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당할 희망도 이젠 없어요”…개성공단 기업들의 하소연

입력 2019.11.2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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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부전선을 시찰하고 해안포 사격을 지시했습니다. 북한군은 "연마해 온 포사격술을 남김없이 보여드렸다"고 합니다. 이런 북한 매체의 보도는 부산에서 한 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리는 날 아침에 나왔습니다.

국방부는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 군이 북한군 훈련을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못 박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통일부도 유감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어지는 북한의 강경행동. 속이 타들어 가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이제 더 타들어 갈 속도 없다고 합니다.

개성공단은 2016년 2월 10일 우리 정부가 전격적으로 폐쇄한 뒤 1,400일 가깝게 문이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남겨둔 설비와 자재, 재고가 어떤 상태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름대로 준비

피해를 많이 입었는데 준비의 기간만 잘 넘긴다면 그 뒤에는 빠르게 복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북미대화가 성공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름대로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고 말씀을 드린다.

19일 방송으로도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개성공단과 관련해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개성공단기업협의회는 9번의 신청 끝에 올해 5월 방북 허가를 받았습니다.개성공단기업협의회는 9번의 신청 끝에 올해 5월 방북 허가를 받았습니다.

개성공단기업협의회는 이 발언에 답답함을 호소했습니다.

앞이 안 보이니까 미치겠다, 복장 터진다

개성공단기업협회 관계자는 한숨과 함께 말을 꺼냈습니다.

"대통령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데 우리가 보이겠어요?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는데 우리가 볼 수가 없으니까 어떻게 알겠습니까. 통일부도 뭘 알겠습니까? 안다고 해도 우리한테 얘기는 하겠습니까?"

관계자의 말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짙게 묻어있었습니다. 북미 관계개선을 언급한 문 대통령에게 답답함도 드러냈습니다.

"북미 간에 뭐 (관계개선이) 안되면 우리 정부는 아무것도 안 할 겁니까? 또다시 하노이 북미회담만 바라봤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3차 북미 정상회담? 잘 돼야죠. 그런데 잘 안됐을 경우에 대비한 정부의 대책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전격적인 폐쇄 발표 이후 피난민처럼 빠져나온 개성공단 기업들전격적인 폐쇄 발표 이후 피난민처럼 빠져나온 개성공단 기업들

쫓기듯 베트남 이전한 기업도 쉽지 않은 상황

개성공단 폐쇄 이후 30개 기업 정도가 울며 겨자 먹기로 베트남을 찾았습니다.

신시장으로 주목받는 곳이라고 하지만 현재 운영이 녹록지 않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세밀한 현장조사와 정밀한 사업계획을 가지고 진출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경황없이 넘어간 터라 힘에 부친다는 겁니다.

'국민과의 대화' 당시 화제가 됐던 평양치킨집 최원호 대표에 대한 안타까움도 표현했습니다.

"그분 잘 알지요. 안타깝습니다. 북한 진출한 업체는 3종류가 있습니다. 개성공단이 하나, 금강산이 하나, 그리고 내륙기업이라고 평양치킨집 같은 업체가 있습니다. 지금 모두 힘든 상황입니다."

희망 고문? 이제는 고문당할 희망도 없다

은행 이자는 하루하루 불어나고 자재는 하루하루 녹슬어 가고 있습니다.

올해 4월 개성공단기업협회가 산하 108개사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입주기업의 86%는 경영이 악화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10%는 사실상 폐업 상태입니다.

개성에 묶인 설비와 못 받은 돈 등 기업들이 추산한 피해액은 1조 5천억 원대입니다.

"(북미회담 하던) 작년만 해도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희망 고문이었어요. 그런데 올해부터는 희망 고문도 아니에요. 고문당할 희망도 없어요. 이젠"

헌법재판소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정기섭 개성공단기업 비대위원장헌법재판소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정기섭 개성공단기업 비대위원장

헌법재판소 찾은 개성공단, 피해보상 가능할까?

개성공단 기업들은 두 달째 헌법재판소 앞에서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6년 5월 개성공단 중단 조치에 대한 위헌 확인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했지만, 3년이 넘도록 아무런 재판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며 항의하고 있습니다.

앞서 2017년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는 개성공단 중단이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절차를 지키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 독단적 구두지시로 집행됐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개성공단 폐쇄를 위헌으로 판결하게 되면, 특별법 등을 제정해 개성공단 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함께 기업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개성공단, 기업과 정부 여전히 큰 견해 차이

개성으로 가는 길은 언제쯤 열릴까요? 이 관계자는 우리 정부의 독자적인 노력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정말 미국 눈치 보지 말고 가시적인 노력을 해줘야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정부가 해결해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어떠한 (다른) 의사결정을 내리기 힘든 상황입니다."

'국민과의 대화' 이후 미국 LA에서 교민들과 만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북미, 남북, 한미 관계의 선순환을 추구해야 한다. 세 가지 양자 관계가 약간의 순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서로에게 긍정적 작용을 해야 문제가 풀린다"고 말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 4년을 앞둔 지금, 우리 정부와 개성공단 기업 간의 인식 차이는 여전히 깊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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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6 07:01:11
    취재K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부전선을 시찰하고 해안포 사격을 지시했습니다. 북한군은 "연마해 온 포사격술을 남김없이 보여드렸다"고 합니다. 이런 북한 매체의 보도는 부산에서 한 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리는 날 아침에 나왔습니다.

국방부는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 군이 북한군 훈련을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못 박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통일부도 유감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어지는 북한의 강경행동. 속이 타들어 가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이제 더 타들어 갈 속도 없다고 합니다.

개성공단은 2016년 2월 10일 우리 정부가 전격적으로 폐쇄한 뒤 1,400일 가깝게 문이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남겨둔 설비와 자재, 재고가 어떤 상태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름대로 준비

피해를 많이 입었는데 준비의 기간만 잘 넘긴다면 그 뒤에는 빠르게 복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북미대화가 성공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름대로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고 말씀을 드린다.

19일 방송으로도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개성공단과 관련해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개성공단기업협의회는 9번의 신청 끝에 올해 5월 방북 허가를 받았습니다.
개성공단기업협의회는 이 발언에 답답함을 호소했습니다.

앞이 안 보이니까 미치겠다, 복장 터진다

개성공단기업협회 관계자는 한숨과 함께 말을 꺼냈습니다.

"대통령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데 우리가 보이겠어요?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는데 우리가 볼 수가 없으니까 어떻게 알겠습니까. 통일부도 뭘 알겠습니까? 안다고 해도 우리한테 얘기는 하겠습니까?"

관계자의 말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짙게 묻어있었습니다. 북미 관계개선을 언급한 문 대통령에게 답답함도 드러냈습니다.

"북미 간에 뭐 (관계개선이) 안되면 우리 정부는 아무것도 안 할 겁니까? 또다시 하노이 북미회담만 바라봤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3차 북미 정상회담? 잘 돼야죠. 그런데 잘 안됐을 경우에 대비한 정부의 대책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전격적인 폐쇄 발표 이후 피난민처럼 빠져나온 개성공단 기업들
쫓기듯 베트남 이전한 기업도 쉽지 않은 상황

개성공단 폐쇄 이후 30개 기업 정도가 울며 겨자 먹기로 베트남을 찾았습니다.

신시장으로 주목받는 곳이라고 하지만 현재 운영이 녹록지 않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세밀한 현장조사와 정밀한 사업계획을 가지고 진출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경황없이 넘어간 터라 힘에 부친다는 겁니다.

'국민과의 대화' 당시 화제가 됐던 평양치킨집 최원호 대표에 대한 안타까움도 표현했습니다.

"그분 잘 알지요. 안타깝습니다. 북한 진출한 업체는 3종류가 있습니다. 개성공단이 하나, 금강산이 하나, 그리고 내륙기업이라고 평양치킨집 같은 업체가 있습니다. 지금 모두 힘든 상황입니다."

희망 고문? 이제는 고문당할 희망도 없다

은행 이자는 하루하루 불어나고 자재는 하루하루 녹슬어 가고 있습니다.

올해 4월 개성공단기업협회가 산하 108개사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입주기업의 86%는 경영이 악화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10%는 사실상 폐업 상태입니다.

개성에 묶인 설비와 못 받은 돈 등 기업들이 추산한 피해액은 1조 5천억 원대입니다.

"(북미회담 하던) 작년만 해도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희망 고문이었어요. 그런데 올해부터는 희망 고문도 아니에요. 고문당할 희망도 없어요. 이젠"

헌법재판소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정기섭 개성공단기업 비대위원장
헌법재판소 찾은 개성공단, 피해보상 가능할까?

개성공단 기업들은 두 달째 헌법재판소 앞에서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6년 5월 개성공단 중단 조치에 대한 위헌 확인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했지만, 3년이 넘도록 아무런 재판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며 항의하고 있습니다.

앞서 2017년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는 개성공단 중단이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절차를 지키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 독단적 구두지시로 집행됐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개성공단 폐쇄를 위헌으로 판결하게 되면, 특별법 등을 제정해 개성공단 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함께 기업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개성공단, 기업과 정부 여전히 큰 견해 차이

개성으로 가는 길은 언제쯤 열릴까요? 이 관계자는 우리 정부의 독자적인 노력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정말 미국 눈치 보지 말고 가시적인 노력을 해줘야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정부가 해결해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어떠한 (다른) 의사결정을 내리기 힘든 상황입니다."

'국민과의 대화' 이후 미국 LA에서 교민들과 만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북미, 남북, 한미 관계의 선순환을 추구해야 한다. 세 가지 양자 관계가 약간의 순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서로에게 긍정적 작용을 해야 문제가 풀린다"고 말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 4년을 앞둔 지금, 우리 정부와 개성공단 기업 간의 인식 차이는 여전히 깊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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