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압승! 하지만 더 불투명해진 미래…홍콩은 어디로 갈까

입력 2019.11.25 (16:48) 수정 2019.11.2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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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 (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 1994), 왕자웨이 감독의 초기 걸작 영화입니다. 어떻게 보면 구겨졌다 펴졌다 하는 고독한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영화라고 볼 수도 있지만, 조금 삐딱하게 시선을 들이대면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불안도 다양한 상징으로 표현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 내리는 날씨, 받지 않는 전화, 대답 없는 약속들, 흔들리는 화면 등으로 말입니다.


지난 5달 동안 홍콩은 그 홍콩인들의 불안이 현실화해 폭발한 시기였습니다. 수천 명이 체포된 홍콩 시위. 최루탄과 경찰의 진압봉이 난무했고, 시위대는 피를 흘리며 저항했습니다. 저항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송환법' 하나였을까요.

이 범죄인 인도법은 그저 도화선이었습니다. 시민들의 목표는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9월 4일 캐리 람 행정장관이 송환법을 공식 철회했음에도 시위는 지금까지도, 6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피로 얼룩진 시위의 첫 열매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에서 나왔습니다. 24일 치러진 구의원 선거. '압승', '싹쓸이' 이런 단어는 범민주 진영을 수식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궤멸', '참패' 등의 단어는 친중파 진영과 붙어 다닙니다. 중도파를 제외하곤 452석 가운데 385석 vs 58석(현지시각 25일 12시 기준)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범민주 진영과 친중파의 대표적인 인물의 선거 결과도 이 같은 상황을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시위를 주도해온 민간인권전선의 지미 샴 대표는 친중 진영 후보를 1천 표 가까운 차이로 여유 있게 따돌렸습니다.

친중 진영을 대표하는 후보 중에서는 현역 입법회 의원이자 구의원인 주니어스 호가 낙선했습니다. 호 의원이 지난 7월 21일 위엔룽 전철역에서 발생한 '백색 테러'를 두둔한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시위대의 분노를 샀습니다.


높은 투표율이 시민들의 분노의 크기를 짐작케 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를 보면, 최종 투표율은 무려 71.2%. 4년 전 구의원 선거 때는 47.0%에 불과했습니다. 젊은 층의 적극적인 참가가 이 같은 선거 결과를 낳았다는 게 홍콩 언론의 분석입니다. 18세~35세 유권자가 12.3% 늘었고, 해외 유학생들도 귀국해 투표에 앞장섰습니다. 홍콩의 미래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로 읽히는 부분입니다.

선거는 끝났고, 시위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홍콩의 앞날은 아직 불투명합니다. 이번 선거가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크게 3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캐리 람 행정장관의 대응입니다. 초강경파 크리스 탕을 신임 경찰 총수로 임명한 뒤 모든 시위를 봉쇄하고 12살 소년까지 기소했습니다. 과연 시위대에 대한 대응 방식을 바꿀지 우선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지미 샴 민간인권전선 대표는 "캐리 람은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시위대의 5대 요구를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단 캐리 람 행정장관은 25일 오후 성명에서 "홍콩 정부는 선거 결과를 존중해 앞으로 시민들의 의견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이고 진지하게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어떤 정책으로 표현될지 주목됩니다.


두 번째는 중국이 어떻게 나올까 하는 것입니다. 중국 정부의 마음을 그대로 전하는 관영 매체들은 이번 선거 결과가 시위를 지지하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서방의 개입 탓으로 돌리기도 했습니다.

환구시보는 25일 "선거 결과를 오독해 폭도들을 고무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서방의 일부 세력은 지난 1주일간 전력을 다해 반대파의 선거를 지원했다"고 말했습니다. 글로벌타임스 역시 "이번 선거가 폭동을 끝내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14일 "폭력을 중단시키고 혼란을 제압하는 것이 홍콩의 가장 긴박한 업무"라 사실상 최후통첩성 발언을 하며 중국 정부의 직접 개입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선거 결과로 중국 지도부가 이대로 물러설지, 아니면 더 강력한 대응에 나설지 기로에 서 있습니다.


마지막은 시위대의 행보입니다. 홍콩 시위대의 '마지막 보루'였던 이공대에는 대부분 경찰에 투항했거나 탈출하고 이제 30명 정도만 남아 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보도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마지막까지 봉쇄를 풀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 범민주 진영의 공민당은 승리를 거둔 32명 구의원 후보자 전원이 이공대로 가 교내에 남아 있는 시위대를 격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선거 결과에 환호한 홍콩 시위대가 앞으로 시위에 다시 불을 붙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혼돈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얘깁니다.


내년 9월에는 입법회 선거가 열립니다. 홍콩 구의원은 의회인 입법회 의원으로도 활동할 수 있습니다. 입법회는 지역구 35석과 직능대표 35석으로 구성되는 데 이번 선거의 분위기가 이어지면 입법회의 지역구 대부분도 범민주 진영이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범민주 진영이 요구하는 것은 결국 '행정장관 직선제'입니다. 진정한 일국양제는 홍콩의 대표를 중국 정부가 내려보내는 것이 아닌 국민의 손으로 뽑는 것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의식한 듯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5일 도쿄에서 아베 총리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홍콩은 중국의 일부"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홍콩을 엉망으로 만들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미완으로 끝난 2014년 '우산혁명'의 꿈이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요. 중국과 영국이 홍콩 주권 반환 협상에서 2017년부터 시작하기로 했던 그 '행정장관 직선제'라는 약속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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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5 16:48:38
    • 수정2019-11-25 18: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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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 (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 1994), 왕자웨이 감독의 초기 걸작 영화입니다. 어떻게 보면 구겨졌다 펴졌다 하는 고독한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영화라고 볼 수도 있지만, 조금 삐딱하게 시선을 들이대면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불안도 다양한 상징으로 표현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 내리는 날씨, 받지 않는 전화, 대답 없는 약속들, 흔들리는 화면 등으로 말입니다.


지난 5달 동안 홍콩은 그 홍콩인들의 불안이 현실화해 폭발한 시기였습니다. 수천 명이 체포된 홍콩 시위. 최루탄과 경찰의 진압봉이 난무했고, 시위대는 피를 흘리며 저항했습니다. 저항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송환법' 하나였을까요.

이 범죄인 인도법은 그저 도화선이었습니다. 시민들의 목표는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9월 4일 캐리 람 행정장관이 송환법을 공식 철회했음에도 시위는 지금까지도, 6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피로 얼룩진 시위의 첫 열매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에서 나왔습니다. 24일 치러진 구의원 선거. '압승', '싹쓸이' 이런 단어는 범민주 진영을 수식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궤멸', '참패' 등의 단어는 친중파 진영과 붙어 다닙니다. 중도파를 제외하곤 452석 가운데 385석 vs 58석(현지시각 25일 12시 기준)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범민주 진영과 친중파의 대표적인 인물의 선거 결과도 이 같은 상황을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시위를 주도해온 민간인권전선의 지미 샴 대표는 친중 진영 후보를 1천 표 가까운 차이로 여유 있게 따돌렸습니다.

친중 진영을 대표하는 후보 중에서는 현역 입법회 의원이자 구의원인 주니어스 호가 낙선했습니다. 호 의원이 지난 7월 21일 위엔룽 전철역에서 발생한 '백색 테러'를 두둔한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시위대의 분노를 샀습니다.


높은 투표율이 시민들의 분노의 크기를 짐작케 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를 보면, 최종 투표율은 무려 71.2%. 4년 전 구의원 선거 때는 47.0%에 불과했습니다. 젊은 층의 적극적인 참가가 이 같은 선거 결과를 낳았다는 게 홍콩 언론의 분석입니다. 18세~35세 유권자가 12.3% 늘었고, 해외 유학생들도 귀국해 투표에 앞장섰습니다. 홍콩의 미래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로 읽히는 부분입니다.

선거는 끝났고, 시위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홍콩의 앞날은 아직 불투명합니다. 이번 선거가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크게 3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캐리 람 행정장관의 대응입니다. 초강경파 크리스 탕을 신임 경찰 총수로 임명한 뒤 모든 시위를 봉쇄하고 12살 소년까지 기소했습니다. 과연 시위대에 대한 대응 방식을 바꿀지 우선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지미 샴 민간인권전선 대표는 "캐리 람은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시위대의 5대 요구를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단 캐리 람 행정장관은 25일 오후 성명에서 "홍콩 정부는 선거 결과를 존중해 앞으로 시민들의 의견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이고 진지하게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어떤 정책으로 표현될지 주목됩니다.


두 번째는 중국이 어떻게 나올까 하는 것입니다. 중국 정부의 마음을 그대로 전하는 관영 매체들은 이번 선거 결과가 시위를 지지하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서방의 개입 탓으로 돌리기도 했습니다.

환구시보는 25일 "선거 결과를 오독해 폭도들을 고무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서방의 일부 세력은 지난 1주일간 전력을 다해 반대파의 선거를 지원했다"고 말했습니다. 글로벌타임스 역시 "이번 선거가 폭동을 끝내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14일 "폭력을 중단시키고 혼란을 제압하는 것이 홍콩의 가장 긴박한 업무"라 사실상 최후통첩성 발언을 하며 중국 정부의 직접 개입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선거 결과로 중국 지도부가 이대로 물러설지, 아니면 더 강력한 대응에 나설지 기로에 서 있습니다.


마지막은 시위대의 행보입니다. 홍콩 시위대의 '마지막 보루'였던 이공대에는 대부분 경찰에 투항했거나 탈출하고 이제 30명 정도만 남아 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보도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마지막까지 봉쇄를 풀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 범민주 진영의 공민당은 승리를 거둔 32명 구의원 후보자 전원이 이공대로 가 교내에 남아 있는 시위대를 격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선거 결과에 환호한 홍콩 시위대가 앞으로 시위에 다시 불을 붙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혼돈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얘깁니다.


내년 9월에는 입법회 선거가 열립니다. 홍콩 구의원은 의회인 입법회 의원으로도 활동할 수 있습니다. 입법회는 지역구 35석과 직능대표 35석으로 구성되는 데 이번 선거의 분위기가 이어지면 입법회의 지역구 대부분도 범민주 진영이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범민주 진영이 요구하는 것은 결국 '행정장관 직선제'입니다. 진정한 일국양제는 홍콩의 대표를 중국 정부가 내려보내는 것이 아닌 국민의 손으로 뽑는 것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의식한 듯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5일 도쿄에서 아베 총리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홍콩은 중국의 일부"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홍콩을 엉망으로 만들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미완으로 끝난 2014년 '우산혁명'의 꿈이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요. 중국과 영국이 홍콩 주권 반환 협상에서 2017년부터 시작하기로 했던 그 '행정장관 직선제'라는 약속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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