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김치프리미엄’ 노려 13억 쪼개기 해외 송금…“무죄!”

입력 2019.11.2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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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1달러를 사려면 2,000원을 내야 하지만, 어느 섬나라에선 1달러를 사는 데 1,000원밖에 들지 않는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연히 섬나라에서 달러를 사서 우리나라에서 팔아치우려는 사람들로 넘쳐날 겁니다. 이렇게 시장 사이에 같은 상품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 차익을 내는 거래 방식을 재정거래(Arbitrage trading)라고 부릅니다.

2017년 국내 암호화폐 시세, 해외보다 50% 비싸…'김치 프리미엄' 신조어도

지난 2017년 말, 우리나라 암호화폐(가상화폐) 시장에서도 재정거래를 하려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국내와 해외 거래소에서의 가상화폐 시세 차이,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한 시도였는데요.

당시 한국 거래소의 암호화폐 시세는 이상 과열 증세를 보였습니다. 비트코인 1개의 가격이 2017년 12월 7일 1,800만 원에서 하루 만에 2,500만 원으로 폭등할 정도였죠. 이때 해외 거래소 암호화폐 시세와 국내 시세와의 가격 차이는 무려 50% 이상 벌어졌습니다.

예컨대 1비트코인이 미국 거래소에서 1,000만 원에 거래됐다면, 우리나라에선 1,500만 원을 주고서야 살 수 있었던 겁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거래하려면 자국민만 거래가 가능했던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눈치 빠른 사람들은 해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이더리움 같은 가상화폐를 사들였고, 이를 국내로 전송해 팔아 시세차익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외환거래 수수료를 고려해도 남는 장사였습니다.

이를 눈치챈 법무부가 "세계 각국에서 우리나라에 가상화폐를 판매하는 데 혈안이 돼 있고 우리나라 국민이 이를 모두 매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려를 표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이런 행위에 법 위반 소지가 있었단 겁니다.

현행 외국환거래법은 10억 원 이상의 자본거래를 하려는 자는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신고 거래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위반행위 금액의 3배가 1억 원을 넘는 경우, 벌금이 그만큼 늘어납니다.

암호화폐 수입 목적 462회 송금에 "무죄"…사법부 첫 판단

국내 거주자 A 씨도 재정거래를 하려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A 씨는 '김치 프리미엄'을 틈타 2018년 1월부터 3월까지 미국에 사는 지인들에게 462회에 걸쳐 13억 8,000여만 원을 송금하고, 지인들은 가상화폐를 사들여 A 씨에게 전송했습니다. A 씨는 이를 국내 거래소에서 팔아 이득을 봤습니다.

이상한 외환거래 동향을 통보받은 검찰은 A씨가 미국에 사는 지인들에게 가상화폐를 구매하게 한 다음 국내로 들여와 되팔고 수익을 나눠 가지기로 계획한 것은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A 씨는 검찰 조사에서 "미국 가상화폐 거래소는 하루 2만 5,000달러까지만 거래할 수 있었다가 B 씨는 5만 달러, C 씨는 10만 달러로 각각 거래 한도가 높아졌다"며 "그때부터 B 씨에겐 9,999달러 내지 2만 5,000달러를, C 씨에겐 2만 4,000달러 내지 10만 달러를 송금해 가상화폐를 구매대행하도록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1건당 3,000달러 이하 해외송금의 경우 거래 외국환은행 지정이 필요 없고, 연간송금액 한도(5만 달러)에서도 차감되지 않는다 해서 3,000달러 이하 금액으로 나눠 송금했을 뿐"이라고도 했습니다. A 씨는 이를 뒷받침할 거래내역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검찰은 결국 A 씨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신고 없이 자본거래를 했고, 신고 대상에서 빠지기 위해 미화 3,000달러 이하로 분할 송금하는 식의 '분할 거래'를 했단 겁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지난 14일 A 씨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하기 위한 해외 송금 행위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초 10억 원 이상을 거래하려 했다고 볼 정황 없어"

대법원은 그동안 "외국환거래법에서 처벌 대상이 되는 '미신고 자본거래'란, 금액을 일부러 나누어 거래하는 이른바 '분할거래' 방식의 자본거래에 해당한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본거래 금액이 10억 원 이상인 경우를 의미한다"고 판시해 왔습니다.

이 사건은 외국환거래법상 자본거래에서 '개별 거래 금액이 처벌기준인 10억 원을 초과하지는 않지만, 총 거래금액을 합하면 1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였습니다.

이에 검찰은 A씨가 가상화폐를 해외에서 구입하려는 같은 범의 아래 129만 9,586달러를 송금하는 행위를 계속해서 행했고, 해당 거래 내용을 신고하지 않기 위해 예금거래 미신고 대상 금액인 미화 3,000달러 이하로 분할 송금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1인당 거래 한도를 제한하여 한도를 넘어서는 가상화폐를 사들이기 위해 비거주자들에게 각 송금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A 씨의 거래는 이른바 '분할 거래' 방식에 해당한단 겁니다.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자본거래 금액이 10억 원이 되진 않지만, 총 금액을 일부러 나누어 분할거래를 한 이상 외국환거래법상 처벌 대상에 해당한다는 주장입니다.

법원은 그러나 검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A 씨의 거래행위를 두고 외국환거래법상 처벌 대상 미신고 자본거래 금액기준인 10억 원을 넘지 않도록 분할하는 '쪼개기' 거래행위를 했다고 볼 순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대법원에서 처벌 대상으로 판시한 '분할거래'는 당초부터 10억 원 이상을 거래하면서 단지 외국환거래법 처벌을 피하기 위해 금액을 나눠 거래하는 형식을 취한 경우"라며 "그런데 A 씨의 거래는 9,999달러 내지 10만 달러 정도의 금액을 보내는 방법으로 가상화폐 구매를 하도록 한 후, 이를 통해 구매한 가상화폐를 매각하고, 그 돈을 다시 거래한 행위를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또 "다만 신고나 연간송금액 한도에서 차감되는 것을 피하고자 3,000달러 이하 금액으로 나눠 송금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A씨가 건별로 분할거래 방식으로 거래한 것은 과태료 대상이 될 순 있겠지만, 샀다 팔았다 한 총 액수를 모두 합산해 14억 원가량이 나온 것을 두고 애초부터 A씨가 10억 원 이상을 거래하려고 했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 쪼개서 거래했다고 볼 증거가 없단 겁니다.

법원은 결국 "A씨가 분할거래 행위를 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 없다"고도 판단하며 A 씨에게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가상화폐 재정거래라 하여 무조건 불법으로 볼 것은 아니며 사안별로 외국환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는지 달리 보아야 한다"면서 "현재 입법 미비로 가상화폐 거래가 외국환거래법의 적용 대상인지, 어떠한 거래가 신고대상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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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6 11:05:00
    취재K
우리나라에서 1달러를 사려면 2,000원을 내야 하지만, 어느 섬나라에선 1달러를 사는 데 1,000원밖에 들지 않는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연히 섬나라에서 달러를 사서 우리나라에서 팔아치우려는 사람들로 넘쳐날 겁니다. 이렇게 시장 사이에 같은 상품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 차익을 내는 거래 방식을 재정거래(Arbitrage trading)라고 부릅니다.

2017년 국내 암호화폐 시세, 해외보다 50% 비싸…'김치 프리미엄' 신조어도

지난 2017년 말, 우리나라 암호화폐(가상화폐) 시장에서도 재정거래를 하려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국내와 해외 거래소에서의 가상화폐 시세 차이,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한 시도였는데요.

당시 한국 거래소의 암호화폐 시세는 이상 과열 증세를 보였습니다. 비트코인 1개의 가격이 2017년 12월 7일 1,800만 원에서 하루 만에 2,500만 원으로 폭등할 정도였죠. 이때 해외 거래소 암호화폐 시세와 국내 시세와의 가격 차이는 무려 50% 이상 벌어졌습니다.

예컨대 1비트코인이 미국 거래소에서 1,000만 원에 거래됐다면, 우리나라에선 1,500만 원을 주고서야 살 수 있었던 겁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거래하려면 자국민만 거래가 가능했던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눈치 빠른 사람들은 해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이더리움 같은 가상화폐를 사들였고, 이를 국내로 전송해 팔아 시세차익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외환거래 수수료를 고려해도 남는 장사였습니다.

이를 눈치챈 법무부가 "세계 각국에서 우리나라에 가상화폐를 판매하는 데 혈안이 돼 있고 우리나라 국민이 이를 모두 매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려를 표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이런 행위에 법 위반 소지가 있었단 겁니다.

현행 외국환거래법은 10억 원 이상의 자본거래를 하려는 자는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신고 거래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위반행위 금액의 3배가 1억 원을 넘는 경우, 벌금이 그만큼 늘어납니다.

암호화폐 수입 목적 462회 송금에 "무죄"…사법부 첫 판단

국내 거주자 A 씨도 재정거래를 하려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A 씨는 '김치 프리미엄'을 틈타 2018년 1월부터 3월까지 미국에 사는 지인들에게 462회에 걸쳐 13억 8,000여만 원을 송금하고, 지인들은 가상화폐를 사들여 A 씨에게 전송했습니다. A 씨는 이를 국내 거래소에서 팔아 이득을 봤습니다.

이상한 외환거래 동향을 통보받은 검찰은 A씨가 미국에 사는 지인들에게 가상화폐를 구매하게 한 다음 국내로 들여와 되팔고 수익을 나눠 가지기로 계획한 것은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A 씨는 검찰 조사에서 "미국 가상화폐 거래소는 하루 2만 5,000달러까지만 거래할 수 있었다가 B 씨는 5만 달러, C 씨는 10만 달러로 각각 거래 한도가 높아졌다"며 "그때부터 B 씨에겐 9,999달러 내지 2만 5,000달러를, C 씨에겐 2만 4,000달러 내지 10만 달러를 송금해 가상화폐를 구매대행하도록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1건당 3,000달러 이하 해외송금의 경우 거래 외국환은행 지정이 필요 없고, 연간송금액 한도(5만 달러)에서도 차감되지 않는다 해서 3,000달러 이하 금액으로 나눠 송금했을 뿐"이라고도 했습니다. A 씨는 이를 뒷받침할 거래내역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검찰은 결국 A 씨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신고 없이 자본거래를 했고, 신고 대상에서 빠지기 위해 미화 3,000달러 이하로 분할 송금하는 식의 '분할 거래'를 했단 겁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지난 14일 A 씨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하기 위한 해외 송금 행위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초 10억 원 이상을 거래하려 했다고 볼 정황 없어"

대법원은 그동안 "외국환거래법에서 처벌 대상이 되는 '미신고 자본거래'란, 금액을 일부러 나누어 거래하는 이른바 '분할거래' 방식의 자본거래에 해당한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본거래 금액이 10억 원 이상인 경우를 의미한다"고 판시해 왔습니다.

이 사건은 외국환거래법상 자본거래에서 '개별 거래 금액이 처벌기준인 10억 원을 초과하지는 않지만, 총 거래금액을 합하면 1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였습니다.

이에 검찰은 A씨가 가상화폐를 해외에서 구입하려는 같은 범의 아래 129만 9,586달러를 송금하는 행위를 계속해서 행했고, 해당 거래 내용을 신고하지 않기 위해 예금거래 미신고 대상 금액인 미화 3,000달러 이하로 분할 송금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1인당 거래 한도를 제한하여 한도를 넘어서는 가상화폐를 사들이기 위해 비거주자들에게 각 송금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A 씨의 거래는 이른바 '분할 거래' 방식에 해당한단 겁니다.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자본거래 금액이 10억 원이 되진 않지만, 총 금액을 일부러 나누어 분할거래를 한 이상 외국환거래법상 처벌 대상에 해당한다는 주장입니다.

법원은 그러나 검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A 씨의 거래행위를 두고 외국환거래법상 처벌 대상 미신고 자본거래 금액기준인 10억 원을 넘지 않도록 분할하는 '쪼개기' 거래행위를 했다고 볼 순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대법원에서 처벌 대상으로 판시한 '분할거래'는 당초부터 10억 원 이상을 거래하면서 단지 외국환거래법 처벌을 피하기 위해 금액을 나눠 거래하는 형식을 취한 경우"라며 "그런데 A 씨의 거래는 9,999달러 내지 10만 달러 정도의 금액을 보내는 방법으로 가상화폐 구매를 하도록 한 후, 이를 통해 구매한 가상화폐를 매각하고, 그 돈을 다시 거래한 행위를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또 "다만 신고나 연간송금액 한도에서 차감되는 것을 피하고자 3,000달러 이하 금액으로 나눠 송금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A씨가 건별로 분할거래 방식으로 거래한 것은 과태료 대상이 될 순 있겠지만, 샀다 팔았다 한 총 액수를 모두 합산해 14억 원가량이 나온 것을 두고 애초부터 A씨가 10억 원 이상을 거래하려고 했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 쪼개서 거래했다고 볼 증거가 없단 겁니다.

법원은 결국 "A씨가 분할거래 행위를 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 없다"고도 판단하며 A 씨에게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가상화폐 재정거래라 하여 무조건 불법으로 볼 것은 아니며 사안별로 외국환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는지 달리 보아야 한다"면서 "현재 입법 미비로 가상화폐 거래가 외국환거래법의 적용 대상인지, 어떠한 거래가 신고대상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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