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딴소리 하는 한국과 일본…핵심 쟁점 살펴보니

입력 2019.11.2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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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오후 6시.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종료를 불과 6시간 앞두고 종료 결정 연기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발표 내용과 뉘앙스가 조금 달랐습니다. 이후 이 결정에 대한 한일의 평가는 완전히 정반대였습니다. 일본은 일본 외교의 완벽한 승리라고 평가했고 한국은 한국의 판정승이라고 맞받았습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더 나아가 일본이 합의 내용을 왜곡해서 발표했다면서, 이를 일본에 공식 항의했고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냈다고 밝혔습니다. 23일 나고야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도 항의가 전달됐다면서 일본은 "한일 간 합의 내용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하루 만인 오늘(25일) 일본 정부는 사과한 사실이 없다고 맞받았습니다.


정확한 한일 간의 합의 내용은?

그렇다면 한·일이 22일 발표 전 합의한 내용은 정확히 무엇일까요? 한일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한국과 일본은 22일 오후 6시에 각자가 해야 할 일 두 가지씩을 발표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첫 번째 할 일은 시한부임을 전제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정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한일 합의의 핵심인 부분입니다. 이에 대응해 일본이 첫 번째로 할 일은 수출관리 현안 해결에 기여하도록 국장급 대화를 시작하는 일이었습니다.

일본도 '수출 규제'를 시한부로 중단하는 결정을 했다면 등가성이 명확해져서 더 좋았겠지만, 거기까진 논의가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당국자는 "그동안 일본은 대화 자체를 거부해왔기 때문에 일본을 테이블로 끌어들인 것만으로도 진전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두 번째로, 일본이 대화를 한다면 한국은 대화하는 동안 WTO 제소 절차를 정지하기로 했습니다. 이 역시 조건부입니다. 그러면 일본은, 건전한 수출 실적 축적을 통해서 반도체 3개 품목의 관리 운용을 재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이상이 한일 간에 합의해 발표한 정확한 내용입니다.


한·일이 딴소리하는 이유는?…핵심 쟁점 살펴보니

합의 내용을 보면, 한국이 취해야 하는 행동 두 가지는 명확합니다. 지소미아 종료 중지나 WTO 제조 절차 중지 모두 즉시 실행하면 가시적으로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에 반해, 일본이 취해야 할 행동 두 가지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고, 시간을 두고 봐야 할 일이어서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 첫날 발표 때부터 이런 해석 차이가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대화의 의제'에 당연히 '백색 국가 복원'이 들어간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일본 경제산업성은 합의 내용을 발표하면서 "백색 국가 제외는 유지될 것"이라는 점을 먼저 강조했습니다. 본인들의 현재 입장을 강조함으로써, 후속 논의의 가치를 순식간에 평가절하시킨 겁니다. 정의용 안보실장이 일본이 협상의 '신의 성실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로,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건전한 수출실적 축적을 통한 재검토'란 뜻은 일본 기업의 개별 허가 실적을 축적해 나가서 이를 통해 수출 관리가 잘 운용되는 게 확인된다면, 일정 기간에 '포괄 허가'가 복원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본이 이 복원 기간으로 한두 달 걸릴 것 같다고 먼저 언급했다는 이야기가 한국 외교가에서 흘러나오고 있지만 확인되진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발표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해석 차이를 보이면서 일본은 양보한 게 없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는 겁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은 합의한 그대로가 아니라 해석을 붙이고 있고, 보도가 이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양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을 누가 먼저 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 다릅니다.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 일본이 먼저 수출 규제에 대한 국장급 협의를 제안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일 국장급 협의를 할 때 일본이 지속적으로 지소미아에 대해 관심을 보여왔고, 결국 일본이 먼저 이 문제를 꺼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이 11월 19일, 먼저 WTO 제소 절차 중지를 언급하며 '국장급 협의' 안을 제안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느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일 양국의 이런 입장 차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기도 합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충실한 협의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냈다기보다는, 미국의 유례 없는 압박 때문에, 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급하게 합의를 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소미아 종료 중지 결정을 둘러싼 한일 간의 논쟁은 12월 24일쯤으로 예상되는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 싸움 성격으로 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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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전히 딴소리 하는 한국과 일본…핵심 쟁점 살펴보니
    • 입력 2019-11-25 18:26:52
    취재K
11월 22일 오후 6시.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종료를 불과 6시간 앞두고 종료 결정 연기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발표 내용과 뉘앙스가 조금 달랐습니다. 이후 이 결정에 대한 한일의 평가는 완전히 정반대였습니다. 일본은 일본 외교의 완벽한 승리라고 평가했고 한국은 한국의 판정승이라고 맞받았습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더 나아가 일본이 합의 내용을 왜곡해서 발표했다면서, 이를 일본에 공식 항의했고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냈다고 밝혔습니다. 23일 나고야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도 항의가 전달됐다면서 일본은 "한일 간 합의 내용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하루 만인 오늘(25일) 일본 정부는 사과한 사실이 없다고 맞받았습니다.


정확한 한일 간의 합의 내용은?

그렇다면 한·일이 22일 발표 전 합의한 내용은 정확히 무엇일까요? 한일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한국과 일본은 22일 오후 6시에 각자가 해야 할 일 두 가지씩을 발표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첫 번째 할 일은 시한부임을 전제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정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한일 합의의 핵심인 부분입니다. 이에 대응해 일본이 첫 번째로 할 일은 수출관리 현안 해결에 기여하도록 국장급 대화를 시작하는 일이었습니다.

일본도 '수출 규제'를 시한부로 중단하는 결정을 했다면 등가성이 명확해져서 더 좋았겠지만, 거기까진 논의가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당국자는 "그동안 일본은 대화 자체를 거부해왔기 때문에 일본을 테이블로 끌어들인 것만으로도 진전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두 번째로, 일본이 대화를 한다면 한국은 대화하는 동안 WTO 제소 절차를 정지하기로 했습니다. 이 역시 조건부입니다. 그러면 일본은, 건전한 수출 실적 축적을 통해서 반도체 3개 품목의 관리 운용을 재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이상이 한일 간에 합의해 발표한 정확한 내용입니다.


한·일이 딴소리하는 이유는?…핵심 쟁점 살펴보니

합의 내용을 보면, 한국이 취해야 하는 행동 두 가지는 명확합니다. 지소미아 종료 중지나 WTO 제조 절차 중지 모두 즉시 실행하면 가시적으로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에 반해, 일본이 취해야 할 행동 두 가지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고, 시간을 두고 봐야 할 일이어서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 첫날 발표 때부터 이런 해석 차이가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대화의 의제'에 당연히 '백색 국가 복원'이 들어간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일본 경제산업성은 합의 내용을 발표하면서 "백색 국가 제외는 유지될 것"이라는 점을 먼저 강조했습니다. 본인들의 현재 입장을 강조함으로써, 후속 논의의 가치를 순식간에 평가절하시킨 겁니다. 정의용 안보실장이 일본이 협상의 '신의 성실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로,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건전한 수출실적 축적을 통한 재검토'란 뜻은 일본 기업의 개별 허가 실적을 축적해 나가서 이를 통해 수출 관리가 잘 운용되는 게 확인된다면, 일정 기간에 '포괄 허가'가 복원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본이 이 복원 기간으로 한두 달 걸릴 것 같다고 먼저 언급했다는 이야기가 한국 외교가에서 흘러나오고 있지만 확인되진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발표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해석 차이를 보이면서 일본은 양보한 게 없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는 겁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은 합의한 그대로가 아니라 해석을 붙이고 있고, 보도가 이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양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을 누가 먼저 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 다릅니다.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 일본이 먼저 수출 규제에 대한 국장급 협의를 제안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일 국장급 협의를 할 때 일본이 지속적으로 지소미아에 대해 관심을 보여왔고, 결국 일본이 먼저 이 문제를 꺼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이 11월 19일, 먼저 WTO 제소 절차 중지를 언급하며 '국장급 협의' 안을 제안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느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일 양국의 이런 입장 차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기도 합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충실한 협의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냈다기보다는, 미국의 유례 없는 압박 때문에, 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급하게 합의를 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소미아 종료 중지 결정을 둘러싼 한일 간의 논쟁은 12월 24일쯤으로 예상되는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 싸움 성격으로 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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