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선거법에 잊힐까…“단식에도 차별 있더라”

입력 2019.11.2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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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앞 '고공 단식'…전기도 불도 없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단식으로 청와대 분수대 앞이 연일 분주합니다. 당 주요 의원들이 참석하는 원내대책회의, 최고위원회의가 전부 청와대 앞 단식농성장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어제(25일)도 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완구 전 총리,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농성장을 찾아 황 대표를 면담했습니다.

반면 국회 앞에서 벌써 20여 일째 단식을 계속하고 있는 최승우 씨의 고공 농성장은 별다른 주목을 못 받고 있습니다. 최승우 씨는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입니다. 1982년 14살 되던 해에 영문도 모르고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가 부모와 생이별했습니다. 최 씨는 이달 초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 6번 출구의 '지붕'에 농성장을 차렸습니다. '지붕' 위엔 전기도 불빛도 없습니다. 요구사항은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과거사법) 통과입니다.

'과거사법', 자유한국당 반대 속 겨우 법사위行

사실 역 출구 앞에도 농성장이 있었습니다. 높이 1m가량으로 성인이 허리를 못 펴는 크기입니다. 그곳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740일 넘게 농성을 이어왔습니다.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감금, 강제노역, 학살 등 국가의 만행을 밝히기 위해서는 법적 권한을 가진 과거사정리위원회 구성이 필수입니다.

그러나 과거사법은 19대 국회에서 무산됐고, 지난해 다시 발의됐습니다. 1년 이상 논의가 지연되자 보다 못한 최 씨가 영하의 날씨 속에 '고공 단식'을 감행한 겁니다. 최 씨의 간절함이 통한 것인지, 과거사법은 지난 22일 밤,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 문턱을 겨우 넘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조사위 구성 편파성 등을 이유로 당일 의결에 불참하면서, 의결 정족수가 채워질 때까지 회의를 세 차례 열어야 했습니다.

이번엔 통과될까?

여야 이견이 빠르게 좁혀지며 오는 27일 과거사법의 법사위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조사위원회 정수를 15명에서 9명으로 축소하도록 법안이 수정될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대통령 추천 1명, 교섭단체·비교섭단체 추천 4명씩 총 9명을 선임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 중입니다. 법사위를 통과하면 이틀 뒤인 29일 본회의에 부의됩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형제복지원 뿐 아니라, 소년 수용소 '선감학원', 극빈층 주민을 간척사업에 동원한 서산개척단 등 공권력의 부당한 인권침해를 조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진전에도 최 씨는 법안의 본회의 통과까지 단식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에 여야 관심이 쏠릴 경우, 자칫 과거사법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걱정 때문입니다. 최 씨는 주목받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에 "단식에도 차별이 있더라"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20대 국회 잔여 임기는 다섯 달 남짓, 이번에는 국가폭력 희생자들의 억울함이 풀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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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심야심] 선거법에 잊힐까…“단식에도 차별 있더라”
    • 입력 2019-11-26 07:01:10
    여심야심
국회앞 '고공 단식'…전기도 불도 없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단식으로 청와대 분수대 앞이 연일 분주합니다. 당 주요 의원들이 참석하는 원내대책회의, 최고위원회의가 전부 청와대 앞 단식농성장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어제(25일)도 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완구 전 총리,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농성장을 찾아 황 대표를 면담했습니다.

반면 국회 앞에서 벌써 20여 일째 단식을 계속하고 있는 최승우 씨의 고공 농성장은 별다른 주목을 못 받고 있습니다. 최승우 씨는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입니다. 1982년 14살 되던 해에 영문도 모르고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가 부모와 생이별했습니다. 최 씨는 이달 초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 6번 출구의 '지붕'에 농성장을 차렸습니다. '지붕' 위엔 전기도 불빛도 없습니다. 요구사항은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과거사법) 통과입니다.

'과거사법', 자유한국당 반대 속 겨우 법사위行

사실 역 출구 앞에도 농성장이 있었습니다. 높이 1m가량으로 성인이 허리를 못 펴는 크기입니다. 그곳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740일 넘게 농성을 이어왔습니다.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감금, 강제노역, 학살 등 국가의 만행을 밝히기 위해서는 법적 권한을 가진 과거사정리위원회 구성이 필수입니다.

그러나 과거사법은 19대 국회에서 무산됐고, 지난해 다시 발의됐습니다. 1년 이상 논의가 지연되자 보다 못한 최 씨가 영하의 날씨 속에 '고공 단식'을 감행한 겁니다. 최 씨의 간절함이 통한 것인지, 과거사법은 지난 22일 밤,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 문턱을 겨우 넘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조사위 구성 편파성 등을 이유로 당일 의결에 불참하면서, 의결 정족수가 채워질 때까지 회의를 세 차례 열어야 했습니다.

이번엔 통과될까?

여야 이견이 빠르게 좁혀지며 오는 27일 과거사법의 법사위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조사위원회 정수를 15명에서 9명으로 축소하도록 법안이 수정될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대통령 추천 1명, 교섭단체·비교섭단체 추천 4명씩 총 9명을 선임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 중입니다. 법사위를 통과하면 이틀 뒤인 29일 본회의에 부의됩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형제복지원 뿐 아니라, 소년 수용소 '선감학원', 극빈층 주민을 간척사업에 동원한 서산개척단 등 공권력의 부당한 인권침해를 조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진전에도 최 씨는 법안의 본회의 통과까지 단식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에 여야 관심이 쏠릴 경우, 자칫 과거사법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걱정 때문입니다. 최 씨는 주목받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에 "단식에도 차별이 있더라"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20대 국회 잔여 임기는 다섯 달 남짓, 이번에는 국가폭력 희생자들의 억울함이 풀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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