

처음 취재를 시작한 뒤 김 씨 어머니가 뉴스에 나오기까지 약 2주가 걸렸습니다. 1심 판결 뒤 병원이 항소를 하고, 이에 따라 김 씨 측도 함께 항소한 상황이어서 우선 두려움이 컸습니다. 혹시나 이 소식이 뉴스에 나왔을 때 항소심에 악영향을 미칠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15억 5천만 원이라는 손해배상액도 어머니를 멈칫하게 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지난한 의료 사고 소송을 다른 이들이 '돈의 크기'로만 볼까봐 너무 걱정이 됐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만약 뉴스에 악성 댓글이 달릴 경우 이를 본 아들이 상처를 입을까봐 겁이 났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2주 동안을 고민한 끝에 KBS와의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김 씨 어머니가 꼼꼼하게 적어내려간 병상 일지
■ "다른 의료 사고 피해자에게 도움 되고 싶어요"

그렇다면 어머니가 고심 끝에 뉴스에 나오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어머니가 뉴스에 나오기로 결심한 이유는 단 하나, 다른 의료 사고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습니다.

김 씨 어머니는 출연을 결심한 뒤 취재팀에 메일 한 통을 보냈습니다. 김 씨의 의료 사고 경위와 소송 과정에 대해 정리한 내용이었는데요. 그 안에는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직접 '의료 사고 발생시 해야할 일'을 정리한 내용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여러 걱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험을 의료사고를 겪은 피해자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의료 사고가 일어났을 때 준비할 것 ▲
- 수술기록지, 경과기록지, 간호기록지, 검사결과지 등 빠르게 확보하기
- 환자 상태와 의료 행위 중심으로 병상일지 작성하기
- 환자 상태를 증언할 사람들의 녹취 확보하기
- 의료 사고 관련 단체에 방문해 도움 요청하기
-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상담하기

"의료 소송은 법과 의료라는 두 가지 전문가 영역이 겹쳐 일반인이 대응하기 어려워요. 의무 기록지도 우리에게는 암호 같거든요." 어머니는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술실 CCTV 법제화를 통해 영상으로라도 과실을 밝혀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2년의 시간을 거치며, 어머니는 어느새 '의료사고'의 전문가가 되어버린 듯했습니다. 병상일지를 써서 아들의 소송 과정에서 이겨낸 엄마는, 이제 다른 의료 사고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김 씨 가족은 이제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강남세브란스 병원이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다시 한 번 다투겠다고 항소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병상일지가 아닌 법정일기를 쓰면서 또 다시 법정 싸움을 견뎌야하겠지요. 아무쪼록 김씨 가족의 사연과 김 씨 어머니가 공유하고 싶다고 알려주신 내용이 '의료사고'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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