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태국 ‘떠 있는 사원’…기후 변화에 맞서 싸운다

입력 2019.11.2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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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방콕에서 남쪽으로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리면 타이만(gulf of Thailand) 바다에 접한 한 특별한 불교 사원이 나옵니다. 쿤 사뭇 찐(Khun Samut Chin)이라는 이 사원을 하늘에서 보면 바다에 둘러싸여 마치 섬처럼 보이는데 태국 사람들은 바다에 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떠 있는 사원(floating temple)'이라고도 부릅니다.

사실 이 사원은 처음에는 태국 시골의 한 해변 마을 안에 있는 평범한 사원에 불과했는데 해안 침식(coastal erosion)이 진행되면서 바다 한가운데 있는 사원이 됐습니다.

사뭇 찐(Samut Chin) 마을 해변 위성사진사뭇 찐(Samut Chin) 마을 해변 위성사진

30년 전부터 해안선이 조금씩 마을 쪽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100m, 200m, 현재는 500m까지 안쪽으로 해안선이 밀려들어 왔습니다. 마을 한가운데 있었던 이 사원은 어느새 주위가 바닷물로 둘러 싸이게 됐습니다. 사원에서 바다를 보면 과거 마을에 있던 전봇대가 바다 위에 남아 있습니다.


사원 곳곳에도 이미 상당 부분 바닷물이 들어왔습니다. 바다 쪽에 방파제를 쌓았지만, 본당 건물을 포함해 오래전에 세워진 건물들은 수십 ㎝씩 물이 차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새 건물을 지을 때는 지면에서 2~3m씩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지어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다 육지 쪽으로 이사를 하였지만 이 사원의 솜누억 아띠판요(51) 주지 스님은 옮기지 않고 몇몇 스님들과 함께 사원을 계속 지키고 있습니다. 사원마저 옮겨가면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바닷물이 더 들어오면 여기에 마을이 있었다는 것조차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주지 스님이 사원을 지키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 사원은 태국에서 해안침식과 맞서 싸우고 있는 현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해안침식을 알리기 위해 사원을 지키고 있는 주지 스님해안침식을 알리기 위해 사원을 지키고 있는 주지 스님

주지 스님은 바다 한가운데를 가리키며 "저쪽에 마을과 학교가 있었어요. 해안침식이 계속되면서 마을과 학교가 옮겨가고 이제 사원만 바다 가운데 남아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자연의 거대한 힘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해안 침식의 심각성을 이런 식으로라도 외부에 알리겠다는 주지 스님의 의지가 엿보였습니다.

이 지역의 마을 사람들은 애초 1,000명 이상 있었지만, 지금은 400명 이하로 줄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도 최소 서너 번은 육지 쪽으로 다시 집을 짓고 이사를 해야 했고, 심지어 11번까지 이사한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옮긴 마을 안에도 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마치 수상 도시처럼 마을 안을 돌아다닐 땐 차가 아니라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이런 해안 침식의 원인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도시화와 개발 때문입니다. 태국에서는 전체 해안선의 4분의 1인 약 700㎞가 심각한 침식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태국 해안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던 자연 맹그로브 숲의 파괴도 해안 침식의 속도를 빠르게 하고 있습니다. 바닷물 속에서도 잘 자라는 맹그로브 나무는 파도에 의한 토양 침식을 막아주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동남아 해안의 맹그로브 숲은 새우 양식장과 염전 개발, 호텔 건축 등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유엔과 태국 해양해안자원부 자료를 보면 1961년부터 2000년 사이 태국 해안의 맹그로브 숲의 3분의 1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태국 해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맹그로브숲 되살리기 운동태국 해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맹그로브숲 되살리기 운동

'떠 있는 사원'이 있는 사뭇 찐 마을을 포함해 해안 침식이 이뤄지고 있는 태국 해안 곳곳에서 맹그로브 숲을 되살리기 위한 나무 심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주말마다 대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허리까지 빠지는 갯벌에서 어린 맹그로브 묘목을 심고 있지만 한번 사라진 숲을 살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느 한 사람, 한 마을의 책임이 아니라 환경을 지켜야 하는 모든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주말에 이곳을 찾아 맹그로브 나무를 심고 있는 태국 탐마삿대학교 3학년 여학생 사린야의 말입니다. 굳이 책임을 따진다면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개발과 풍요를 쫓아 온 모든 인류의 공동 책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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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태국 ‘떠 있는 사원’…기후 변화에 맞서 싸운다
    • 입력 2019-11-26 15:13:03
    특파원 리포트
태국 방콕에서 남쪽으로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리면 타이만(gulf of Thailand) 바다에 접한 한 특별한 불교 사원이 나옵니다. 쿤 사뭇 찐(Khun Samut Chin)이라는 이 사원을 하늘에서 보면 바다에 둘러싸여 마치 섬처럼 보이는데 태국 사람들은 바다에 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떠 있는 사원(floating temple)'이라고도 부릅니다.

사실 이 사원은 처음에는 태국 시골의 한 해변 마을 안에 있는 평범한 사원에 불과했는데 해안 침식(coastal erosion)이 진행되면서 바다 한가운데 있는 사원이 됐습니다.

사뭇 찐(Samut Chin) 마을 해변 위성사진
30년 전부터 해안선이 조금씩 마을 쪽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100m, 200m, 현재는 500m까지 안쪽으로 해안선이 밀려들어 왔습니다. 마을 한가운데 있었던 이 사원은 어느새 주위가 바닷물로 둘러 싸이게 됐습니다. 사원에서 바다를 보면 과거 마을에 있던 전봇대가 바다 위에 남아 있습니다.


사원 곳곳에도 이미 상당 부분 바닷물이 들어왔습니다. 바다 쪽에 방파제를 쌓았지만, 본당 건물을 포함해 오래전에 세워진 건물들은 수십 ㎝씩 물이 차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새 건물을 지을 때는 지면에서 2~3m씩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지어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다 육지 쪽으로 이사를 하였지만 이 사원의 솜누억 아띠판요(51) 주지 스님은 옮기지 않고 몇몇 스님들과 함께 사원을 계속 지키고 있습니다. 사원마저 옮겨가면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바닷물이 더 들어오면 여기에 마을이 있었다는 것조차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주지 스님이 사원을 지키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 사원은 태국에서 해안침식과 맞서 싸우고 있는 현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해안침식을 알리기 위해 사원을 지키고 있는 주지 스님
주지 스님은 바다 한가운데를 가리키며 "저쪽에 마을과 학교가 있었어요. 해안침식이 계속되면서 마을과 학교가 옮겨가고 이제 사원만 바다 가운데 남아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자연의 거대한 힘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해안 침식의 심각성을 이런 식으로라도 외부에 알리겠다는 주지 스님의 의지가 엿보였습니다.

이 지역의 마을 사람들은 애초 1,000명 이상 있었지만, 지금은 400명 이하로 줄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도 최소 서너 번은 육지 쪽으로 다시 집을 짓고 이사를 해야 했고, 심지어 11번까지 이사한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옮긴 마을 안에도 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마치 수상 도시처럼 마을 안을 돌아다닐 땐 차가 아니라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이런 해안 침식의 원인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도시화와 개발 때문입니다. 태국에서는 전체 해안선의 4분의 1인 약 700㎞가 심각한 침식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태국 해안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던 자연 맹그로브 숲의 파괴도 해안 침식의 속도를 빠르게 하고 있습니다. 바닷물 속에서도 잘 자라는 맹그로브 나무는 파도에 의한 토양 침식을 막아주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동남아 해안의 맹그로브 숲은 새우 양식장과 염전 개발, 호텔 건축 등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유엔과 태국 해양해안자원부 자료를 보면 1961년부터 2000년 사이 태국 해안의 맹그로브 숲의 3분의 1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태국 해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맹그로브숲 되살리기 운동
'떠 있는 사원'이 있는 사뭇 찐 마을을 포함해 해안 침식이 이뤄지고 있는 태국 해안 곳곳에서 맹그로브 숲을 되살리기 위한 나무 심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주말마다 대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허리까지 빠지는 갯벌에서 어린 맹그로브 묘목을 심고 있지만 한번 사라진 숲을 살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느 한 사람, 한 마을의 책임이 아니라 환경을 지켜야 하는 모든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주말에 이곳을 찾아 맹그로브 나무를 심고 있는 태국 탐마삿대학교 3학년 여학생 사린야의 말입니다. 굳이 책임을 따진다면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개발과 풍요를 쫓아 온 모든 인류의 공동 책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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